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회자료

9강-제사장 다윗

아빠와 함께 2021. 8. 7. 09:45

2021여름수련회 사무엘하강해 제 9강 : 제사장 다윗 - 이 근호목사


사무엘하를 우리가 보면서 거기 등장인물들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이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조화롭게 구성되어서 다윗 하나를 왕으로 어떻게 옹립하는지를. 이거는 다윗이 왕이 되고 싶어 하는 것도 있지만 다른 쪽은 다윗 왕을 왕으로 되게 하면서 은근히 노리는 것들이 있어요. 다윗이 왕이 됐을 때에 거기에서 나에게 어떤 혜택들이 떨어지는가. 어떤 권력이 내 야망과 욕망을 달성할 수 있는가. 그걸 노리면서 다윗의 최측근으로 얼쩡거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거는 마치 뭐와 같은가 하면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와 똑같은 의식이 그 당시에 다윗 중심으로 똑같은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아까 3분 30초하고 다르죠. 거기에 등장했을 때 여기 다윗 하나 왕 되게 하기 위해서 주께서 준비한 게 있어요. 그게 배치인데요. 교재 5번부터 먼저 보겠습니다. 『욕망의 배치에 권력 장치를 동반한다. ‘행위와 상호 연결되는 행위’로서 혹은 다이어그램 diagramme로서 작동한다. 다이어그램이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다이어그램이 뭐냐 하면은 6번을 보게 되면 점과 점을 선으로 결부함에 의해 작동하는 권력의 기능이 다이어그램diagramme이라 명명한다. 예를 들어 철도운행에서 말하는 ‘다이어’dia(편재하는), 즉 운행상황을 점과 선으로 표시하고 관리하는 그 지도이다.』

서울의 지하철공사나 대구 지하철 사무실에 가보면 거기에 다 있는 거죠. 그렇죠. 역사에 보면 다 있어요. 『철도의 다이어는 역이라는 점을 열차의 운행이라는 선으로 묶는다.』 이렇게 다이어그램의 권력체계가 되려면 항상 기본적인 것이 뭐냐 하면은 이겁니다. 평정화되어야 돼요. 모든 것이 고르게 되어야 돼요. 권력으로서 통치자가 그렇게 만듭니다. 다윗이 그걸 시도했고 거기에 대한 요압이라든지 스루야의 아들 세 아들도 그렇게 거기에 따라서 평정화되었어요. 평정화될 때 이 점과 점 사이에 권력이 어떻게 이동하고 어디서 문제가 생기고 어떻게 평정하고 군사를 어떻게 이동배치하고 어떻게 하는가가 거기에서 한눈에 다 보이는 거예요.

이게 뭐냐 하면은 권력의 배치입니다. 권력이 배치가 돼버리면 여기서 백성이라고 하는 것은 뭐가 되느냐 하면은 하나의 작은 입자가 되는 겁니다. 하나의 알갱이가 돼요. 알갱이. 어떤 알갱이? 권력의 종이 되는 알갱이, 입자가 되는 겁니다. 권력의 구조는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렇게 될 때에 여기 평정화가 되면서 인간은 뭘 노리는가 하면은 평준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평정화에서 평준화. 평정화는 뭐냐 평균화. 이걸 다른 말로 하면 그렇고 그런 인생. 조용하게 살다가 조용하게 가는 것.

그러니까 이 땅의 권력구조에서 뭐 캐나다에서 살든 미국에서 살든 그 장에서 조용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조용하게 살다가 어디에 가느냐? 지옥 가는 거예요. 나는 그냥 왕이 시키는 대로, 백성이 시키는 대로 했다. 나는 그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나는 살았을 뿐이다. 남들이 나보고 뭐 사람 사는 것처럼 살아가네. 그런 소리를 들어가면서 그렇고 그런 인생. 평준화된 인생. 평균화된 인생. 평준화된 인생. 그리고 보이지 않는 악마의 권력이 우리를 그렇게 길들인, 평정화된 세상이 이게 땅의 세계에요. 땅의 세상이라고요. 여기에 대해서 어떤 문제점을 못 느끼죠.
문제점을 못 느끼는데 8번을 봅시다. 7번을 먼저 보게 되면 이런 평균화, 세상의 평화로움, 이게 좋은 세상, 이것을 인간 입자 내부의 자의식, 아이덴티티identity 정체성이 되면서 이게 뭐가 되느냐 하면은 습관화가 돼요. 나라 말 듣는 것이 습관화가 된다고요. 다시 말해서 촌에 있는 옛날 사람들, 60대, 70대에 있는 사람은 그렇게 다른 케이블 채널이 그렇게 많아도 절대로 안 보고 뭐냐, kbs만 봅니다. 수십 년 동안 습관화되어 있어요. kbs~ kbs~ kbs~ kbs만 봐요. kbs 안 보면 전부 다 공산당이에요. 우리 젊을 때부터 인식이 kbs 안 보면 전부 다 공산당이에요. 공산당 안 되려면 kbs봐야 돼요.

