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순

주님이 원하시는 것

아빠와 함께 2023. 9. 3. 20:49

주님이 원하시는 것 230903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어느 한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가정에 오빠가 살고 있었고 여동생 둘이 살고 있었어요. 아버지 엄마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동생 둘이 그 큰 오빠를 마치 부모님처럼 생각하고 아버지처럼 생각해 가지고 세 남매가 살고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예수님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여기고 구원자로 여기고 철썩같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 정성을 다하고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섬기려고 애를 썼습니다. 하루도 예수님께서 혹시 피곤하시거나 쉴 데 없거든 우리 집에 와 쉬시면 주께서 천국 복음 전하는 데 우리가 보탬이 될 테니까 조금도 주저하지 마시고 어려워하지 마시고 그냥 푹 내 집이다 생각하시고 쉬시기 바랍니다. 하고 정성을 다해 줬습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세 남매가 부지런히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했어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맞을 준비하실 때 우리가 어떤 것을 가지고 주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 주님과의 관계를 맺을 수가 있느냐? 사람 대 사람의 관계에서는 뭐가 필요한지 상대가 뭐가 필요한지를 알아서 주면 되죠. 잠깐남? 잠깐남, 장난감을 말합니다. 애들한테 장난감 준비하면 애들이 좋아하고 먹을 거 준비하면 애들도 좋아하지요.

만약에 어떤 집에 가면서 그 집에 부인이 있는데 백화점 옷이라 해가지고 한 100만 원짜리 옷을 사 들고 가면 내가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그리고 어떤 남자가 있다면 전에 보니까 그 집에 차가 좀 이렇게 연식이 좀 됐던데 새 차 산타페 뽑아서 이거 작은 선물이지만 산타페 하나 사가지고 왔습니다. 하면 아주 좋아할 거예요.

그래서 인간 대 인간관계에서는 니 좋아하는 거 내 좋아하는 건 니 좋아할 거고, 니 좋아하는 거 내 좋아할 거니까 우리 관계를 돈독히 더욱더 견고하게 하려면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서로에게 기쁨이 되는 그런 관계를 맺는 것이 인간관계입니다. 그래서 나사로 지역도 예수님께서 예수님이 뭘 원할까 할 때 자기가 뭘 했으면 가장 좋아하는가를 생각해 보면서 예수님께 정성을 다해줬어요. 예수님께서는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실 거야. 왜? 본인이 맛있는 음식 좋아하니까. 예수님께서 편히 쉬는 걸 좋아할 거야. 왜? 자기가 피곤할 때 눕고 싶으니까.

그런 것을 해가지고 청소도 하고 이렇게 쭉 했다 이 말이죠. 그것을 누가 하느냐 하면은 오빠도 했지만 두 자매가 언니 이름은 마르다 동생 이름은 마리아. 마르다 마리아. 마르다는 집안일을 분주하면서 예수님 일행을 맛있게 배부르게 대접하기 위해서 열심히 요리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동생한테 많이 시켰겠지요. 잡채 하는데 이것 좀 이렇게 좀 썰고 당근 물에 담가놓고 뭐 이렇게 좀 시켜놓고 나도 바빠. 우리 같이 협조하자. 해가지고 많이 도와줬을 거예요. 예수님 기쁘고 맛있는 거 해드리기 위해서. 그건 자기 기쁨인 동시에 예수님의 기쁨이 된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이 그림을 한번 보세요. 지금 마르다는 쓸고 닦고 청소하고 분주하고 음식 준비하고 여기 차 준비하고 하는데 마리아는 싸가지 없게 이렇게 턱 괴면서 꼼짝도 안 하고 예수님 발 앞에 제자들과 함께 발 앞에 딱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마르다 입장이 마르다 마음이 한번 돼보세요.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서 땀 뻘뻘 찔찔 흘리면서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는데 같은 형제지간 자매지간이라 하는 마리아는 언니가 이렇게 고생하면서 지는 가만히 놀고 있으니까 이 마음은 어떤 마음이겠어요? 고생 니가 해라. 고생 니가 해라. 이래 되는 거예요.

나 안 할래. 이래 된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께서는 이 동생도 보고 누구를 보냐 하면 언니도 볼 거예요. 열심히 일하는 언니도 보지요. 마르다가 생각하기를 예수님 보기에 동생을 하는 꼴을 보고 내가 하는 이 고생하는 일을 같이 보면서 예수님도 가만히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마르다가 누가 미웠냐 하면 동생도 밉지만 아무 소리 안 하고 있는 예수님이 더 미워. 예수님.

그래서 마르다는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이 고생하는 이유와 목적이 뭐예요? 예수님한테 편하게 하려고 했잖아요. 그 마음을 사람들은 못 알아줘도 누구 마음은 알아줘야 돼요? 내 마음을 예수님의 마음이 알아줘야 되거든요. 속으로 막 이럴 거예요. 씩씩거리면서 속으로. 예수님 내 마음 알아? 예수님 내 마음 알아? 썰고 요리하면서 예수님 내 맘 알아? 프라이 훅 하면서 예수님이 내 마음 알아요? 하고 불만 내면서 말이죠. 예수님 내 맘 알아요?

