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0장 40절에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마르다의 세계관은 뭐냐 하면, 선악 세계관이에요. ‘귀한 주님이 오셨는데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야 주님이 힘이 나서 복음 전하실 것 아닌가?’ 이게 마르다의 세계관이에요. 다른 말로 하면 마르다가 생각하는 천국이에요. 내가 열심히 행한 그것이 가치있게 자존감으로 남아 있어서 그것이 인정되는 세계에요.
그런데 이 마리아는 뭐하고 있느냐? 분주한 언니를 도와주지 않고 주님 발치에 딱 앉아서 주의 말씀만 듣습니다.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눅 10:39). 이걸 세자로 ‘싸가지’라고 하지요. 말씀만 듣고 있어요. 언니가 많이 참았지요.
마르다가 참다가 참다가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눅 10:4) 여기에 마르다와 마리아만 있는 것은 아니고 제자들도 있고 다른 사람들도 다 있지요. 마르다가 “주님께서 ‘가만히 있지 말고 언니나 좀 도와주라’라고 나무라 주세요.”라고 하니까 주님 하시는 말씀이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눅 10:42).
제대로 선택했다. 마리아의 세계관은 자기를 상실한 세계관이에요. 마리아는 언니한테 욕 얻어먹을 것을 알고 있어요. 선악체제로 자기가 비난받을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런데 원래 내가 그런 존재인 것을. 그것을 즐기는 거예요. 남한테 모독받고 모욕받는 그것을 즐기는 겁니다.
왜냐하면 내가 나를 모욕할 기회가 없거든요. 지난 설교에서도 했지만 남이 나를 모욕할 때 배후에서 누가 그렇게 합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는 거예요. 마귀가 하더라도 그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잖아요. 바로 마르다는 ‘저희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신다’는 주의 일을 마르다 본인이 지금 가로막고 있는 겁니다. 자기의 자존감이 방해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오늘날 우리도 못지않게 마찬가지거든요. 우리의 육신이 그러니까 우리의 이 버릇을 고칠 수는 없어요. 이 더러운 똑같은 버릇을 못 고칩니다. 못 고치면 어떻게 해요? 못 고치면 즐겨야지요. ‘주여, 또 마귀 짓했습니다. 저에게서 나올 것은 이 마귀 짓 외에는 아무것도 나올 것이 없네요.’ 헌금 한 백만 원 하면서 ‘주여, 또 마귀 짓 하고 있습니다.’ 봉사하면서 ‘또 마귀 짓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의인이 되는 게 아니에요. ‘의인’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가 된다니까요, ‘의’가! 우리가 거룩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고 거룩이 우리를 만들어 내는 거예요. 하나님의 거룩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의’,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만 더 높아지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조정해 나가는데 조정 방법이 뭐냐?
우리로 하여금 우리 육신을 마귀한테 맡기는 방법이에요. 평생 우리는 주님한테 욕하다가 볼일 다 보고, 하나님께 원망하다 볼일 다 보고, 하나님께 씩씩거리다가 평생 다 보냅니다. 그게 욥의 남은 생애 아니었던가요? 욥기에 나오는 대부분의 내용이 그거잖아요. 하나님께 욥이 원망하잖아요. “저에게 왜, 저에게 왜 그러시는데요? 저 아파요! 주님이 어떻게 좀 해보세요. 너무 아파요!”
주님께서는 이걸 어떻게 하느냐? 주님께서는 말로 안하시고 필담으로 해요. 주님께서는 성경을 가지고 필담으로 하십니다. 인간들은 사는 게 너무 아프기 때문에 “아야! 아이고!” 말로 다 할 수없는 고통 속에 있기 때문에. 성경에서 주께서는 “너무 시끄럽습니다. 조용히 꺼져줄래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성경 말씀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고후 5:19) 러브, 러브, 러브…….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러브, 러브, 러브…….
이 성경, 이 예언, 우리의 미래, 이 성경이 우리 존재보다 선행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을 제대로 알게 하옵소서. 그동안 육신이 시키는대로, 마귀가 시키는 대로 종교 생활 잘한 것 같습니다. 교회 생활 잘한 것 같고 신앙생활 잘한 것 같은데 신앙은 우리가 한 것이 아니고 우리 안에서 주님이 신앙생활 했다는 것을 이제는 깨닫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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