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선

주님의 덩어리

아빠와 함께 2025. 12. 25. 20:43

베드로는 왜 객기를 부리며,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갔을까.
베드로는 ‘나는 너희들보다 나아. 나는 그래도 바로 도망가지 않고 현장까지 따라갔잖아’라고 일도 의로움을 주장할 수 없었다. 도리어 제자 중, 가장 악독한 모습으로 예수님을 버려야 하는 곳까지 따라갔다. 하나님을 너무 미워하고, 저주하고, 버려야 하는 그곳, 주님을 향한 자기 의가 배설물보다 더러운 것이 되어버리는 그곳, 그곳까지 베드로가 따라간 것이다.

성령을 통해 베드로에게 다시 해석된 십자가 사건에서, 베드로는 주님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베드로를 그쪽으로 데려가셨음을 알았다. 주님은 그를 그리스도의 사랑만 전하는 사도로 새롭게 창조하시려고, 베드로를 현장으로 이끌어서 그의 속을 탈탈 털어내셨다. 예수님의 것으로 채워 줄 테니, 십자가로 말미암아 넘어지는 자들에게 듣든지 듣지 않든지, 사랑만 전하라고.

그제야 그는 깨닫는다. 자신이 예수님을 전하는, 그분의 사랑을 전하는 역할자가 아니라, 주님의 두 발, 주님의 손, 주님의 입, 주님의 눈, 그저 주님의 소품이라는 것을. 소품은 어딘가에 담겨서, 매달려서, 그렇게 딸려 가고, 스스로는 움직이거나 행하지 않는다. 소품의 일은 역할자처럼 감정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덩어리 그 자체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 잠시 보이는 것으로 표현되어야 할, 사건을 위해 순간적으로 빚어져야 할 어떤 덩어리이다. 덩어리와는 상관없는 말씀의 아우라가 풍기는 도구.

연기는 연기일 뿐 자신이 그것이냥 착각하지 말아야 하고, 덩어리는 덩어리일 뿐, 자기가 자기로 판단하고 해석하는 일은 망상이다. 벌어진 사건에서, 사건을 쳐다보지 않고 그렇게 일어나야 했었던 한 분의 뜻으로 마음이 향하게 하시는 흐름을 타고 있다면, 무엇이든 주저할 것은 없다. 어차피 내 뜻이 환상처럼 몰려와도 내 뜻대로 되지 않게 하시는 만유의 주, 그분의 뜻이 항상 이기고 있다면 말이다.

이 세상에 어떤 피조물에도 기대하지 않으시고 오직 자신의 뜻만을 밀어붙이시는 주인공이, 6일이라는 잔재들, 부스러기들, 아무 쓸모없는 것들을 통해서 영원한 안식으로 향하는 십자가 완성의 행진을 찬양받으시겠다는 것 자체가, 버려질 이 세상에 베푸시는 무궁한 은혜이고, 넘치는 긍휼이다. 예루살렘부터 온 유대와 사마리와 땅끝까지, 주의 증인은 주님 자신이심을 증거 하시는 모습은 소품이 소품다울 때, 귀신 들린 사람인 척하며 훼방하지 않고 잠잠할 때, 사건이 알아서 벌어지고 있음을 뒤늦게 확인하게 되고, 감사도 찬양도 뒷북처럼 소품 안에서 황량하게 울린다.

주께서 자신의 것을 복음에 가까이 배치하실수록 마귀의 공격은 더 치열하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자기의 행함을 자랑하는 곳이 아니라는 이론조차 마귀는 풍성하게 제공한다. 속이고 또 속이며 어떻게든 소품이 사람 되게 해주는 일에 온 열정을 발휘한다. 주께서는 자신의 소품들을 마귀의 아가리에서 끄집어내시기 위해 불같은 사랑을 주신다. 그 사랑의 위력이 얼마나 뜨거운지, 마귀의 귀한 선물인 나를 태운다.

실상은 내가 아니라, 복음의 이론을 알고 있는 사람인 척하는 나를 태우시고, 타고 남은 검은 덩어리, 주님이 자기 것임을 증거해 주시는 불씨만 남기신다. 남은 불빛이 인간 내부의 음모, 마귀의 궤휼이 어느 정도로 세고 불가항력인지 비추고 쏟아내시며, 주께서 드러내고자 하는 한 가지 사건만 남기신다. “네가 나를 싫어했고, 미워했고, 그리고 죽였다” 그 ‘네가’에서 제발 소품은 소품으로 가만히 있기를. 제발 주님 일 방해 하지 말고 슬퍼하는 척, 미안한 척, 마음 아픈 척 감정연기 하지 말 것.

