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숙경

복음의 대칭성

아빠와 함께 2020. 8. 8. 09:20

title : The Nature of Symmetry in The Gospel 복음의 대칭성
preacher : pastor Lee Geunho
text : Philippians 3:13-14
date : August 2, 2020
13.Brothers, I do not consider myself yet to have taken hold of it. But one thing I do: Forgetting what is behind and straining toward what is ahead, 14.I press on toward the goal to win the prize for which God has called me heavenward in Christ Jesus

SUMMARY

The Lord condemn those thrown into hell as 'the arrogant'. This is because they want to be at the top of the world, where no one has been interfered. This suggests that humans ultimately want to be the transcendental being alone. They want the world to move the way they want it to, and for that, they are ready to put mental pressure on the world or even memorize spells in the name of the god they believe in. 주님은 지옥에 던져지는 사람들을 ‘교만한 자들‘로 정죄하신다. 이는 그들이 그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은 곳, 세상을 내려다보는 정상의 자리에 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신이 홀로 초월자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그들은 세상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기를 원하고 이를 위해서라면 세상에 정신적인 압력을 가하거나 자신들이 믿는 신의 이름으로 기꺼이 주문까지도 외울 준비가 되어있다.

No matter how gentle and low-minded he is, he cannot escape the Lord's judgement of his being arrogant as long as he is struggling to grasp his own goals and achieve them with his own abilities. 이런 자세를 가지고 자신이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부여잡고 자신의 능력으로 이를 성취해보겠다고 고군분투하는 한 그가 아무리 온유하고 낮은 마음을 가졌다하더라도 그는 교만하다는 주님의 판결에서 벗어날 수 없다.

On the other hand, the apostle Paul, caught by the Holy Spirit as a sample of the saints, intervenes in the Lord's work in a way that denies himself, not by acknowledging himself : "Not that I have already obtained all this, or have already been made perfect.” “I do not consider myself yet to have taken hold of it” “I do not consider myself yet to have taken hold of it” "I forget what is behind" 반면에 성도의 샘플이 되는 성령께 붙잡힌 자,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을 인정함으로써가 아니라 자기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주님의 일에 개입 된다 :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To let go of and forget about the past achievements he has achieved means to let go of his accumulated power. The reason the apostle was able to do so, he said in Philippians 2:13: “It is God who works in you to will and to act according to his good purpose.” 그가 자신이 성취한 과거의 업적을 놓아버리고 잊어버린다는 것은 자신이 비축한 힘을 놓아버린다는 말이다. 사도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를 그는 빌립보서 2장 13절에서 이렇게 밝혔다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This is in line with what Jesus said : "I am the vine; you are the branches. If a man remains in me and I in him, he will bear much fruit; apart from me you can do nothing(John 15:5).” 이것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도 일맥상통 한다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In the saints is the Spirit of the Lord who is the Other that has infiltrated without asking their permission. After all, two different selves coexist in them. The Other who is the Spirit of God repeats the work which breaks to pieces and crushes the existing self that creates its own territory(Matthew 21:44). The Spirit of the Lord says ; “You yourself have no life, no cross, no resurrection, no ascension and no Second Coming” 성도 안에는 그들의 허락을 구하지 않고 침투한 타자이신 주의 영이 계신다. 결국 그들 안에는 별 다른 두 자아가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타자이신 주의 영은 자체적으로 자신의 고유영역을 조성하는 기존의 자아를 가루로 만들어 흩어버리는 일을 반복 하신다(마21:44). 주의 영은 말씀 하신다 : “너 자신에게는 생명도 없고 십자가도 없고 부활도 없고 승천도 없고 재림도 없다”

