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훈

8강 붙이시는 전쟁

아빠와 함께 2022. 1. 14. 11:35

8강
집에 초대받지 않은 어떤 사람이 집안 식구를 속이고 들어 왔을 때 현재 있는 식구들이 자비를 베풀어 먹고 살기 위해 얼마나 애썼으면 신분까지 속이고 들어왔겠느냐고 하면서 앞으로 그런 거짓말 말라고 나무라고 친구로 받아준다. 여기서 유명한 문장이 나온다.  머리 검은 짐승은 받아주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근본이 없는 것들은 받아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어디서 상고출신이 재벌 삼세와 결혼하는가? 뿌리도 근본도 없는 것들이 복수하려고. 어디서 아기 낳아 재벌을 뒤 엎으려고 하는가? 수애 나오는 드라마.

기브온을 불쌍하다. 얼마나 살고 싶어서 속였겠는가? 우리가 하나님께 묻지 않고 경솔하게 했다마는. 하나님께 맹세했기에 받아 줄게.

맹세라는 것은 주님이 주인공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친구 왔는데 내 집에 들어오면 아버지에게 통치를 받아야 되는 것처럼 아버지에게 물어 보지 않고 경솔하게 받아들였더라도 이 땅은 언약대로 통치하기에 통치 능력이 계속 유지되기를 기대하고 원했던 것이다.

기브온이 들어옴으로, 기브온이 배신했다는 소리를 듣고 주변국이 연합군을 결성해 쳐들어온다. 여호수아 10:5 다섯 왕이 기브온을 대적하여 싸울 때에. 이제 기브온은 이스라엘 속에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스라엘이 불쌍하다고 도와주었는데 나중에 보니 일진이라. 기브온을 공격하러 왔을 때 받아들인 이스라엘이 지켜 준다. 이 전쟁에 누구도 협조하는가. 협조 정도가 아니다. 자연현상도 여기에 동원된다.

르우벤 갓 므나셋 반지파가 먼저 나선다. 여호수아 4:12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가 그들에게 이른 것같이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건너갔으니

이들이 선봉에 섰다. 땅은 너희들이 먼저 전쟁에 나서서 이 전쟁이 끝나면 그제서야 이 땅을 얻을 것이다. 땅에서 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붙이시는 전쟁이 더 우선이 되어야 된다. 천국 탐내지 말고 주께서 붙이시는 영적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주의 뜻이다.

다시 여호수아 10장을 와서 의도적으로 기브온과 주변 다섯 나라와의 전쟁을 통해 하나님께서 개입하신다.

여호수아 10:12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하매

이것이 중부전쟁에서 남부전쟁으로 가는 것이다. 막게다에 다섯 왕이 동굴에 숨어 있다(수 10:17). 벧호론, 게셀, 막게다 이 경로가 아모리 다섯 왕이 기브온을 공격하면서 전투 경로로 나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전재에 대해서 인정하시고 붙여주셨다.

여호수아 10:12절에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붙이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하매
여호수아 10:13절
태양이 머물고 달이 그치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도록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기록되기를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 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수아 10:14절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이처럼 여호와께서 붙여주셨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싸우실 때에 태양이 동원된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도무지 설명이 안 된다. 물리적으로 산소 원자가 헬륨으로 전환되면서 에너지가 나와 에너지를 활용해서 계속 불타는 것이 태양이다. 여기에 여호수아가 들어가지 않는다. 태양의 참전. 이 말이 됩니까? 태양이 왜 인간 사는데 끼어드는가? 남들 보기에 인간들 전쟁인데 이것은 여호와의 전쟁이다. 여호와는 언약의 하나님이다. 여호와는 언약을 앞장세워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이다. 궁창에 있는 해 달 별이 하나님을 위한 군대가 되고 소속 부대원이 된다.

정말 신기한 일이지요?
태양과 별과 달이 소속부대원이 된다는 것은 언약 안에 천지창조를 하신 중심되신 분이 여기 계신다. 태양 바다 같은 것을 천지라 한다. 하늘과 땅이라면 여기 계신 분을 천지의 주재라고 이야기한다. 천지의 주인공. 이것이 다니엘 5:23절에 나온다. 막장전쟁이다. 끝까지 가는 전쟁이다. 이 세상 나라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천지의 주재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 나라를 멸망시키느냐가 다니엘 9장에 나온다.

