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The Air Layer of The Holy Spirit 성령의 공기층
preacher : pastor Lee Geunho
text : Philippians 3:15-16
date : August 9, 2020
15.All of us who are mature should take such a view of things. And if on some point you think differently, that too God will make clear to you. 16.Only let us live up to what we have already attained. (3: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3: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SUMMARY
The world of “those who are mature(perfect)” is the world of those who transcend time and themselves. The time of the members of this world is given on the basis of the already ended and completed future. In this world, there is no meaning for their own conduct and progress of time. Because time just stays stopped due to the work that the king and the Lord of them had already achieved “at once and for all”. Here, in order to reveal and raise the merit of their Lord, the meaning of their own existence is given only as being involved in events where the meaning of their own existence is denied. ‘온전히 이룬 자들’의 세계란 시간과 자기 자신을 초월한 자들의 세계이다. 이 세계의 구성원들의 시간은 이미 마감되고 완성된 미래를 근거로 부여된 다. 이 세계에서는 구성원들 자신의 수행이나 자신들의 자체적인 시간진행이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왕과 주께서 이미 ‘단번에 영원히’ 달성한 그 일로 말미암아 그들의 자체적인 시간의 진행은 정지되어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그들의 주님의 공로를 드러내고 높이기 위해 그들 자신들의 의미는 부정되는 사건에 연루되는 것으로만 그들의 존재의 의미가 부여된다.
Therefore, the members of this place only think about what the present time has been given and for whom the present situation has been provided to them. This is the meaning of the apostle Paul's saying,'Only let us live up to what we have already attained.' These are the ones who enjoy the effects of the “being made perfect forever(Hebrews 10:14)” achieved through the sacrifice of their Lord. Therefore, they are not concerned about tomorrow, nor do they think that their struggles can change their tomorrow. They also do not abuse others as materials for their own good. 그러므로 이곳의 구성원들은 무엇을 위하여 현재의 시간이 주어졌으며 누구를 위하여 현재의 상황이 자신에게 제공되었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말한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의 의미이다. 이들은 그들의 주께서 희생제물 되심으로 말미암아 성취된 ‘영원히 온전케 됨(히10:14)’의 효력을 누리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고군분투가 내일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또한 타인을 자신의 유익을 위한 재료로 악용하지도 않는다.
The apostle Paul, who serves as an example for those who are mature, is led by a future(the Lord's fulfillment) that has already been closed to him regardless of his expectations and will, so his own expectations are frustrated in everyday life and his own strength is lost. But in such circumstances, he doesn't complain or make any assessment of himself. He rather accepts everything that happens to him as appropriate for God's eyes. 온전히 이룬 자들의 본보기가 되는 사도 바울은 자신의 기대와 뜻과 상관없이 자신에게 이미 종결된 미래(주님의 다 이루심)에 의해 이끌려가기에 매일의 삶 속에서 그 자신의 기대는 좌절되고 그 자신의 힘은 빠져나가게 되는 일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상황가운데서 그는 불평하거나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해 그 어떤 평가도 내리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을 하나님 보시기에 적절한 상태로 받아들인다.
In today's text, the apostle says, “if on some point you think differently, that too God will make clear to you”. This means that everything that has happened to the saints is conferred by the Lord, regardless of their own understanding and evaluation. It is also recorded in John 3:21 that "But whoever lives by the truth comes into the light, so that it may be seen plainly that what he has done has been done through God." These words make it clear that they themselves do not take the initiative of their lives, but that the Lord does. 오늘 본문에서 사도는 성도가 ‘달리 생각하는 어떤 일’이 있을지라도 그것마저도 ‘하나님이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고 말한다. 이것은 성도에게 벌어진 모든 일이 그들 자신의 이해와 평가와 상관없이 주님에 의해 부여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성도들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 안에서 행한 행위라는 것이 요한복음 3:21에도 기록되어 있다 ;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요3:21). 이 말씀들은 그들의 삶의 주도권을 그들 자신이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한다.
Meanwhile, the reason why distrusters cannot think like this is because they live with human wisdom (philosophy) that they can see with their own eyes and hear with their own ears and think with their own hearts. This wisdom of the world interrupts the true wisdom-the cross-the mystery hidden in the deepest part of God's heart. Humans exclude the covenant, crosses, and the Holy Spirit based on knowledge of the self-centered good and evil that the devil has put into them, and present the starting and reference points of all judgments as themselves. Therefore, they only live in the world by their survival instinct and pride. But from the saints, something that transcends this survival instinct, that is 'denying themselves' -the cross- comes out. 한편 불신자들이 이렇게 생각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은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귀로 들을 수 있고 자신의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의 지혜(철학)로 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상 지혜는 하나님의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감추어진 비밀인 참된 지혜-십자가-를 훼방한다. 인간은 악마가 넣어준 자기중심적인 선악을 아는 지식에 따라 언약과 십자가와 성령을 배제해버리고 모든 판단의 시작점과 기준점을 자기 자신으로 내세운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오직 생존본능과 자존심으로 세상을 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성도에게서는 이 생존본능을 초월하는 그 어떤 것, 곧 자기부정(십자가)이 나온다.
