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강-YouTube강의(극장과 교회)20180905-이 근호 목사
제 249강, 제목은 ‘극장과 교회’입니다. 극장과 교회가 관련성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관객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 이게 관련성이 없는 것이 아니고 오늘날 교회가 이미 극장화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극장은 공연하는 곳이에요. 무대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무대가 마련되어 있으면 사람들은 그걸 관람하죠. 구경꾼이 되는 겁니다. 극장의 특징은 전문가들이 거기서 공연을 하고 아마추어들은 입장료를 지불하고 그들의 공연을 즐깁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아마추어기 때문에 프로가 하는 것에 대해서 권위를 인정해주고, 프로가 하는 그 공연에 대해서 신뢰하면서 자기가 미처 하지 못한 것을 대신 해주는 것에 대해서 박수를 치죠.
예를 들어서 자기는 노래를 잘하고 싶은데 노래를 못하잖아요. 근데 거기에 소향이나 누가 와서 3단 고음을 하게 되면 아마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치죠. 박수를 친다는 말은 “내가 되고 싶은 것을 대신해줘서 고맙습니다.”라는 뜻으로 치는 거예요. 그리고 가정으로 인해 마음이 답답했는데 뮤지컬을 보고 속이 확 풀렸을 때에, 내가 스스로 내가 풀 수 없는 것을 거기서 연기하고 노래하는 사람이 다 풀어주니까, 돈 5만원, 10만원을 내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해주죠.
또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최고의 음악, 최상급의 질을 제공하고자 그런 클래식 음악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걸 수십 년 동안 전공한 사람이 제공해주게 되면 그 음악에 흠뻑 빠집니다. 최고의 양질의 예술에서는, 그래서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하잖아요. 조수미에 대해서. 이거는 마치 신이, 천사가 현존하고 있는 것처럼 느낄 때, 수많은 돈을 아끼지 않죠.
그렇다면 사람 속에 들어온 그런 예술적인 욕망, 또 그런 욕망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종교적인 욕망이 있잖아요. 그러면 종교적인 욕망을 신에게 내가 해서 영광을 돌리고 싶은데, 어떤 전문가들이 대리해줘서 공연하게 되면 카타르시스가 또 확 풀립니다. 그럼 교회예배라고 하는 것은 전담자들이 있을 것이 아닙니까? 전담자가.
그걸 강단이라는 이름의 무대에서 공연을 해요. 큰 교회에서는 공연이 4부 공연, 작은 교회에서는 1부내지 2부 공연이 있죠. 공연하게 되면 약간의 헌금을 내고, 입장료죠. 그리고 박수대신 아멘으로 화답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공연의 효과는 뭐냐 하면 한주 동안 욕심을 부리고, 세상에 대한 집착 그리고 나 잘되기 위한, 자기가 보기에 양심에 거리끼는 일들을 많이 했을 거잖아요. 내 한 몸, 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잘못들을 했습니까?
남들은 모르지만 본인에게는 그 죄책감이 계속해서 누적이 되는 거예요. 누적이 되게 되면 언젠가는 그 죄에 대해서 처벌이 주어진다는 것이 무서운 겁니다. 따라서 신이 보시기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뭔가 니 죄 지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좀 위로해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러면 위로를 누가 하느냐, 위로 전담 전문가들이 해주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뭐냐, 찬양을 원한다. 이 찬양을 전문가들이 내 대신 해주면 좋겠어요.
기도할 때, 나는 말도 더듬고 어설프고 잘 못하는데, 기도 잘 하는 분이 대신 기도해주는 공연을 해주게 되면 대리만족을 해서 뒤에 같이 뭘 붙이는가 하면, 그 기도에 나도 동조한다고 아멘을 붙이면 되죠. 그리고 자기 신앙의 죄책에 대한 고백을 누가 대신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나는 하나님을 이렇게 이해하고, 이렇게 섬기고, 이렇게 나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고 애쓰고 있는 중이고, 비록 세상에 나가서 돈 번다고 바쁘지만, 마음은 늘 주님과 가까이 있다는 말을,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근거해서 누가 내 대신 고백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설교가 되겠죠.
