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230827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착한 사마리아인. 여기 세상에 착한 사람이 다 있대요. 그런 사람 잘 없는데 착한 사마라인이 어떻게 착한지,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강도떼가 나타났어요. 강도라 하는 것은 무기를 들고 사람을 빼앗는 것을 강도라고 합니다. 무기가 없는 것을 도둑이라고 이야기해요. 도둑이나 강도나 나쁜 건 마찬가지죠. 그 사람이 나중에 어떻게 아프냐 그런 건 관심도 없고 무조건 남의 것을 빼앗는 겁니다. 나쁘죠. 이 나쁜 사람이 이 세상에 있어요. 그러니까 이 세상은 천국이 아니에요. 나쁜 사람이 활개 치니깐 이 세상은 뭐냐? 바로 지옥입니다.
그렇게 보고 싶은 지옥, 우리가 지금 태어나면서부터 다 지금 경험하고 있어요. 주변에 보면 주변에 보면 전부 다 수상한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중에서 사람들은 착한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가지고 어떤 소위 자기가 착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한테 물어봤어요. “예수님. 얼마나 착해야 천국 갑니까?”라고 물었어요. 얼마나 착해야. 그렇게 하니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법에 뭐라고 돼 있느냐?” 물으니까 “하나님의 법에는 이웃을 네 몸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잘 아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면 될 거 아니냐?” 하니까 “내가 그 이웃을 사랑하려고 하는데 그 이웃이 누굽니까? 몇 미터 내를 이웃이라 해야 됩니까? 옆집입니까? 옆집 옆집을 이웃으로 해야 됩니까? 도대체 이웃을 누가 이웃이라고 합니까?”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 율법사가 자기가 옳게 보이기 위해서 내가 이 정도로 말씀에 관심 있고 지키려고 나름 애를 쓰고 있습니다. 자기 잘난 척 지 자랑하려고 이제 그런 이야기를 했지요. 그렇게 하니까 “니가 지금 질문이 뭐냐” “내 이웃이 누굽니까?” “알아서 뭐 할 건데?” “이웃을 사랑하려고요. 이웃만 알면 사랑하라고요. 그 이웃이 누구냐 그걸 몰라서 지금 그게 내가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 그게 애매합니다.” 선생님께서 이웃이 누구냐를 딱 이야기해주면 아 내가 이웃 사랑했구나 아직 이웃 사랑 안 했구나. 안 했으면 내가 지켜야지. 그래서 천국 가야지. 이런 계산을 해가지고 이웃이 누구냐를 물었던 거예요.
그렇게 하니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이웃이라 하는 것은 내가 이웃이라고 골라잡는 게 아니고 이웃이 나를 이웃으로 해줄 때 이웃이 된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애들은 듣기가 참 어렵죠. 7 일은 7, 7 이는 14, 이런 건 쉬운데 7 사는 28 이런 건 쉬운데, 내가 이웃을 정하는 게 아니고 이웃이 와서 나 이웃이라고 해줘 라고 요구를 할 때 그때 도와주면 된다는 거예요. 이웃이 내가 이웃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이웃이 성큼 성큼 성큼 와가지고 성큼 성큼 오는 거예요. 귀신처럼 복도의 귀신처럼 와가지고 나 이웃이니까 좀 도와줘. 이렇게 온다는 거예요. 그때 니가 이웃 안 찾아가도 도와주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웃 사랑 한 걸로 쳐주겠다. 이렇게 이야기한 겁니다.
그리고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났는데 얻어터지고 돈 다 빼앗겼다. 그런데 그 강도는 너무 맞아가지고 스스로 일어설 그 여력이 없어요. 너무 맞아서 너무 맞아가지고. 지가 서서 병원에 가야지 이러면 되는데 너무 맞아가지고 죽는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째깍째깍 시간은 가는데 죽는 시간이 있어요. 그러니까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뭐 이런 이야기밖에 못하겠죠. 근데 아니 그 소리도 안 했어요. 그냥 너무 맞아가지고 목소리도 안 나왔어요.
그냥 죽어가고 있을 때에 그때 누가 지나갔느냐 하면은 교회에서 예배드린다는 목사님이 지나가요. 요새 말하면 목사님이 지나가는 거예요. 목사님이 지나가는데 지나가면서 예배 시간 다 됐으니까 빨리 발걸음을 같이 해요. 그런데 보니까 봤어요. 강도 만난 사람이 옆에 자빠져 있는 걸 봤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자기가 그 예배드리는 일을 내가 아니면 예배를 못 드리니까 여러 사람이 여러 사람이 시간 낭비하니까 후다닥 많이 아프겠네. 곧 죽겠네. 안녕히 주세요. 그냥 가버린 거예요.
