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5강-2010여름수련회

아빠와 함께 2014. 1. 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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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강


레위기 본문을 바로 들어가지 않고 레위기 외 성경 다른 대목을 하는 이유가 레위기가 이렇습니다라고 이야기 하면 그 레위기라는 것이 과거에 있었던 하나의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우리 일상과 상관없다고 그렇게 생각되거든요.

그런데 지난 시간도 이야기했지만 이 종이가(율법이 쓰여진 종이 한 장) 레위기라면 레위기를 이렇게 보여 주고 얼른 하나님께서 내려 버리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답답해합니다.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그 율법의 내용을 우리가 제대로 알아서 제대로 지키면 하나님을 기뻐시게 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생각은 다릅니다. 구태여 인간들이 이 내용을 알아봤자 그 진정한 취지와 뜻은 오직 예수님만이 알고 실천할 수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자신이 그것을 실천하겠다고 설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레위기 내용대로 우리가 지키던 아니 지키던 상관없이 레위기 내용대로 지금도 우리일상 속에서 레위기 원칙대로 벌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레위기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일상의 사소한 일을 가지고 하나님은 왜 저에게 이런 엄청난 재앙이 주어집니까? 라고 하면서 딴 소리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레위기에서 우리는 태어난 것 자체가 처벌이고 징벌인데 그것을 제대로 된 레위기를 위한 처벌이요 출생이 됩니다. 마치 세탁기 안에 세탁물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우리 주변 전체에 레위기가 빙빙 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켜서 레위기가 다가온 것이 아니고 레위기에 대해서 우리가 지키는 것이 아니고 , 우리가 지키는 것이 아니니까 레위기는 그냥 옛날로 사라진 것이 아니고, 너희들이 못 지키는 것을 예수님이 충실히 지켜서 너희들의 삶의 환경을 레위기에 저촉 받도록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이 말이죠

그럴 때 레위기를 모르는 사람 같으면
하나님 어찌 예수 잘 믿는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레위기에 입각해서 네가 하나님 잘 믿는 것이 잘 믿는 것이 아니거든! 왜 그렇습니까?

레위기를 봐라. 아하, 이게 내가 인식 자체, 출발점이 잘못되었구나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생각하는 레위기와 우리가 생각하는 레위기의 의식자체를 대조, 비교, 충돌시켜보고 해서 우리 일상 속에서 이미 레위기가 온 천지에 퍼져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본문 안 들어가고 레위기 일장 언제 들어 갑니까라고 하고 있는데 우리 안 들어가도 들어가신 분에 계십니다. 우리가 안 들어가도 주께서 레위기를 갖고 휘감고 있어요.

그래서 레위기를 휘감고 있는 그 결과가 무엇인가. 저와 여러분이 이 꼬라지로 사는 것입니다. 레위기가 만들어낸 삶의 환경조성입니다.

레위기 5대 제사를 들어가면서 강줄기 이야기 했죠?

강줄기 쭉 내려오다가 선행되는 언약에서 강줄기로 뭉쳐 있다가 레위기에 의해서 오대 제사로 퍼졌습니다.

그러면 궁금한 게 선행되는 제사가 무엇인가요?
창세가 22장 13절에 아브라함이 번제를 바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번제를 바치면 예수님 오실 때까지 계속 번제로 가면 될 텐데 왜 레위기에 보면 번제 말고 딴 제사가 있는고. 하면, 그것은 갱신이 되요.

갱신이 되는데 언약이 새롭게 업그레이드되는 겁니다. 갱신이 되면서 갱신이 되면서 갱신된 요소가 추가적으로 붙는 게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고 하면 속죄제입니다.

속죄제가 붙으면 번제는 제단이 위주가 되는 반면에 속죄제는 향단(춘향이와 관계없음)과 성소(지성소)가 중심이 되어서 이렇게 붙습니다.

번제는 다 태워버리는 겁니다.
원래 다 태우는 거예요.
다 태울 때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향기로운 제사가 원형제사인데, 여기에 인간이 향기로운 제사에 대해서 그것을 지킬 수 없게 된 이유가 언약에 대해 모르면 제사자체, 번제를 드려도 소용없습니다.

번제를 드리는데 번제 자체가 하나님의 언약과 연결점이 끊어져 있다면, 연결점이 이어질 수 있는 새롭게 추가된 정보가 포함된 새로운 제사가 내려와야 되거든요.

그것이 무언가 하면 여기에 속죄제가 붙습니다. 그래서 번제가 원형인데 피 있는 것은 번제, 피 없는 것은 소제라 합니다. 특징은 둘 다 다 태우는 거고.

여기에 갱신하는 것이, 즉 속죄제가 필요한데, 속죄제와 같은 것으로 속건제가 들어갑니다. 속죄제, 속건제가 여기에 추가가 되면서 조금 전 이야기 했습니다.

시내 산에서 밑에 있는 계약을 파기할 때 참여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은 모세입니다.

모세가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계약을, 인간은 나빠서 언약을 깨뜨려도, 하나님께서 갱신해서 나아가는 겁니다.

히브리서 10장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진리를 알고 난 뒤 죄 지은 사람은 더 이상 죄 사함이 없다는 말은 마지막 계시의 기회가 어디서 끝나는고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끝나버립니다.

