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뜻

십자가의 피로 구원된 자의 삶은? 061003

아빠와 함께 2014. 2. 21. 19:29

2007-03-13 14:25:43 조회 : 2641         
[십자가의 피로 구원된자 의 삶은 ?] 2006-10-03 이름 : 관리자 (IP:122.47.52.38)

십자가의 피로 구원된자 의 삶은 ? 
김인철   2006-10-03 09:11:47, 조회 : 296, 추천 : 0

이근호 목사님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 다이루셨다 " 는 십자가의 도는 저로 하여금 방종의 길로 가게끔 때때로 유혹을 합니다

1] 할수 없는 죄인 이지만 최소한 주의 피로 구원된 者라면 어떠한 삶을 살아야 되는지요 ?

막연히 오늘 주어진 운명되로 내감성되로 살아서는 안된다고 자꾸만 생각 되어 집니다
성경에 있는 많은 구절들, 우리로 하여금 하라, 하지말라, 명령어들은 우리는 죽었다 다시 깨어나도 지킬수 없는 말들  이라고

복음을 전하는 목사님들은 이구동성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지켜 볼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안되는 일이라고 몸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2] 그렇다면 나는 가만히 주께서 작정하신 그계획의 한모퉁이 서 있어면 되는 것인지요 ?

3] 아니면 이생각도 아직은 옛날 우상신을 숭배 할때의 잔재가 남아서 그런 것인가요 ?

4] 또한 저의 생각중 하나는 모든것이 주께로 부터 왔어니 마땅히 모든것을 주께로 돌림이 마땅하다고 생각 되어 집니다
    십자가의 도를 알게 된자들의 처음 행동은 연보를 줄이거나 아예 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을 하던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라 여겨 집니다
    잘못 생각을 하는 것인지요 ?

옳바른 길로 인도 해주시기를 앙청 드립니다

김인철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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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십자가의 피로 구원된자 의 삶은 ? 
이근호   2006-10-03 19:34:17, 조회 : 280, 추천 : 6

애인과의 대화는 단순히 언어로만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오고가는 관계입니다.

누가 남이 자기 애인을 욕하면 가만있지 않고 변호할 것입니다.

이와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사랑을 진정 받는 자라면, 자발적으로 그 용서와 사랑만을 내세우고, 자랑하고

그리고  어떤 것도 이 사랑과 용서와 바꾸지 않고 또한 방해받지도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거룩함'이나 '자신의 의로움' 조차도

예수님의 사랑을 흐릿하게 만든다든지 훼방할 요소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오히려 반대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부터는 도리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참으로 오만한 짓임을 압니다.

예수님도 우리 자신을 미워하라고 하셨습니다. (요 12:25)

 

자신의 가치를 빛내고 광내고 윤기있게 만들어 쓸만한 강자로 만들라는 아니라 도리어 미워하고 쓸모없는 인간임을 알라고 하십니다. 

쓸모없는 인간을 쓸모있는 인간으로 간주하는 것 자체가 예수님의 사랑을 모독하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추락해야 합니다. 중력에 의해 추락당하는 희열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약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윤리적으로 혹은 도덕적으로 혹은 종교적으로 강자가 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원래 강자가 될 필요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행함으로 추락당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의 능력으로 추락당해야 합니다.

그러면 한없이 낮은 저 밑바닥에서 비로서 예수님의 희생하심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마시게 되는 '쓴 잔'입니다.(마가복음 10:39)

또는 어느 성경에서 '상한 심령'이라고 합니다.(시편 51:17)

하나님이 성도에게 원하는 마음이 이 마음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라' '하지 말라'는 말씀을 가지고 상한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상한 심령이 되지 못하는 자는 계속 높아지고 강해지려고 하지 결코 약해지고 추락하고자 하지를 않을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 때부터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로 인도받게 됩니다.

그 길은 주님의 사랑과 사랑이 계속 이어지는 노선입니다.

동시에 이 길은 계속해서 무너지고 무너져서 한없이 약하고 쓸모없는 존재임을 인식케 하는 노선이기도 합니다.

이로서 성도는 오로지 주의 이름에서 나오는 사랑만 증거하는 자입니다.

이 말은 곧, 더이상 '나도 신앙있는 대단한 자임'을 증거하는 길을 포기했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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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근호목사님의 답변 바람-십자가의 피로 구원된자 의 삶은 ? 
정수정   2006-10-03 21:36:08, 조회 : 221, 추천 : 3

목사님! 저 도 김인철님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특히 4번 질문
4]" 또한 저의 생각중 하나는 모든것이 주께로 부터 왔어니 마땅히 모든것을 주께로 돌림이 마땅하다고 생각 되어 집니다
    십자가의 도를 알게 된자들의 처음 행동은 연보를 줄이거나 아예 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을 하던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라 여겨 집니다
    잘못 생각을 하는 것인지요 ?" 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이근호목사님의 답변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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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이근호목사님의 답변 바람-십자가의 피로 구원된자 의 삶은 ? 
이근호   2006-10-04 10:01:53, 조회 : 223, 추천 : 2

복음을 알기 전에는

돈쓰임새에 대해서 교회의 권위를 믿고 맡긴 식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직무유기였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알고 부터는 교회의 권위를 의심하게 된 것입니다.

