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7/16-새로운 타자

아빠와 함께 2026. 7. 16. 08:21

 “새로운 설명이 나를 치료케 만들어요.”

이 우주와 이 세상과 나에 대한 새로운 설명이 새로운 페인트칠이 그 케이크 같은데 그 초코렛 같은데 부으면 초코렛이 빵까지 스며들지요. 새로운 설명이 나를 장악하고 스며들면 그것이 뭡니까. 선악체계에서 살아도 산 게 아니고 지옥 가는 우리를 천국으로 치료시켰습니다.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 설명이 바로 복음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거예요. 복음으로. 그게 이사야에요. 그 해석자가 이사야에 주신 그 이사야에 문서 선지서에 근거해서 해석자가 마지막 때에 오십니다. 그걸 새언약이라고 이야기해요.

새언약은 전부 다 해설서에요. 해설서. 기존에 있던 앞에 있던 모든 선지서가 다 이루었다. 이렇게 해서 다 이루었다. 이루신 분이 책 저자가 학원에 강의하는 것처럼. 저자가 출강해서 자기가 출제한 문제를 자기가 풀어주는 설명해 주는 거예요. 사태가 이렇게 된 거야. 이렇게 진행된 거야.
이렇게 하니까 이사야가 얼마나 참 고맙고 감사한 겁니까. 그러나 조건이 있어요. 뭐냐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궁지로 몰 겁니다. 궁지로. 그것은 주님의 해설에 맞는 환경 조성을 위해서. 주님께서 궁지로 몰아넣습니다. 궁지로 몰아넣으면서 하나님은 새로운 타자가 됩니다. 기존의 인간들이 내가 들었던 그 말을 그렇고 그런 인간들의 말이 아니라 인간의 수다와 뒷담화가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타인으로 등장해서 우리에게 말을 건네 줍니다.

 

너희에게 충실하지 말고, 나에게 충실하라. 그런데 이 교회라는 거, 이 기독교라는 거, 얼마나 악마적인지. 특히 천주교. 너에게 충실함으로서 곧 나에게 충실한 것이다. 요렇게 변질시켜놨어요. 너에게 충실한 그것이 나에게 충실한 것이다.
너에게 충실하지 말고, 이게 전제가 되어야 되는데. 왜 너에게 충실한 것이 나에게 충실한 것이다. 왜 이렇게 하느냐 하면, 인간은 어떤 인간도 너 자신을 포기를 못하게 되어있어요.

그러니까 이건 기독교는 안되고 뭐는 된다? 복음은 되지요. 구원은 복음에서 오지, 기독교에서 오는 게 아니잖아요. 기독교가 복음을 가로막지요. 교회가 진짜 교회를 가로막아버려요

 

[그리스도 속의 이사야] 책에 보면 말씀의 움직이는 책에 보면 나와 있습니다. 9가지의 이미지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9가지 이미지.
첫 번째 창조 이미지, 두 번째 낙원 이미지, 세 번째 악마 이미지, 네 번째 노아 이미지, 다섯 번째 아브라함 이미지, 여섯 번째 출애굽 이미지, 일곱 번째 민수기 이미지, 여덟 번째 할례 이미지, 아홉 번째 소돔과 고모라 이미지가 있는데 이미지라고 이렇게 언급한 이유는 이 이미지로 구원받을 수 없어요.

어떤 경우에 이것이 단지 이미지가 아니고 실제 현실이다, 라는 것을 언제 알까요? 이 창조 이미지가. 간단해요. 언제 아느냐 하면, 창조 이미지로 알았던 이 창조가 나한테 내 인생에 여기에 내 인생을 새롭게 만들어 버리면 비로소 그때는 우리가 알고 싶지 않더라도 온몸으로 느끼지요.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이 아니고 말씀 안에 말씀이 와서 침입을 해가지고 말씀으로 완전히 뒤집어씌운 거예요. 말씀의 샤워. 말씀에 샤워 돼서. “나는 빛을 지었단 말이야. 알았어? 나는 어둠도 창조했어. 알겠어? 나는 평안도 만들어. 알았어? 환란도 창조한 거야. 이게 여호와야.” 하는 것을 실감 나게 만드는 경우가 생길 거예요.

나는 그냥 주께서 다루시는 꼭두각시 인형 같은 주께서 갖고 노는 인형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때, 이 현실에 잠시나마 이 현실에 확 담겨 들어오게 되지요. 담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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