문선명이고 이만희고 필요 없어요.
예수님의 십자가로서 끝나 버렸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13절을 보면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되물어요.

내가 너희를 위해 십자가 졌느냐?
그에 대한 성도들의 답변이 어떠하기를 기대하겠습니까?
아니요라는 말을 해야지요.

그러면 게바는 무엇이며, 나는 무엇이고 아볼로는 뭐냐 이 말이죠.

쳐다 볼 내용을 쳐다봐야 하는데 쳐다보지 않을 내용을 가지고 믿음의 내용을 삼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다음 중 믿음의 내용은?

하늘나라 수능에 나옵니다.

1) 교회부흥
2) 선교사 파송
3) 교육관 짓기
4) 예수님의 피

몇 번입니까?

4번이 정답인데 1-3은 신앙의 대상이 아닌데 금요철야 때 무얼 위해서 기도합니까?

1,2,3번을 위해서 기도하는 거예요.

이것은 하나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교회가 아닙니다. 자기 야망이죠.
그것도 모지래가지고(모자라서) 4번까지-목사의 건강을 위해서 , 건강 달라고.

1-3번 다 십자가와 관계없습니다. 이걸 가지고 지난 시간 뭐라고 했습니까? 문화예요.

다른 말로 하면 전통이고, 관행이고, 관습이고 법이고 .
그런데 관행과 관습과 전통이 인간을 지옥 보내고 천국 보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까 안합니까?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죠?

하나님이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주님의 기준에서 인간의 종교적인 문화와 관행이 거기에 관련되어 있습니까?
안 되어 있죠?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관련되어 있지 보이는 것은 관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까(조금 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인간이 지옥 가는 것은 , 처벌받는 것은, 왜 인간이 처벌받는가?

지옥은 원래 인간이 가는 곳이 아니고 마귀가 가는 곳입니다.
인간은 마귀처벌에 합류하는 셈이 됩니다.

그리고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나라는 인간이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누구의 나라인고 하면 예수님의 나라입니다.

하늘나라에서 받는 모든 복과 영광은 우리의 행함과 관계없이 누구공로로 받는 겁니까?
예수님의 공로로, 우리는 덤으로, 옵션이에요. 끼는 겁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의 혼인자치 벌이는데 우리는 하객으로 참여한다는 이유 때문에 그 혼인잔치의 즐거움에 함께 참여하게 된 겁니다.

지옥이나 천국이나 우리 행복과 불행과 아무 상관없이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면 뱀과 여자의 후손의 싸움에서 벌어지는 결과잖아요. 최종 도달한 세계에 연결되는 겁니다.

이것도 레위기와 관련 없는 객소리가 되는데 이렇게 객소리해야 되는 이유가, 뭐든지 성경을 보게 되면 성경을 봐서 나에게 어떤 이득이 있느냐 자꾸 그런 식으로 접근 할 수밖에 없는 우리 내부적인, 장착되어 있는 법적인 그러한 의를 생산해내는 의도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래서 자꾸 주의하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에 의해 아브라함이 번제를 드렸을 때 이 번제 속에는 인간이 이 번제 자체, 언약을 모르기 때문에, 번제 자체를 왜곡되게 잘못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는 사태입니다.

조금 전에 이야기 했지만 언약과 언약이 투입되면 비로소 인간세계의 시간은 언약을 위한 시간으로 돌변합니다.

언약을 이해하는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등장하는 것이고, 언약맨이죠. 성도죠.
그렇지 않고 언약이 개입한 것도 모르고 자기중심의 역사를 펼치는 사람도 있을 거죠.

왜 둘 다 만드는가? 그 둘 다를 구별하고 분리하고 만들어내는 바탕에 쏟아오는 힘이 바로 역사의 주인공되시는 분이 밑에서 쪼개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어렵다 어렵다 하는 분이 있어서.
아사셀 염소가 나옵니다. 16장에서
아사셀 염소는 개소주와 상관없고.

이 염소는 마지막 대 속죄일 7월 10일의 하이라이트입니다.

하나님께서 유치하게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는데 유치한 이유가 뭔고 하면 애들에게 애들 방식으로 보여주시는 겁니다.

너의 주어진 그 저주와 부정과 죄가 멀리 사라진다는 것을 3D로 보여주는 겁니다.

두 손으로 안수해서 죄를 대신 짊어진 염소가 그냥 무작정 사라집니다.
광야 저쪽으로 사라져요.

사라지면 또 레위기에 대해서 오해하는 사람이 손을 탁탁 털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나의 죄가 영원히 갔구나.

이제는 죄가 없고 저주가 없는 우리끼리는 이제 행복한 하나님이 거룩한 백성이다라는 쪽으로 생각하신다면 그것도 오산입니다.

그래서 레위기16장 아사셀 설명해봐야. 어떤 주석동원하고 어떤 책들을 동원해 봐야 전부다 그런 식으로 오해합니다.

아사셀 염소가 있다는 것은 우리 죄를 지고 멀리 가버려, 죄는 이곳에 얼씬 거리지 말라고 추방하듯이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추방하듯이 그 염소의 뒤를 , 우리는 빠이빠이 하면서 보내야 됩니까? 아니면 따라가야 됩니까?

따라가야지요. 따라가야 된다고요.