이게 습관화되면서 옹립되는 권력입니다. 이걸 누가 보여주느냐, 북조선 인민공화국이 보여주는 거예요. 북조선 인민공화국. 종교화된 국가. 그것도 공산주의 앞에 뭐가 붙어요. 유교적인 사회주의. 유교적인. 유교적인 사회주의에서는 누구 이름이 높아지느냐 하면은 모든 것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버지 어머니의 이름으로 종속되는 그러한 종교단체. 이게 북한입니다. 신천지하고 똑같은 거죠. 종교단체에요. 종교단체. 그 특징은 평정화, 평균화, 평준화에요. 그렇고 그런 인생. 아무리 세상이 코로나해도 북한은 단 한명의 코로나 환자도 없습니다. 마스크 쓸 이유도 없고 백신 들어갈 필요도 없어요. 왜? 한 명도 없으니까. 천국 같은 유토피아 세계니까.

근데 여기에 뭐가 주어지느냐 하면은 교재 8번에 기호의 압박입니다. 기호의 압박. 자, 이 기호의 압박에 대해서 제가 쭉 보겠습니다. 요나단이라는 기호. 친구이면서 사울의 아들이죠. 나발이라는 기호. 나발이라는 사람은 헤브론 지역에 있어서 유지에요. 헤브론 지역의 유지기 때문에 유다지파 내에 갈렙지파의 영토기 때문에 다윗에 대해서 경쟁관계에 있는 겁니다. 근데 다윗이 그 아내를 자기 아내로 삼았죠. 그래서 권력자라고 하는 것은 이 다이어그램 배치에 의해서, 유력한 유지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삼음으로써 그 위상, 그 영토 내에서 위상이 더 높아지는 거예요.

일단 전체 이스라엘의 왕이 어떻게 됐느냐 그거는 본선에 나가서 하고, 예선전부터 먼저 유다 지파 자체 내에서 유력한 자의 아내가 자기를 찾아온다는 것은 이미 자기 지파 내에서 호응도가, 유다 지파 내에서 지명도가 높아졌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아내가 왕의 권력을 증명하는 그러한 소유물이 되기 때문에 압살롬이 공개적으로 다윗 왕의 첩들을 보는 데서 합궁을 하는 이유는, 사울의 집안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다는 것은 사울의 정권을 정통적으로 인수했다는 뜻이고, 다윗의 첩들을 공개적으로 동침을 했다는 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이제는 옛날 왕을 잊어버려라.

왜? 옛날 왕의 애첩들이 이제는 나의 애첩이 되었으니까 내가 지금 최고의 권력자고 이 세상의 통치자라는 것을 공개하라고 아히도벨이 충언을 하죠. 아히도벨은 누구의 할아버지냐 하면 밧세바의 할아버지가 아히도벨이에요. 그 집안이 그 집안이에요. 복잡한 집안이에요. 그러면 아내들을 왜 안 데려갔는가, 다윗은 압살롬이 다윗 성에서 자기 아들이 죽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그래요. 다윗은 자기 아들이 반드시 패한다는 것을 알아요. 패하지만 내가 만약에 있어버리면 자기 아들을 자기 손에서 죽이는 셈이 되니까. 그러니까 자기가 임시로 피해주고 요단강 건너서 빠져나온 겁니다.

어차피 너는 하나님의 언약에 의해서는 네가 안 될 인물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는데 뭐 어떻게 할 거냐. 이렇게 그냥 봐준 거죠. 거기서 나단선지자가 다윗의 가정에 분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을 했을 때에 다윗은요, 아들로 말미암아 반란을 일으킨다고 생각을 하지 않고 아들을 왕으로 옹립하는데 있어서 아들은 이용당했을 뿐이고, 그 배후에 다른 세력들, 기존의 사울 세력들이 압살롬을 추종할 것이라는 그런 식으로, 우리 가문이 약간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것으로 해석이 되어줘야, 나의 어떤 죄로 인하여 아무리 저주가 떨어져도 그 저주는 왕가 자체가 무너지는 저주로 통하지가 않는 거예요. 왜냐하면 사무엘하 7장 14절에서 하나님께서 너의 가문을 친히 내가 이끌어내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다윗이 뭐 집안에 문제가 있어도 아무 걱정을 안 했어요. 사무엘하 7장 14절 이것 때문에.