The most notable thing here is that ‘you have no cross’. This means that humans have no way and truth and life to connect to heaven. Therefore, it is only an illusion that human beings will enter the kingdom of heaven with their own faith, and their own efforts.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십자가가 없다’라는 사실이다. 이 말은 천국과 통하는 길과 진리와 생명은 인간에게는 없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인간이 자기의 믿음과 자기의 노력과 자기의 수고로 천국에 입성하겠다고 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This human the nature of incompetence makes it possible to regard humans as a kind of inorganic matter. Although breathing and moving physiologically, all human activities are only the struggle of the "delayed inorganic matter" that are soon converted into inorganic matter. Humans love only themselves throughout their lives, judge others and situations according to their own standards, and struggle to survive somehow while attributing all meaning to themselves. Therefore, the ultimate temptation of man was himself. They are living their whole life in love with only themselves. However, the determined death overcomes the nature of organic matter which tries to survive, and its witheredness destroys the will of life.이 같은 인간의 무능성은 인간을 일종의 무기물로 간주할 수 있게 한다. 비록 생리적으로 호흡하고 움직이지만 인간의 모든 활동은 곧 무기물로 전환되도록 확정지어진 ‘지연된 무기물’의 발악일 뿐이다. 인간은 평생을 자기만을 사랑하며 자기 잣대로 타인과 상황을 판단하고 자기에게로 모든 의미를 귀속시키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친다. 따라서 인간의 궁극적인 유혹거리는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자기가 자기에게 반하면서 평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확정된 죽음은 살아남고자 하는 유기물의 본성을 이겨버리고 쇠퇴함이 삶의 의욕을 꺾어버린다.

However, once this delayed inorganic matter (human) is held by the Holy Spirit, he takes it to the cross, which splits his interior and reveals two symmetrical sides like the cross section of an ore. One side shows the nature of the perpetrator of the cross, and the other side shows the victim of the perpetrator. 그러나 이 지연된 무기물(인간)이 일단 성령께 붙들리게 되면 그는 십자가로 데려가지고, 그 십자가는 그의 내부를 쪼개어 광석의 단면과 같은 대칭하는 두개의 면을 드러낸다. 그 한 쪽은 십자가의 가해자의 성질을 보여주고 나머지 한 쪽은 그 가해자를 위해 희생하는 희생자의 모습을 드러낸다.

The Holy Spirit fulfills Revelation 22:17 to those whose insides have been thus split : “The Spirit and the bride say, "Come!" And let him who hears say, "Come!" Whoever is thirsty, let him come; and whoever wishes, let him take the free gift of the water of life.” 성령은 이처럼 그들의 내부가 갈라진 이들에게 요한계시록 22:17을 성취 시킨다 :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In today's text, the apostle Paul confesses that he is moving toward the goal, and his goal is something that shows God's final decision : “He says to Moses, ‘I will have mercy on whom I have mercy, and I will have compassion on whom I have compassion(Romans 9:15)’".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푯대를 향하여 나아간다고 고백하는데 그의 푯대는 하나님의 최종 결정을 보여주는 어떤 것이다 :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롬9:15)”

What God has decided and prophesied is applied to the saints according to plan, so that they will be given 'the free gift(salvation) of the water of life'. 하나님이 결정하시고 예언하신 것은 차질 없이 성도에게 적용이 되어서 ‘값없이 생명수(구원)’가 주어지게 되는 것이다.

In the Old Testament, there are many events unfolding like a panorama that show how the self-awareness of the saints changes from organic matter to inorganic matter, and how dead people gain life and become people of heaven. An example of it is the story of the woman in Shunem recorded in 2 Kings 4:8-37. In fact, it can be said that the entire history of Old Testament Israel is compressed in the saints. 구약 성경에는 성도의 자기 인식이 어떻게 유기물에서 무기물로 바뀌게 되며, 죽어있던 자들이 어떻게 생명을 얻어 천국 백성이 되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는 많은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그것의 한 실례가 열왕기하 4:8-37에 기록된 수넴 여인의 이야기이다. 사실 성도 안에는 구약 이스라엘 전체 역사가 압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She served the prophet Elisha with sincerity, but it was revealed that it was a service for herself, maintained at a reasonable distance from Elisha and herself when the prophecy given to her worked. One day, the prophet Elisha's prophecy that she will have a son at this time next year unexpectedly happened to break into her home. 그녀는 엘리사 선지자를 성의를 다하여 섬겼지만 그것은 엘리사와 그녀 자신과의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 행하는 그녀 자신을 위한 섬김이었다는 것이 그녀에게 주어진 예언이 작동하자 드러났다. 어느 날 ‘내년 이맘때 아들을 낳으리라’는 엘리사 선지자의 예언이 예기치 않게 그녀의 가정에 침투하는 일이 벌어졌다.

