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관예배
다른 데서 살지요. 여기 눈에 보이는 세상에 잠시 있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그곳에 옮겨 가서 사는 겁니다. 죽는 게 아니고 사는 겁니다. 커튼 딱 열어젖히면 거기에 살아 있어요. 지금 이 세상은 앞에 눈에 보이는 무대이고, 무대에서 은퇴하셔서 커튼 열어젖히면 거기에 또 살고 있어요. 아빠가 살고 있고, 남편이 살고 있고, 아들이 거기에 살고 있습니다. 안 죽었습니다.
세상에서 그렇게 죽었다고 가르치는 거죠. 왜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게 다니까, 헤어지는 게 섭섭하니까 그렇게 하지요. 그런데 사람이 이 땅에 와서 고생을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그 무거운 책임감, 가슴 터지도록 책임감 가지면서 그러다가 젊어서 가셨지만 어느 누구도 대기 상태에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세상을 죽는 것이 아니고요, 이 세상을 떠나게 돼있어요.
약간 앞서서 떠난 거예요. 우리 보기에는 떠났지만 사실은 우리를 이끄시는 겁니다. 내가 먼저 가 있을 테니까 나 있는 곳에 너희들도 결국 합세하자. 아빠하고 합세하고, 남편하고 합세하고, 아드님하고 합세하시면 되는 겁니다. 안 죽었는데 자꾸 죽었다 하면 너무 이게 절망적이고 이게 마음이 낙담돼요. 세상에서는 죽는 것으로 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사는 게 의미가 없습니다. 끝이 아니에요. 끝은 없습니다. 여기서 살다가 다른 곳에 가시면 되는 겁니다. 이게 제가 유족들을 위로삼아 그냥 좋은 말로 이렇게 하는 게 아니고 실제에요. 이게 실제라는 것은 아무도 모르고 이게 실제로 인간은 죽지 않고 다른 곳에 사는지, 실제로 거기에서 사는 지는 우리 인간은 모르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시범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에 “나는 부활이고 생명이니” 나는 분명히 너희들 보기에 예수님은 이미 죽은 분이지만 지금 예수님은 살아있어요. 예수님만 살아있는 게 아니고 아빠도 살아있어요. 예? 좀 헤어지는 게 하지만 좀 기다려 봐요. 같이 합세할 테니까. 그 때, “아빠 먼저 가셨잖아요.” 이야기해도 괜찮아요. 그때 아빠 없어서 섭섭했어요. 그런 이야기해도 괜찮아요.
그러나 안 죽은 것은 안 죽은 거예요. 살아있는 건 살아있는 겁니다. 그걸 누가 장담하느냐? 어느 인간이 장담합니까? 과학? 철학? 어떤 똑똑한 사람도 장담 못해요. 예수님이 시범을 보여 줬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난 뒤에 끝이었습니까? 무덤에 가보니까 무덤에 시신이 없어요. 사흘 만에 부활했습니다. 이건 실제 상황이에요, 이게.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 부활도 없으면 이 세상 왜 삽니까? 아무 희망도 없는데. 결국은 돈 벌고 까불다가 결국 누구나 죽잖아요. 이게 하나의 뭐 종교 교리에요? 아니에요. 지금 예수님께서 보이지는 않지만 살아계셔서 그동안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님께서 그동안 같이 참 사랑하면서 살았다고 하는데, 정확하게 말해서 살은 게 아니고 주께서 살려주셨습니다.
주께서 살려주셨다고요. 애 둘 낳고. 어려울 때마다 힘들 때마다 서로 안고, 서로 위로하고 그런 마음을 주셨다고요. 네 식구지만 사실은 식구 하나 더 치세요. 예수님이 늘 도와줬어요. 그 동안 계속 살려준 것을 그 고마움을 잊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님은 평소에 몸이 아프면서도 희망이 있었던 것은 이걸 알았던 거예요.