그 다음에 이제 아브넬은 사울 왕과 이스보셋의 군대장관이었고. 아사헬은 요압의 동생으로서 아브넬을 잡으려다가 도로 죽었고. 스루야는 바로 요압, 아비새, 아사헬 용감한 삼형제의 어머니였고. 다윗의 누이동생(누이?)이었고 암몬 왕 나하스의 딸이었습니다. 이 요압, 아비새, 아사헬은 이방민족의 피가 섞인 거예요. 아비가일은 암몬 와 나하스의 딸 스루야와 자매사이고. 다윗의 여동생이고. 다윗의 어머니가 나하스와 혼인했기 때문에 생긴 딸이고. 나하스는 암몬 왕이고. 하눈은 나하스의 아들이고 암몬의 차기 왕이고. 하눈은 아시죠? 친척이라고 조상을 가니까 거기 간 사신을 아주 개망신 시킨 사람. 그래서 그걸로 인하여 다 망해버린 사람이죠. 다윗의 도장 깨기에 희생물이 된 사람.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고 모압 땅에서 죽었고. 다윗이 쫓겨 다닐 때. 아비새는 요압의 동생이고. 암논은 다윗의 장남이고 헤브론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아비가일의 자녀고 압살롬에게 죽습니다. 길르앗은 다윗의 처남.

그러니까 다윗의 혈통적인 아들이 서로 죽이고 죽인다는 것은, 이것은 다음의 왕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이미 지정을 했기 때문에, 뽑혀져 나왔기 때문에 유다지파가 아닌 유다지파. 다윗이 아닌 다윗으로 인수되기 때문에, 약속과 연결되기 때문에 나머지기는 제켜져야 돼요.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해주시는 겁니다. 쓸데없이 나서서 반란을 일으켜가지고 제풀에 제가 나가떨어지게 하는 거예요.

압살롬은 헤브론에서 태어난 다윗의 첫째 아들로 왕의 서열 2위. 그러니까 이게 일등만 하면 괜찮은데 꼭 이등이 되어가지고 자기 목표가 생겨버린 거예요. 그게 지략이 망하게 된 거고. 아도니야는 다윗의 넷째아들이면서 나중에 솔로몬 왕이 되고 난 뒤에, 솔로몬이 다윗의 열 번째 아들이거든요. 열 번 째가 왕이 되니까 그 다음에 어떻게 됩니까? 자기는 사표내야 되잖아요. 검찰의 기수가, 사법고시 기수 후배가 올라오면 나중에 사표 줄줄이 다 내요. 변호서 다 해먹어야 돼요. 법인하든지 뭐 다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이 아도니야는 한참 동생 솔로몬이 왕이 되니까 뭘 생각하느냐 하면은 나는 백성들의 의견이 중요하지 다윗가문 솔로몬의 뜻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오직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사람이 되겠다고 이래 나섰다가 솔로몬한테 죽어버려요. 네가 언약을 아주 무시하는구나. 그러니까 왕가라고 하는 것은 왕이 지명해야 해요. 국가에 보면 세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차기가 어떤 때는 왕의 피가 제일 많은 쪽이 후계자가 되는 그런 나라가 있는 반면에 반대로 왕비의 피가 많이 있는 쪽이 왕이 되는 경우가 있고. 그 다음에는 어떤 것이 있느냐 하면은 왕이 지명하는 거예요. 왕이 지명하는 거. 왕이 지명해서 왕이 되는 거. 이런 세 종류가 있는데. 이 팔레스타인에서는 왕이 지명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요.

이스보셋은 사울과 사울의 첩 이스바의 아들. 이제 사울 쪽의 집안입니다. 미갈은 사울의 딸, 다윗의 첩 아내. 다윗을 비웃다가 자식이 없음. 왕국에 영향력이 없음. 자식이 없으니까 권력 게임에 들어갈 찬스를 놓쳐버린 거예요. 아마샤 압살롬의 군대장관. 다시 다윗의 군대장관이 되었지만 요압에게 암살당하고 요압과 사촌지간이에요. 여러분들 사촌지간 주의하세요. 그 다음에 레갑과 바아나는 이스보셋의 용병이고 이스보셋을 암살했고 다윗의 죽임을 당하고 시신이 훼손됐고 손과 발을 자르고 몸통을 웅덩이에 걸었습니다.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제가 말씀드렸죠. “내가 사울, 열한지파, 북쪽 요셉지파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그런 포용력이 있는 차기 왕입니다.” 그걸 하기 위해서 잔인하게 이방민족 출신을 죽여 버렸습니다.

