초보가 뭐냐? 율법을 잊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몽학선생 초보의 선생님이지만 사실은 더 깊이 들어가면 이것은 엄마예요, 엄마. 어린애, 젖먹이는 엄마 곁을 못 떠나요. 엄마가 누구냐? 율법이 엄마예요. 율법이 몽학선생이에요. 율법에서 태어난 거예요. 율법과 더불어 함께 살아온 겁니다 갈라디아서 4장 8절에 나옵니다.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 율법의 종이 되었다. 다른 말로 하면, 율법의 종은, 네가 마귀의 종이었다는 것을 티 내는 기호가 율법이에요. 기호, 언어가 율법입니다.
하나님 초보의 특징은 ‘왜 인간은 내가 하는 것으로 구원되지를 못하는가? 내가 믿는 것으로 왜 구원되지를 못하는가?’를 점점 더 점검하는 과정에 놓이게 되면, 그 사람은 초보에 들어섰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말하는 초보에 들어서신 거예요.
‘왜 나는 내 일상에서 내가 하지도 않은 일의 결과물로 자꾸 주입되느냐? 내가 결정하지도 않았고 내가 선택하지도 않은 일의 파도에 휘둘려서 살아가느냐?’ 그것을 내가 계속 경험하는 거예요.
초보에게 완성이 다가와요. “완성돼라.”가 아니라 완성이 저벅저벅 다가오는 거예요, 완성이.
장성한 자는 그냥 공짜로 되는 게 아니고 지각의 연단을 받아야 돼요. 많이 부대껴야 된다는 겁니다. ‘말씀이냐, 세상이냐? 세상이냐, 말씀이냐?’ 이 둘 틈에 끼어서 ‘아, 세상이 아니고 말씀에 진리가 있구나’라는 것을 느낄 때, 자아가 깨어질 때 그때 장성이 되는 겁니다. 초보부터 시작해서 결국은 연단을 받아 장성한 자로 가기까지 코스가 있는데 여러 갈래의 길이 아니고 한 갈래 원칙으로 이미 확정되어있는 그 코스가 있어요.
멜기세덱이라는 이 하나님의 개념을 가지고 ‘너 이거 모르면 초보, 멜기세덱 알면 장성한 자.’ 그렇게 하나님께서 구분하기로 작정을 하셨다는 겁니다. 멜기세덱이라는 그 개념 안에 초보와 장성 두 가지 요소가 다 함께 들어있습니다. 멜기세덱이 다 관여한다는 말은, 멜기세덱은 초보도 지배하고 장성한 자도 지배하니까 이건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루는 거예요
시작이 없고 끝이 없다는 말을 달리하게 되면 ‘시작이 곧 끝이고 끝이 곧 시작이다’ 에요. 같은 공간 안에 다 들어있으니까요. 선(線)이 아니고 공간이에요, 공간. 하나의 노선이 아니고 공간이란 말이에요, 공간. 주께서 다 이뤄놓은 공간입니다. 공간 안에 멜기세덱이 있어요.
내가 초보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건 바로 장성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같은 필드에 있기 때문에, 같은 공간에 있기 때문에 그래요. 장성한 자가 무엇이며 초보가 무엇인가가 바로 같은 공간에 같이 있어요. 왜? 초보라는 말, 장성이라는 말 둘 다 멜기세덱의 네트워크를 이루는 단어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초보된 자가 굳이 장성한 자가 될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초보 안에 장성이 들어있습니다. 꼭 러시아 인형 같아요. 큰 인형 안에 작은 인형 나오죠. 초보라고 규정하는 말씀 안에 장성이 뭔가가 같이 함께 들어있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파급되어 가면, 넓혀가게 되면 성경 66권 전체의 내용이 지금의 나 안에 집약되어 있다는 것, 내 안에 같이 응축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인생을 산다는 것은 응축된 그 주름을 한 꺼풀 두 꺼풀 살아가면서 이게 펼쳐지는 과정이에요. 두 살 때, 세 살 때, 일곱 살 때, 계속해서 50, 60, 70, 80…,
계속해서 하나씩 펼쳐낼 때 거기서 뭐가 발생되는가? 말씀의 새로움이 발생되면서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니고, 세상이 주는 감사가 아니고, 난데없는 감사와 기쁨이 거기서 펼쳐지며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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