따라가게 되면 뭘 느끼게 되느냐, 진짜 뭘 보느냐 하면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새롭게 갱신된 언약에 의하면 우리가 어떤 죄를 지어도 그 죄가 7월 10일 날 일괄적으로 사라지는 대속죄일에 의해 저 저주가 우리가 살고 있는 하나님의 거룩과 점점 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진다는 것을 목격하고 그렇게 점점 더 멀게 멀게 멀게 떨어져 놓는 그러한 힘이 와땀시로, 뭐 때문에, 누가 누가 그렇게 했는가를 보자는 겁니다. 누가 .

나는 거룩하다고 단정하면 또 자기중심의 자기 이득 중심의 레위기 해석밖에 안돼요.

그것 보지 말로 나를 버리고 누가 저쪽 죄와 죄 없는 상태로 누가 그렇게 나를 만들었는가를 보라는 말입니다. 누가.

누구겠어요?
그것은 바로 언약 갱신의 주인공이시죠.

언약갱신의 주인공 되면서 유일하게 그 산 밑에서 언약을 깨뜨리는 것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는데 누구죠?

모세 . 그 모세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새로 언약을 갱신해서 깨어진 돌판을 대신하는 돌판을 언약궤에 담고 그 집안, 모세 집안이 하나님의 언약 갱신의 주인공으로 등장함으로 말미암아 그때부터 제사장이, 사람이 더러운 인간도 깨끗하게 된다는 중심인물로 집중이 됩니다.

그렇다면 모든 제물과 일어나는 모든 세상의 일들이 항상 무엇을 우뚝 세우느냐 하면 역시 제사장이 최고야 라는 쪽으로 제물들이 집중이 되어요.

그 제물에 집중이 되면 다른 제물들과 균열이 생기고 차이가 생깁니다. 이것을 일반주석에서는 등급이라고 합니다. 등급이 있으니 등급이라고 하는 겁니다.

제물의 등급에서 항상 중심 되는 것은 대제사장, 속죄제도 그렇고. 대 제사장을 위한 제물의 등급이 가장 값나가는 등급, 값나가는 등급이라는 것은 그만큼 희생이 집중된다는 겁니다.

어렵다 하니 조금 전에 한 것 다시 해 봅시다.

언약이 갱신될 때 주께서 갱신합니다.  여권 잊어버릴 때 여권다시 만들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그렇지 않아요.

언약갱신은 뭐까지 감당해야 되는고 하면 지난번 언약을 위배해서 지은 죄의 책임성까지 저들에게 묻지도 아니하시고 새롭게 갱신하는 대상자된 모세와 그 사람들에게 묻는 거예요.

그러면 그 책임 때문에 치러야할 죄 값의 희행의 양이 줄어들겠어요 늘어나겠어요? 늘어나겠죠. 늘게 되니

희생이 점점 늘게 되니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으면 죄를 지을수록 그것을 죄로 지적하는 선지자들 같은 사람들은 점점 더 고난과 희생이 더 극해지고 참혹해 지는 겁니다.

그래서 그 모든 죄책이 어디에서 마감되는고 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뭐라고 합니까?
다 이루었다 했을 때에는 더 이상 봐줄레야 봐 줄 것은 없다.

아무리 유대인들이 율법을 암기하고 흠이 없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모르면 너희들은 영원한 저주, 영원한 지옥 가는 겁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6장에서 내 살과 내 피를 먹고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들은 무엇이 없다. 생명이 없느니라. 생명이 없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6:53-55

정리하면 레위기의 제사는 항상 집중, 모든 제사나, 모든 비중이 , 무게감이 제사장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초대에 있던 제사 번제와는 차이점입니다.

번제와 이 제사의 차이점은 무엇이 첨부됩니다.

속죄제라는 것이 첨부되어서 언약이 갱신되었으면 그 갱신되는 몫까지 하나님 쪽에서 담당하셔서 이 레위기 제사를 드리면서 맞아 우리가 지난번에 언약을 깨는 게 아니었어, 우리가 그렇게 우상을 섬기는 게 아니었어 황소 섬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렇게 시위하고 데모하고 궐기대회 하는 게 아니었어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궐기대회 한 이유가 누가 없기 때문에 그랬습니까?

모세가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 없다고 모세 정신을 잊어버린 정도니까 얼마나 유치합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유치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제사법을 아침저녁마다 상번제라 해서 제사를 드리게 하십니다.

상번제가 이것도 없는데서 또 추가 된 겁니다.

유치하게 매일같이 보라고. 거기에다가 상번제 드릴 때는 반드시 소제를 곁들여서 드림으로. 소제는 뭔가 하면 소제는 피가 없어요. 피가 없다는 말은 이미 이런 앞에 있는 피 있는 제사를 인하여 너희들이 피 안 흘려도 된다는 그러한, 너희들이 정상이 되었다는 그러한 결합의지.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안 놓치고 자꾸 너희들과 함께, 너희들이 있는 현 상태를 유지하려고 면면을 보이는 겁니다.