므비보셋은 요나단의 아들이고 절뚝발이. 절뚝발이어서 그래서 왕이 될 수 없어서 목숨이 살은 거예요. 희한하죠. 이게 멀쩡했으면 까분다고 나섰다가 요압한테 모가지 날아갔어요. 시바는 므비보셋의 종인데, 시바는 이거 또 사울 왕가의 허점을 보여주는 겁니다. 자기가 종이면 종다워야 하는데 자기 주인이 절뚝발이라고 해서 무시하고 재산을 다 빼돌렸어요. 거짓말 하고. "므비보셋이 다윗 왕을 무시하니까, 내가 대신 왔습니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라고 하니까, 다윗 왕이 그것도 모르고 “그래, 모든 재산을 배신자에게 주지 말고 네가 다 해라”고 해가지고 모든 재산을 시바가 다 차지해가지고 나중에 돌아올 때는 ‘아하, 이 시바가 장난질을 쳤구나’ 이렇게 해요. 그러니까 종이라고 해서 만만히 보면 안 돼요. 주인의 것을 다 뺏어가 버립니다.

웃사와 오벧에돔은 언약궤를 운반했던 이방인인데 웃사는 죽고 오벧에돔은 어떻게 했습니까? 복을 받았죠. 나단은 다윗의 선지자. 요아는 다윗의 다른 처의 아들이에요. 요압은 중요한 사람이에요. 주연급이죠. 다윗의 군대장관 수루야의 아들. 다윗의 조카. 조카인데 나이 많은 조카겠죠. 사독과 아히멜렉 둘 다 그 시대의 제사장. 아히멜렉은 보조 제사장으로 엘리 계통이기 때문에 나중에 잘립니다. 그 다음에 밧세바는 유명하죠. 다윗의 아내고 솔로몬의 어머니. 거기에 또 하나 붙인다면 미모가 뛰어난 사람. 아히도벨의 손녀. 그러니까 하나님의 권력배치였습니다. 뚱뚱하고 이랬으면요, 아이고 내가 못 볼꼴을 봤다. 이랬을 거 아닙니까? 그 몸매까지도 주의 뜻이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하나도 없어요.

다말은 다윗의 딸이고 압살롬의 누이동생이고 암논에게 강간당함. 우리아는 권력에서 배제된 거죠. 권력의 희생물이 된 겁니다. 밧세바의 남편이고 헷사람. 이방 헷사람. 이름 없는 아이, 밧세바와 다윗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낳은지 일주일 만에 죽은 아이. 일주일만 살았어요. 완전히 희생제물 그 모습을 다 보여줍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열 번째 아들. 요나답은 암몬의 친구. 간사하기 짝이 없어요. 이새의 세 번째 아들이자 다윗 형인 시므라의 아들로 암논과의 사촌관계. 아히도벨과 후새는 다윗의 충신. 아히도벨은 다윗을 배신했죠. 잇대는 다윗 쪽의 군인인데 블레셋 가드사람으로서 다윗의 외인부대를 인솔하는 장군. 아히마아스는 사독의 아들이고 제사장. 여호나단은 아비아달의 아들이고 제사장. 나중에 아비아달의 아들 제사장은 잘립니다. 희망이 없어요. 권력층에서 날아가 버립니다.

후새는 다윗의 충신이고 베냐민 지파에 속한 아렉사람. 시므이는 다윗을 저주한 사람이고 사울의 먼 친척. 게라의 아들 베냐민 바후림의 출신자. 마길은 므비보셋을 돌봐준 사람. 바르실래 이 사람은 유지인데, 길르앗 지방의 유지인데 길르앗 지역이 어떤 지역이냐 하면은 사울의 장례를 치른 그런 지역이에요. 그런데 자기가 나이가 많다고 “당신 청와대에 입성할래?”하니까 “나는 나이가 많아서 안 합니다.”라고 해요. 그래서 사절하고 나는 고향에서 조용히 살겠다고 해요. 아주 멋진 사람이에요. 나이 많아가지고 70넘고 80넘어가지고 괜히 정치한다고 나서고. 다윗을 마지막 회고한 사람. 세바는 베냐민 사람인데 비그리의 아들 반란자. 아벨에서 여자한테 윗 맷돌로 맞아 죽었어요. 남자가 여자한테 맞아죽는 것은 그 당시에 큰 저주였어요.