다니엘 9장에서 전쟁하시는 이유가 너희들이 건들지 말아야 할 자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이 하늘에 있는 줄 알았는데 땅 이스라엘과 연결되어 있다. 땅 이스라엘을 건드리면 모든 피조물이 오 분 대기조, 비상대기조에 들어간다.

골로새서 1:16-17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만물의 핵심 중심축이 있다. 구름타고 오시는 인자 같은 분, 땅에 오시면 인자가 된다. 땅에 온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서 함께 오르셨다. 그 사이에 천지가 다 끼어 있다. 하늘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천지를 창조하셨다.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성전이 있다. 이스라엘을 건드린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성전을 건드렸기에 위에 있는 하나님이 반응을 나타낼 수밖에 없다. 해 동원해라.

여호수아가 기도한 것은 하나님은 언약대로 하기 때문에 이번 전쟁에도 언약요소를, 언약시스템을 가동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한다. 붙이시는 전쟁은 언약이 현존하고 있고 언약대로 드러내는 것에 이스라엘이 가담되었음을 하나님이 나타내 주옵소서 라고 할 때 태양까지 동원되었다. 홍해, 요단강 갈라졌을 때 언약이 동원되었다. 하나님이 이름을 하나님이 보호하신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름을 버리면 보호받지 못한다. 다른 신들을 섬기면 보호받지 못한다. 너희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만든 나라이기에 내 이름을 버리면 보호대상이 아니다. 하나님 날 지켜주옵소서라고 하면 네가 뭔데가 된다.

전쟁 중이다. 전쟁의 성과는 여호와 이름의 승리로 끝나게 되어 있다. 붙여주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평소에 여호수아가 심심풀이로 태양에게 오 분만 멈춰달라면 멈추는가? 여호수아 10:12절에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물러라. 달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여호와께서 일하실 때, 대통령이 지나가면 신호등을 조절한다. 태양, 달, 이스라엘 피조물들이 같은 시스템의 직원이다. 같은 처지에 있다. 세상의 움직임과 성도의 움직임이 함께 돌아간다. 누구를 위하여? 성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그래서 세상 모든 것은 주의 것이다. 세상은 성도를 위해 있고. 세상은 자재과 직원들을 위해, 직원들은 회사를 위해, 사장을 위해, 회장님을 위해 있다. 세상은 층층이 구조적으로 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택한 백성만 건질 뿐이다. 여호수아 전쟁을 보면서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다는 것을 볼 때 수월하게 되는 것 같지만 현장에서 여호수아가 느끼는 자기를 믿지 않아야 된다는 갈등,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여기서 오는 갈등, 이것은 정말 이스라엘의 능력,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다. 태양과 달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은 배포가 센 건지 미친 짓인지 상상이 안 간다. 여호수아의 노림수가 아님을 이스라엘에게 두 번 다시 이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연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해 있기 때문이다.

붙이시는 전쟁이 끝났다. 전쟁 선봉장으로 르우벤, 갓, 므나셋 반지파가 나섰다.
여호수아 22장에서 이들이 전쟁한다고 고생했으니 르우벤 갓, 므나셋 반지파가 요단 동판을 차지한다.

민수기에는 이 땅을 주지 않게 되어 있다. 요단 동쪽 땅은 얼마가지 않아 이방민족이 차지하고 만다. 정복했을 그 당시 땅과 사사기에 오면 엉망진창이 된다. 이방민족이 침투한다. 그것은 땅에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언약 안에 들어오는 것이 목적이기에 땅이 어떻게 되든 언약은 흐른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흐른다. 우리 생활형편이 어려운 것이 구애받지 말라.

여호수아 14:13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헤브론을 기업으로 준다.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

첫째시간에 이야기 했죠. 선 스펙트럼. 뭔가 빠진 요소가 있다. 빠진 요소를 통해서 그 원소의 성질이 분명히 드러난다. 상어가 다녀가면 물고기는 빠지고 채소만 남아있듯이. 이스라엘은 땅에 구애받지 않는 레위 지파가 있음으로, 땅이 없어야 마땅함을 유지함을 유지하면서 각 지파 속에 집어넣는다. 그래서 얻은 성읍이 48곳이다. 유다 베냐민 지파에 13개, 에브라임 단 므낫세 반 지파에 10개,  앗셀 잇사갈 납달리에 13개 스블로 르우벤 갓 지파에 12개, 합쳐 48곳에, 마치 지부를 두듯이 배치한다. 레위지파가 있다면 자기 상속분의 땅의 유지는 레위지파의 활동이 유지와 연동된다. 레위지파의 땅 분배를 할 때 제비뽑는다.