두 번째 그 예배할 때 집사님이 필요하거든요. 집사님 또 좀 허겁지겁 지각했는지 허겁지겁 와가지고 보니까 강도 만난 사람이 죽어 있다 이 말이죠. 아이고 죽어 있구나. 아이고 안됐네. 많이 안 됐어. 만이 안 됐어. 갑니다 하고 그냥 가버렸어요. 세 번째. 세 번째 사람은 뭐냐 하면 그 당시에 하나님 믿는 사람한테 이게 씨가 더러운 씨로 태어나 가지고 안 믿는 족보에 태어나 가지고 무시당하는 이건 저주 받아 지옥이나 가라. 그렇게 무시당하는 사람이 가는데 그 사람은 어떤 종교도 없어요. 그냥 아무 종교가 없어요. 그냥 예배 참석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가는데 그냥 아픈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은 아프네. 아프구나. 그러면 왜 아플까? 내가 도와주면 되겠네. 그런 쉬운 일을 그렇게 간단한 일을. “아저씨 도와드릴게요.” 아저씨가 도와줄라 하니깐 나중에 더 아프네. 그럼 돈 떨어지네. “돈 드릴게요.” 돈 들이고 아프다고 치료해 주고 잘 데 없겠네. 그러니까 사마리아 사람인데 이름이. 그 사마리아 사람은 그 아픈 사람하고 자기하고 일체 같은 사람이라고 본 거예요. 같은 사람.
강도 만난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니라 내가 강도 만났다고 치고 내가 돈 없다고 치고 내가 죽어간다고 칠 때에 누가 나의 이웃이 되겠느냐? 돈도 없어. 아프게만 해. 그럼 누가 이웃이 되겠어요? 무상으로 뭐든지 해주는 분. 그게 이웃이 되겠죠. 그래서 이웃은 어떤 사람이 나의 이웃이 되느냐 하면 나는 그쪽에 해줄 것 아무것도 없고 그쪽은 나에게 모든 것을 다 베풀어 주는 사람. 마치 엄마와 딸 같은 거예요. 엄마와 딸. 니 하루 얼마 버노? 니 밥벌이 니가 돈 벌어서 돈벌어 하나? 공부했다고 500원 받는 게 이거 밥벌이냐?
그러니까 이게 뭐냐 하면은 그냥 애는요 엄마가 고기 구워주면 고기 먹고 밥해 주면 밥 먹고 멸치볶음 해주면 멸치 볶음 먹고 그냥 모든 것이 어떤가 하면 엄마를 통해서 나한테 오는 거예요. 엄마는 좋은 이웃이에요. 이웃 누구예요? 좋은 엄마가 좋은 이웃이에요. 근데 엄마가 어느 날 잘 있거라 하고 편지 하나 쓰고, 잘 있거라. 딸아. 엄마는 너를 더 이상 키울 수 없단다. 혼자서 김밥 먹든지 해라 하고 가버리면 그거는 나쁜 엄마가 되겠죠. 나쁜 이웃이 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이 이야기를 쭉 해놓고 “어이! 아저씨. 착하려고 애쓰는 율법사 아저씨! 이제 이웃이 누군줄 알았습니까?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내 대신 다 치른 분이 바로 그분이 바로 우리가 이웃 관계가 되는 겁니다.”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은 그 말씀하시고 예수님이 사람에게 얻어맞는 강도한테 얻어맞는 그러한 피해자 입장이 돼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 앞에서는 예수님에게 이웃이 있었어요, 없었어요? 이웃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그 말씀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은데 정작 이웃을 알려주고 이웃으로 오신 사람 예수님에 대해서는 제자들도 지 살기 바빠서 다 도망쳐버린 거예요. 그 목사나 집사는 다 도망쳐버린 거예요. 예수님 혼자 놔두고 다 도망가 버린 거예요.
그 누구도 이웃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전부 다 지는 자기 실력대로 살아갈 뿐이에요. 이 땅에 이웃은 그 이웃은 없었습니다. 이웃은 하늘에서 내려와야 돼요. 우리의 이웃은. 그리고 이웃이 내려와도 우리의 이웃인 줄 몰라요. 우리가 망가지기 전에.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우리에게 성령이 오게 되게 되면 나는 그동안 얻어먹는 식으로 사는 것이 이게 천국이고 이게 정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내 마음을 내가 관리하면 안 돼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다음에 천국이 너의 것이다. 얻어먹고 사는 것이 바로 내 자식이고 내 딸이고 내 아들이다 이 말이죠.
이제 감이 오지요? 우리는 얻어먹고 살아야 돼요. 지금까지 얻어먹었고 또 앞으로 염치없게 뻔뻔스럽게 또 얻어먹을 거예요. 그것이 뭐냐? 예수님이 홀로 해내시는 이웃 사랑의 혜택과 덕을 우리가 그 결과물로 얻어먹고 사는 거예요. 마치 엄마와 딸처럼 엄마와 아들처럼 우리는 우리 아버지가 주시는 것을 키워지는 아들로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께서 주신 것이 그렇게 많은데 우리는 내 식대로 내 것을 원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 모든 영광과 감사를 기쁨을, 고마움을 주께 돌릴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