갓, 오늘 이 시간에 할 다윗의 인구조사를 비난한 선지자. 아라우나는 여부스 사람이고 이방인의 땅을 돈을 주고, 그냥 주려고 했는데 다윗이 돈을 지불해서 영구히, 예루살렘의 은택을 위해서 영구히 거기다가 하나님의 이름을 영원히 모시는 가장 하나님의 하나님 됨. 하나님이 이 땅에 왔을 때에 정확하게 언약을 완성하는 그 모습을, 땅을 제공한, 토지를 제공한 사람이 아라우나에요. 물론 돈을 받고 했지만. 은 오십 세겔로 타작마당 소와 기구를 지불했고, 금 육백 세겔로 여기서 타작마당을 포함한 가격을 지불하고 다윗 성 위쪽에다가 그걸 했어요. 제사를 드립니다. 그게 끝이에요.

그러니까 사무엘하 끝이 뭐로 끝나느냐 하면은 아라우나 타작마당에서 다윗이 제사장이 되어가지고 백성 전체의 죄를, 전에는 시편 51편에서 다윗의 개인적인, 사적인 죄를 위해서 주께서, 일주일 만에 죽었던  아들이 꺾어진 뼈로 제물이 되었지만, 이게 피의 복수자의 희생자가 되었지만, 이제는 왕의 위치가 되었기 때문에, 왕의 위치는 전체 백성의 죄를 위하여 자기가 대신 제사장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윗 말고 다윗언약의 기능에 다윗은 제사장으로 참여되고 있는 거예요.

다윗은 알아요. 다윗은 뭘 아느냐 하면은 다윗언약은 내가 결코 이루는 것이 아니고 나는 하나의 배치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는 겁니다. 그러면 다윗언약은 누가 이루느냐, 언약을 주신 하나님 본인이 이루는 거예요. 하나님 본인이 이루었다는 그 사실을 나타내고 증명하기 위해서 다윗이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러면 이 제사장이 되려면 반드시 이스라엘 전체의 죄가 나와야 됩니다. 다윗의 사적인 간음과 살인 말고. 이스라엘 전체의 죄를 알아야 되겠죠.

그것이 사무엘하 24장에 나옵니다. 1절,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뭐냐 하면은 다윗의 인구조사가 잘못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체에 대해서 손 좀 봐야 되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마치 사사시대와 비슷해요. 사사시대와. 이스라엘 전체에 대해서 뭐냐, 하나님께서 죄를 죄 되게 드러내야 되겠다는 거예요. 죄를 드러낼 때는 반드시 준비된 것이 뭡니까? 이 죄가 어디에서 모든 것이 말소가 되고 해소가 되는지를 백성들로 하여금 주목하게 해서 다윗에게는 다윗의 사적인 지난 과거가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맺으신 다윗언약, 사무엘하 7장 14절, 하나님이 친히 다윗을 하나님의 성전 되게 하시고, 다윗의 가문 자체에 하나님께서 함께 거기에 거주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이 다윗이 제사장 됨으로서 거기에 나타나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왕은 누굽니까? 왕은 누가 왕이죠?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언약의 하나님이 왕이 되시죠. 왕의 권력을 위해서 누가 기꺼이 희생되어야 해요. 이스라엘 전체가 기꺼이 희생되어야 하는 겁니다. 왕을 상대로 해서 왜 삼일 만에 칠만 명이 죽었습니까? 이걸 따지게 되게 되면 하나님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 백성이다. 됐냐? 네 거야? 이스라엘이 네 거냐 이 말이죠. 네 자식이 네 거냐? 내가 자식 낳게 했잖아. 내 거야. 내 권력을 위해서, 내가 하나님 됨을 드러내기 위해서 내가 네 자식을 태어나게 해서 있다가 없앴는데 네가 그걸 왜 따지냐?

바로 그 위치를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누가 해야 하느냐 하면은 다윗 왕이 그런 정신으로 통치를 해야 돼요. 이 정신을 이어받은 자가 누구냐 하면 솔로몬입니다. 그러니까 차기 왕은 다윗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윗언약에서 나와요. 다윗언약에서. 다윗언약에서 나오게 되면 인간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뭐가 되느냐 하면은, 무조건~ 무조건~ 무조건 죄인이 되는 겁니다. 근데 죄인이 뭐냐 하면은 이게 쓸모 있는 죄인. 하늘나라를 이루는데 있어서 꼭 쓸모 있는 죄인. 그 죄인이 이 하늘나라 곳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배치되어 있고 성령으로 이게 다이어그램, 연결되고 연락되게 되어 있어요.