고양이에게 그 귀한 생선(=돈)을 함부로 맡기면 주님에 대한 태만임을 이제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참으로 교회가 복음을 위해서 쓰는 경우에만 돈을 기부해서, 돈을 허투르 썼다는 책망을 주님으로부터 받고 싶지 않는 겁니다.

이것을 가지고 '주체의식의 등장'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즉 전에는 교회 제도나 조직이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독점한다고 간주했는데  이제는, '나'라는 인간도 하나님의 복음을 접하게 되었으니 이제부터 내게 속한 돈 관리도 교회라는 인간 단체에 맡기고 싶지 않다는 겁니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전에는 교회 시키는대로 안하면 평소 생활에서 저주받아 돈이 왕창 나가는 저주나 징벌을 받는 경우가 있을까봐 울며겨자 먹는 식으로 십일조 및 선교 헌금 및 각종 교회가 요구하는 예산을 충당하는데 허겁지겁했는데,

복음을 알고 부터는, 성도에게는 저주는 없고, 그 모든 저주는 예수님께서 고맙게도 십자가 피흘려 다 처리시켜 놓았기에 교회 기부금의 액수와 저주 받는 것의 비례관계가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접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회에 돈을 꼭 내어야 될 동기 자체가 증발해버린 것입니다.

인간은 목적없이 행동에 나서지 않는데,

전에는 저주를 사전에 방비하는 쪼로 신에게 돈을 지불했든것이, 이제 십자가 복음으로 인해 저주가 처리되었기에 구태어 그 목숨보다 더 귀한 돈을 저주처리하는데 전혀 쓸모없는 교회에 제공할 이유가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한국 교회가 십자가만을 외치는 자를  '이단'이라고 악을 쓰면서 공격하는 이유는 딴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가 걷히지 아니하면 교회 문닫게 되고, 동시에 목사와 그 가족의 생계나 노후대책이 장만할 길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해서(노회) 항상 감시에 나서는데

그들이 찾아내고자 하는 것은 십일조 반대와 주일성수 반대하는 인사들입니다.

주일성수를 반대하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는,

첫째는 교인들이 일요일날 예배 참석하면서,

빈 손으로 오지 않고, 푼돈이라도 헌금을 해야 하는 것이 교인의 의무라고 스스로들 원칙을 세우고 온다는 점이요,

둘째로는 광고시간에 주로 알려주는 교회 새로운 건물 증축이나 선교 프로젝트에 예산을 확보하는 광고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째로는, 참석 교인수가 증가가 곧 목사의 목회 수완의 업적이 되기에

목사와  그 가족이 계속 그 교회에서 월급을 받아먹을 수 있는 정당성을 장로들에게 주장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복음을 알게 된(실은 알게 되었다고 우기는) 자들은

이런 사단들의 돈 뜯기 수법에 그동안 속아온 것에 대해서 (어떤 이는 수십 년, 어떤 이는 평생토록) 분통을 터뜨려

나름대로 복수하는 방법이 헌금 액수를 줄여서 교회 조직 자체에 비협조적으로 대처하는 겁니다. (소극적 방식의 복수이지요)

당장 그 교회를 떠나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그 교회에 얽히고 섥힌 것이 많아서 당장 떠나는 자는 별로 없습니다.

1. 우선 일가 친척들이 그 교회 내에서 유력 인사로 행사하기에 그들의 명예가 실추되지 않도록 조심케 처신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있고 

2. 그 교회 교인들이 모두 자신의 사업에 단골로서 작용하여 자기 사업이 원할하게 돌아갔는데

    그들과 원수지는 것은 곧 자기 생계 사업을 망치는 일이라는 사업상 계산 때문이요,

3. 그동안 그 교회에 갖다 바친 헌금이 너무 커서, 이왕 투자한 교회가 본격적으로 복음적 교회로 전환하기 위해 

    복음적 목사님을 모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치적 기반 형성에 나서겠다는 겁니다.

    복음을 모르는 다른 교인들이 너무 불쌍해서.

    (하지만 이 방식은 100% 실패로 끝나는데 그 이유는, 사단이 바보가 아니라 사단의 일꾼들은 정치 9단들이기 때문입니다.)

4. 그 교회 교인들이 자신을 인정하고 자신에게 기대를 걸고 있기에

    그들의 베풀어준 사랑의 칭찬과 정을 일시에 거절하기에는 본인이 너무 믿음이 없어서 그 교회를 못떠나고 있는 겁니다.