그리고 교회에 대해서 내가 내 사업체가 있고 내 일이 있어서 좀 소홀히 했는데, 교회에 대해서 늘 생각 안 한 것이 아니고 평소에 생각하면서 어떻게 교회에 기여할까? 보태줄까? 라고 생각할 때, 그걸 교회에서 광고시간에 이야기합니다. “우리교회는 선교를 다섯 명 했는데, 지금 선교지에서 병원을 하나 세운답니다. 학교를 세우는데 자금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이 자기의 능력대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게 되면 거기에 대해서 명목을 달아가지고 보태주면 되니까.
그러니까 교회에서 하는 모든 것들이 자기가 연관 지어서 해보니까, 그것은 뭐냐 내가 못하는 것을 대신해서 해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칭찬을 받는 집단을 형성하는데 내가 일원으로 등록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마음속으로 돈 번다고 지었던 모든 죄가, 이런 착한 일로 만회하잖아요. 교회 가서 예배에 참여하는 착한 일. 그리고 목사들이 뭐라고 합니까? “여러분이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쁘게 받습니다.” 이러거든요.
마음속으로 화답하게 되면, 그냥 화답하는 것이 아니고 신령과 진정으로 참여하시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받는다고, 예배라고 하지 말고 공연이라고 합시다. 그 공연시간에 그렇게 하니까 거기에 대해서 아멘으로, 참 아멘이 필요해요. 아멘으로 화답을 한 거예요. 동참을 한 겁니다. 그러면 뭐가 돼버려요? 내 속에 있는 그것이 그걸로 전부 다 해소가 되죠. 하나의 도장을 찍은 것이 돼요. “하나님 오늘도 예배에 참석해서 내 지은 죄를 다 목사님의 축도와 더불어서...,” 다 해소가 된 거죠.
축도의 내용이 뭘까요? 그냥 주시는 거잖아요. “사랑과 평강과 그 은혜가 있을 지어다!” 있을 지어다! 에요. 하나님이 목사를 매개체로 해서 우리한테 준다는 겁니다. 예배에 참석해서 꿀꿀한 마음도 없어지고, 거기다가 공연이 끝났을 때에 듬뿍 복을 받고 가니, 축도니까, 복이라는 복, 복이라는 것을 받고 가니 그 공연을 매주 한 번씩 참석한다는 것, 돈이 별로 들지 않거든요.
또 점심 먹고 가라고 해서 점심까지 챙기면, 그게 또 음식을 통한 교제가 되고, 초대교회처럼 성만찬이 되니까. 이거 뭐 마다할 리가 없죠. 안 바쁜 이상 교회 참석해서 마음속의 정화, 카타르시스가 정화가 되니까요. 신의 이름으로 벌이는 그 연극무대에 동참을 해서 정화가 되니까 그거 뭐 참석할만하다가 되는 겁니다. 자기에게 이득이 되니까.
그래서 극장과 교회의 공통점이 뭐냐 하면 핍박이 없고 우호적이라는 겁니다. 고객만족입니다. 고객위주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걸 또 원하고 있고. 모든 것이 긍정적 마인드를 제공하고. 미래의 그 희망을 만들어서 제공해주고. 어느 것 하나 손해날 일은 전혀 없습니다. 자, 그러면 뭐가 문제냐, 걸림돌이 없죠. 십자가라는 걸림돌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배 참석한 이것이 죄라고 교회에서는 지적질을 안 하죠. 여러분들이 한 헌금과 봉사가 예수님의 권위 앞에서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다는 것, 여러분들이 하는 그것이 여러분이 구원받는데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그러한 이야기는 그 교회라는 이름의 연극단체에서는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냥 지옥에서 마귀가 벌이는 한편의 공연입니다. 이벤트에 참석한 거예요.
진정한 예배는 성령이 와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우리가 원하는 것을 까발릴 때, 그게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고, 바로 그 관계가 교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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