As the prophet predicted, a son was born in that family. But the problem is that within a few years, God kills this little son. Then she resents against Elisha, revealing strong hostility to the prophecy given to her; “When did we ask for a son? Why do you now bother us by killing that son?” 과연 선지가 예언한대로 그 가정에 아들이 출생했다. 그런데 문제는 몇 년이 지나지 않아 하나님께서 이 어린 아들을 죽여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자 그녀는 엘리사를 향하여 원망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졌던 그 예언에 대해 강력하게 적개심을 드러낸다 ; “언제 우리가 아들 달라고 하더냐? 왜 이제 와서 그 아들을 죽임으로써 우리를 괴롭게 하느냐?”

What this event shows is that the fulfillment of God's prophecy is not for the existing self of the woman in Shunem . Rather, it reveals the intent of her good deeds that were subtly hidden, and makes her realize that her courtesy, morality, and righteousness shown to Elisha have motivated her to resent against God's prophecy and to dishonor God's prophecy. This is the two symmetrical incisions generated inside her, split by the prophecy of God that penetrated the woman; No matter how righteous and reverent outwardly her good deeds may seem, there is a force inside her that eventually resists and opposes Jesus. 이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의 예언 성취는 수넴 여인의 기존의 자아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오히려 교묘하게 감추어져 있었던 그녀의 선행의 저의를 드러내고 엘리사에게 보여주었던 그녀의 호의와 도덕성과 의로움은 하나님의 예언에 반발하고 하나님의 예언을 욕보이는 동기가 되었다는 것을 그녀로 하여금 깨닫게 한다. 이것은 그 여인에게 침투한 하나님의 예언에 의해 쪼개어진 그녀 내부에 발생된 대칭하는 두 개의 절개면인 것이다 ; 그녀의 선행이 외적으로 아무리 의로워 보이고 경건해 보인다 할지라도 그녀의 내부에는 결국 예수님에게 반발하고 대적하는 세력이 있었던 것이다.

In the Old Testament, God's prophecy did this, and in the New Testament the Holy Spirit-the power of resurrection- does repeatably this in the saints. Those who speak against and rebel against the Holy Spirit and reject the Holy Spirit's statement which reveals that Jesus' death on the cross is a murder caused by humans' will to be saved and self-righteousness are not forgiven, either in this age or in the age to come.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예언이 이 일을 했고 신약에서는 성령–부활의 권능-께서 성도 안에서 반복적으로 이 일을 행하신다. 한편,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인간들의 구원의지와 자기 의로움이 초래한 살인행위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성령을 훼방하고 그 성령의 진술에 대해 반발하고 거부하는 그러한 자들은 영원히 오는 세대에도 용서받지 못한다.

Jesus said clearly about this in Matthew 12:31-32 : “And so I tell you, every sin and blasphemy will be forgiven men, but the blasphemy against the Spirit will not be forgiven. Anyone who speaks a word against the Son of Man will be forgiven, but anyone who speaks against the Holy Spirit will not be forgiven, either in this age or in the age to come.” 예수님은 마12:31-32에서 이것에 대해 밝히 말씀하셨다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Like this, God's prophecy (power of Jesus' resurrection) leads the saints repeatedly to the events informing that all salvation decisions do not belong to the saved person, but belong to God in the first place. 이처럼 하나님의 예언(부활의 권능)은 모든 구원결정이 구원받은 당사자에게 있지 않고 애초에 하나님께 속했음을 알리는 사건으로 성도들을 반복적으로 이끄시는 것이다.

 

이근호    인간에게는 십자가도 없고 부활도 없고 재림이 없다. 그럼에도 인간들이 기죽지 않고 큰 소리치고 설치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아파트가 있고 가족이있고 차량이 있고 팬들이 있고  권력이 있고 부동산과 현찰과 건강이 있어 아쉽지 않다. 아쉽지 않은 채로 피 용서가 없는 지옥에 집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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