참다 참다 못해 도저히 못 참아서 마르다가 예수님한테 이야기했어요. “예수님. 그 앞에 그 싸가지 없는 내 동생 있지요? 언니가 지금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니까 좀 도와주라고 하세요.”라고 예수님한테 이야기를 했어요. 하니까 예수님께서 의외의 발언을 하십니다. 예상 못한 이야기를 했어요. “너는 너 마르다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니가 알고 있냐?” 니는 지금 나를 대하기를 사람 대하듯이 일반 사람 대하듯이 대한 거예요. 내게 기쁜 것도 남에게 기쁠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이 기쁜 것이, 예수님이 기쁜 것과 내가 기쁜 것이 차이 난다는 것을 마르다가 사전에 생각을 못한 거예요. 이게 분명히 차이가 난다는 생각을 못한 거예요.

아마 내 좋아하는 거 주님 좋아하고, 내 싫어하는 건 주님 싫어할걸 그렇게 생각한 겁니다. 그게 바로 마르다의 잘못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마르다가 자기한테 이야기하기를 기다렸어요. 왜? 꾸짖기 위해서. 싸가지 없는 동생을 꾸짖는 게 아니고 열심히 나를 봉사하라는 그 갸륵한 마음 그 순결한 마음. 순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 마음. 인간들 보기에 그렇게 희생으로 보이는 그 마음이 예수님을 도리어 섭섭하게 한 거예요. “니가 내 마음을 알아? 내 뜻을 아냐고?” 자매가 마르다 둘이잖아요. 예수님의 마음이 항상 둘로 갈라져 있다는 사실, 시선을 양쪽으로 갈라서 보고 있다는 생각을 우리가 가져야 돼요. 한쪽은 지옥 보내는 사람 하나는 천국 보는 사람으로 갈라지게 보는데 지금 마리아는 마리아의 특징은 뭐냐 하면은 마리아가 언니 고생하는 걸 모르는 게 아닙니다. 이거 모르면 이상한 아이죠. 알아요. 아는데 마리아의 생각에는 예수님께서 맛있는 음식 대접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 그것보다 다른 차이 나는 다른 것을 갖고 있을 것이다, 라는 것을 마리아가 알고 예수님 앞에 말씀 듣는 데 열중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예상이 맞았어요. 마리아의 예상이. 예수님은 언니가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죠. 왔다 갔다 하면서 자꾸 눈치를 주죠. 내가 열심히 일한다는 거. 일부러 그릇 막 깨봤다가 “왜 음식이 잘 안 익지? 이놈아!” 하면서 막 갑자기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근처 와가지고 털면서 청소하는 티를 내면서 이런 식으로 할 때 마리아는 꼼짝도 안 했어요. 언니는 예수님이 뭘 원하는지를 모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마땅히 예수님이 같이 좋아해야 한다는 그 어떤 압박 강요 같은 게 있는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님도 좋아해야 된다는 인간이 감히 하나님께 압력을 가하는 그런 몸짓을 하고 있는 거예요. 몸짓을.

진짜 마리아는 예수님이 원하는 것을 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과 마리아 사이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던 거예요. 누가 변호사냐? 마리아 변호사로 예수님이 나선 거예요. 마르다가 동생 보고 빨리 좀 언니 일하는데 손 모자라니까 빨리 도와주라 할 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마르다야. 니가 하는 일보다 더 좋은 일을 네 동생이 지금 하고 있다. 나는 음식을 먹고 대접받는 걸 원하는 게 아니고 내 말씀 속에 들어오는 것을 나는 원한다. 이 마리아는 지금 정신없어. 주의 말씀 속에 빠져 있어서.” 빠져 있다고요. 그까짓 짜장면 좀 이렇게 부풀면 라면 부풀면 어때요?

그러니까 이 말은 뭐냐? 말씀이 주는 그 기쁨은 세상에 어떤 슬픔을 전부 다 커버한다는 거예요. 이 땅에 나왔던 모든 아픔이라든지 나의 괴로움도 말씀이 탁 와버리면 그걸 다 덮고도 넉넉하게 기쁨이 샘솟는 그 말씀을 예수님이 하고 있는데 지금 마르다는 그걸 놓치고 있는 거예요. 씩씩거리면서.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해서 어떤 약간의 칭찬 같은 것을 은근히 노리면서 이거는 내 기쁨을 내가 챙기겠다는 식밖에 안 되잖아요.

주님은 인간이 생각도 못한 다른 초월적인 기쁨과 감사를 주려고 말씀 줬는데 인간은 자기 행위에 의한 기쁨을 자기가 획득해서 그것 가지고 자기 잘난 맛에 기쁨으로 살려는 그런 인생을 사는 게 마르다예요. 나중에 오빠 죽고 난 뒤에 둘 다 똑같이 됐지만. 둘 다 찡찡거리면서 했지만. 그러나 이 장면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바로 마르다가 아닌 마리아가 원하는 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님께서 일을 그렇게 이벤트를 벌이신 거예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의 기쁨 슬픔을 내 힘으로 극복하려고 하지 말고 차라리 우리 자신을 말씀 속에서 잃어버리는 것이 진정한 복인 것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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