자 과연 복음을 알았다는 것이 주체의식이 고취된 것으로 대신될 수 있을까요?

성경에는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복음이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남을 치는 용도만이 아니라 우선 자신이 치는 용도입니다.

참으로 자신을 십자가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헌금의 액수에 신경쓰이다는 것 자체가 아직도 돈에 매여사는 인간임이 드러난 것밖에 안됩니다.

생명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습니다.(누가복음 12:15)

생명의 지시에 따면서도 생명을 타면서 사는 사람이라면 돈을 내지 말아야 할 곳은 내지 않고, 돈을 적게 되어야 할 곳은 적게 되고, 돈을 많이 내어야 할 곳은 많이 내는데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을 사람입니다.

진정 복음을 안 사람이라면,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자신의 전부를 바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헌금 낼 돈으로 자신의 건강을 위하여 보약 다려먹는 것에 대해 누가 옆에서 '헌금 안내고 제 몸만 살찌우는  방종한 놈'이라고 욕해도 순교하는 심정으로 속으로 "주여 주께서 내 마음을 아시지요"라는 인내심으로 그 좁은 길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거짓으로 복음을 안 사람은 다음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나는 복음 증거에 별반 관심없다. 나는 이미 구원만 받았다. 나는 그것으로 족한다. 더이상 욕심은 없다.

이제 나는 이제부터 나의 행복을 증폭을 위하여 한푼으로 아끼고 싶다. 그리고 나를 위상을 위한 곳에 돈을 투자하겠다"

이 두 종류의 사람의 상호 다른 마음을 다른 이는 알 길이 없습니다. 목사도 모릅니다. 단지 주님만 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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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십자가의 피로 구원된자 의 삶은 ?    이근호 2006/10/03 6 281
[re] [re] 십자가의 피로 구원된자 의 삶은 ? 
고관규   2006-10-03 21:13:26, 조회 : 152, 추천 : 1

제가 수년전에 감동적이며.충격적으로 읽었던...3인의 공저였던 ㅡ 저... "믿음으로냐? 행위로냐?(이근호.이상봉....한분은 ?)에 보면...... 이문제가 아주 소상히 밝혀져 있습니다.
바울의 서신에 나타난 명령법이 얼마나 사람들을 옭아매고,족쇄로  평생을 괴롭히게 하는지를 예리하고,기가 막히게 밝혀 들,,,내셨거든요
이런 글들은....평생가서 찾으려 해도 못찾을 글,,,들 입니다. 꼭 사서 보십쇼  분명 해방을 받을 것입니다.
물론,,,그책의 비밀을 그러케 자세히 알고,이해.인식을 못하는 평범한,,,,그리스도인들도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만....
말로는 그들이 정확하게 또한,,,설명하기도  역부족일 것입니다.  허나...그들안에 생명의 복음이 인친 바 된 자라면....
논리적이지는 못해도,,,,이미 그런 내용들이 그들의 영혼에 성령으로 인친 것이기에 그리...모른다고 스스로들..이상히 여겨 불안해 할 필요는 없을 것이죠 ㅡㅡㅡ 이미 복음이 그속에 점령군,,으로 장악했기에 이해 못한다해도 다,,,아는 것인거와 다름이 없읍니다....     반대로 !! ㅡㅡㅡ 아무리 교권과,큰 예배당 건물과,외국 유학 증명서와,공인된 ?? 논문,배경과, 교권의 권력과,교인인기가 뒷 배경이..되어ㅡㅡ 명령법을 가장하여 민중을 위협하고...협박하며...,침을 튀긴다 할지라도 비복음과,거짓복음은,,,,말 그대로  거짓입니다. 그 거짓에 민중들은 말도 못하고,,기에 눌려....그대로 믿게 되는 겁니다.이건 정말,,,참담할 비극적인 종교현상이죠...ㅜㅜ   마치 ㅡ 예루살렘 성전건물을 보며  그 영광에? 취해 넋이 빠졌던  당시 주님의 제자들도 그런 면에선 약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돌하나도,,돌위에 남지 않고,,다 무너질 것이라고 하였지요. 사람들은 누구든,,,외모와,외관,힘과,권력?에 무릎 끓게 되는 가 봅니다. 그래서 오늘의 기독교의 거짓 종교화가 더욱 화려해 지는 거이지요
행위를 요구하는 명령법을 보면서...불안해 하면 안됩니다.
그,,명령법을 보며,,,십자가의 대신,,죽으심의 액기스를 마시는 경험으로 와야 하지요.
그러면 그 액기스는 감사하게 하는 명약 !! 이 되는 겁니다.

