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7강-YouTube강의(생명의 종류 레위기 11:13)20241105-이 근호 목사
제487강, ‘생명의 종류’. 생명에도 종류가 있나 생각이 들 거예요. 생명에도 값나가는 생명 따로 있고 허름한 생명 따로 있고 무시해도 되는 생명 따로 있고 소중한 생명 따로 있나 그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그런데 생명에서 어떤 격의 차이가 난다는 게 아니고 생명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려 하는 겁니다.
레위기 11장 13절에 보면 “새 중에 너희가 가증히 여길 것은 이것이라 이것들이 가증한즉 먹지 말찌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어응과 매와 매 종류와” 이렇게 되어 있어요. 레위기 11장 앞에 2절을 보면 “육지 모든 짐승 중 너희의 먹을만한 생물은 이러하니”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걸 좀더 분명히 이야기하면 창세기 1장과 관련지어서 설명이 되어야 돼요. 창세기 1장에 보게 되면 새는 무엇이 결정하느냐? 하늘이라는 환경이 결정합니다. 공중을 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새에요. 이게 하나님의 분류법입니다. 뭐 매미 따로 있고 뭐 따로 있고 아니에요. 전부 다 모조리 다 새입니다. 곤충 따로 있고 독수리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다 새에요, 새.
창세기 1장 20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또 땅 밑의 물에 생물들도 있고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라고 되어 있어요.
새라는 것은 ‘새가 어떠냐’가 관심사가 아니라, 새가 활동하는 그 공간, 그 영역, 그 환경을 표현해주는 것이 바로 새가 된다는 거예요. 이게 다섯 째 날이거든요. 그러면 땅에 있는 짐승은 여섯 째 날이에요. 땅에 짐승이라 할 때 짐승이 어떻게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땅이라는 환경을 여러 가지 다양한 짐승을 통해서 표현해주는 거예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이렇습니다. 여섯 째날 마지막에 만들어진 것이 인간이죠. ‘인간이 누구냐’,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인간이 소속되어 있는 환경이 어떠한 환경이냐를 드러내기 위해서 인간을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종류가 벌써 하늘에 있는 생명, 물에 있는 물고기, 땅에 있는 짐승, 또 땅에 있는 인간. 결국 종류가 인간 포함해서 네 종류밖에 없죠. 인간 빼면 몇 종류입니까? 세 종류죠. 다 다섯 째날, 여섯 째날 창조된 겁니다. 땅, 하늘, 그리고 물속, 이렇게 세 가지.
그러니 생명의 종류라는 것은 네가 속해있는 환경이 얼마나 거룩하고 깨끗하냐를 드러낼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구분하겠다는 겁니다. 생명을 가지고 구분하겠다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레위기 11장의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레위기 11장에 보면 아까 2절 읽었으니까 3절, “짐승 중 무릇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새김질하는 것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러하니”라고 되어 있죠.
이 이야기를 지금 짐승보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새보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안 그러면 물고기보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인간보고 이야기하는 겁니까? 인간보고 이야기하죠. 그러나 모든 인간보고 이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인간이냐? 인간 중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입어야 될 인간에게 이 말씀을 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인간 중에서 이 말씀을 받지 아니한 자는, 인간 중에서도 거룩하지 않고 더러운 인간이 되겠죠. 그리고 이 말씀을 받고 실천한 사람은 거룩한 인간이 되겠죠.
자, 보통 거룩한 인간, 더러운 인간 같으면 ‘야, 너 참 안됐다. 더러운 인간이라서.’ ‘아, 나는 기분 좋아. 깨끗한 인간이잖아.’ 전부다 무엇에 관심이 있느냐 하면 자기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 관심을 두고 성경말씀과 연계를 시키죠.
하나님, 저 소고기는 먹었어요.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했으니까 소가 새김질하잖아요. 저는 소고기는 먹었지만 굽이 갈라졌으나 새김질 못하는 짐승, 돼지는 먹지 말라 했단 말이죠. 그럼 사람들이 이걸 보고 뭐라 하겠어요? 옛날 구약 때, ‘하나님, 저는 소고기는 먹었지만 돼지고기는 안 먹었으니까 저 거룩한 사람 맞죠?’라고 생각할거죠. 그렇죠? 이 말씀대로 했으니까. 그러면 거룩한 인간됩니까?