"네가 단위드릴 것은 이러하니라 매일 일 년 된 어린 양 두 마리니 한 어린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저녁때에 드릴 지며 한 어린 양에 고운 밀가루 에바 십분 일가 찧은 기름 힌의 사분 일을 더하고 또 전제로 포도주 힌의 사분 일을 더할지며 한 어린 양은 저녁때에 드리되 아침과 일반으로 소제와 전제를 그것과 함께 드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여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지니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을 인하여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출29:38-43

뭐 레위기를 봤어야 반응을 하지요.

화목제 끝이 식사 파티로 끝나요.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 전에 너희가 일상적으로 먹던 음식이 언약 파괴된 상태에서 먹었다면 너희가 먹으면 먹을수록 하나님의 저주를 유발시키는 것이라면 이제는 화목제 하게 되면,

레위기는 번제부터 나와 있지만 실제제사는 속죄제부터 해요. 속죄제 드리고, 번제 드리고 마지막으로 화목제 드림으로 말미암아, 화목제 단계로 오게 되면 더 이상 너희들의 일상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용납하기로 이미 하늘에서 결정 났다는 말이에요. 그게 화목제에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셨던, 로마서 3장에서 율법 외에 한 의를 주셨으니라고 하면서 율법 외에 한 의, 그러니까 율법의 저주를 마감시키는 제사로 이야기할 때 그게 무슨 제사라 하는고 하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화목제물로 주셨으니 라고 합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롬3:25,26

이 말은 더 이상 갱신할 것은 없고 갱신할 것 다했다, 마무리 다 지었다는 말입니다.

너희를 장악하고 있던 죄의 깊이는 예수님 때문에 드러날 대로 다 드러났다는 말입니다.

죄의 깊이가 뭐겠어요?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안돼요. 악마의 힘으로 돼는 거예요.

악마가 노리는 것이 뭡니까? 예수 당신이 하는 모든 업적은 다 헛짓이다 는 것입니다.

불교신자 입에서 나오죠. 예수라 하는 것은 사대성인 중에 한 사람이며, 예수가지고 그렇게 수많은 사람을 농락하지 말고, 그냥 평범하게 인도 와서 철학한 사람을 무슨 메시야냐?

예수가 뭐 똑똑하다고, 목수아들이 뭐 똑똑하다고 이야기 하느냐, 괜히 인도 가서 돌아다니다가 한수 배워가지고 고대 그리스 신화 갖고 본떠와 조작해 만들어 놓고.

그것도 십자가 질라 카다가(지려하다가) 살짝 빠지고 마리아와 결혼해서 프랑스 가서 혈통 이어 놓고, 또라이 같은 사도바울이 그것을 조작해서 어느 시골에서 늙어 은폐하고 있는 사람을 죽었다가 부활했다고 고함질러 놓고, 보여 달라고 하니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는 그 뜻에 의해 부활은 아무나 오나 이런 식으로 사기를 쳐가지고, 그 사기가 로마의 권력과 결탁해서 종교를 이데올로기로 만들어서 일반적인 토속종교를 버리고 기독교 종교로 세뇌시켜 기독교라는 것을 통치의 구조로 만들어 놓았다.

그게 서양의 교만과 우위를 장악했다. 그것이 자본주의를 증산해서, 자본주의 돈의 힘에 의해서 값비싼 에너지가 개발되고, 무기가 개발되어 그 무기로 동양의 사상을 묵사발 내 놓고.

그렇게 해 놓고 현재 21세기인데 여기에 무슨 예수가 의미 있느냐 이 말이죠.

이런 이야기를 쫓는 것이 많이 퍼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기독교가 좀 당황스러워 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문화 대 문화는 문화의 힘에 의해서, 강력한 문화에 의해서 박살났으면 좋겠어요.

화로다 망하게 되었구나 이렇게 성경에 나오니까 철학이나 불교에서는 미친놈이 환상 봤겠구나 해 가지고 뇌신경학자들이 그런 환상은 잉카제국의 마약 몇 봉 먹으면 그런 환상 다 보인다고 증명한다고 잉카 제국까지 찾아가서 마약 몇 봉 먹으면 화로다 망하게 되었구나가 이렇게 나온다고 합니다.

제럴드 에델만 교수는 뇌에 주사 자극주면 믿음소망 사랑이 다 튀어나온다고 해요.
두뇌에 자극주면.
사도바울이 다메섹으로 내려가다가 주여 누구십니까 하는 것은

자기 죄책감이 너무 심하다 보니, 사람을 너무 많이 죽이다 보니 자기가 자기 발에 미안스러워 해서, 뭐 하나 번개가 번쩍이니 주님인줄 알고 아 잘못되었습니다. 자신이 지레 겁을 내는 정신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이게 사람들에게 먹히는 순간부터 목사들도 이런 소리를 하게 됩니다.
왜 고객을 확보해야 하니 그렇습니다. 그래야 장사가 되니까 이게 교회에 퍼져 버려요.

이미 천주교가 그렇게 점령당했고 기독교가 따라 가요. 이런 이야기들은 지금 시대가 21세기인데 아직도 옛날 동화책 듣고 있느냐 이런 말입니다.

21세기인데 아직도 동화책 읽는 순진무구한 인간들, 그러니까 그 소리 듣고 짜증나서 창조과학회에서는 이게 성경이 과학적이라고 이렇게 증명을 하네요.

