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숙경

그러나

아빠와 함께 2020. 7. 17. 14:11

title : “But” 그러나
preacher : pastor Lee Geunho
text : Philippians 3:7
date : July 14, 2020

“But whatever was to my profit I now consider loss for the sake of Christ(3:7)”

Summary


The apostle Paul's confession, “But whatever was to my profit I now consider loss for the sake of Christ” may sound like his personal opinion, but since anyone who has met Christ will make the same confession, It is the revelation of God. It is clear, therefore, that the apostle's confession in today's text is not of such nature that can be derived from human determination.”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긴다.”라고 하는 사도 바울의 고백은 그의 개인적인 견해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와 동일한 고백을 하게 되기에 이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계시가 된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도의 고백은 인간의 각오에서 도출될 수 있는 그러한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분명하다.

As Saul did before meeting Jesus, whoever has no encounter with Christ, lives for his own sake, and his life moves in a way that enhances his self-esteem. This propensity of man belongs to the human nature that drives man to hell. Humans cannot act against their own nature, nor can they forsake their own nature with their own power. Therefore, the Lord dismissed all attempts of man and of man by saying, "With man this is impossible, but with God all things are possible(Mat. 19:26)."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사울이 그러했듯이 그리스도와의 조우가 없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오직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살며, 자신의 자긍심을 고양시키는 방향으로 그의 삶이 움직인다. 인간의 이런 성향은 인간을 지옥으로 몰아가는 인간의 본성에 속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거슬러 행할 수 없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이와 같은 자신들의 본성을 저버릴 수도 없다. 그러므로 주님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19:26)”라는 말씀으로 인간과 인간의 여하한의 모든 시도를 일축하셨다.

Humans are willing to take it in their own possession for their own benefit if the news that Jesus died and resurrected on the cross is judged to be "any good thing" that benefits them. But the Gospel, contrary to human expectations, defines all attempts for "my benefit" as defaming Jesus. In today's world, where science seems to be the final truth on behalf of religion, science does its best for its purpose of existence. Science cries out like this. : "Save your life somehow!" 인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소식마저도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어떤 좋은(선한) 것’이라고 판단이 된다면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기꺼이 그것을 자신의 소유로 취하고자 한다. 그러나 복음은 인간의 예상과는 달리 ‘나의 유익’을 위한 일체의 모든 시도는 예수님을 모독하는 일로 규정짓는다. 과학이 종교를 대신하는 최종 진리인 것처럼 여겨지는 오늘날의 세상에서 과학은 그 존재 목적에 최선을 다한다. 과학은 이렇게 외친다. : “네 목숨을 어떻게든 보존하라!”

Jesus, on the other hand, says, "I tell you the truth, unless you eat the flesh of the Son of Man and drink his blood, you have no life in you(John 6:53).” This has the following meaning. : The existing life (old self) that man does not want to lose, which has not been replaced by the life of the Lord, is not a true life, and the struggle of man not to lose it drives him to hell. Therefore, the life that God seeks to find in human beings is not the existing one, but the life of Jesus. 반면에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6:53)”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 주님의 생명으로 교체되지 않은, 인간이 그처럼 놓치지 않으려고 붙드는 기존의 생명(옛사람)은 참된 생명이 아니며 그것을 잃지 않으려는 인간의 몸부림은 사람을 지옥으로 몰아간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 안에서 찾고자 하시는 생명은 기존의 생명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이다.

The way Jesus feeds his people with his flesh and drinks his blood is done by revealing to them the reality of their lives and pride that they want to keep. Jesus reveals that the human desire and struggle to protect his possessions is an act against God. This is why the apostle Paul confesses, "whatever was to my profit I now consider loss for the sake of Christ.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자신의 살을 먹이시고 자신의 피를 마시게 하시는 방식은 인간들에게서 그들이 기어이 지키고 싶어 하는 자신의 목숨과 자존심의 실체를 드러냄으로써 행해진다. 예수님은 자기 소유를 지키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와 분투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임을 폭로시키신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긴 다”고 고백하는 이유이다.

Therefore, what God does to replace the existing life with the life of Jesus is to infiltrate the cross into the territory that man wants to cherish most and hurt it. In other words, it's more painful and disappointing for him than losing his life. Then The blood that Jesus shed on the cross is collected there and as a result, the traces of Jesus' cross remain with him. 따라서 하나님께서 기존의 생명을 예수님의 생명으로 교체시키기 위해서 하시는 일은 인간이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어 하는 그 영역으로 십자가를 침투시켜서 거기에 상처를 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 아프고 자신에게 실망스런 일을 그에게 발생시키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거기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가 고이게 되고 그 결과 예수님의 십자가의 흔적이 남는다.