주께서 다른 사람에게 없는 마음을 나에게 많이 주셨다. 그게 뭐냐 하면, 나는 부활이고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영원히 안죽어요. 죽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사실을,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최** 성도님 마음에 온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안보이지만 살아계신 예수님께서 최성도님한테 그 마음을 주신 거예요.
예수 안에서 같이 살았던 겁니다. 이제는 우리 유족들, 가족들, 일가친척들, 친구 분들 이제는 세상 말 듣지 말고, 그거 그냥 참고로 들으면 돼요. 아, 이렇게 세상 돌아가는구나, 하면 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세상이 해결 못하는 게 있어요. 죽는 게 끝이라고요? 아닙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고, “나는 부활이고” 실제로 시범을 보였어요.
“나는 생명이고” 영원히 사는 길이 있는데 왜 자꾸 죽는 것으로 모든 걸 마감 지으려고 합니까? 그게 얼마나 낙담되는 말이에요? 인생 그렇게 살 거예요? 끝이에요? 그러면 살아서 뭐 할 거예요? 해봐야 끝인데.. “나는 부활이고, 생명이니” 사는 길을 놔두고 죽음에서 멈추면 안됩니다. 사는 길이 있어요. 백날 살아도 죽을 수밖에 없는 거면 얼마나 허망합니까?
사는 길이 있으니까 어떤 경우라도, 어떤 경우라도 부활이고 생명이고 그렇게 영원히 천국에서 산다는 거. 이 희망 하나 있으면 이 세상에서 건질 건 다 건진 거예요. 다 건졌습니다. 그리고 이건 헤어짐이 아니고 먼저 간 거예요. 먼저 데려가서 무대 뒤에서 지금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지옥 간 사람들이 죽었다고 생각하는데 살아서 이야기하고 있어요.
마찬가지로 지금도 우리 성도님은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다른 곳에서 전에 이야기했듯이 이야기 하면서 분명히 살아있습니다. 살아 있는 거 하나를 붙잡아야지 ‘끝이야, 끝났어, 내 인생 이제 종쳤어’ 이렇게 하시면 안돼요. 이제 남은 두 자녀하고 살아야 되는데, 지금껏 내가 야무지게 살아야지 하지 마시고 주께서 그 때마다 살려주실 거예요. 애들 공납금부터 해가지고 생활비...
발인예배
“....죽은자로다” 아멘
하나님께서 세상을 흙으로 만드시고 결국 흙으로 돌아갑니다, 예외 없습니다. 주님께서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또 주님께서 허락하기를 “정녕 살으리라” 하셨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우리의 마지막 난관이고 최고의 난관입니다. 어떻게 살아가면서 이 죽음이라는 난관을 돌파해야 됩니다. 다른 최고의 꿈과 희망은 이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죽음까지 돌파할 수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나올 때 죽음의 바다 홍해바다를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건너가지 못한다고 누구나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바다에 가로놓여놓고 죽음의 바다를 둘로 쪼개서 그 가운데를 지나가게 하셨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죽음에 맞닥뜨리게 해놓고 죽음 속을 통과하는 방법으로 천국에 가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죽는다, 산다는 것은 사실은 누구의 잘못이 아니니까 자책하지 마시고 주께서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성도를 먼저 우리보다 먼저 데려가신 겁니다. 꽃은 아름답지만 시들잖아요. 그래서 우리도 꽃과 같은 존재인데 어떻게 사느냐 이것만 아시면 됩니다.