연락돼서 성도와 성도끼리 전화할 때 반드시 여기에 뭐가 들어가느냐 하면은 자기가 하루 살면서 지은 죄를 아주 즐겁고 화사하게 기쁨에 붕떠서 이야기해야 되는 거예요. 자기의 죄를. “언니, 오늘 무슨 일 있어?” “있었지. 오늘 삼성주식 사봐. 오늘 대박 났어. 근데 그게 죄거든. 너무 신나. 돈 벌고 죄짓고. 돈 벌고 죄짓고 너무 신나.” 이런 이야기를 하시라 이 말입니다. “오빠, 무슨 일 있어?” “우리 애가 또 백점 맞았어. 또 죄지었어. 내가 그렇게 죄짓지 말라고 했는데도 백점 맞는 죄밖에 할 수가 없어. 이번에 사법고시 3차 또 합격했잖아. 죄짓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는데도 불구하고 또 합격을 해가지고 당최 저 애가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겠어.” 이거 뭐 걱정하는 건지 자랑질 하는 건지 구분이 안 되지만.

그게 바로 성도끼리의 모든 일에 대해서 같이 기뻐하고 같이 웃는 거예요. 왜? 그게 바로 죄기 때문에. 전에는 그것이 교만이고 자기 의였는데 이것이 대속하신, 이 모든 것이 죄였다는 것을 완전히 최종적으로 확정하고 규정하신, 그 규정에 의해서 이것은 뭐냐 마음껏 우리가 죄를 죄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겁니다. 오랜만에 만났거든 스테이크 써는 죄를 한번 지어봐? 스테이크 써는 죄를.

여기에 등장하는 수십 명의 등장인물들, 그 개체 하나하나가 오늘날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모습이면서 우리의 죄는 뭐냐, 오직 권력에 대한 추구예요. 그래서 이것을 우리 개인보고 똑똑하다고 하지 말고 판을 바꾸는 거예요. 아예 판 자체를 하나님이 다 이루었다는 판 자체에다가 우리를 이렇게, 피자에다가 소시지 뿌리고 햄 뿌리는 거 하잖아요? 토핑 하죠. 우리가 토핑된 거예요. 주님의 십자가 판에 우리가 전부 다 토핑 되어 있는 거예요. 각자 자기 역할이 다 다르죠. 배치니까. 다이어그램처럼. 토핑 되어 있어요.

그 토핑 되어 있는 이 판, 다윗시대에 이 판이 어떤 판이냐, 모든 인간들은 율법에 의해서, 율법을 감당할 수 있는 육신을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율법을 감당 못한 육신은 살아도 산 게 아니고 죽었기 때문에, 율법을 가진 육신은 어떻게 죽는다는 그것을 내가 분명히 보여줄게. 해서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켜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게 하신지라. 여기 인구조사가 나오거든요.

자, 인구조사를 하는데, 인구조사는 언제 해야 되느냐 하면은, 세상에서의 인구조사는 세금거두기 위해서 인구조사를 하지만, 이스라엘은 특별히 민수기에서 조사하는 것은 전쟁이에요. 전쟁을 하면서 원래 인구가 몇 명이었는데 전쟁을 치르고 난 뒤에 몇 명 남았느냐. IN PUT OUT PUT 처음에는 오만 명이었는데 나중에 여기서 삼만 오천 명이 되었다는 말은 여기서 하나님께서 만 오천 명을 전사케 하신 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쟁의 신이기 때문에 죽일 자를 죽이는 겁니다.

그래서 사무엘하 22장, 23장에 다윗이 무슨 기능을 발휘한다고 했습니까? 전쟁기능이죠. 사무엘하 22장 3절에 보면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하나님은 이 땅을 상대로 전쟁하고 있는 중이라는 겁니다. 심지어 아브라함에게 나타났을 때도 아브라함이 나의 방패라고 하죠. 방패라고 하는 것은 전쟁할 때에요. 나의 구원자다. 방패는 뭐냐 수비용이죠. 나의 반석이요 그 다음에 피난처요