마태복음의 산상수훈과,기타 바울의 권면의 명령법?들은 바로,,,너희가...이런 자들이기에,,,,
이런 걸 너희는 죽어도 못 지킬 죄인,,들이기에  너희를 바로 알아라 !! 라는 지적이라는 겁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는 이정표의 역활을 하는 것... !! 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 대답이 넘 간단할까요?

다시 강추합니다.
믿음으로냐? 행위로냐?..... 독파하십쇼.

참고로,,,전,,,이 곳을 알기 훨씬 이전에도 명령법이나 산상수훈들과 같은 말씀들을 보면서,,,,한번도 치명적으로  캥겨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때론 절망은 해 보았지만,,,그러나  불안함 ? 으로 안절부절 캥겨 본 적은 없읍니다.
제안에 복음이 점령했었기에....

님에게 귀한 추석 선물이 될 것입니다..주님의 추석선물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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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늘 이 곳은 선문답을 하고 있다는 생각만 들지요? 
김정우   2006-10-04 02:23:18, 조회 : 180, 추천 : 3

질문을 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그 문제의 실마리를 어떻게든 찾아보려는 안타까움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답'으로 올라오는 것들을 보면 너무 커다란 울타리만을 제시하고 그 속에서 네가 찾아봐'라는 식인 것 같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이 곳에 들르시는 모든 분들이 이미 다 이해하고 계신 부분이라 그렇게들 답을 해 주시는 지 모르겠습니다만, 십자가의 복음이 그렇게 소수의 소위 '공부 많이 한, 이해력 있는'사람들에게만 이해되어지는 것입니까?
주위의 몇 사람이 벌써부터 그런 불만을 이야기 해 오던 차입니다. 단순히 저 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아닙니다.
조금만 더 질문자의 입장이 되셔서, 그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성실한 답변이 주어질 수는 없는 것입니까? 이 곳에서는 질문을 하려해도 혹시 비웃음이나 사지 않을까 걱정먼저 앞서니, 이 것이 십자가 마을의 교제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수 많은 질문 중에 질문 하는 사람들이 정말 원했던 답이 나오지 않았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질문자들은 더 이상 묻지를 못합니다. 커다란 벽 앞에서의 자신의 왜소함이 느껴지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렇게 좋은 내용들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왜 자신들이 전에 겪으셨을 그 무지로 인한 안타까움을 그렇게 소홀히 여기시나요? 저도 이근호 목사님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목사님 덕에 처음으로 복음이 무엇인지를 정리한 사람입니다. 조금만 더 울타리를 넓혀 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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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왜 늘 이 곳은 선문답을 하고 있다는 생각만 들지요? 
이근호   2006-10-04 08:09:17, 조회 : 197, 추천 : 0

1. 예수님께서 지금 안 살아계시고, 그냥 이순신 장군처럼 옛날 분이라면 그 분에 대해서 소상히 이야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지금 살아계시고, 이 세상 어느 분보다 분주하고 일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열심이 지배하고 통치하고 있는 분들이 지금도 있습니다. 그 분들만이 성도입니다.

저는 성도들의 질의를 대하면서 그 분을 대하기 보다는 주님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고백만 나올 뿐입니다. 왜냐하면 나를 그들을 가르칠 입장에 있지 않고 그들 속에 계시는 성령께서 그분들을 직접 가르칠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2. 질의에 대한 답변은 이 '질문답변' 항목 말고 더 많이, 더 넓게 둘러친 울타리가 다른 코너에 많이 있습니다. 연속적으로 파생되는 의문들과 거기에 관한 새로운 정보들은 질문답변 하나로 다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은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나 답변해 드리는 저나 같이 동의하는 바일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코너에 있는 많은 글을 읽으면 스스로 보충이 되시리라 봅니다.

그런 글을 읽고, 안 읽고도 제가 강요한 바가 아니라 성령께서 그분들 속에 인도하심 따라서 이루어질 문제라고 봅니다.

3. 질문답변 난에는 이미 다른 분들이 했던 질문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반복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혹시 부족하다면 지난 '질문답변'을 참고로 하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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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왜 늘 이 곳은 선문답을 하고 있다는 생각만 들지요? 
고관규   2006-10-04 02:42:47, 조회 : 191, 추천 : 0

이근호 목사님과,,이 곳의 동역자들님의 답변은 십자가로 종착되어 집니다.
때로는 상세한 답변이 없고,,,,종합적이고,,의미론에 결과를 둔 종합적인 해석학입니다
그,,해석학의 중심에는 십자가의 언약신학이 중심에 잇습니다.
종합을 하니...상세한 해석이 부족 ? 한 것 처럼 보입니다.

묵시로 역사를 해석하면....종합으로 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종합적인 역사 해석학이 나옵니다.
영원에서 시간을 보니 그로케 되는 것 같아요.