It is here that God intended Noah to build the ark and sent him there. In the world where the Ark was not needed at all, Noah had to make the Ark and finally was sent into it. The ark into which Noah entered was not the realm of the earth.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게 하시고 거기에 그를 들여보내신 의도도 여기에 있다. 방주가 전혀 필요치 않다고 여기는 세상에서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며 노아는 방주를 만들어야 했고 마침내 그 방주로 들여보내졌다. 노아가 들어간 방주는 땅(세상)의 영역이 아니었던 것이다.

Noah was supposed to meet in with 'the death of an animal without defect there. The encounter becomes the mode of existence of the person in the ark. Being in the ark means being in Jesus. The way to heaven is not by stepping on the stairs, but by being carried on an elevator called Jesus. 노아는 거기서 ‘흠없는 짐승의 죽음’을 만나도록 되어있었다. 그 만남은 방주 안에 있는 자의 존재양식이 된다. 방주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 있다는 말이다. 천국으로 가는 방식은 계단을 밟듯 밟아서 힘겹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엘리베이터에 실려서 옮겨지는 방식이다.

Therefore, those who are taken into this elevator by the Holy Spirit are put before the following law (Words) : "Do not think that I have come to abolish the Law or the Prophets; I have not come to abolish them but to fulfill them(Mat.5:17).”

"Settle matters quickly with your adversary who is taking you to court. Do it while you are still with him on the way, or he may hand you over to the judge, and the judge may hand you over to the officer, and you may be thrown into prison. I tell you the truth, you will not get out until you have paid the last penny(Mat. 5:25-26).”

“If anyone does not love the Lord--a curse be on him(1 Cor.16:22).”

그러므로 성령에 의해서 이 엘리베이터에 태워진 자들은 다음과 같은 율법(말씀) 앞에 세워진다. :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마5:17)”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주고 재판관이 관예에게 내어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마 5:25-26)”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전16:22)”

Those who board the Lord's elevator are to be sued in advance on the day before being put before the judgment of God on the last day for failing to abide by the law by this law. But it is informed to the saints that because they did not love God, but only because God loved them and sent his Son as an atoning sacrifice for their sins(1 John 4:10), the charges written against them were rejected and having canceled(Gol. 2:14). Therefore, the saints have no choice but to confess like this. : "All I can boast of is not my deeds or my zeal for God or my being righteousness, but only the miracles that the Lord has done to me." 주님의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자들은 이 같은 율법(말씀)에 의해서 그 법을 지키지 못한 일에 대해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세워지기 전에 그날에 당할 고소를 미리 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기 때문에 (요일 4:10)그 사실로 인해 그들을 거스리고 그들을 대적하는 의문에 쓴 고소장이 기각당하고 제해졌다고 하는 사실이 알려진다(골2:14). 그러므로 성도는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다. : “내가 자랑할 있는 것은 나의 행함이나 하나님에 대한 나의 열심이나 나의 옳음이 아니라 주께서 내게 행하신 주님의 기적뿐입니다.”

These miracles make the saints not those who follow the commands of the world's power, but those who follow only the word of the Lord. They do not think of using Jesus to benefit themselves, but only pay attention to "Jesus is here" and listen to the Lord's instructions. The saints were willing to trade their lives for the blood of Jesus, who proved that their salvation was complete. For them, therefore, the turning point in their lives, "However," which has come to regard anything that has been beneficial to them like Paul the apostle as all harm for Christ. 이 기적이 성도로 하여금 세상 권세의 지시를 따르는 자들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만 따르는 자들이 되게 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이용하여 자기의 유익을 취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예수님께서 여기 계심’에만 주목하고 주님의 지시에만 귀를 기울인다. 성도는 그들의 목숨을 구원이 완성되었음을 증거 하는 예수님의 피와 자기의 목숨을 기꺼이 맞바꾼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사도 바울처럼 무엇이든지 자신에게 유익하게 여겼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기게 된 “그러나”라고 하는 전환점이 그들의 인생에 찍힌 자들이다.

 

이근호 ----'나  있음'이 곧 '예수님 있음을 공격하는 상황'됨을 알게 된 사도는 율법이 주어진 이유를 알았다. 사랑이란 이처럼 '나의 토대'를 상실한 자의 입에서만 고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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