성경이 무슨 과학적입니까. 그거 증명한다고 젊은 아이들 잠시 교회에 몰려 와서 아 성경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구나! 한자(漢字)로 증명되는구나 ! 하고 몇 명 왔다가 삼성그룹에 취직되면 다 가버립니다. 주일날도 안 노는데 무슨 교회 다니겠어요. 그것이 오기고 신념이지 무슨 믿음입니까. 이건 애도 웃을 일입니다.

불교의 특징은 누가 그런 소리 즉, 그런 자신을 저주받을 자라고 저주 할 자가 없다는 것이 불교의 특징입니다. 우리들끼리지. 저주할 자가 없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저주받을 악마의 목소리라고 대변해 줄 , 지적할 자가 없는 것이 불교입니다.

기독교가 불교가 아니 되려면 바로 십자가 자체에서 나오는 은닉된 일, 전에 이야기 했지만 이것을 쓰면서도 사실은 이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숨어 있고 은닉한다. 아무리 탐색해도 발견되지 않는 것, 다만 보여 주어야 아는 십자가라는 은닉, 이것은 빼꼼히 열어 줄때에 그 십자가가 창세기에서 요한 계시록, 전 인류의 모든 역사를, 사실은 십자가가 발자국을 남겨 왔다는 것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등장하고 제사장은 모세 계열에 속한 제사장이 등장하게 되면 일반 백성들이 하는 제사, 일반백성들이 하나님 찾는 제사는 다 헛방이 됩니다. 왜 그런고 하면 이미 언약이 깨어진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성막 안에 있는 언약궤.

자꾸 반복해야 되니까?

지성소 안에 있는 언약궤 안에 있는 돌판은 이미 인간들은 언약을 깨버렸다는 거예요.

대표자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상대하지 않는다. 대표자가 그냥 대표할께요가 아니라

모든 철딱서니 없는 모든 인간들의 죄를 담당하는 조건하에 그 대표자와 연결해서 이 백성들은 하나님을, 그 자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대표자와 만남이 성사될 때 비로소 하나님으로부터 비로소 거룩한 백성으로 인정받는 식이 됩니다.

인간이 있고 신이 있다는 것은 일반 불교인들이나 혹은 철학자 같은 일반 사람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인간을 무엇으로 보시는고 하면 출생부터 처벌이니까 우회하십니다.

그런데 우회하는 이것이 점선입니다. 왜 점선이냐 이게 생명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인간 속에, 이미 아담 속에 선악요소가 있습니다. 선악과 생명나무가 창세기3장에서 만난다 못 만난다? 만나지 못하게 되어 있어요.

분리되게 되어 있어요. 분리되면서도  하나님의 언약은 이루어져야 하니까 숨어 있는 곳으로 우회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우회한 이 대목에 대해 무지하니 그럴 리 있을까 하는 거예요.

내가 신을 아는데 좋은 것은 다 집어넣고 훌륭한 것은 다 집어넣고 대단한 것은 다 집어넣고 수학의 무한대를 다 집어넣고, 인간의 상상 그 이상의 상상, 불교식으로 하면 참선할 수 있는, 인간의 의식 나는 없다 , 나는 없다. 나는 없다 , 나는 없다는 말을 해가면서도 그 신비의 신비, 그 모든 것을 신에다 다 집어넣어 놓았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문화 인류학에서 이야기하는 , 모든 신화에서 이야기하는 신을 다 주워 모아요. 이집트 신화, 폴리네시아 신화 , 뉴기니아 신화, 다 적어 놓고, 이것을 용광로에 녹여요.

녹여 버리면 여기엔 나이키, 아디다스가 없어요. 전부다 네 신 내 신 다 녹아버리면 나오는 것이 무엇인고 하면 관념의 신이 나옵니다. 보편적인 신이 나오지요. 모든 인류들이 다 알고 있는 통합적인 신 말입니다.

그래서 신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이며 우리는 서로 서로 협동하고 도와주는 것이 그 신의 자비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에게 다 있습니다. 이럴 때 일류에게 희망이 보인다는 겁니다.

이것을 노래한 사람이 누구에요.
마이클잭슨, 뒤로 가면서(문 워크). 위 아더 월드.
손을 흔들면서 했잖아요.

그런데 선악과를 먹은 자들에게 생명나무 길을 차단했다는 성경약속을 들이 대면 뭐라고 할까요? 용광로 속에 무엇이라도 집어 넣어버립니다. 성경책도 집어넣어 녹이고.

이것이 칸트 철학이에요.
최근에 누구 목사 설교를 들으면서 칸트 철학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어요.
김성수 목사라고. 딱 들어 보니 칸트 철학이에요.
칸트 철학은 무엇인고 하며 이것입니다.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께서 집어 넣어준 선악의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선해라.
나에게 행복이냐 이익이냐 따지지 말고 무조건 선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선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의 증거 자료는 무엇일까요 . 나는 익히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은 나에게 내가 선을 할 수 있는 능력 주셨고 나는 그 능력을 눈치로 알아서 성경을 참고해서 선을 행하면 우리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입니다.

이것이 개혁주의 중의 개혁주의, 개혁주의의 진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칸트 철학입니다.

