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줬는데 그 두려움이 다른 게 아니에요. 네가 잘못하면 죽는다는 그 두려움을 집어넣은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의 원래 인간은, 선을 하든 악을 하든 관계없이 모든 인간은 다 죽게 되어있습니다. 지금 마귀가 인간에게 사기 친 겁니다. ‘착하고 바르게 하면 살고 나쁜 짓 하면 죽는다.’ 이건 마귀가 인간을 세뇌시킨 거예요.
전도서 2장 14-17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지혜자는 눈이 밝고 우매자는 어두움에 다니거니와 이들의 당하는 일이 일반인 줄을 내가 깨닫고 심중에 이르기를 우매자의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가 어찌하여 지혜가 더하였던고 이에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 지혜자나 우매자나 영원토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다 잊어버린지 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한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
이게 무슨 뜻인지 여러분들이 감 잡으셔야 돼요. ‘왜 내가 더 많이 알고, 왜 내가 더 착하고 더 말씀대로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는가? 그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하죠? 아니에요. 그건 자기의 본심을 가리는 하나의 핑계에 지나지 않는 거예요.
인간의 본심엔 근원적으로 어떤 두려움이 있는데 그 두려움을 나의 착함과 완전함으로 커버하려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내가 이렇게 바르게 살았다는 것을 남한테 인정받는 것이 나의 두려움을 면제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 전도서의 말씀을 보세요. ‘어리석은 자나 똑똑한 자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고, 닥치는 사건에 대해서는 어떠한 예외가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똑같이 취급하는데 괜히 인간들만 곡해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다섯 번째 친구는 때리라고 하니까 사정없이 팹니다. 얼마나 팼던지 상처가 났어요. 다섯 번째 친구, 선지자를 패는 이 친구의 특징이, ‘어디서부터 벗어났는가?’ 선악 체제 자체에서 벗어났어요. 전도서 2장의 그 말씀처럼 ‘나는 뭔가 내 것으로 채울 일이 없다. 주의 말씀이 때리라고 하면 때리면 되지 이 때리는 것이 내가 잘못하는 걸까, 착한 일일까 나쁜 일일까를 판정 내릴 어떤 자격도 나에게 없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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