뽑는다는 것은 창세기 49장의 야곱의 예언이 먼저다. 신명기 33장에 각 지파마다 예언하셨다. 신명기에 나오는 모세의 예언은 야곱의 예언에 따라 주어진다. 이것은 이스라엘은 땅에 사는 자들이 아니라 예언위에, 예언과 더불어 사는 자들이다. 땅에서 예언 나올 때 제비뽑기를 한다. 땅에 살고 싶은 인간의 여망을 사정없이 허물어 버리고 예언 안에 들어오라고 제비뽑기를 한다. 뽑기를 하라는 것은 감사하라는 정도가 아니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예언대로 된 것이라는 것을 자기가 기거하는 땅에서 마음껏 증거해야 된다. 크레파스가 열두 색이 있지만 노란색이 노란색을 좋아라고 할 수 없다. 파란색이 난 노란색이 좋다고 남의 것을 탐낼 수 없다. 뽑기 위해 각 위치에 색깔대로 있어야 한다. 열두 지파라 하는 것은 서로서로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바탕에 레위지파의 정신이 녹아져 있다. 레위지파가 녹아 있다. 땅 없는 자가 우리에게 땅 있게 했다. 따라서 땅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땅 없는 쪽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라. 예수님은 이 땅에 머리 둘 곳이 없다.

예수님이 땅에 머리 둘 곳이 없다면 성도들도 머리 둘 곳이 없다. 잠시 120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잠시 살고 있지만 여러분이 영원히 머리 둘 곳이 아니다. 여러분이 땅에 산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예언위에 산다고 생각하세요. 오늘밤 주무시면 말씀위에 누워 주무시면 된다. 왜냐하면 이 집은 주의 제비뽑기로 주신 것이다. 비가 셀 수도 있고, 영하 십도에 수도관이 터질 수도 있고, 담배연기가 올라올 수 있고, 층간소음도 나오고, 싸울 수도 있다. 네 마음대로 사세요.

제지 뽑기만 아니라 레위 지파 중에서 여섯 개의 도피성이 만들어진다. 이곳에는 제사장이 있는 곳이다. 요단 동편에 세 곳, 요단 서편에 세 곳이다. 도피성은 억울하게 살인누명을 뒤집어 쓴 사람이 피하는 곳이다.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뒤집어 쓴 것이니 살인자다. 살인자는 율법에 의하면 죽어 마땅한다. 죽어 마땅함을 율법내부에서 안 죽어도 되는 존재로 전환 시키는 장치가 도피성이다. 살인했으니 죽어 마땅하지만 죽이는 것이 율법 위반이 된다. 이렇게 되려면 제사장 존재가 개입된다. 제자장과 함께 있으면 친족들의 복수에서 면죄된다. 제사장 살아 있을 때 도피성에 들어간다. 이런 특별한 공간을 만드는 이유는 이스라엘을 움직이는 것은 율법이지 땅 소유로 이스라엘 일이 끝난 것이 아니다.

땅 분배할 때 맨 먼저 하는 지파가 유다지파다. 그 다음 요셉지파, 에브라임, 므나셋 지파, 베냐민 지파 분배 후에는 네 마음대로 분배한다. 르우벤, 갓, 므나셋 반지파는 이미 요단 동편을 가져갔다. 유다지파와 요셉지파는 투톱이다. 쌍벽이다. 어디에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나오는지 모른다. 맨 먼저 요셉지파가 나서고, 나중에 유다지파로 바뀐다. 요셉 지파가 맨 먼저 나서기에 에브라임, 므낫세 지파의 땅이 가장 넓다. 에브라임 므낫세가 요셉의 손자인데 이들이 상속권을 받는다.

나중에 요셉지파가 북이스라엘이 된다. BC722년에. 남쪽 유다 지파는 BC586년에 망한다. 둘 다 망한다. 둘 다 망하는 것도 신명기에 예언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망했는데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은 새로운 차원을 맞이한다. 이스라엘 망하면서 혼자 망하는 것이 아니라 다니엘 9장에 보면 이방민족과 마지막 전쟁을 이스라엘이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싸우지 못한다. 이스라엘이 와해되고 깨어진다. 이스라엘 복숭아 깨면 단단한 구조가 나온다. 이스라엘을 건드리면 언약의 하나님을 건드린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이 사용하신다. 이스라엘의 메시야, 이스라엘의 왕을 건드린 것이다.

다니엘 전쟁에 보면 그 방식대로 줄곧 이어진다.

