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요구하는 것은 “너냐? 나의 죽음이냐?” 이걸 묻는 겁니다. 어느 쪽에 생명이 있느냐를 묻는 거예요. 나의 평화, 나의 행복, 주께 고마움, 다 어디에 속합니까? 이게 내게 속하잖아요. 아, 끈질겨요. 이게 종교에요. 종교. 아무리 예수님 사랑하고 예수님 믿습니다, 해도 나는 나를 포기하고 나를 없앨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나에게 내가 전부라니까요. 내가 나한테 전부에요.
■“주의해. 그러면 안돼. 그러면 너는 안돼.” ‘안돼’ 할 때 우리는 보통 어떻게 됩니까? 정신 차려서 우리는 안하려고 하잖아요. 그런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지시나 율법이나 계명은 반드시 계명을 살리기 위해서 그 계명을 받은 자가 위반자가 되어야 돼요. 그래야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다이렉트로 연결돼요.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직접 연결되면서 중간에 인간은 위반자로 위반하고 빠지는 겁니다. 빼야 돼요.
말씀을 지킨 거예요, 안 지킨 거예요? 지켰죠. 그러면 선지자가 아니에요. 그러면 선지자가 아닌 거예요. 이 선지자는 자기 자신이 말씀 지킨 나와 말씀 안 지킨 나 사이에서 본성의 차이를 모르고 정도의 차이만 알고 있는 겁니다.
■지시를 지키려고 한 건 우리가 우리의 본성을 모른 상태에서 그러는 거예요. 반드시 못 지키게 되어 있어요. 모든 말씀은 못 지키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뭐든지 해도 괜찮아요. 왜? 어차피 못 지킬 거니까. 어차피 못 지킬 거니까요. 뭐 장담? 필요 없어요. 구원이 뭐에요? 정도의 차이에서 말씀에 입각한 자기 자신의 본성을 아는 것. 나는 그동안 누구의 사주를 받았다? 죄의 사주를 받고 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를 발견하는 겁니다. 그럴 때 왜 예수님이 죽어야 되고 예수님이 왜 자꾸 우리보고 너는 내 죽음에 합류하라고 했는지 비로소 그 내막을 아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