어떻게 사는가? 예수님이 어린양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사해줌으로써 예수님과 더불어서 살게 되면 죽음조차도 이기고 지옥도 이기고 천국에 도착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성도님은 바로 그걸 미리 알았고 우리도 알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죽고 사는 것이 내 뜻이 아니고 누구의 뜻도 아니고 주의 뜻인 것을 깨달아서 살기 위해서 죽이신다는 이 놀라운 원칙과 진리를 이제는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하관예배
누가복음 2장 29절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아멘
참 인생 살면서 하고 싶은 거, 하기 싫은 것도 해야 되고 보기 싫은 것도 봐야 되고 안해야 되는 것도 해야 되는 이 삶의 무게가 얼마나 힘들고 무거웠겠습니까? 산다는 자체가 고생이고 고난이고 빼도 박도 못하는 운명의 굴레 속에서 모든 인간은 지쳐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고인도 마찬가지로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오늘 성경에 보니까 이제사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군요. 우리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가 힘든 것 다 아시고 바통을 이어받으려고 하는 겁니다. 육상 경기 중에 릴레이라는 게 있거든요. 달릴 대로 달리고 바통 넘기면 이제 다른 분이 내 인생을 연이어서 이어 달리는 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고생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바통을 누구한테 넘겨줘야 되는가? 우리 주님께서 바통을 넘겨받아요. 그러면 내 남은 인생, 유한한 인생을 바통 받은 주님이 앞서서 달려서 천국에 골인하는 겁니다. 요 방식 사용하신 거예요 주님께서.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현재 우리는 모든 게 부족해요. 내 힘으로 인생을 끌어가려니까 힘들지 않은 구석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부족함이 없다는 말은 바통을 이어달리는 겁니다. 받고, 주께서 나는 그동안 양으로 허겁지겁 인생을 살아왔는데 목자 되신 주님이 내 남은 인생을 천국으로 바통 이어받아서 달려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주님 앞에 한 마리의 양이 되고, 주님은 내 인생 대신 살아 마지막 마무리 짓는 목자 인생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제 우리 최**성도님 참 힘들게 살았는데 주님 만나고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 주님의 말씀대로, 말씀대로, 성도님이 말씀 지킨 게 아니고 주께서 하신 말씀대로 성도님을 이끌고 가신 거예요. 평안한 길로 가신 거예요.
이제 남은 유족도 이제 남편에 연연하지 말고, 그리고 아버지에 연연하지 말고 내 인생 살아야 됩니다. 이 현실은. 언제까지 미련 두고 집착해가지고 갈 수가 없어요. 남편이 목자가 아니고 아버지가 목자가 아니잖아요. 내 현실 따로 주어졌다 이 말이죠. 그러면 그 아버지 현실은 현실대로 주께서 챙겨주시니까 이제 내 남은 인생 또다시 주님의 양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힘든 일이 있을 거예요.
더 이상 누구한테 매이지 말고 내 인생 살아야 됩니다. 그럴 때 “누가 내 동생이며, 형제들이냐?” 너희들이 바로 내 새로운 패밀리, 새로운 주님의 가족이 되는 거예요. 천국에서. 어느 것 하나 주의 말씀대로 안되는 게 없습니다. 주의 말씀 스케줄대로 착착 짜여 가는데 이제는 그 얼마나 우리 아빠가 고생하고 또 남편이 고생한 줄을 알지만, 또 하나 우리 주님께서 우리 죄를 씻어주기 위해서 얼마나 이 땅에 고생스럽게 왔는가를 아시면 되는 겁니다.
이제는 우리 주님을 남편으로 삼으시고, 주님을 우리 아빠로 삼으셔서 새로운 가족으로 주의 손목에 이끌려서, 목자에 이끌려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내 주여 뜻대로 모든 것이 뜻대로 되어가기에 앞으로 뜻대로 되실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혼자 못사는 인생, 혼자 살려고 얼마나 전전긍긍했습니까?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를 깨닫게 해주시고 바통을 주님께 넘겨서 주께서 주관자가 되셔서 주의 선한 뜻대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남은 가족도 그렇게 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댓글
공은주 요한복음11장의 재현입니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나사로 죽었다가 살아남을 보여주신 것은 미리 예수님의 죽었다가 부활하실 것을 드러내기 위한 주님의 사건이었습니다. 최성도님도 그대로 재현해 주신 주님의 쓰임에 영광이고 감사입니다.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시는 말씀의 능력에 신기하고 놀랍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미래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시니 기쁨과 평안과 희락입니다.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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