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17-20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고는 우리가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우리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무엇이 이익이냐 하는 점이겠지요. 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라는 말씀을 예수님이 하셨는데, 우리가 이 말을 들으면서 어떤 변화를 기대합니까? 이 말씀에 대한 설교를 듣는다든지 아니면 이 말씀을 외우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약간의 수입이라도 가져다 주어다 주는 변화를 은근히 희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의 취지는 그런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원하는 변화는 소득 증대로 이어지는 변화가 아니라 우리 마음이 변하는 변화입니다. 우리 마음이 달라지기를 원하십니다. 즉 하나님을 대하든, 예수님의 말씀을 대하든, 항상 그것으로 인해 재정적인 수익을 염두에 두고 있는 그 마음 자체가 달라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 20절에 나와 있는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를 염두에 두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주기도문을 달달 외우면 돈이 생깁니까? 아니지요? 그렇다면 왜 그 말씀을 알아야 합니까? 주기도문은 마음의 변화와 관련 있고 더 나아가서 천국으로의 구원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즉 구원이란 돈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달라짐'으로 결정되는 겁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러한 '마음의 달라짐'으로 인해서 생길 소득의 증대를 또 기대하는 마음을 여전히 가질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은 이 기준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마음이 변화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저주받아 지옥에 들어갑니다. 마음이 변화되지 않은채 천국 간 사람은 한 분도 계시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성도가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한 번 엿보기로 하지요. 시편 119편 140-144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성도가 어떤 마음을 지니고 있는가를 살피시기 바랍니다. "주의 말씀이 심히 정미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주의 증거는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여기에 보면, 도대체 주의 말씀이 뭐기에 멸시를 당하고 환란이 겹쳐도 계속 즐거움이 된단 말입니까! 그것은 주의 증거가 나로 깨닫게 하고 나를 살게하기 때문이기에 즐겁다는 겁니다. 마음이 변화된 사람의 눈으로 보면, '산다와 죽는다'가 소득의 풍부함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변화로 결정됨을 압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온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장례식장에 본인이 참석한 셈이 됩니다. 그냥 남이 죽은 장례식에 조의금이나 내고 국밥이나 하나 먹고 그 자리를 털고 나갈려고 온 것이 아니라 나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겁니다. 과연 우리 마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심판의 기준 앞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철저한 율법'입니다. 과연 어느 정도로 철저할까요? 제가 태양을 가지고 예를 들겠습니다. 태양이 멀리 있으니 우리는 그냥 무심코 따스한 햇살의 덩어리만 알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의 이 몸을 가지고 태양 가까이에 다가간다고 봅시다. 아니, 아예 태양속으로 들어간다고 봅시다. 그러면 우리의 몸은 여지없이 타버릴 것입니다. 우리의 가진 재산이나 한달 소득과 전혀 상관없이 말입니다. 바로 그 태양같은 역할하는 것이 온전한 율법이요 철저한 율법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율법을 가지고 우리 곁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 율법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쩌란 말입니까? 이 완전하고 철저한 율법을 모두 지켜내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왜 예수님은 이처럼 율법을 철저히 하고자 하는 겁니까? 그것은 그 당시 사람이나 오늘날 우리들이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안일하고 무시하는 태도로 임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사고 방식이요 마음 가짐입니다. 이들은 전혀 마음이 변화되지 않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변화되지 않는 마음 상태에서 나름대로 율법 지키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자기들 생각에 의로울 수만 있다면 가능한 모든 시도를 다 시도해 봅니다. 과연 그렇게해서 그들이 천국에 들어가는데 성공할까요?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못을 박아버립니다. 20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천국 못 들어감'을 선언해 버립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일상적인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온 종일 오로지 율법 연구과 그것을 실천에 옮기고 지켜내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입니다. 즉 인간은 결코 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보다 더 헌신적으로 율법지키기에 매진할 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선언에 의하면 이러한 대단한 실천주의자들도 천국에 못들어간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이 지옥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과연 천국갈 대책이 없다는 말입니까?
자,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율법대로 우리를 심판하시려고 찾아오신 일말고 또 다른 일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온전한 율법을 율법대로 다 온전히 이루려고 오신 분으로서의 예수님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율법은 그냥 묵힐 대상은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그 율법을 온전히 이루려고 하시는 겁니다. 이 말은 예수님 이외에 그 어느 누구도 율법을 달성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예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마음의 변화를 가져야 할까요? 그것은 죄인을 위해 죽으시는 예수님의 희생 마저도 온전한 율법 완성에 해당됨을 알고 그 사랑에 탐복해야 한다는 겁니다. 세상 지혜는 이런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를 알 길이 없습니다. 따라서 성도가 되었으면 이 세상 지혜만이 통하는 실세상에서 실컷 고생해도 괜찮은겁니다. 예수님도 말씀했듯이 생명이란 수많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그런 길에 있지 않습니다. 마음이 일단 달라졌다면 그 어떤 쓰디쓴 고생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더 이상 '실패한 인생'이라는 있을 수 없는 겁니다. 겨자처럼 쓴 고생과 낭패가 찾아온다할지라도 도리어 복음 때문에 즐거워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저는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