이것을 송광사 중이 들으면 저것은 저 밑의 하 빠리(하수중의 하수) 단계에 있어요. 송광사 중에게는.
노자나 장자에 의하면 하이구 저거 언어라는 오류에 빠져 있구만이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저주 받아야 마땅하다고 예수님을 이야기하더라 하는 것은 그런 예수님을 증거하면, 십자가를 증거하는 것은, 거기에 전혀 그런 인식자체가 나올 수가 없어요.
그들이 그렇게 생각한 그것이 이방신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이방신입니다.

제사장이 중심이 되면, 제사장이 돋보이는 식의 구조로 성소가 펼쳐지는데, 그중에서 제단이 중심, 번제에서는 제단이 중심이지만 , 제단에 일곱 번 피를 뿌리고 하는데, 이제는 향단에다가 , 성소 안에 들어 있는 향단에 피를 일곱 번, 속죄제때 뿌리는데 뿌리는 경우가 두 가지 밖에 없어요. 어떤 경우인고 하면 제사장의 경우와 제사장 하나와 전체와 같은 레벨로 같이 맞바꾸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회중전체 입니다.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 그 범한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 곧 수송아지를 회막 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그 제사장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 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제사장은 또 그 피를 여호와 앞에 곧 회막 안 향단 뿔에 바르고 그 송아지의 피 전부를 회막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 레4:3-7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릴 지니 그것을 회막 앞으로 끌어다가..........기름부름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그 제사장이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레4:13,16,17

뭐냐 하면.
제물의 등급에서.
제사장 있고, 회중이 있고. 이것을 같이 취급해요. 취급하면서 , 같이 취급한다는 것은 똑 같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회중 전체를 당신이 좀 대신해라는 식이에요. 같이 취급한다는 것이 제사장이 하는 일은 제사장 단독이 아니라, 제사장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전체지파를 대신한 의미에서 같이 취급하는 것입니다.

그 밑에서는 족장(레4:22-26)이고, 개인-평민-(레4:27-31)이고 그래요.

족장이나 개인의 경우의 피는 옛날 번제단에, 갱신되기 전의 수준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만큼 제물이 어디에 집중 되는가 제사장에게 집중됩니다.

그러면 몇 시간 전에 이야기 했지만 계속해서 반복하고 싶은 것이 이게 어렵다 어렵다 해 가지고 제가 그림을 동원합니다.

중앙에 성막이 있죠. 성막에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언약이 갱신되어요.

하나님께서 출애굽 할 때 전체 열두 지파 상대하다가 그 인간들이 산 밑에서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언약 깨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시내산 올랐던 모세와 모세의 가족과 모세 집안과 단독적으로 상대하시게 되었습니다.

레위인들은 거기에 헌신해서 갑자기 성전과 봉사하는 계급으로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거룩의 효과가 주위로 주변으로 파급되는 겁니다. 찌지직....

이전에, 만약에 언약을 깨지 않았더라면 그냥 하나에요. 주위에 이방인입니다. 애굽이나 이방인들이 더럽고 자동적으로 이스라엘 지역은 거룩합니다.

출애굽기에서는

그런데 언약 깨어지면 이스라엘 내부자체에서 속됨과 거룩이 갈라집니다.

그 다윗이 왕 될 때에 누가 반대했습니까. 이방나라가 반대했습니까 필리핀 사람, 스웨덴 사람이 반대했습니까?
다윗이 왕될때 열지파가 반대했습니다.
그리고 그 찬성한 지파는 유다지파하고 베냐민 지파밖에 없어요. 베냐민 지파도 그냥 좋아서 찬성한 것이 아니고 사울이 다윗한때 깨어져서 복속된 겁니다.

몇 대 몇입니까. 10대 2니 줄이면 5대 1입니다. 제직회 한번 열까요. 표결에 들어갈까요.
자 다윗 가문에서 왕이 대대로 되기를 찬성하는 사람 찬성해 보세요.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열세입니다.

자 이번에는 우리는 옛날 출애굽할 때 그 당시가 가장 이상적인 단계라 보고 보고 그 단계를 유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지파 손들어 보세요. 열지 파. 옳지.

그것이 바로 사람들이 다윗의 존재를 자기하고 같은 레벨로 생각한 겁니다. 그 당시 다윗당시 그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는고 하면 우리에게 갱신된 모세 언약을 갖고 있으니 이것으로 넉넉하고 충분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입장에서는 율법을 갱신하니까 갱신한 그것을 또 언약정신을 모르고, 율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으리리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결국은 율법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율법이 아니고 자기 의를 드러내는 현재 자기 위치를 드러내는데 동원되고 말았어요.

거룩을 빙자한 속됨이 되는 겁니다.
거룩이라고 치장을 한 속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언약을 갱신해 버렸습니다.

어떻게 다윗언약에서 유다에 속한 사람 다윗을 일방적으로, 숨겨진 다윗을 사무엘이 가서 기름 부어서 왕으로 세웁니다. (삼상16:13)

기름 부었다는 말의 뜻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하나님의 거룩의 능력이 또 지평에, 대지에 균열을 일으켜서 전에 못 보던 우회된 새로운 거룩이 또 튀어 나와서 이만하면 되었다는 그 안일함을 또 쪼갭니다.

또 쪼개니까 쪼갰다고 난립니다. 누구야. 누가 열두 지파를 누가 쪼갰는데.
하나님께서 쪼개십니다.