여호수아 15장에 유다 지파가 먼저 받는다.
15:8절에 힌놈의 골짜기가 나온다. 예루살렘 남쪽에 있다. 이곳은 우상이 유명하다. 우상을 불태우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옥이다. 게헨나이다. 여호수아 당시에는 이럴 줄 몰랐다. 유다지파 한 복판에서 지옥의 표상이 나올지 상상도 못했다. 가장 사랑받는 유다 안에 가장 하나님을 싫어하는 우상숭배가 이루어진다. 우상숭배 집합소가 된다. 힌놈의 골짜기.

이것은 땅을 가졌다고 해서 언약이 완료된 것이 아니다. 언약은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언약은 변한다. 여호수아 15:1절에 제비 뽑았다. 16:1절에도 제비 뽑았다. 예언대로 되었다. 실컷 두 사람이 아마추어 주제에 바둑을 두는데 나중에 보니 예언대로 되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실컷 자기 딴에 공들여 심사숙고해서 살았는데 결국 나중에 보니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이다. 제비뽑는 것은 사람이 뽑으나 결정은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의 결정은 우리가 미리 알 수 없고 결과 자체가 하나님의 뜻임을 소급해서 우리가 받아들여야 된다. 우리의 결정 선택에 의미를 부여하면 안 된다.

므낫세 지파는 요셉지파다. 18장에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실로에 모여 회막을 세운다. 나중에 여호수아가 죽을 때는 세겜에서 발표하면서 죽는다.

여호수아 18장에서 여섯 지파는 지도를 갖고 오라 해서 제비뽑기해서 나누어준다. 레위지파는 여기서 뺀다. 여호수아 18:7절 레위지파 너희는 분깃이 없다. 이것을 레위지파는 레위지파끼리 모여서 살아서는 안 된다. 파견근무만 있고 본부를 가져서는 안 된다 것이다. 땅을 가졌더라도 하늘의 차원은 속속들이, 파이 안에 들어 있는 건포도처럼 속속들이 들어가 있어야 된다.

오늘날 왕같은 제사장이 성도들이다. 성도는 따로 모여서 지리산에 회관지어 자체적 공동체 하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 하면 운영이 됩니까? 제가 과거에 본 책 지금까지 공동체를 실시했던 사례 책을 읽었다. 신앙공동체, 성령공동체를 읽었는데 마지막에 돈 잔치로 끝난다. 처음에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떡을 떼지만 나중에는 돈을 뗀다. 지분 따진다. 공동체가 실패가 끝난다는 것은 곧 교회가 돈 품파이로 끝난다. 교회가 주식회사랑 똑 같다. 너 지분 얼마나 갖고 있나. 목사가 개척교회 시작하면서 사모가 번 돈 이천만원을 낸 후 나중에 교회가 된다 싶으면 내 자본금 내어 달라고 한다. 자기가 자기에게 바쳤다. 여기에 대해 교인들이 당연하게 여긴다. 그 목사의 그 교인이니. 사고방식이 똑같다. 예수님께서 열두지파에게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스카이 콩콩처럼 여기 갔다, 저기 갔다 돌아다니면서 주님가신 길로 죽어 버려라 하신다.

여호수아 21장에 레위지파 중  고핫자손에게 땅의 선택권을 먼저 준다.
레위의 아들 고핫 므라리 게르손이 있다.
고핫 자손에게서 모세와 아론이 나온다. 그쪽부터 먼저 땅을 준다.

여호수아 22장을 좀 더 하면, 요단 동편에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곱게 살면 되는데 자신들이 제단을 만들겠다고 나온다. 그러니 다른 아홉 지파가 들고 일어났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모세가 말하지 않는 땅에 들어가면 절대로 제단을 쌓지 말라는 율법이 있었다. 이 제단은 나사 우주센터처럼 하늘과 연결하는 단 한곳, 언약궤가 있는 곳이어야 된다. 다른 곳을 생각하면 안 된다. 그런데 이곳에 제단을 쌓으면 요단 동편은 그쪽에서, 요단 서쪽에서는 언약궤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을 섬길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라가 9와 3으로 나누어진다. 우리생각에는 나누어지면 나누어지지 이게 무슨 상관있느냐고 하겠지만 하나님께서 언약을 주실 때 열두 요소, 열두 색깔이 있을 때 크레파스 전체에 복을 주지 아홉 지파나, 세 지파에게 복을 주는 법은 없다. 열두 지파가 유지되어야 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언약이 그러하다.

