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강-YouTube강의(쟁기)20180821-이 근호 목사
제 246강, 제목은 ‘쟁기’입니다. 누가복음 9장 6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성경에서 쟁기라고 할 때, 그 뒤에 나오는 말은 뒤돌아보지 말라는 겁니다. 쟁기를 잡고 뒤돌아보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그렇게 되어 있죠. 이거는 밭가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죠. 밭가는 일을 하면서, 그 일을 통해서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방향성이 그 자체로 정해졌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과학 하는 일이 직업이 되어 있다. 연구하는 일. 그러면 자기가 그 연구하는 일에 종사하고, 교육받은 것도, 뭐 물리학 박사라면 거기에 평생에 종사를 하게 될 것입니다. 뭐 천박하게 생존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인류를 위해서, 보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 사명감으로 자기의 과학적 지식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을 때, 과연 그 사람이 자기의 전공분야의 일을 하면서 방향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는가를 한번 생각해보라는 겁니다.
사람이 자기의 전공분야의 일을 하게 되면, 반드시 방향이 세상에 모든 것을 투자하고 집착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대해서 미련을 갖고 애착을 갖기 마련이에요. 왜냐하면 세상의 일부, 거기에 자기의 전공분야를 살려서 몰두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뒤돌아보지 말라고 하는 것은 구약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롯의 처와 연관되어서 나오거든요. 그러면 내가 열심을 냈고, 살아온 그 모든 것에 자기의 업적이 남아있다 이 말이죠. 어떤 여자가 시집을 와서 시집살이를 하는데, 시부모 모시고 시할머니까지 모시고 제사까지 드리면서 줄곧 그렇게 살게 되면, 그 시집에서 자기가 발을 못 뺍니다. 자기가 너무나 공들인 시집이고, 고생했던 것이고, 자기의 모든 노고가 거기에 다 남아 있잖아요.
수평적으로 볼 때에,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살아온 역사를 뒤돌아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내가 살아온 현장에 무슨 폭탄을 터트리는가를, 과연 사람들이 생각하겠느냐 이 말입니다. 나를 망치기 위해서, 나를 부정하기 위해서 주께서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불을 내렸다고 했을 때에, 롯의 처가 뒤돌아본 이유를 충분히 우리는 이해합니다.
자기가 살았던 곳이잖아요. 그곳에 천사가 와서 하는 말이, 절대로 니가 살아온 곳을 뒤돌아보지 말라고 하는 말하고 같은 맥락이라 이 말이죠. 롯의 처한테 뒤돌아보지 말라고 하는 말은 니가 살아온 그 모든 기억이 주님께서 뭔가 손대고 있다는 그런 뜻으로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자기 보기에는 열심히 살았어요. 자식 키우고 남편건사하고 시집에 충성하고 대단히 잘났는데, 그걸 뒤돌아보지 말라고 한다면 그럼 어떻게 살라는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쟁기라고 이야기를 할 때에 우리의 치명적인 약점을 건드리는 겁니다. 우리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우리가 아무리 신앙생활 열심히 하려고 해도 우리 힘으로 신앙생활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해주시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방향 때문에 그래요. 인간이 열심히 살고자 하면 계속 길게 꼬리가 늘어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씀 말고 다른 말씀이 있는가? 그 말씀 말고 다른 말씀이 있어요. 그게 골로새서 3장 3절에 위엣 것을 찾으라는 겁니다. 위를 바라보라. 이 두 개를 같이 생각해봅시다. 뒤돌아보지 말고 위를 바라보라는 겁니다. 그러면 “위를 보지 뭐?” 이렇게 하잖아요. 근데 위를 보게 되면 맨홀에 빠지는데요? 위를 보게 되면 전혀 이 세상 사람들과 어울릴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내가 만약에 위를 본다면 나 빼놓고 다 어디를 보느냐 하면, 뒤돌아보기 때문에, 그렇게 땅을 보기 때문에 그래요. 그리고 땅이라고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땅이라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뒤돌아보는 것은 뭐 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보는 것이 아니고, “나는 이렇게 살아왔습니다.”라는 자기 역사를 뒤돌아보게 되어 있습니다. 남의 역사를 뒤돌아볼 필요가 없잖아요. 내가 이렇게 꿋꿋하게, 꾸준하게, 철저하게 제대로 살아왔다는 것을 늘 뒤돌아봐요.