그래서 구원이라는 말이 너무 흔하니까 고치겠습니다. 구출이라는 말은 전쟁 중에 구출. 하나님이 땅을 상대로 벌이는 그 전쟁에서 하나님의 언약으로 인하여 이 땅의 세계에서 하늘의 세계로 구출당하는 그 일을 누가 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다. 그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 힘으로 믿을 수가 없어요.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고 평정된 세계에서 습관적으로 그만 이 세상에 길들여 살기 때문에. 악마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①우리에게 율법을 주심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이 죄에 대해서, 율법이 요구하는, 하나님이 요구하는 그 시험문제에 정답을 내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닌 것을 자각하게 만들어요. 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이 요구하는 그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구나. 그걸 절감해서 구원과 구출의 의식을 유발시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②사도바울에게서 나오는 모든 명령과 지시는 어디서 나오는가. 십자가복음에서 나왔어요. 십자가복음에서 나온 명령과 지시기 때문에 사도바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은 어떤 경우냐 하면은 십자가 지신 그 능력이 아니면 못 지키는 거예요. 지킬 수가 없어요.

남편 된 자들아 아내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라. 미쳤어요. 인생의 의미가 어디 아내한테 순교하려고 인생의 의미를 줬습니까? 아내에게 충성봉사하고 아내를 사랑한다. 그런 노래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런 노래들을 조사해보면 그런 노래들이 많아요. 어떤 노래는 이런 게 있어요. 곤히 잠든 아내가 젊을 때는 그렇게 예뻤는데 쏙 빠진 것을 얼굴을 보고 눈물 흘리면서 다시는, 모자 쓴 가수 김정수의 당신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다시는 너를 안 괴롭힐게. 내가 괴롭혀서 고왔던 손이 뭐냐. 다 내 잘못이라 이렇게 하거든요.

그렇게 남편이 아내에게 충성하는 것은 일단 남편이 할 일이 없다. 퇴직했다는 가능성이 많아요. 일할게 많은데 지금 아내 얼굴 살필 겨를이 어디에 있습니까? 퇴직을 했거나 능력이 없어가지고 다른 여자를 볼 겨를이 없거나. 돈 떨어지지 인물 벌써 다 날아가 버렸지. 이제는 죽으나 사나 강아지처럼 아내한테 붙어있어야 그래도 밥이라도 한 끼 챙겨먹는다. 두 끼는 자기가 하고 한 끼라도 챙겨 먹는다. 그 계산이 서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목숨을 바치는 것이 아니고, 아내에게 끝까지 충성하는 것이 아니고, 끝까지 이용하는 거예요.

이게 뭐냐, 내 권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게 바로 등장했던 인물들이잖아요. 전부 다. 어떻게 내가 나다움을 유지할 수 있느냐. 견지할 수 있느냐. 그게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피할 수가 없습니다. ③그래서 선지자는 뭐냐 하면은 이 땅 전체가 피할 곳이 없도록 전쟁마당으로 만들어버려요. 사무엘하 22장 하나님의 예언이니까 무지무지하게 길어요. 그 긴 내용을 한 마디로 말해서 땅을 향하여 전쟁을 일으켜서 거기서 전리품으로 내가 빼낸다. 그 작업입니다. 창세기 14장을 한번 봅시다. 창세기 14장을 보게 되면 성경 전체가 마치 참새가 전선줄에 앉아있는 것처럼 일관되게 다 통하는 게 있어요. 통하는 게.

창세기 14장을 보게 되면 여기 아브라함이 318명의 사병을 가지고 동맹한 자들과 연합군을 만들어 이겼잖아요. 이기고 난 뒤에 17절을 보게 되면 “아브람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한 왕들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사웨 골짜기 곧 왕곡에 나와 그를 영접하였고” 18절,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19절,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그러니까 이 살렘 왕 멜기세덱을 만나는 이 경우가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고, 아브람은 왜 십일조를 왜 드렸냐 이 말입니다. 그것은 20절에 나옵니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다시 말해서 이 적이 나의 적이 아니고, 내 위주로 나를 지키고자 위한 전쟁이 아니었고, 그냥 말려든 것이고. 이 전쟁은 이 지상에 하나님의 흔적을 가진 예루살렘의 왕 멜기세덱의 그 가치와 하실 일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지상에다가 지점을 만들어서 지상에서 악마와 싸움을 하는 그 일에 아브라함이 참여가 된 겁니다. 그 전리품이 뭐냐 떡과 포도주였습니다.

④아브라함 본인 자체가 멜기세덱이 싸우는 전쟁에 자기가 하나의 전리품으로서 악마로부터, 악마의 손에서, 이 땅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난 겁니다. 그래서 ⑤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이 몸의 남은 인생은 제 것이 아니고 바로 당신이 승리한 열매에 불과합니다.” 하고 기꺼이 십일조를 드린 거예요. 십일조를 드린다는 말은 우리 관계가 십일조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겁니다. 계속해서 나는 사나 죽으나 나의 것이 아니고 주의 것입니다. 로마서 4장 8절을 본격화시키는 겁니다.