맞나 모르겠네요 제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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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피로 구원된자의 삶은 ? 
김인철   2006-10-05 09:34:58, 조회 : 252, 추천 : 3

아래글은 1815 에서 따온 이근호 목사의 글 입니다
제가 궁금히여겨 십자가의 피로 구원된자의 삶은 ? 무엇인가요 질문 한것은 아래의 내용 때문 입니다

1] 십자가의 피로 구원된자의 삶은 ?

" 십자가 중심 주의는 교인들로 하여금 교회에서 방종을 확산 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반쪽 진리가 전락할 수가 있습니다.

무엇을 해도 죄가 된다는 말은 그 자체가 옳은 말이지만

성경에 보면 분명히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적극적으로 강권하는 말씀을 많이 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죄인이라고 하면

교인들이 마치 그것이 성경 내용의 전부인 줄 알고

복음을 안답시고 교회에서 아무 것도 아니하고, 심지어 아무런 신앙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고 마구 방종으로 치달아,

순진한 교인들 까지 물들어 버린 사례가 소위 십자가 복음을 안다는 사람들 속에 허다합니다.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주님의 바른 뜻이 아나라고 봅니다.

십자가 중심 주의는 교인들로 하여금 교회에서 방종을 확산 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그래서 반쪽 진리로 전락할 수가 있습니다.

무엇을 해도 죄가 된다는 말은 그 자체는 옳은 말이지만

성경에 보면 분명히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적극적으로 강권하는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죄인이라고 하면 교인들이 마치 그것이 성경 내용의 전부인 줄 알고

복음을 안답시고 교회에서 아무 것도 아니하고, 심지어 아무런 신앙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고 마구 방종으로 치달아,

순진한 교인들 까지 물들어 버린 사례가 소위 십자가 복음을 안다는 사람들 속에 허다합니다.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주님의 바른 뜻이 아나라고 봅니다.

저의 좁은소견으로는 나의 나됨이 나로 인함이 아니고 오직 주예수 그리스도의 인도 하심에 따라 된줄로 믿고

나를 내세우지 않고 항상 주님이 하심을 믿고 범사에 감사 하며 선한 일을 할수 있는데 까지 도모 함이 마땅 하다고 생각 되어 집니다
이것들이 내 의지되로 되지 않는 줄 믿어며  또한 누구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 운운은 아닙니다.

2] 연보에 관한 나의 생각
그곳이 참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몸된 교회라면 모든것이 주께로 부터 왔은즉

우리의 형편되로 힘써 연보 함이 마땅하다 생각 합니다. 너무 얌체 같은 짓은 하지 말았어면 합니다.

위글은 저의 솔직한 생각을 정리한 글이오니 누구든지 비판할 자격있는자 비판 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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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십자가의 피로 구원된자의 삶은 ? 
이근호   2006-10-05 11:16:02, 조회 : 239, 추천 : 1

비판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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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피로 구원된자의 삶은 ?    김인철 2006/10/05 3 253 
[re] 십자가의 피로 구원된자의 삶은 ? 
한광수   2006-10-07 18:13:50, 조회 : 172, 추천 : 2


1815번 답변은 [기성교회의 옹호론자들의 항변]으로 하는 답변 아닌가요?

김인철님이 인용한 내용은 십자가마을에서 주장하는 바가 아니고

십자가중심으로 사는사람들을 두고서 기성교회가 조롱하는 말을 인용해놓은 것 같은데요.

인용을 반대로 하고 있는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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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준   2006-10-07 19:24:08, 조회 : 190, 추천 : 2

맞습니다.

이근호 목사님께서 쓰신 1815번의 글은
이상한 형제님께서 쓰신 1816번 글 - "십자가만이 전부(중심)인가?" - 에 화답하는 차원에서,
기성 교회를 대표한 누군가가 나서서 1816번 글에 대하여 직접 대꾸를 못하니,
이근호 목사님께서 나서셔서 기성교회의 입장을 대신(대변)하여
"기성 교회 중에 누군가가 만약 1816번 글에 대꾸한다면 다음과 같이 대꾸할 것이다" 라고
가정하여 쓰신 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인철님은 그러한 사정을 알고 인용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따라서, 기성교회를 대신하여 이근호 목사님께서 쓰신 부분(1815번 글에서 인용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아래 부분 만이 김인철씨의 주장에 해당됩니다.

--김인철씨의 주장------
1] 십자가의 피로 구원된자의 삶은 ?
저의 좁은소견으로는 나의 나됨이 나로 인함이 아니고 오직 주예수 그리스도의 인도 하심에 따라 된줄로 믿고 나를 내세우지 않고 항상 주님이 하심을 믿고 범사에 감사 하며 선한 일을 할수 있는데 까지 도모 함이 마땅 하다고 생각 되어 집니다
이것들이 내 의지되로 되지 않는 줄 믿어며  또한 누구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 운운은 아닙니다.