그런데 성경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뒤돌아보지 말고 위를 보라는 겁니다. 그러면 위를 보게 되면 우리한테 어떤 새로운 사실이 알려지게 되느냐 하면, 사실은 우리가 내가 열심히 살아서 인생을 산 게 아니고, 위에 계신 분이 계속 나를 끌어당기죠. 우리의 미래로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에요. 위로 끌어당기죠. 위로. 과거를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미래와 연관해서 더불어 미래를 생각하게 되는데, 그럼 뒤돌아보지 말라고 하면 우리는 미래를 앞으로 보면 되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 미래라는 것도 하루 지나면 다 과거가 돼요.
위에서 위를 보라는 말은, 너한테 주어진 모든 일이 너를 구원하고자 하는 위에 계신 주님의 일과 관련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제가 대구강의에서 그랬는데,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1이 아니고 2가 되면서 그게 바로 신앙생활이라고 했죠. 예수님께서 우리를, 자기가 있는 하늘나라 쪽으로 잡아당기면서 오늘을 주었고, 내일이 되면 내일을 주시는 거예요.
그러면 야곱이 사다리를 본 것처럼 우리는 하루하루가 미래로 가는 것이 아니고, 하루하루가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는 식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하루를 살면 한 계단을 올라가겠죠. 그러면 이제는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어요. 점점 땅과 괴리가 일어나기 때문에. 땅에서 점점 높이 보는 안목을 우리가 갖추게 되는 겁니다.
자, 정리해봅시다. 뒤돌아보지 말라고 하는 것은 언 듯 보면 앞을 보면서 살라고 하는 것인데, 그게 아니고 예수님께서 사신 것과 관련지어서 보게 되면, 살면 살수록 이 세상과 결별해야 된다는 생각이 더 강렬하게, 강렬하게 다가오는 겁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세상 보는 것보다도 한발자국, 몇 센티라도 더 위에 올라가는 것이니까, 세상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천사처럼 점점 더 위에 올라가는, 세상 보는 눈이 보다 더 넓어지겠죠.
넓어지게 되면 세상이 어떻게 보이느냐 하면 시시하게 보이는 거예요. 그렇게 심각하고, “나는 이거 아니면 죽을래.”하는 그렇게 심각한 것도, 전에는 이렇게 높이 안 올라갔으니까, 두 계단밖에 안 올라갔으니까, 미련 같은 것이 너무 강렬했죠. 집착, 미련, 아픔, 상처, 트라우마, 이런 것들이 살아있었는데, 이제 뭔가 솜사탕처럼 점점 더 가벼워지니까, 높이 올라가니까, 지난 일어난 일이 그냥 에피소드, 가시 하나 찔린 정도, 종기 하나 난 정도, 그것도 시간 지나면 알아서 다 없어지는 정도, 아물어지는데, 그런데 그것 때문에 인생 거기다가 다 걸었고, 그것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통곡했고, 울었고, 이런 일들에 우리가 참 미련 곰탱이 같은 짓거리를 했다는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위를 보라는 말이, 보면 볼수록 아무것도 아닌 것에 마음 빼앗긴 거예요. 아무것도 아닌 것에. 옆 사람하고 대조했고, 비교했고, 니가 잘사나, 내가 잘사나, 니가 수입이 많나, 내가 수입이 많나, 니가 교인수가 많나, 내가 교인수가 많나, 자꾸 쓸데없는 것 가지고 비교한 거예요. 목사님도 마찬가지죠. 그쪽에 가냐, 안 가냐, 지금 심각한 문제, 가가지고 아무것도 못하면 내 가정은 어떻게 사느냐 하는 그런 문제. 아버지하고 사이가 안 좋으면 어떻게 되느냐 쓸데없는 그런 문제.
그런 문제가 과거에 정착했던 나의 기준, 나다운 기준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나는 이 정도는 돼야 나답다는 그런 것은, 이게 땅에 밀착했을 때, 바퀴벌레처럼 살 때도 있었지만 이제 그걸 좀 떼버리면, 주님한테는 가깝고 사람한테는 멀어지죠. 주님의 기준으로서 세상을 볼 수 있을 때, 아, 그것도 다 부질없는 한 순간에 그냥 스쳐지나가는 추억에 불과한 거예요. 떨어버릴 수 있도록, 그냥 시원한 천국바람이 부는 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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