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진

복음의 비일(박윤진)

아빠와 함께 2013. 1. 27. 20:17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복음의 비밀은 이런 것이다라고 말을 하면 마치 그 사람이 복음의 비밀을 모두 눈치채고 이제 더이상 그에게는 복음이 비밀이 아닌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지금 마치 그것을 낱낱이 해부하여 모두 이해하고 있는 듯 보이는 그 사람에게도 여전히 비밀입니다. 왜냐하면 전도자가 복음을 소유하여 자신의 것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그 사람을 도구로 사용하여 자신의 것을 직접 전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비밀이라고 이름붙이는 것은 숨기고 싶은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이 아닌 흉한 것, 지혜롭기 보다는 미련한 것, 드러내기 꺼려지는 은밀한 것이 바로 인간의 비밀입니다. 즉, 어둠의 속성을 그대로 물려받은 비밀입니다. 반면, 복음의 비밀은 복음 이외의 것을 밀어올려 들통나게 하는 것입니다. 본질은 비밀이지만 대충 보면 보일 것도 같고 들릴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결국 버려지는 비밀입니다. 복음을 버리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마음은 이제 더 이상 복음은 자신에게 비밀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비하지도 않고 그래서 더더군다나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이미 내가 알아버린 것은 나의 것이라는 그 속성 때문입니다.

 

복음의 비밀은 여전히 비밀인 채로 그 비밀을 알았다는 자를 집어들어 삼킵니다. 그러니까 지금 누군가 복음의 비밀, 은혜의 비밀을 알았다는 의미는 복음이 지금 그 사람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이유로 그 사람은 복음의 비밀을 말할 수 없게 됩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머리로 이해되지 않지만 복음의 비밀을 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말할 수는 없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실상 복음이 그 사람을 알고 있는 것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지, 그 죄인이 복음을 쥘 수 있는 어떤 꼬투리도 복음은 제공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복음을 소유할 수 없음으로 인해, 즉 복음의 비밀이 여전히 성도에게도 비밀성을 유지함으로 인해 충실하게 벌어지는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담겨 있는 주님의 선택입니다. 예수의 이름이 양날이 선 칼처럼 택자와 비택자를 선명하게 분리합니다. 결코 양자가 혼합되거나 혼동되는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쪽의 어떤 가능성도 복음의 비밀이라는 벽 앞에 부딪혀 뚝뚝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자신의 소유물 정도로 여기고 있는가, 자신이 복음의 소유물이 되었는가라는 엄연한 장벽이 비로서 분명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복음을 소유했다, 복음을 이해했다, 저 사람을 틀렸다, 저 사람은 옳다라는 판단과 경쟁이라는 바구니에서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바구니 속으로  피가 쏟아져 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속성입니다. 내가 복음을 알아서 필요한 곳에 주님의 피를 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알았다고 자부하고 있는 나를 죽이고 단지 그 피를 맞고 있는 객체로서만 의미를 부여받는 나로써 새로 태어나게 하는 힘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복음이 무엇이냐고 아무리 설명해 달라고 부탁해도 그것은 비밀이다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냥 주님이 하시는 일을 보시라고, 이 피는 내 피가 아니라고, 내가 뿌린 것도 아니라고, 그냥 나는 이 피뿌림을 당한 것 뿐이라고 말입니다.

 

복음의 비밀이 내게 도착하게 되면 그동안 육이 "이건 비밀이야, 숨겨야 돼, 다른 사람들이 이걸 알면 도대체 너를 얼마나 무시하겠어!'라고 했던 것들이 더이상 비밀이 아니라, 감사의 대상이 됩니다. 이런 나에게도 복음이 찾아오셨다는 기쁨과 감사가 일어납니다. 성도는 이제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죄일 수 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고 그 죄인을 덮석덮석 끌어안고 피흘리시는 분만이 사랑이시며 주님은 자신의 말씀으로만 스스로 영광을 취하시는 거룩하신 분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바늘 끝 만큼도 그 거룩에 끼여들 자리가 없음을 알게 되고 그렇게 조치하신 주님의 일솜씨에 감격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그래서 복음의 비밀에 함께 포섭된 사람끼리 서로 보고 싶고, 말이 통하고, 모이게 하시는 것은 그 인간의 개인적인 면모 때문이 아니라 바로 주님의 피사랑 때문인 것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주님의 피사랑만을 찬양하고 감사하게 되는 그리스도의 몸 자체입니다. 내가 복음을 알았으니 내게 설명들으면 복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 어떤 학원강사와 같은 목사가 우두머리로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대학입시처럼 성경공부를 해서 시험보고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그저 주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고집하신 어떤 사람에게 뿌려진 피의 힘에 이끌려 그것외에는 인생의 다른 의미를 발견할 수 없도록 사전조치하신 파도같은 은혜에 떠밀려 들어가게 되는 곳입니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 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롬 16:2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