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0강-YouTube강의(훈계 잠언서 23:24)20241203-이 근호 목사
제490강, ‘훈계’. 잠언서에 보면 ‘훈계’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잠언서 6장 20절에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렇게 되어 있죠. 이스라엘에 있어서 하나님의 율법 안에 있도록 하나님께서 조치를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냥 이방나라처럼 혈육과 혈육의 관계, 그런 나라가 아니에요. 그럼 이방나라하고 똑같이 되거든요. 그래서 이스라엘이 이방나라와 차이점은 뭐냐? 그들의 혈육적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훈계와 법도, 율례 이런 것으로 서로 연결되게 되어 있는 나라에요. 그 특수성, 그게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과의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있고 자식을 낳게 되죠. 세상 사람들은 아버지가 자식을 낳았으니까 그 아버지와 자식 사이는 그냥 ‘혈육적인 관계다’ 거기에 머무는 것이 이방나라라면, 이스라엘은 그게 아니고 부모와 자식 사이에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로 연결되어 있어줘야 돼요.
왜 그래야 되느냐 하면 세상나라에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육신도 낳아줬지만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재산 같은 것, 아버지의 업적 같은 그런 것들을 물려줘서 결속관계, ‘너는 영원히 내 자식이다’, ‘나는 너의 영원한 아비다’ 이렇게 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 혈육관계 속에 관여를 해요. 개입을 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것이, 재산보다 더 우선되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이에요. 하나님의 훈계고요. 신명기에도 그런 대목이 나옵니다만, 만약에 하나님의 훈계와 법도를 거부하는 자식이 있거든 돌로 쳐 죽여라 했어요. 돌로 쳐 죽일 정도로 이것은 일체 미련 둘 필요가 없다. ‘세상적인 내 자식이라고 감싸주는 그런 것은 있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훈계와 법도 체제로 이스라엘이 그렇게 구성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체가 하나님의 아들이 돼요. 출애굽기 4장에 보면 내 장자 내 아들 이스라엘(22)이라 했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육신이 없는 하나님께서 그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자기 아들로 삼을 때는 육신과 육신의 관계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고 다른 것 때문에 너는 내 아들이라고 결정내릴 수가 있는 거예요.
어떤 경우에 너는 내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가? 감히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그대로 인수인계 받게 되면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겁니다. 왜 그런가 하면 장차 이스라엘의 아브라함 계통을 따라서 이 땅에 누군가 찾아와요. 독생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데 이스라엘에게 와요. 오실 때도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고요.
그렇게 되게 되면 ‘그 많은 이스라엘이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냐?’라는 점에서 하나님께서는 확인해보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너희들이 내가 보낸 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처럼 율례와 법도대로 사는지를 내가 한번 점검해보겠다는 겁니다. 점검을 해보니 아들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이 점을 미리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구약 때 이스라엘에게 율례와 법도를 전한다는 말은 하나님이 생각하는 아들하고 인간들이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아들하고 다르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하나님과 아들 사이에는 하나님의 언약으로 맺어져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 예수님이 하신 일은 아버지와 창세 전에 맺었던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어요. 그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언약 범위 바깥으로 벗어나지 않을 때 예수님은 독생자가 돼요. 독생자다운 독생자, 하나님의 아들다운 아들이 되는 겁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모델을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거거든요.
그렇다면 예수님 오시기 전에 구약 때도 이미 여러 차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실 때 단서가 붙어있어요. 너희들이 내 율례와 법도를 지키면 너는 내 아들이 된다. 이사야도 그렇고 많은 대목에서 하나님께서 당부했습니다. 율례와 법도를 어기면 어떻게 되느냐? 어기면 내 아들이 아닌 거예요.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오해했느냐 하면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니까 자동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따라서 우리가 하늘나라 백성이 된다.’ 이렇게 성급하게 결론내린 겁니다. 율례와 법도는 날아가 버렸어요. 세상적인 아버지가 자식을 낳았다는 그것만으로 그냥 하나님의 아들합시다,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거예요. 율례와 법도는 생각지도 못하고.
잠언서 23장 23-26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게 무슨 말씀이냐 하면 아버지가 전해준 그 진리, 훈계, 명철을 고이 귀하게 여기고 꼭 간직하게 되면 비로소 아버지는 자식을 가진 보람을 느낀다. 그 명철과 지혜를 가진 자식으로 인하여 아버지가 기쁨을 얻는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아버지가 자식을 낳는 기쁨이라 하는 것은 벌써 분명해졌죠? 아버지의 훈계와 법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면 그것은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자식이 되는 겁니다.
성경에서 그런 말씀 나오지만 피조물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를 낳아주신 분, 만들어주신 분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피조물이 있는 겁니다. 만들어주신 분과 관계 끊어버리고 그냥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전혀 그를 낳아준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게 아니에요. 기쁘게 하는 것은 법도와 훈계가 계속 유지되어 있을 때나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그때 아버지는 그 자녀를 참자녀라고 여기십니다.
아브라함의 자녀 가운데 이스마엘 있잖아요. 그건 탈락이에요. 그러나 이삭은 합격입니다. 그리고 이삭의 경우도 마찬가지에요. 이삭의 경우도 자식이 에서 있고 야곱 있는데, 에서는 탈락이고 야곱은 합격입니다. 야곱의 경우도 열두 아들이 있죠.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유난히도 기쁘고 좋아서 특별히 유니폼, 채색옷을 입힌 자식이 따로 있습니다. 요셉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뭐냐? 하나님의 언약의 중심부에 위치한 아들인 거예요. 이스마엘은 언약이 없어요. 에서는 언약이 없습니다. 야곱은 있습니다. 열두 아들 가운데서 야곱의 언약을 구체적으로 수행한 아들은 누구냐? 요셉뿐이에요. 이 점을 생각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한다면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것은 오직 뭐밖에 없다? 하나님의 언약을 간직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돈을 벌어오라 하든지 사업을 크게 하라 하든지 늘 건강하라 하든지 이걸 우리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네가 어떻게 세상적으로 망가졌다 할지라도 심지어 탕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언약을 잊지 않으면 엄연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아들이요, 백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