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중에 딸이 예약해 놓은 ‘방 탈출’이라는 게임을 하러 가족 모두가 움직였다. 동일한 명절 패턴에서 잠시 벗어나는 새로움에 이끌려, 딸을 제외한 나머지 3인은 별 생각도, 기대도, 흥도 없이 차분히 동행했다. 게임 장소에 도착해서 정해진 테마의 방문 앞에 한 줄로 섰고, 모두 눈을 감은 채로 안내자를 따라 어둠속으로 들어갔다.
안내자가 힌트가 담긴 태블릿을 넘겨주고 나가서 문을 닫았다. 가족 4인은 갑자기 바뀐 환경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갇혔다'는 것을 인식한 순간, 좀 전까지도 시큰둥하게 들었던 게임의 규칙을 떠올리며, 태블릿이 마치 성서라도 되듯이 의지했고, 주변을 살피며 빠져나갈 단서를 얻기 위해 촉을 세웠다.
스피커의 내레이션과 방안에 여러개의 자물쇠들, 그 자물쇠를 하나씩 풀어서 그다음 단서를 획득하고, 그 단서로 다음 자물쇠를 풀고 나면 또 다른 단서를 얻어서 여러 방들을 통과해서 미션을 완수하고 방을 탈출해야 한다. 방탈출에서 우리가 맡은 역할은 자꾸 실종되는 사람들의 행방을 찾아 수사하고 범인을 잡는 형사의 역할이었다. 범인은 사람을 납치해 인육을 팔기도 하고 마약을 거래하는 흉악범이었다.
4인 모두 한 마음으로 탈출할 방법 찾기에 집중되어 있는데, 발견된 메모에 각각 나뉘어서 빨리 숨으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우리는 2인씩 나뉘어 숨었다. 그런데 쿵쾅거리는 소리, 괄괄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때까지도 장난은 장난이고 게임은 게임이었는데, 우리가 숨어있는 커튼이 갑자기 젖히며 복면을 한 남자가 내 얼굴에 자루를 씌워 어디론가 데려갔다.
그 남자는 다른 방에 나를 감금시키고 수갑을 채운 뒤에, 내 사진을 찍고 사라졌다. 주위에는 페인트 피가 묻은 토막 난 마네킹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우연히 벽에 쓰인 글을 발견했다. ‘답답하면 소리라도 질러보던가...’ 나는 즉시 소리를 쳤고, 엄마 소리가 난다며 문 앞쪽으로 모이는 혈육의 소리가 들렸다. 딸이 자물쇠 비밀번호 단서가 안쪽에 있으니, 엄마가 찾아내야 한다는 외침이 들렸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방을 탈출한 후에 안내자가 다시 나타나서 스토리 전말을 알려주었다. 범인을 추적하던 형사는 이미 20년 전에 실종되어 생사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었고, 그 형사는 범인이 짜놓은 삼각지대에 갇혀, 여전히 자신은 사건을 수사 중인 것으로 착각하면서, 납치당해 토막이 나야 하는 방에서 죽지 않고 극적으로 탈출을 함으로써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었다. 형사가 환각에서 깨어나려고 할 때마다 범인은 그에게 마약을 투입해서 깨어나지 못하게 하는 스토리였다.
형사가 죽지 못하고 스스로 탈출에 성공해서 계속 살아있는 그것이 도리어 저주이고 형벌인 것만 같다. 게임이 끝났는데, 여전히 게임 안에 갇힌 현실을 상기해 본다. 애굽은 탈출해야 하는 장소가 아니라, 어린양의 피가 만들어 낸 문을 나타내는 사건이 벌어지는 곳이다. 피가 문지방에 발린 것이 아니라, 출구가 피로 말미암아 잠시 잠시 윤곽을 드러내는 사건이 벌어진다.
얼굴이 복면에 가려져 없어지고, 붙잡혀서 사지가 절단되고 토막 나며, 존재가 형체도 없이 소멸될 수 있는, 피가 흥건한 그 방에 들어가는 것이, 어린양이 먼저 들어가신 도살장 같은 피의 제단, 그곳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유일한 탈출구인 것이다. 살고 싶어서 조금도 머무르고 싶지 않고, 누군가 속히 와서, 내 혈육이 어서 와서 빼내 주었으면 하는 그 장소가 하나님이 은혜로 마련해주신 죽을 수 있는 장소였다. 마네킹같은 인간은 탈출하고 싶어 안달하는 그곳이 탈출하지 말고 죽으라고 하시는 십자가 현장이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죽이시고, 이삭의 하나님이 이삭을 죽이시고, 야곱의 하나님이 야곱을 죽이시고, 마침내 하나님이 진짜 아들, 예수님을 죽이셨을 때 흘러나온 피가 세상을 흥건히 적셨고, 그 피 안에서 믿음으로 화답하는 양자들이 싹튼다. 모세가 이름을 물었던 하나님, 그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셨다.(출3:15) 하나님이 죽여주셨기에 마침내 그 믿음 안에서 아들의 생명이 자리 잡은 산 자의 하나님이셨다.(눅20:38)
하나님은 이미 죽어 있는 마네킹을 죽이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아들만 죽을 수 있게 해주셨고 그렇게 탈출시키셨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아버지가 된 자들만이 비로소 하나님에 의해 죽을 수 있고 그렇게 죽음의 트라이앵글인 ‘나’ 밖으로 분리된다. 하나님에 의해 죽임을 당한 몸은 땅에 있어도 하늘에 이미 앉히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움직이고 있기에, 더 이상 탈출하려는 의지를 발휘하지 않는다. 이미 이 세상을 빠져나가신 생명이 살고 계시기에, 그 몸이 향하는 쪽은 생명의 주인을 만나는 그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