2] 연보에 관한 나의 생각
그곳이 참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몸된 교회라면 모든것이 주께로 부터 왔은즉 우리의 형편되로 힘써 연보 함이 마땅하다
생각 합니다. 너무 얌체 같은 짓은 하지 말았어면 합니다.

위글은 저의 솔직한 생각을 정리한 글이오니 누구든지 비판할 자격있는자 비판 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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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근호 목사님께서 1815번 글이 반대로 인용되었다는 점을 모르신 채 아래와 같이 답변하신 것같지는 않습니다만...

그렇기에 손무성 목사님께서도 김인철씨의 글을 다시금 자유게시판에 옮겨놓으신 것 같구요.


--이근호 목사님의 답변글------
[re] 십자가의 피로 구원된자의 삶은 ? 
이근호   2006-10-05 11:16:02, 조회 : 107, 추천 : 1

비판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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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행위...?-이근호목사님께 
손무성  (Homepage)  2006-10-06 16:31:40, 조회 : 305, 추천 : 1

목사님께 질문 드립니다.

바울의 서신서에 '하라,하지 말라'라는 명령어들은 '율법의 행위'즉, 율법과 동일한 것으로 가르친 것인가요?

명확한 답변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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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율법의 행위...?-이근호목사님께 
이근호   2006-10-06 19:43:55, 조회 : 289, 추천 : 2

당연히 동일합니다.

왜냐하면

새언약 시절에 인간 주체를 공격하고 겨냥하는 방식은 주님에 의해서 성취는 말씀 이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몽학선생으로 인간을 공격했지만,

 

신약에 오면,

구약부터 신약 전체가

율법적인 양상이 아니라

'주님에 의해 성취된 말씀'이라는 입장에서(즉 십자가 사건 안에 포함된 성취된 율법으로서)

인간의 죽음을 규정짓는 기능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곧, 구약의 말씀은 신약에 와서 더이상 율법으로서가 아니라 복음적 말씀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되면

율법의 정죄에서 '죽어야 될 자'에서 이제는 '당연히 죽은 자'가 되어야 됨을 복음의 기쁨 속에서 파악하게 됩니다.

늘 죽는다는 환희와 기쁨과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는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말씀이 아니면 어떻게 죽음이 주는 기쁨을 누릴 수가 있을까요!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임을 알게 하는 기쁨은

이미 구원받는 자들이 대하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십자가의 정죄 하는 능력과 거기서 구원해주시는 용서의 능력 듬뿍 담겨 있음을

오직 그들만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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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행위에 목숨거는 자들...(세계 신약신학계의 움직임을 우려하고 경계함..언약적신률주의를 !!...) 
고관규   2006-10-07 22:17:24, 조회 : 214, 추천 : 0

사단의 공격은 치밀하다,,그만큼 영적전쟁은 실존적으로 무섭고,,현실적이다.
사단의 목표는 최고의 작전사령부의 레이다망과, 사령부의 폭격이다.
사령부의 핵심 작전 장교와,작전의 화일이 담긴 블랙박스의 폭파이다.
자기가 심어 놓은 스파이들을 통해..이미..그 곳에 침투하여 기밀문서와,작전계획서를 접수하고,,지금 도망가는 중이다.
우리의 특공대의 얼마 안 남은...열혈아들은 그들을 쫒고 있는 중이다.....
....
...........

독학으로 독서를 하면서,,,지난 10 년을 돌아보면서,,,여러 공부를 햇지만...
기가막힌 것은...신학계에 침투하는 마귀의 계략을 봄이다.
독일..남아공..미국..영국..캐나다,,막강한 신학의 선진국의 학자들이 그,,주범들인데...
그들의 주장은,,언약적 신율주의,,이다.
한국의 학자중에서 내가 아는한도내에서,,이들을 공격하는 자는...총신에 계시다 미국의 풀러신학교로 옮기신
김세윤 박사님이 유일하신 것 같다,ㅎㅎㅎ

언약적신율주의의 핵심은  구약을 전혀,,잘못 보고 있다는 것이다
구약의 출애굽과,,모세언약에 대하여 ㅡ신약으로의 해석에 잘못 끼고 있다는 것이다.
출애굽했다...언약의 율법이 그들에게 주어졋다..그들은 언약을 어겼다..고로 멸망을 당했다..버람을 받았다..
언약적인 율법이 주어 졌는데,,어겼다는 것이다.... ㅠㅠ
그래서 신약의 명령법도,,,,못지키면...사랑으로..ㅎㅎ (센더스의 유대인,율법..이라는 책의 도식을 보면,,사랑의 도식을 그린다,,,!!)  행위를 못지키면....언약백성으로부터  탈락된다....라는게  그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히브리서를 모른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회심의 경험이 없는.......유대교의 아들이며,,니고데모의 추종자들이다.
히브리서의 첨의 몇장만 제대로 알앗다면,,,,이따우 짓거리를 안 할 것이다.
비싼 돈 주고,,수년을 그들 밑에서,,세뇌당하고....학위를 따고..귀국하여
조국의 강사자리라도 얻어  밥벌이를 한다.
때론 교단과,학교 당국자들에게 굽신거리며라도....유지를 해야 하기에..치사해 질 것이다.