열둘이 안 되면 열한 지파만 남으면, 사사기 끝에 베냐민 지파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을 때 강제로 아내 삼아 베냐민 지파를 유지시킨다. 사사기는 구멍 난 치즈 같아. 좋은 곳은 이방인들이 다 차지하고 있다. 이방인지 이스라엘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다. 그만큼 땅에 대한 집착은 아담의 타고난 본성이다. 땅이 있어야 안전성이 있지 땅 없이 돌아다니면 기가 차지요.

아들이 캠핑 차타고 돌아다니면 왜 정주하지 못하느냐? 왜 한 곳에 못 사느냐? 청춘을 즐기려고 합니다. 가는 곳이 내 땅이라고 낭만적이 이야기 한다. 히브리서 11장에서 성도를 이 땅의 나그네로 본다. 그만큼 땅이 있으면 땅을 소유하려고 한다. 사람이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자식에게 상속하기 위해서다. 아닌 척 하지 마세요.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사는 이유는 다 자식에게 상속하기 위해서다. 손자에게 주기 위해서다. 숨길 수 없는 본성이다. 자식이 없으면 사회 환원한다. 그때 사기꾼이 확 달려 들 것이다.

사사기가 되면 구멍 난 치즈처럼 뻥뻥 구멍이 뚫렸다. 자신들에게 문제 있음을 모르고 이들은 율법을 찾지 않고 왕을 찾는다. 왕을 찾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왕 되심을 거부하기에 왕이 있는 민족이 이스라엘을 더욱더 괴롭히게 된다.

도피성 이야기는 여호수아 21장에 나온다.
여호수아 21:44여호와께서 그들의 사방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열조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 그 모든 대적이 그들을 당한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대적을 그들의 손에 붙이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대적을 그들의 손에 붙이셨기에 말씀대로 다 응했다. 미리 예언한 그 모습은 아니지만 적들은 다 물러갔다고 한다.

땅을 차지하고 안식을 얻었다.

여기에서 정복이란 무엇인가? 믿음의 승리가 무엇인가? 정복한다는 것은 지배받는 것인가, 소유권이 넘어가는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내가 저 사람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지배하고 있다면 그것은 정복에 해당될까, 안될까를 생각해 봐야 한다. 정복자가 예수님이시다. 내가 예수님께 소유되는 것과 지배받는 것의 차이가 있는가? 있다. 예수님의 소유가 되면 내 일은 없고 주님의 일만 있다. 그러나 지배를 받는다면 내 것은 따로 있고 주님의 지시를 따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파탄으로 끝난다. 구약에서는 지배를 받고 상속분이 따로 있는 시대다. 구약이 끝나고 신약시대는 주님의 지배를 받는 시대가 아니라 주님의 소유가 되는 시대다. 내가 죽은 자가 되어야 된다.

믿음이란 내가 죽었기 때문에 나의 믿음은 있을 수 없다. 주님이 나를 소유할 때 그 관계를 믿음이라 한다. 사래의 태가 죽었기에 임신을 기대하지 않았다. 인간의 한계가 죽음이다. 죽음 이후 문제는 인간이 손댈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우리를 십자가에 죽게 하셨다. 네 운명에 대해서 네가 손대지 말라. 네가 어떻게 되든 내 소유권의 문제지 네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내가 지옥가면 어떡하지? 그걸 묻지마. 왜? 너는 내 소유이기 때문이다. 소유가 좋아 천당 가는 것이 좋아? 소유가 좋습니다가 되어야 되는데 천당 가는 것이 좋다는 말은 아직도 죽은 척 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누가 죽었나를 보니 눈 감고 있다가 지나갔나 하면서 눈을 뜬다. 우리 육적인 것이 맨날 이렇다. 주님께서 그런 육적인 것까지 드러내셔서 이게 아니고 이것이라 해서 다 소유했기에 다 이겼다가 아니라 항상 자기를 부인하게 하신다. 이런 육적인 요소, 기브온 같은 요소를 항상 유발시켜서 끊임없이 내가 무엇을 얻었다가 아니라 주께서 이미 가져갔음을 매일같이 확인하는 그것이 진정한 주님의 승리다. 주께서 붙이시는 전쟁이다.

'정석훈' 카테고리의 다른 글

9강 아브라함의 복  (0) 2022.01.14
7강 이질적 요소  (0) 2022.01.14
6강 무기  (0) 2022.01.14
5강 언약적 변천과정  (0) 2022.01.14
4강 백신  (0) 2022.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