이 세상 살면서 돈 버는 거 물론 힘들다. 하지만 돈 버는 일보다 더 피를 말리고 살을 말리는 일은 말씀에 부대끼는 것이다. 보이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 이거, 안 들으면 그만인데, 그냥 돈 버는 일에만 힘들고 싶은데, 무슨 락이 걸렸는지 족쇄처럼 단단히 걸려있다. 주님은 너무 가벼운 멍에를 주셨고, 힘들게 한 적이 없는데, 지가 사람이냥 감정연기 하니 이 모양 아닌가. 은혜가 은혜인 줄 알게 해주시는 말씀의 소리가 불같이 날아온다. “너, 사람 아니야. 불 속에서도 타지 않아야 할 내 것을 담아 놔서, 잠시 필요한 소품이야. 네가 필요 없어서 그래서 쓰는 거야”

그렇게도 하나님의 율법을 밥 먹듯 어기고 우상을 신주 모시듯 모시며, 자기 뜻만 고집하던 아합이,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심판 앞에, 자신을 찢었다. 다윗이 나단선지자 앞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다윗왕이 보이지 않는 선지자 안에서 나온 말씀에 굴복할 때, 신기하고 놀라웠다. 무엇에도 굴복할 수 있는 힘없는 고아, 과부, 나그네였다면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을 것을, 한 나라의 권력자가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말씀 앞에 굴복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아합왕이 말씀 앞에 자신을 찢어버린 사건이 주는 충격은 이집트에 바로왕이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면 강퍅을 찢어버리고 말씀 앞에 굴복했을 것임을 믿게 한다. 긍휼을 베풀 것들과 진노를 나타낼 것들을 구분하시는 택하심의 능력이 하나님께 있고, 이를 온전케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실 분이 오직 예수그리스도뿐이시다. 이를 온 우주에 천명하신 사건, 십자가의 완성으로 말미암아, 예수안에서 하나님의 거룩의 작업이 끊임없이 가동된다.

예수님께서 다녀가신 이 땅에 발생하는 주의 하인들은 마음껏 자신을 잃어버리게 하시는 사건에 즐거이 참여한다. 주께서 허락하신 분량대로 나를 잃어버리게 하신 만큼, 사건이 만들어 내는 공백 안에 주인님의 보이지 않는 활동, 일하심이 채워진다.

필요 없어서 써주시는 주님의 뜻도 모르고,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욕망이 남긴, 숨긴 한 달란트, 주의 것을 지키려고 애썼던 자기 의의 응축, 그렇게 스스로 속으며 자신만을 붙들고 있다가 주인님에게 한 달란트를 숭고하게 넘겨드린 하인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났다. 열심을 다해 잃어버리라고, 뭘 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보이라고, 주어진 은혜를 따라 남긴 죄의 달란트의 무게만큼, 주인의 용서하심의 업적이 드러나게 한 소품들을 주께서 찾으신다. 하인들이 남긴 죄의 달란트에서 발생하는 보이지 않는 초과분이 커질수록 주님의 용서하심의 사랑은 크게 빛을 발한다.

“너는 내 소품이다. 그것도 죄를 가득 담은 소품. 내 것이 들어 있기에 너를 태워버리고, 죄를 모두 태우고 남는 내 것, 너는 없고 내 덩어리 안에서 내 것만 발견되게 할 거야. 내 사랑만 남게 할 거야”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담긴 심판책이었다. 다시 읽게 된 욥기에서, 예레미야애가에서, 어느 말씀에서도 인간의 고통이나 슬픔은 없었다. 아픔이 없으면 불평도 원망도 허황된 일이다. 욥이,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사람이 아닌 소품 덩어리로 바뀌니, 애가(哀歌)가 애가(愛歌)가 된다. 아름다운 예수님의 이야기,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특심이 담긴 사랑의 말씀이었다.

이스라엘에서, 율법을 굽게 하고 거짓 경고와 미혹케 할 것들을 전한 제사장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그에 현혹된 백성들 모두가 형벌을 받아 짓밟히고 폐물 취급을 받는 말씀 안에서, 이런 형벌이, 죽음이 우리에게 마땅함을 알게 되고, 그럼에도 죽음이 마땅치 않은 한 분의 대신 죽으심의 끝맺음으로, 사람의 탈을 벗고 주님의 덩어리가 되는 죽음에 참여하게 하신 이 선물이 어찌나 큰지, 환란도 곤고도 핍박도 내 소관이 아니게 된다.

말과 말씀의 차이가 사람이 감당하는 것이 아니기에, 글이나 말이 보이는 사람에게서 나올 때, 그 사람이 눈에 띄게 되는 죄를 범하는 건 저항할 수 없는 일이다. 듣든, 아니면 그 눈에 보이는 죄인에 걸려서 듣지 않든, 아무 필요 없는 죄인조차 쓰시는 주의 일을 기이하게 여기며 주저없이 죄의 달란트를 쌓고 있는 주의 소품들이, 주께서 뜻하심이 있기에 아직도 이 땅에 머무르게 하시는 성도이다.

세상을 하얗게 덮을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며, 주께서 덮어주시는 긍휼에 힘입어 손가락이 움직였다. 이제 밖으로 나가 눈 속에 덮힐 세상에 합류되어야 할 때이다. 바벨론스러운 몸짓, 맘 짓, 그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도록, 나라는 죄는 감춰지고, 나와 영원히 굿~~굿바이하게 하시며, 말씀의 일만 쌓인 눈 위에서 운행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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