성경을 보면서도 관심사가, 내가 얼마나 대단하며 내가 죽어서 천국 갈 사람인지 지옥 갈 사람인지 거기에 관심을 두면 성경하고 상관없어요. 성경해석이 잘못된 겁니다. 성경해석은 어떻게 하는가? 아까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물고기는 물에 대해서 드러내기 위해서, 새는 공중에 대해서 드러내기 위해서, 짐승은 땅에 대해서 드러내기 위해서. 그럼 인간은? 땅에서 하나님이 무슨 일을 일으키는가를 드러내기 위해서 인간이 만들어진 거예요. 따라서 그 인간 중에서 하나님이 하신 것을 드러내지 않는 인간이라면 레위기 11장에 보면 그 인간은 부정한 인간이에요. 더러운 인간 되겠죠.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11장 20절에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은 너희에게 가증하니” 이렇게 되어 있죠. 날개가 있으면 어디서 살아야 돼요? 공중에 살아야 되겠죠. 그런데 네 발이 있어 기어 다니는 곤충은 오롯이 하늘을 묘사하는 것도 아니고 오롯이 땅을 묘사하는 것도 아니고 불분명하죠. 이런 것은 가증스럽다는 거예요.
날개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은 제대로 뭐를 묘사 못해요? ‘너 소속이 하늘이야, 아니면 땅이야?’를 분명히 드러내지 못하겠죠. 드러내지 못하면 이 말씀에 의해서 뭐가 돼요? 더러운 게 돼요, 더러운 게. 이 더러운 것을 가증하니 먹지 말라했어요. 먹지 마라.
그러면 인간 속에 다섯 째날, 여섯 째날에 만들어진 것이 인간의 음식으로서 인간 속에 들어오게 되죠. 인간 속에 들어오게 된단 말이죠. 들어오게 되면 인간은, 특히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다른 인간과 달리 이스라엘 백성이 독특한 환경 속에 독특하게 인도받고 있다는 것을, 그것도 말씀으로 인도받고 있다는 것을 다시 감지해야 돼요. 그 취지를 알아야 돼요.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살던 사람이 홍해를 통해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이에요. 유월절 홍해를 통해서. 지금 레위기가 광야에서 받은 거잖아요. 모세를 통해서. 그렇다면 그들 이스라엘 환경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그냥 아무거나 먹을 수 있는, 땅의 것을 먹을 수 있는 그 환경을 반영해야 돼요, 안 그러면 독특한 환경을 반영해야 됩니까? 독특한 환경을 반영해야 돼요.
어떤 게 독특한 환경이냐? 우리는 다른 사람과 달리 거룩한 환경을 표현해야 될 책임이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거룩한 백성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무엇이 거룩하지 않냐를 알 수 있는 사람, 무엇이 더러운가를 알 수 있는 그들이 거룩한 백성이에요.
그러나 일반 이방민족에서는 인간 다 똑같아요. 그냥 너나 나나 똑같아요. 나쁜 짓 더하고 덜하고 그건 의미 없어요. 본질 자체가 그들은 똑같다고 보고 이스라엘은 똑같지 않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음식 먹을 때 어떻게 하느냐 하면 제대로 환경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네 속의 일부로서 양식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토끼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새김질을 계속 한다는 이 말은, 애굽에 있을 때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에 의해서… 새김질이 뭐에요? 먹은 걸 다시 새롭게 내놓는 걸 의미하죠. 그리고 굽이 갈라졌나 안 갈라졌나 주목한다는 것은 우리가 기존의 인간과 갈라진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거예요.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모든 것은 바로 유월절 사건, 홍해사건이 음식 속에도 그 내용이 담겨있음을 알고, 유월절 양을 주신 하나님께서 음식을 이런 식으로 구분해서 먹으라는 이 말은 음식 속에도 출애굽 사건이 담겨있다는 바로 그러한 새로운 환경을 드러내고 증거하기 위해서 우리는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의 생명, 특별한 생명, 영생에 합당한 생명의 종류가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