무섭고,,서러운 현실은 ..그들의 강의가 전국의 강단에서,,무차별 가해진다는 것이다.
무지하고 몽매한 학생들은 교수의 권위에 겁먹고,포기하고,,그리고  또  모르기에..어터케 뭐가 돌아가는자를
모르니..무력하게  공격당하고,,졸업하고 나올것이다
그들이나,,학생들이나,,매 일반이니...

멀리서  독학하는...이 사람의 눈에,,김세윤교수말고,,,,신율주의를 공격하는  논문을 본적이 없다...
관심이 있스니...여러곳을 기웃거려 보았지만,,,,아직 없다
김세윤교수님만이  학계에서 유일하게   투쟁,,하신다

이 이유는 뭘까?
왜 그럴까?
참 이상하다....항상  의문이다,,,이  이유가  ?

샌더스.라이재넨,휘브너,제임스던,...등... 그리고 .한국의 내노라 하는 외국파들...
그들이 휘잡고 잇다..교권과,학교당국의 하수인으로....취직의 안전보장유지와, 같은 부류의 선배들의 후원아래,,,
이미 웨스트민스트도 허물어진다. 화란은 이미 엎어졌고....  ㅠㅠㅜㅜ
내가 이 비밀을 안것은 얼마 안된다.
이것은 독서와,,관심때문이지만...  정말  너무하다..

구약의 오경을...신약의 백성에게,,,적용시킬 때는...
내재적이며,개인의 실존적인 신앙의 경험으로 해석해야 한다.
히브리서처럼..
안식개념과, 승리의 삶과,실패의 삶, 그리고 징계의 관점으로 해석해야 한다
역사적인 오경의 경험을,,,문자..그대로 적용시키는 것은 틀린 적용이며..마귀의 술책이다

그런데,,여기에  모두들,,다,,자빠진다
교회는 교회대로,,,,학계는 학계대로,,,,
이제는 학계가 더 난리이다
그러니 신학교에 미래가 있는가?
그들 밑에서 배우고 나온 자들이....개척을 한다고 하고, 부교역자로 가고,당회장이 되고....
학생들의 맘은 어털까?
그런 강의를 들으며,,,
비판적인 능력이나 있는가?
은혜로 덮고 가자고 할 것이 아닌가?
그리고  해석의 능이 없으니...산기도에 승부걸 것이 아니가?  ㅜㅜ

언약적 신율주의는 마귀가 만들어 낸,,,카드이다.!!

이근호 목사님   맞나요?  제 의견이요?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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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율법의 행위에 목숨거는 자들...(세계 신약신학계의 움직임을 우려하고 경계함..언약적신률주의를 !!...) 
이근호   2006-10-08 08:41:43, 조회 : 197, 추천 : 0

어떤 분은 말하기를, '예수'를 말하고, '복음'을 이야기하면 같은 형제라고 간주해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 분명 '디른 예수'와 '다른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자를 양의 탈을 쓴 '사단의 하수인'으로 사도 바울은 규정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14장에서는 '연약한 자'를 용납하라고 했고, 고린도전서 3장이나 히브리서 5장에서 어린 아이같이 젖을 먹이야 되는 자가 분명히 있음을 명시하면서도 그들을 '악마'와 연계시키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악마는 도대체 어떤 식으로 오늘날 인간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것일까요?

사도행전 19:15에 보면, 악귀가 말하기를,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안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종합해서 보면, 십자가 복음만을 전하는 사람에 대해서 의도적으로 공격을 하고 싫어하는 자들은 '사단의 일꾼'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십자가 복음이 뭔지도 모르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복음을 접하고서도 도저히 그 내용에 대해서 참지 못해 공격해야만 하는 자들이 '사단의 일군'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양의 탈'을 쓰고 활동한다는 겁니다.

'양의 탈'이란 대중들은 유인하는 틀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주의 종'에 관한 인식의 틀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중들이 지니고 있는 '목자'라는 인식에 연합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항상 골몰하는 자들이 내어놓는 모든 활동성이 '양의 탈' 역할을 하는 겁니다.

간단히 말해서 '관심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행하심에 관심 갖고 있지 아니하면 어느새 양의 탈을 쓴채로 활동하기 마련입니다. 그게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입니다. 직업인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관심이 십자가에 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십자가 복음의 방해꾼임을 알고 날마다 부인하게 됩니다.