그러나 저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뭐 나에게 언약을 주셨는데.

그것은 네 착각이야.

하나님께서 이렇게 언약을 주시는 것은 인간 안에 장착되어 있는 인간의 선악구조가 얼마나 주신 주님의 본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역사 위주로, 자기중심 위주로 왜곡되게 해석해 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면 어느 교회에서 복음을 전했다 말입니다.
교인들이 그 목사 복음 전하는 줄 알았어요. 목사도 복음 전했습니다.

둘 다 복음만 보았고 복음만 전하고. 그런데 목사가 엉뚱한 일로 인해 교인들과 싸웠다 말이죠. 그래서 교인들이 화가 나서 목사님 나가세요 하니까 목사가 하는 말이 아 복음만을 전하는데 왜 나보고 나가라고 하느냐 이 말이죠. 헐!.........

복음을 들어서 안다는 게 또는 내가 복음을 전하는 게 복음은 전하는 게 아니에요.
나는 쫓겨나도,
예수님의 피만 있으면 나는 쫓겨나던 뭐든 난 목사 안 해도 좋습니다 해야지요. 그게 복음 전하는 거예요.

그러며 그동안 복음 전하는 것이 뭐에요. 갑자기 이곳 분위기가 왜 그래요?

그동안 복음 전한게 뭐에요. 복음 갖고 밥 먹고 살자는 겁니다. 그게 감추어져 있었는데 이미 인간 역사를, 내부에서 장만하고 있는 예수님의 그것이 균열을 일으키는 겁니다.

균열이 일어나니 본색이 드러납니다. 그때 가짜 목사를 쫓아내는데 앞장선 장로는 교인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이제는 앞으로 당회장 목사를 모실 때는 장로님에게 일임합시다.

그래서 장로님이 어떤 복음 전하는 목사님을 모셨어요.
교인들이 에이 들어 보니 복음 아니네. 하니 그 목사를 초청했던 장로님이 화가 나는 거예요. 나는 여러분을 위해 복음 알아라고 초청했는데 왜 싫어합니까? 헐...!

그 장로는 뭡니까?
너무 현실감 나는 예를 들었어요. 제가.
그 장로는 뭡니까?
대장 쫓아내니 그다음 자신이 또 대장질하네요.

그렇다면 그 대장하는 장로 쫓아낸 그 집사에게 다음일 처리를 위임합니다.
교인들이 당부합니다. 집사님 이번에는 좀 겸손하게 하세요. 집사님 왈 네 겸손하게 하겠습니다.

이번에 목사님을 또 모셔 왔다. 설교 들으니 교인들이 싫어한다. 그러니 이번에는 그  집사님이 화를 냅니다. "아니 내가  겸손하게 복음만 전하는 목사님을 모셨는데 왜 또 그 목사를 싫어하나. 헐..........

자 이런 일의 연속이 곧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에요.

속고 속고,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자신에게 속고 속이고.
화로도 망하게 되었구나 이것이 몇 분 가지를 못해요. 이게 문제에요.
이사야가 하나님 앞에서 화로다 망하게되었구나.
입술 숯불을 입술에 대어달라는 소리 못했어요. 왜 일방적으로 하셨습니다.
주여 나를 지옥 보내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하니 숯불이 와서 입술에 댄 거잖아요.

그래서 얼마나 처분대로 했으면 하나님께서 이 이야기 전하려면 깨나 고생할 것인데 누구 갈사람 없나 하시니. 저요. 제가 가겠나이다 하죠. 그렇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 보았자 당신은 죽어.

아 죽고 뭐고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 졌고 네 죄가 사하여 졌느니라 하더라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 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 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 까 하노라" 사6:5-10

영광을 봤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이 사도라는 증거, 사도임을 유치하게 증거하는 방법이 뭐에요.

자신이 얻어맞는 거잖아요. 사도바울이 얻어맞는 것으로 악마의 하수인과 참된 사도를 이렇게 구분하면 그 뒤에 나오는 교회사에 나오는 거짓 사도들은 또 무엇을 흉내 내겠습니까. 누굴 흉내 내겠습니까?

사도바울 흉내 내지요.

그러니 세상 역사는 레위기가 알아서 다 해 줍니다.

세상의 역사라는 것은 있지만 나의 역사는 없어요. 전부다 밑에서 터져 나오는 주님의 역사가 약속대로 성경 말씀대로 다 드러나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까불던 예수님 신화다 , 성경책은 동화다 그렇게 까불던 그들도 죽을 때는 그들의 지혜도 혼미한 상태에 빠집니다.모든 게 풀의 꽃처럼 다 살라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리라. 말씀만 영원히 살아 있는 겁니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영영히 서리라" 사40:6-8

그래서 우리 몸은 흙입니다. 흙이지만 그냥 흙이 아니고 말씀에 입각해서 만들어진 흙이기 때문에, 이것을 치면 말씀이 우리가 잊었던 말씀이 탁탁 튀어 나옵니다.

네가 돈을 사랑했구나, 네가 먹는 것 입는 걸 족하게 여기지 않았구나 하나님과 재물을 네가 겸하여 섬겼구나 모든 성경 말씀이 다 튀어 나오지요.

그럴 때 제가 지켰습니다 하지 말고 내가 어겼습니다를 통해서 들어가 보면 거기서 누가 대기해 있습니까?

