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복음에 의해 공격받을 때, 그러니까 자신이 숨 쉬고 있는 것 조차 죄로 발각당할 때, 문득 이런 변명을 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 마음을 아십니다......." 혹은 " 주님, 제 마음 아시지요?"
여기서 사용된 내 마음은 추측컨데, 하나님을 향한 순결한 나의 마음,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열정, 오직 십자가만을 믿고 사랑하는 믿음, 이것만은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기에 나를 욕하지 말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나를 죄인으로 몰아세우지 마라. 너는 모르지만 주님께서는 다 아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알고 계실까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
애석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 속에 거룩을 향한 순결함과 열정, 믿음 등을 알아보고 계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거짓되고 가장 부패한 것이 바로 인간의 마음이라고 하십니다.
인간의 마음이 거짓과 부패의 으뜸이기 때문에 이것을 알 수 있는 자 역시 없습니다.
그것을 인정할 인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무슨 짓을 해도 "주님께서 내 마음을 아신다" 며 자신을 변명하기에 급급할 뿐입니다.
그러면 "나만은 다르다" 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간 중에 홍길동, 슈퍼맨, 백설공주 등등 각각의 개성에 주목하지 않으시고 그냥 죄인으로만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아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이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티끌과 같은 존재, 그것이 인간입니다. 죄인 중에 누구는 다르다가 아니라, 모두 같은 죄인일 뿐임을 확인하고 또 확인받을 뿐입니다.
여기서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주장하는 어떤 자들이 흔히 제시하는 성경 구절을 한 번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
인간의 마음만은 죄로 부터 공격받을 수 없는 거룩한 영역이며 하나님과 연결되는 통로이기 때문에 이 마음으로 믿는다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에 이른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잠언에 숱하게 등장하는 마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판에 새기라는 취지의 말씀이 바로 인간의 마음의 순수성 혹은 영혼의 통로로서의 역할을 더욱 확실히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위의 로마서나 잠언에 기록된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만물 중에서 가장 거짓되고, 으뜸 부패한 것입니다.
말씀은 위의 말씀들을 통해서 인간의 마음이 만물 중에 가장 거짓되고 가장 부패한 것이라면,
그 안에 찾아들어온 믿음이 과연 누구의 믿음이겠는가를 묻고 계신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그토록 악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게 되었다면 과연 그것이 인간 마음에서 조작할 내용인가 아니면 예수님께서 외부에서 집어넣어주신 은혜의 선물인가를 지금 묻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 너의 마음의 주인된 자가 누구시길래 그 더러운 마음과 입술에서 감히 예수라는 주의 이름을 믿는다는 고백이 튀어나오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마음에 생명나무와 같은 지혜가 들어왔다면 나는 이미 마음을 빼앗긴 의의 종으로 살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하는 차원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원래 마음에 가득한 악한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마 12:34, 15:18, 눅 6:45)
선한 말을 할래 할 수가 없습니다. 선한 말처럼 들려도 그것은 마음이 하나님과는 아주 멀리있다는 반증일 뿐입니다.(마 15:8)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악한 입술에서 예수를 주로 시인한다면 그것은 과연 누구의 작품이겠습니까? 인간과 하나님의 공동작품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인간의 마음이 만물 중에서 가장 거짓되고 악하여 입술을 통해 그것을 쏟아내는 죄인인 것으로 확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과 하나님의 공동 작업이라는 것은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말입니다. 죄인과 손잡는 하나님이 어느 있습니까?
인간의 마음이 이토록 악함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 강조하는 이유는 그 자리가 바로 죄인의 괴수임을 낱낱히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바로 그 썩고 거짓된 마음에 십자가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은혜로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죄인의 괴수임을 철저하게 드러내는 마음이 바로 은혜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즉, 마음이 썩었다는 것이 중점이 아니라, 그 썩은 마음 조차 십자가의 은혜로 정죄함이 없다는 것이 중점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하고 아무리 거짓되도 보혈의 능력, 복음의 능력 앞에서는 은혜의 증거물로 점령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정결히 하고 마음의 신학을 하며,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살고자 애쓰고 최선을 다하는 것은
이 악하고 냄새나는 마음을 덮고 계신 주님의 보혈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부패하고 악한 이 마음을 십자가 앞에서 고발당하고 지적당하면서 죄인의 괴수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이 얼마나 귀하고 힘이 강한지 고백하면서 그것만을 증거하는 자가 바로 성도입니다.
두번째 아담이신 예수님 안에 있다는 의미가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아담에게는 새롭다는 것이 아예 허용되지 않는 "맨날 아담"이기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은 오직 두번 째 아담이신 예수님 안에서만 가능하게 됩니다. 이 새로움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에서만 피어납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깜도 안됩니다.
'너희들은 잘 몰라도 주님께서는 내 마음을 아신다'라는 말은
주님께서는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원수된 자인지를 너무도 잘 알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성도라면 '나는 마음이라는 별도의 영역을 만들 필요도 없는 철저한 죄인이어서 살아있는 것 자체가 죄일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 은혜인지 예수님의 피만이 바로 하나님의 의이며 하나님과의 유일한 통로이며, 하나님의 유일하신 영광인 것을 증거하는 증인으로써 살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 마음을 운운할 처지가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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