그 예루살렘과 멜기세덱 그리고 언약궤가 왔을 때, 그럼 언약궤가 어디에 있을 때냐, 사무엘하 마지막에 봅시다. 드디어 이제 마지막에 다윗이 3항조, 3항조 말 자체가 어렵죠. 16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곁에 있는지라” 17절,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 나는 범죄 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 이 양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자기가 피의 복수자, 언약이 언약대로 실행되는데 제가 기꺼이 희생자가 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그 다음에 아라우나에게 자기 돈으로 값을 다 치러서 값을 주고 거기서 하나님께 단을 쌓아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기도를 들으시며 이스라엘에게 내린 재앙을 그쳤더라. 여기서 사무엘하가 끝납니다. 그러니까 재앙이 마땅히 주어지는 땅이 이스라엘이고 이스라엘이 재앙을 받아도 싼대 뭔가 다른 민족에게 없는 요소가 이스라엘 속에 함께 같이 공존하고 있더라는 겁니다.

그게 누구냐, 다윗이 아니고 다윗언약이에요. 왜? 다윗은 죽어도 다윗언약은 살아나야 되니까. 다윗언약이 이루었던 그 본질이 약간 다윗 시대에 다윗이라는 이름으로 잠시 증상을 보인 것 뿐이에요. 오늘날 우리 시대가 십자가의 증상을 보이는 기능을 우리가 맡은 것처럼. 성령을 통해서. 다윗입장이나 오늘날 우리 입장이나 마찬가지에요.

사도행전 2장 보겠습니다. 마지막 끝내면서 전체를 쭉 훑어보면 좋겠죠. 여기 사도행전 2장 27절에 보면 베드로가 설교를 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참 이런 게 어려워요. 25절에 보면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이 시편 16편은 누가 썼느냐 하면은 다윗의 고백이에요. 그런데 베드로는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게 다윗으로 보이느냐? 아니다. 다윗언약으로 봐야 된다. 다윗언약의 주인공은 다윗이 아니다. 다윗언약인데 다윗이 주인공이 아니면 누구냐? 예수님이 주인공이 되어서, 미리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것을 나중에 나타내고, 미리 숨겨서 그 다윗시대에 성령을 보내가지고 예수님 자신을 나타냈다. 그 시대에 예수님을 고백했다. 이래 보는 거예요. 그 고백이 뭐냐 하면은 예수님 자기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나는 죽어도 썩지 않는다. 이거거든요.

나는 죽어도 썩지 않으면, ⑥시편의 저자가 다윗이 안 되려면 다윗은 필히 썩어야 됩니까? 썩지 않아야 됩니까? 마지막 질문입니다. 썩어야 되죠. 우리는 죽어야 돼요? 살아야 돼요? 우리는 죽어야 돼요. 죄인은 죽어야 돼요. 죽는 이것이 바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간증입니다. “나는 죽는다. 와! 기분이 왜 이리 좋은지 몰라.” 이게 사망으로 옮겼던 자들의 특징이에요. 특징. 그래서 지금 늙은 냄새나고 늙은 색깔이 나오고 하는 거예요. 그거는 언약대로 마땅한 겁니다. 나이 먹는다고 그걸 너무 서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이고, 옛날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야. 왜 떠는지 모르겠어. 기억이 다 떨어졌어.” 그거는 자아가 만든 환상이에요.

이거는 멀찍이 아직도 권력을 쥐고 있는 겁니다. 여기 등장인물들하고 똑같아요. 등장인물들 많았죠. 그것과 마찬가지에요. 그들이 결국은 다 소멸되고 남는 것은 다윗은 왕으로 옹립되었다. 하지만 그 다윗마저 주인공이 아니었고 다윗언약이 주인공이었다. 그래서 ⑦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내가 너와 영원히 함께 하겠다는 것을 다윗이 아니고 네 후손에게 영원히 함께 하겠다고 한 거예요. 그 후손이 누구냐, 로마서 1장 1절에서 4절로 보면 바로 예수님이 복음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주인공이 되는 겁니다. 성경 전체가 누구 이야기냐, 예수님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로마서 1장
1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절,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절,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사무엘하를 보면서 오늘날 우리 모습하고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들 남과 비교하지 말고 늘 예수님과 비교하면서 예수님께 감사하면서 율법세계 안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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