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장 19절 읽어보세요. 이게 얼마나 우리의 일상이 되었는지 아셔야 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원수 갚지 말라는 이야기가 왜 나오느냐 하면 이스라엘을 경유하면서 인간들에게 율법을 백날 줘도 원수는 본인이 갚는다는 자기의 죄성이 원수 갚는다는 율법 안에서 깊이 있게 다 노출되기 때문이에요. 꼭 율법이 이야기하는 것과 대조적이고 반대되는 세력이 인간 속에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율법을 준 거예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그 말은, 결국 이스라엘은 다른 신만 섬기게 되어 있다는 거예요.
전에 이야기했는데 너무 중요해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얼마 전 부산강의에서 했는데 부등식 또는 부등호. 인간보다 누가 더 세냐? 하나님이 인간보다 더 세죠. 인간<하나님. 이거 우상숭배입니다. 중간에 뭐가 들어가야 돼요. 인간보다 뭐가 더 세냐? 죄가 더 세요. 인간<죄. 시편 65편 3절(“죄악이 나를 이기었사오니”). “죄의 권능이 우리를 이기었사오니” 이 대목이에요. 죄의 권능. 그런데 그 죄보다 누가 더 셉니까? 누가 이겼습니까? 우리 주님이 이겼잖아요. 하나님이 이겼잖아요. 인간<죄<하나님.
이 ‘인간<죄’를 뺀 것이 개혁주의 신학이에요. 인간보다 죄가 세다는 이것을 빼버리면 이게 개혁주의 신학입니다. 왜 이걸 빼냐 하면내가 성경대로 예수를 믿고 바르게 사는 것이 바로 죄가 되기 때문에. 나에게서 나온 것은 어떤 것도 죄의 권능을 이길 수 없는 죄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학 자체가 뭐가 돼요? 죄가 되죠. 신학 자체가 죄가 된다는 말은 교회에서 자기 의지를 발동시켜서 예배드리고 찬양, 헌금하는 모든 게 뭐가 돼요? 죄가 되죠. 개혁주의 신학은 그것을 안 받아들입니다. 안 받아들여요. 왜냐하면 개혁주의 신학이 교회를 잘해보려고 나온 신학이기 때문에. 교회가 우상이죠. 개혁주의 신학에 철두철미한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하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 부정적인 것.” 부정적이라 하는데 아직 멀었어요, 부정적인 건. 이 정도는 부정적인 것도 아니에요.
다이렉트로 하나님과 인간이 통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유가 뭐냐? 십자가는 취소되지 않기 때문에. 십자가가 박힌 겁니다. 십자가가 ‘취소되지 않는다’는 말보다 더 충격적인 말이 ‘돌이킬 수 없다’. 돌이킬 수 없어요. 신학적으로 설명하거나 해석하기 이전에 사건은 이미 터졌어요.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은 이미 터졌어요. 그걸 어떻게 이해하냐, 해석하냐 하는 것은 네 마음대로 하시고 그 해석을 어떻게 하든 관계없이 이 십자가는 터져서 인간은 어떤 경우라도 죄를 돌파할 수 없다는 게 확정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