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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3강-하나님의 정의(1;12-13)이근호130217

아빠와 함께 2013. 2. 17. 19:15

하나님의 정의 (합 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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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근호 13-02-17 15:46 
하나님의 정의

2013년 2월 17일                              본문 말씀: 하박국 1:12-13


(합 1:12, 개역) 『선지자가 가로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자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를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를 세우셨나이다』

(합 1:13, 개역)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라는 말은 하박국 선지자가 했을 경우와 신약 때, 예수님께서 직접 하실 때, 우리 인간들이 느끼는 감정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다면, 우리 모두는 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 예수님만은 의인이고 우리 모든 인간들은 죄인이니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들로부터 모진 수모를 당했구나.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정의로운 하나님이시기에 필히 예수님 편에 서서 예수님 안믿는 자를 벌하시겠지”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예수님이 아닌 일반인이 이 “악인이 의로운 자를 삼키는데도 왜 하나님은 잠잠케 하십니까”라고 말한다면 단박에 여러 사람들이 비난하기를 “네만 의인이야? 우리는 졸지에 죄인들이야?”라고 나올 겁니다.

이야기가 복잡해 것이 뻔합니다. 왜냐하면 서로들 각자가 의인이라서 주변 죄인들로부터 고생당한다고 우기고 나올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우리는 두 가지 위치에서 해석을 해야합니다. 하나는 예수님 위치에서이고 다른 하나는 하박국의 위치에서입니다. 이 하박국의 위치가 오늘날 우리가 품고 있는 위치이기도 합니다.

먼저 예수님 위치에서, 이미 하박국이 요청한 이 기도가 결말을 보았습니다. 요한복음 3:35-36을 보게 되면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게 준비된 하나님의 복수입니다. 의인은 오직 예수님 뿐이시니 이 의인을 유일한 의인이라고 믿지 않겠다는 것은 나름대로 의인됨을 사수하겠다는 심보입니다. 이런 자를 향하여 가차없이 저주가 주어진다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신나는 소식입니다. 문제는 본인이 과연 예수님 믿는이기는 하냐입니다.

이 사실을 점검하기 위해서는 오늘 하박국 본문으로 되돌아와야 합니다. 이 하박국의 위치에서 선지자는 탄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바벨론 나라 악인들이 유대 나라라는 의인들을 치는데도 불구하고 정의로운 하나님께서 보고만 계시는가 하고 탄식입니다. 이것은 그동안 ‘하나님만 믿고 기다리자’라는 신조를 제고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어디에서 문제라고 예수님과는 다른 건가요? 그것은 인간들이 자기 영역과 외부 영역을 구분지어서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간들은 모두 각자의 성채를 갖고 있습니다. 날마다 성 밖을 탐색하고 주시하고 살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성 안에 있는 것들은 당연히 의인이 되고 성밖은 당연히 악인이 됩니다.

즉 인간은 자기 외부에 있는 것들은 일단 자신을 공격하고 빼앗을 적으로 간주하고 자기를 굳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외부에 여전히 자기와 마음 맞는 천사같은 자들이 남아 있다면 이로 인해 자기 성채의 영토는 미-완성채 채로 운영되어 항상 미완료에서 오는 불안정감에 휩싸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일이야 어찌 되었던 ‘오늘은 일단 자신의 영토는 이것까지’라는 확정성을 마련해야 마음에 안정감이 생깁니다. 그리고 난 뒤에 외부를 살핍니다. 이렇게 되면 외부란 단지 나의 내부를 다지고 또 다지기 위해 연료와 재료를 공급하는 장소로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즉 외부의 악한 것들은 착한 나의 내부를 위해서 들여다놓고서는 내 식으로 교정을 하려고 합니다.

하박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대 나라는 뭐라해도 의로운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있습니다. 거기에 비해서 유대 나라를 삼키려고 오는 저 바벨론은 뭐래도 악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친히 상주해 계신다는 이 유대 나라가 저 바벨론 제국 앞에서 풍전등화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응답하실지가 궁금합니다. 하지만 문제 제기가 상황을 해석하려하는 하바국의 입장에서 나왔습니다. 이렇게 되면 악인과 의인의 구분을 무엇을 기준으로 해서 정해질 것인가 하는 문제가 여전히 새로운 골칫거리로 등장합니다. 하박국의 기도 가운데서 나름대로 악인과 의인을 구분하는 기준이 나옵니다.

하박국 1:15-16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낚시로 모두 취하며 그물로 잡으며 초망으로 모으고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그물에 제사하며 초망 앞에 분향하오니 이는 그것을 힘입어 소득이 풍부하고 식물이 풍성케 됨이니이다” 즉 바벨론 제국은 주변 국가들은 마치 낚시하듯이 침범하면서 자신들이 믿던 신에게 전쟁 무기를 향하여 복을 주도록 계속 제사하고 분향을 해 온 것입니다.

하박국과 유대 나라 백성의 상식으로는, 우상에게 절하고 제사하면 아무런 효험이 없고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에게 진정으로 기도하고 제사해야지만 효과가 일어난다고 여기는데 현실 속에는 도리어 정반대 상황이 되어버린 겁니다. 바벨론이 가짜 신들에게 제사하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패배해야,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의롭게 일하신다는 사실이 알려질 것이 아니냐 고 하박국은 따지고 나서는 겁니다.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비-신앙적이고 미신적으로 자기 종교들을 섬기며 집안이 왕창 망해야 하는데 도리어 그런 불신자들의 자기 종교 실적이 바른 복음으로 산다고 자부하는 자들의 것까지 빼앗는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겁니다. “역시 내 종교는 기도 응답 효과가 있어”라고 즐거워하면서 말입니다.
바벨론의 종교 행각이 원인이 되어 그들이 끌어들이는 소유물과 재물이 날마다 충족해지고 여유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의 소유로 전환된 것들 중에는 자칭 의인이라고 여기는 유대 나라의 물건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니 하박과 유대 나라입장에서 해석이 난감해져 버린 겁니다.

하박국은 약이 올라있습니다. 적들의 번창으로 인하여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다시 봐야 합니다. 행여 우리 자신의 영토가 바벨론이 쳐들어 오기 전에 이미 바벨론화 되어 있지 않나를 살펴봐야 합니다. 즉 우리 자신의 종교 행각이 원인이 되어 우리도 의인이라고 행세하고 싶어하는 증거 확보에 나서지 않았는가를 말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가 영생과 저주를 가름하는 기준이 아니라 예수님이 영생과 저주를 가름하는 기준이니 우리는 예수만 믿으면 모든 축복을 다 받고 누리는 것이 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이미 받은 축복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늘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