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2강-YouTube강의(음녀 잠언 7:25)20241217-이 근호 목사
제492강, ‘음녀’. 잠언 7장 18-27절을 보게 되면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자기 아들,이스라엘 백성을 이야기하죠,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의사항을 언급하면서 음녀에 대해서도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잠언의 내용은 기준이 있는데요. 잠언에서 말씀을 주는 조건 중 하나가, 생명이라는 것이 원래 인간에게는 없어야 되는데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 다윗에 속한 이스라엘 백성한테는 생명을 허락한 길을 제시했다. 이게 전도서, 잠언, 시편, 아가, 욥기도 포함되어 있고요, 그렇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생명이라는 것이 인간에게는 없어요. 없는데 주시는 겁니다. 상당히 색다르죠. 그런데 그 생명은 어디에 있느냐? 솔로몬이 다윗의 자손에 따른 왕이니까 솔로몬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계명과 지혜, 또는 잠언 안에 생명이 있는데 잠언을 받아들이면 너는 생명을 받아들인 것이 된다. 굉장히 쉽죠? 솔로몬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전달하는 말씀을 주시는데 그 솔로몬의 잠언을 그냥 받아들이면 너는 생명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에게 특별히 생명에 관한 말씀을 주시는가? 그것은 이스라엘이 전 민족을 대표해서 사망의 상태, 인류가 왜 사망에 이르렀는가, 왜 생명이 없는가를 이스라엘을 통해서 새롭게 알려주고자 하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너희에게는 잠언, 다윗의 자손에 의한 잠언에 생명이 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생명을 특별한 곳에 특별한 방법으로 줬다는 말은 다른 곳에는 애시당초 생명이 없다는 뜻이에요. 생명을 줌으로써 ‘생명 없음’, ‘저주 있음’ 이것을 나타내야 될 사명을 받은 자들이 이스라엘이에요.
자칫 이렇게 오해하면 안돼요. ‘아, 나 잠언 받아들여서 생명 얻었다. 끝. 아, 나 신난다. 끝.’ 이러면 안 된단 말이죠. 생명을 받는 그 순간, 우리는 잠언이라는 말씀이 없는 곳에는 영원한 저주가 있다는 것도 아울러 우리로 하여금 알게 만들어요.
알게 만들면 저주가 뭔지를 이제 확실히 알고 생명을 알았으면 그 인간이 가만있겠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달리 보겠어요? 세상을 완전히 달리 보는 거예요. 어떻게 달리 보는가? 어떤 사람은 돈 자랑하고 어떤 사람은 권력 자랑하고 어떤 사람은 똑똑한 거 자랑하고 뭐 자랑할 게 많잖아요. 어떤 사람은 높은 지위에 있다고 자랑하는데 생명을 얻은 자의 눈으로 보게 되면 그런 것이 우습죠. 같잖고 우습고. ‘아이고, 엉터리야. 아, 사람들이 저거 찾는다고 지옥 가는구나.’라는 것을 아주 확실하고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세상을 향하여 말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없었으면 바로 내가 저 꼴 났다는 거예요. 저런 상태에서 아직도 세상을 저런 식으로만 볼 수밖에 없는데 세상에 푹 갇혀 있는 상태인데, 하나님께서 생명이 실린 말씀을 주었기에 나는 기꺼이 그런 것들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대범하게 큰소리로 자신만만하게 외칠 수 있는 사람 되는 것. 이게 자유잖아요. 이게 바로 자유 아닙니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자유가 아니고,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게 자유잖아요.
그런 잠언 이야기에 필히 이 사망의 길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죠. 반드시 언급해야 되겠죠. 그게 잠언서 7장 27절에 나옵니다. “그 집은 음부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이렇게 되어 있어요. 잠언서 8장 끝에는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이렇게 되어 있어요. 8장 35절에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되어 있거든요.
그럼 지혜를 받는 것이 생명을 받는 것이 되고 그러면 사망은 생명이 없을 경우에 필히 그 사람은 사망의 길, 음녀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자, 그러면 음녀라고 해서 어떤 여성성을 이야기하죠. 음란한 여성. 여성성을 이야기한다고요. 잠언서 7장 24절, “아들들아 나를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지 말찌어다”라고 되어 있어요.
아들에게. 아들은 남자죠. 음녀는 여자죠. 남자 아들에게 당부하기를 어떤 여인의 길로 가서는 안 되는데 그 여인의 길은 무엇과 연관되느냐 하면 사망의 방과 연관되어 있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이 음녀는 어디 출신이냐? 16절에 보면 “내 침상에는 화문 요와 애굽의 문채 있는 이불을 폈고”라고 되어 있어요. 거리에 음녀의 골목 모퉁이가 있는데 기생 옷을 입고 어리석은 소년을 꼬시기 위해서 거리의 여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음녀를 표현해요. 그 음녀를 표현하는데 무슨 나라 이름이 나오냐 하면 “애굽의 문채 있는 이불”이라 해서 ‘애굽’이라는 나라가 나와 있어요.
그러면 여기서 음녀라는 것은 뭐냐? 바로 언약이 없는 나라. 또는 이스라엘이 옛날 구출당해야 했던 나라, 애굽 나라. 그 애굽 나라의 일상을 그냥 지속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뭐라고요? 그 사람들이 바로 음녀에요, 음녀. 그게 음녀죠. 언약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의 다윗 언약, 말씀이죠, 말씀이 없는 것은 그 사람이 남자든 여자든 뭐 음탕한 여자든 안 그러면 점잖은 남자든 상관없이 전부다 뭐가 돼요? 사망 쪽에서 사망으로 가는 것도 모르면서 생명의 길도 모르고 자기가 사망의 길, 지옥 가는 것도 모르고 그냥 살아가는 사람 모조리 뭐가 돼요? 음녀가 되겠죠.
그게 바로 요한계시록 17장에 나오는 거예요. 그 음녀 안에 있는 개념이 예수님의 십자가 언약을 통해서 완성되게 되면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요한계시록 17장은 세상 자체가 음녀의 세상이고 거기 심판이 있는데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요한계시록 17장 1절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이 음녀의 세계라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데, 3절에 성령이 와서 알려주니까 비로소 이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 바라는 것 이 모든 것은 이미 이 세상에서 나와서 이 세상으로 번져지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는 거예요.
피자 판 만들 때 어떻게 됩니까? 피자 반죽해놓고 피자 만드는 요리사가 막 돌리죠. 돌리면 중력에 의해서 또는 회전력에 의해서 피자 반죽이 퍼지잖아요. 쟁반처럼 퍼지죠. 이 세상은 바로 언약에 대항하는, 마귀죠, 언약에 대항하는 이 악마의 힘이 마치 쟁반처럼 이 세상에 퍼지고 퍼지고 전파되고 전파되고 그래서 네가 들은 것 내가 베끼고 내가 안 것 네가 전하고 전하고. 그래서 점점 옆으로 옆으로 하나의 원판처럼 퍼져나가는 것, 이게 바로 음녀의 세계입니다. 사망의 세계이고 지옥의 전초적인 모습이죠.
그럴 때 그들 따라 그들 옷 입지 말라는 말인가, 그들 가는 식당에 가지 말란 말인가, 이게 아니고. 처음에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그들이 음녀고 지옥 간다는 것을 알려면 조건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내 속에 들어오도록 삼키는 거예요. 말씀을 삼키는 겁니다.
그럼 그 말씀 안에는 뭐가 들어있습니까?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있는 거예요. 생명 되는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세상의 어떤 것도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탈바꿈되었다. 다른 존재가 되었다. 새로운 창조물, 피조물 되었다.’ 이런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