마지막 갱신되고 갱신되고 갱신되고 갱신된 최종적인 더 이상 갱신될 수 없는 마지막 언약이 뭡니까? 그것이 다 이루었다는 예수님의 피와 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은밀함입니다.

그 은밀한 곳에 접촉되기 위해서는 이미 주께서 우리에게 어떤 사건을 터지게 해 주셨을 때 우리 변명 쪽으로 나가지 말로 내가 당해도 싸다(마땅하다)라는 쪽으로 부인하는 쪽으로, 십자가 지는 쪽으로 인도함을 받았다는 말은 그 사람은 은밀한 쪽으로 이끌림을 받고 있는 삶이에요. 사도바울처럼 십자가의 길로 달려 가서 부활에 이르는 사람입니다.

제사 방법은 책에 나와 있으니 읽어 보셨을 것이고.

이제부터 지성소 중심에서 찌지직. 번개처럼 섬광이 퍼져 버리면 군데군데 분리와 성결이 일어납니다. 속한 것과 거룩한 것이 자꾸 갈라집니다. 그런 능력이.

레위기를 보면 섬유를 섞지 말로 씨 뿌릴 때 다른 종자를 섞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 생물학적으로 문제 있습니까? 문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이 너희를 성과 속으로 언약갱신의 차원에서 제대로 무엇이 속한 것이고 무엇이 거룩인가를 보여주는 그런 능력이 작용하는 땅위에서 땅의 능력으로 너는 비로소 무엇이 더러운 것이고 무엇이 영광된 것을 깨닫는 거룩한 민족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약에 이렇게 분리 되어 있지 않으면 거기 우리가 가는 곳이, 이 쪽은 지진 일어나 분리 되었는데 이쪽에 지진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불안한 지진지역보다 안정된 장소를 찾겠지요.

15년 전에 암에 걸려 죽음과 삶의 기로에 서 있을 때 기도원에서 기도해서 나았다고 했을 때, 나았다는 말로 인해 자신의 안정된 자리를 계속 유지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전에 갈라짐을 통해서 주님에게서 능력이 올라왔다는 것을 믿은 것이 아니고 그것을 약속으로 믿은 것이 아니고, 자신이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간증을 자신의 믿음의 내용으로 삼은 거예요.

집에서 세는 바가지 밖에서 안셀까?

그 세는 바가지 어디 가보았자. 브라질 가면 브라질 가서 교회세우고 호주가서 교회 세워보아야 한국에서 행세했던 고대로 하거든.

한국에서 순교당해서 왔다는 인간들이 그 인간들이 가보아야 마찬가지 짓을 또 하고 있다니까요. 거기서.

뭐냐 하면 결국은 전에 참 내 자리 , 교제 첫 번에 나오는 나의 자리, 선악과 자리가 생명나무 자리로 바뀐다고 했는데 자리가 자꾸 바꿔치기 하기 위해서는 자꾸 갈라져야 합니다.

그 갈라짐에서 오는 갈라지게 하시는 그분이 거룩한 분이고 이것을 믿음의 내용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을 믿음의 내용으로 삼습니까?
이젠 안 갈라지게 하겠지 이만하면 한숨 돌려도 되겠지.
이게 이스라엘이 역사가 망해버린 이유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왕들이 언제 까불었는고 하면.
아사 왕 참 재미있어요.
아사왕은 적군들이 오니까 그는 그냥 백성들과 기도합니다. 그런데 백만대군을 이겼습니다.

이기고 나니까 적국이 없다 도전하는 세력도 없다, 생활이 풍부하다고 하니 대번에 하나님을 무시합니다. 아람이라는 강대국을 의지한다고 선지가가 뭐라하니 그 선지자마저 옥에 가둡니다.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는 그는 하나님보다 의사를 의지했습니다. 이게 레위기에 둘러싸여 있는 인간의 본모습입니다.

솔로몬도 마찬가지고.

잘되니. 어떻게 됩니까. 이만하면 되었지 , 여유 있으니까 그 다음부터는 다른 나라를 이기려는 경쟁에 나섭니다.

그때 누가 들어갑니까?
예수님의 역사에서 도출된 선지자를 보내니 선지자를 죽여 버렸습니다.

솔로몬 왕이 시바여왕이 와서 칭찬하면서 모르는 게 없네. 수학, 영어 다 아네 이 지혜가 어디서 나왔습니까라고 물으니 솔로몬 왕이 하나님께로서 나왔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시바여왕이 아이고 대단하다 나 부럽다 해 가지고.
그때부터 본처가 300이고 후처가 700이라.

1000명이 오면서 무엇을 가지고 오겠어요?
자기 종교를 다 들고 와요.
항상 시작을 보지 말고 그 사람의 끝을 보세요.
그 끝이 분리 되어 있잖아요.

여로보암과 르호보암과 분리 되잖아요.
분리되었다면 르호보암은 정신 차려야지요.
만날 솔로몬, 중요한 것은 대출, 솔로몬 대출 믿다가 집안 갈라지는 것 몰라요. 이자 못 갚아 가지고.

솔로몬 카다가 시간 가버렸다. 15분 쉽시다.

2010-08-10 22:47:38 녹취 : 정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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