그럴 때만, 악마의 시험에 들지 않는 겁니다.

김세윤 박사에 대해서 제가 우려하는 바는,

신학보다 십자가 복음, 즉 인간의 신학 행위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행하심을 증거하는 한 사람의 복음인이 되었으면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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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율법의 행위에 목숨거는 자들...(세계 신약신학계의 움직임을 우려하고 경계함..언약적신률주의를 !!...) 
고관규   2006-10-08 13:23:40, 조회 : 157, 추천 : 0

전엔 안개와 같이 희미했습니다...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행태와, 그 심리상태에 대해 말입니다.
왜? 이들이 이런 말을 할까?
예수를 안다고 하면서,,,이것이 가능한가?
물론 아주 사아비 이단같은 경우는 틀리니...누구나 선명하게 알 것이지만..
그 나머지....
정상적인? 기독교의 교회내에서는 이것을 분별해내고,가늠하는 것이 오히려,,교만과,정죄가 아닐까? 하고
스스로 포기하고,,경거멍동이 아니가? 하고 주춤할 때도 많았습니다만....
그들과 말하다 보묜...당신이 어디서,,이상한 걸 배워와서,,,요상한 말을 하는냐? 라고
핀잔?도 듣습니다만....
오히려 이상한 부류로 취급을 받드라구요
우리는 큰 교회이고...수많은 사람이 모이니...정통이다 !!  ㅎㅎ   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너는 누구냐? 라는 것이죠

또 메스컴에서,,,한국교회의 부흥과,,지난 50여년간의 괄목할 부흥을 말 할 때는..
가난한 나라의 기독교 부흥과,축복을 말 할 때에는 말 문이 막힐 때도 있죠
물론 일면도 있지만요

사단의 하수인이나..광명의 천사..양의 탈을 쓴 이리...라는 표현이  저러케
다른 복음...기독교내에서 벌어지는 말이라는 것을...안다는 것은
누구나에게 주어지는 특권?은 아닌것 같다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무서운 성경의 지적을....피부적으로 느낀다..라는 것이죠.

정말 복음을 아는 자들이 적다면.... 도대체 복음이란?
복음의 가치란?
주님의 일하심이란?
복음을 아는 자들의 작은 숫자의 의미가 어터케 의미되고,해석되어야 하는 가도 가끔
의심?이 됩니다.

김세윤박사님의 논문들이...바울복음의 기원의,,마지막부분의 비판이 인상적이었던 것만은
틀림없더라구요.

글 감사드려요 목사님...

답변 부탁드립니다.

ㅎㅎ  추가) ㅡ 어쩜 그리도.... 지독한 공부를 한 학자들이나, 평범한 교인?들이나....뿜어 나오는 것들은
                    한결 같이 똑,,같은 지  갈수록  희한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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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율법의 행위에 목숨거는 자들...(세계 신약신학계의 움직임을 우려하고 경계함..언약적신률주의를 !!...) 
이근호   2006-10-08 15:57:51, 조회 : 170, 추천 : 0


교회에 최우선 관심을 두지 않는 자가 복음에 최우선 관심을 두는 자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란, 혹은 기독교란, 계속 자아를 둘러싼 역사적 환경으로 작용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복음이란 자아를 발가벗기고 자기 곁에 힘이 되는 아무 것도 남겨두지 않게 하는 복음임을 각오케 합니다. 

(물론 교회에 최우선적인 관심을 두지 않는 자들의 대부분은 복음에도 최우선적으로 관심두지 않고 자아의 절대성에 최우선 관심두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입니다.)

기댈 데도 없고, 호응받을 데도 없고, 단지 믿고 의지할 분은 예수님 밖에 없을 때, 그런 자들의 교회는 오로지 복음만 말하게 됩니다. (이런 분들은 결코 '교회없음'을 추구하지 않고 교회가 분명히 있고 그 교회를 통해서 복음 증거에 매진합니다. 왜냐하면 이 분들의 최우선 관심사가 자신의 절대적인 자유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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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율법의 행위에 목숨거는 자들...(세계 신약신학계의 움직임을 우려하고 경계함..언약적신률주의를 !!...) 
고관규   2006-10-08 17:39:08, 조회 : 124, 추천 : 0

목사님의 저서, 거꾸로 본 한국교회가 아니라...ㅎㅎ  뒤에서 본 한국교회더군요,제목이...한참전에 봐서 ^^

이책의 서문을 다시 펼 침으로.. 목사님의 답글에 대한 저의 댓글을 적어봅니다 ㅡ

"안타까운 것은, 구원되지도 못한 채 교회만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
........
한국교회가 가짜 하나님을 생산하고 있는 것은,,,,
.....

특정 교단의 역사와,전통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기준이 아니다
늘,성경뿐이어야 한다.ㅡ"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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