“For you died, and your life is now hidden with Christ in God(Col. 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골3:3)”
Since the saints also have bodies, they are already dead, but the Holy Spirit makes the flesh of the saints the space for the covenant to work and makes this empty space a gap in heaven. This special space is an area that cannot be observed or interpreted by people, and it is an area that human choice cannot reach. In other words, this place can be said to be a kind of buffer zone created by the Holy Spirit between heaven and earth. 성도들 또한 육신을 갖고 있기에 그들도 이미 죽은 자들이지만 성령께서는 성도의 육을 언약이 작용하는 빈 공간으로 삼으시고 이곳을 천국의 틈이 되게 하신다. 이 특수한 공간은 사람들에 의해 관찰될 수도 해석될 수도 없는 영역이며 더구나 이곳은 인간의 선택이 미칠 수 없는 영역이다. 달리 말하면 이곳은 성령께서 하늘과 땅과 사이에 만드신 일종의 완충지대라고 할 수 있다.
In addition, here, the plan (covenant) and the will established between the Father and the Son before the creation of the world and concept that transcends the meaning and understanding of humans rises and falls between this place and heaven, as if cereal in milk rises and falls on the surface of milk. In this space, individual time progress, individual history is meaningless.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는 창세전에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성립된 된 계획(언약)과 뜻과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개념이 마치 우유 속에 든 시리얼이 우유 수면 위를 오르내리는 것처럼 이곳과 천국 사이를 오르내린다. 이 공간 안에서는 개별적인 시간의 진행, 개인의 역사는 무의미하다.
Because of this, the saints cannot regard themselves as fixed entities. Their hearts are in the hands of the Lord, and they flow in this and that direction in accordance with the Lord’s pleasure and will, like a watercourse, but externally, like the deacon Stephen and apostles, the act of regarding themselves as being dead comes from them. This attitude of the saints makes those who regard themselves as alive or those armed with the pride of the devil unbearable and by being persecuted by these people, the saints rather expose the world as dead. 이 때문에 성도는 자신들을 고정된 실체로 여길 수가 없다. 그들의 마음은 주님의 손안에 있어서 날마다 보의 물처럼 임의로 행하시는 주님의 뜻에 따라 이러저러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지만 대외적으로는 스데반 집사나 사도들처럼 그들에게서는 자신들을 이미 죽은 자로 간주하는 행위가 나온다. 그들의 이런 태도는 자신들을 살았다고 간주하는 자들, 혹은 악마의 자존심으로 무장한 자들을 견딜 수 없게 하고 성도들은 이런 자들에 의해 핍박을 받음으로써 오히려 이 세상이 죽어있음을 폭로시킨다.
"Do not be amazed at this, for a time is coming when all who are in their graves will hear his voice(John 5:2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요 5:28)”
Eventually, all humans are supposed to gather before Jesus' judgment seat and receive His judgment. The saints are those who have been informed of this in advance. Therefore, those who are equipped with the wisdom of the cross, not the wisdom of the rulers of the world, or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have been forever made holy through the sacrifice of the body of Jesus Christ once for all("Heb. 10:10,14), regardless of their actions. Therefore they are those who can regard themselves as a kind of “gas” from the Lord Jesus, the only fixed reality. 결국 모든 인간은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 집결해서 그분의 판결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성도는 이 사실을 미리 통보받은 자들이다. 따라서 세상관원의 지혜가 아닌, 혹은 선악지식이 아닌 십자가로 말미암은 지혜가 탑재되어 있는 자들은 그 자신들의 그 어떤 행위와 상관없이 그들의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미 영원히 ‘온전케 된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유일한 고정된 실체인 주 예수님이 뿜어내는 일종의 ‘가스’로 자신들을 간주할 수 있는 자들이다.
이근호 자기를 넘어서는 의미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인정치 않으려한다. 예수님은 인간들의 모든 지혜를 넘어서버렸다. 성도 본인도 어리둥절하다. 왜 본인이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자’라는 평을 받는지 모른다. 성령께서는 성도의 육신을 세상에 담겼다가 천국에 담겼다가 한다. 세상에 담기게 되면 성도는 절망한다. 그러다가 성도가 천국에 담기게 되면, 자신이 조심스럽게 인생을 살아왔기에 구원된 줄 안다. 위 아래를 오르락거리게 하시면서 성령님은 창세전에 감추어놓은 비밀인 십자가 지혜에 주도권이 있음을 알게 하신다. 따라서 성도가 그 어떤 형편에 있든지 십자가 피가 드러나기에 온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