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특징은 뭐냐? 이방나라와 다른 특별한 요소가 있어야 이스라엘이죠. 특별한 요소가 뭐냐 하면, ‘그냥 땅에서 산다.’ 이거는 별다른 거 아니에요. 그러면 애굽 땅에서 그냥 살면 돼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개입해서 애굽 땅에 살던 사람을 애굽 땅에 못 살게 했어요. 애굽 땅에서 못 살게 하면, 이사 가는데, 이사 갈 땐 목적지를 알고 가야되잖아요. 목적지는 없어요.
목적은 하나밖에 없어요. “거기서 나를 섬기리라.”(출23:20, 25) 이래놓고 목적지는 없어요. 어딘지를 몰라요. 모른다고요. 목적지는 어디냐? 죽음이죠, 홍해바다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놀라버렸죠. 그런데 홍해바다는 죽음,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의 효과가 작렬하는 장소, 그것은 뭐냐 하면, 네가 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땅은 어린양의 죽음으로 구원이 된다는 그 법칙을 계속 유지해야 될 원칙이 살아있는 땅, 그 땅이 바로 아합도 살고 있고, 나봇도 살고 있는 약속의 땅이었던 겁니다.
그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인간들을 살려주죠. 살려주는데, 노동력으로 살려주는 게 아니에요. 노동력으로 살 것 같으면 안식일이 필요 없어요. 일요일도 일하면 더 잘 살 수 있어요. 그러나 노동력으로 살려주는 것이 아니고, 안식일에 드리는 제사가 그들로 하여금 그 땅의 풍성한 삶, 젖과 꿀이 흐르는 삶을 보장해줍니다.
그러면 그 땅에서 요구하는 것은 뭐냐? 너희가 기존의 땅, 부동산 땅에서 약속의 땅,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누군가 죽어야 된다는 그 원칙이 계속해서 반복해서 사건화 되는 땅이 무슨 땅이다? 약속의 땅이죠. 그걸 나봇은 기억하고 있었고, 아합 왕은 그걸 놓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본문이 다 마감되지를 않아요. 4절이 남아있어요.
4절이 뭐냐 하면, 땅을 팔지 않겠다고 하면 왕이 쿨하게 ‘안 파는구나.’하고 넘어가면 될 텐데, 잠을 자지 못하고, 밥도 먹지 못하고, 몸부림치고 있다, 이건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는 그 동기로서 하나님이 아합에게 개입했다는 것이에요. 아합이 제 탐욕도, 제 마음대로 욕심을 낼 수 없는 하나님의 관리 하에 있었습니다.
그럼, 아합을 그렇게 만드는 이유는, 그렇게 잠 못 이루고, 그걸 잊으면 되는데, 미련을 못 버리는 이유는 기어이 유월절 어린 양의 사건을 재발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게 가해자가 필요하고, 피해자가 있어야 돼요. 그냥 아무 죄도 없는데 죽임을 당했어요. 가해자의 일방적인 탐욕이, 나봇을 그냥 죽이면 안돼요. 그러면 그냥 왕 앞에 폭력을 당한 것밖에 안 되니까.
나봇에게서 이질적인 게 나와야 돼요. 그게 뭐냐? “우리 조상의 땅은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서 못 팔게 되어 있습니다.(레25장)” 그 이야기를 왜 했어, 왜 했어?? 그냥 내 놓지! 그 상황에 그 이야기를 왜 합니까? 그 이야기를 하더라도 왕은 쿨하게 다른 나물 밭을 찾으면 되는데, 왜 그것 때문에 잠도 못자고, 밥도 못 먹어서 바알 섬기는 그 마누라가 ‘내 남편 자존심 누가 이리 상하게 만들었냐’면서 나서게 만든 동기가 작동되게 되는 거예요.
신기하지요. 이것은 결론적으로 뭐냐? 모든 일은 누가 일으킨다? 나봇이 잘난 것도 아니고, 나봇은 자연스러운 사람이고, 나봇이 못난 것도 아니고, 이 일을 누가 일으킨 겁니까? 주님 홀로 일으킨 사건, 그것이 어제 수요설교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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