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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고한 마음

아빠와 함께 2025. 11. 19. 12:11

‘확고한 마음’. 뭐가 그리 확고하다는 겁니까? ‘확고하다’는 말은 아무리 나이 들고, 아무리 한국 살다가 미국 살다 뭐 러시아 살든지, 아무리 돈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든지, 몸이 아프기도 하고 건강하기도 하든지 상관없이 확고한 마음은 하나님께서 이미 확정지어줬습니다, 이 성경을 통해서.

그 대목이 이사야 47장 8절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뿐이다.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성경은 이 바벨론 제국이라는 것을 이스라엘 외에 모든 민족의 대표민족으로 설정했습니다. 바벨론 민족을 대표로 설정하고 하나님이 택한 민족 이스라엘을 어느 민족에게 침략 당하게 하고 흡수 통합되도록 했느냐 하면 바벨론에게 흡수 통합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원수는 바벨론으로 마감되기 때문입니다. 그게 요한계시록에 나옵니다. 17장, 18장 계속해서. “큰 바벨론이라”(17:5), “큰 성 바벨론이여”(18:2),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18:10). 바벨론 외에 다른 속성의 나라는 없어요.

그러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계시고, 그 이스라엘을 대적했다, 노리고 삼켰다는 말은 하나님의 원수 마귀가 배후에서 활동하지 않으면 그런 일이 안 일어난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는 겁니다. 이스라엘과 바벨론을 대비시키고 ‘이스라엘 쪽은 하나님 쪽, 저쪽은 마귀 쪽’ 이렇게 세상 끝 날까지 종말에 그렇게 간단한 구조로 정리정돈을 해버렸어요.

바벨론 사람들의 그러한 의식은 그 뒤에 나오는 인류의 종말에까지, 첫째 짐승이 바벨론, 둘째 짐승 바사, 셋째 짐승 헬라, 넷째 짐승인 마지막 짐승이 로마, 넷째라 하지 않아요, 마지막 네 번째 짐승 로마가 마지막 짐승이 되는 겁니다. 그 마지막 짐승의 역할은 하나님을 직접 타겟으로 삼아서 죽이는 거예요. 로마의 권세로서 하나님이 죽습니다.

결국 인간 배후에서 인간 마음을 장악하고 있는 악마의 일관된 목적이 있어요. 이 땅에서 하나님을 없애는 겁니다. 하나님을 없애고 가짜 하나님을 그 자리에다가 채워 넣는 거예요. 가짜 하나님을 우상이라 하는데 가짜 하나님의 특징, 가짜 하나님이 해야 될 일이 있어요.

그것은 바로 이사야 47장 8절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라는 사실을 늘 명백하게 명확하게 그걸 분명하게 증언, 확증시켜 줄 임무가 당신 신에게 하나님께 있다는 거예요. 내가 그만큼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하나님 당신이 반증해줄 책임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야 내가 당신을 믿을 만하지,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인간이 신을 믿는다고 하잖아요. 인간이 신을 믿는다는 걸 정확히 하면 인간은 신마저 이용하죠. 왜냐하면 신은 이미 여기 본문 그대로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이미 자기 자신이 신이기 때문에. ‘내가 절대적 신이 될 수 있도록 신들이 좀 도와주소.’ 이런 거죠. 그래서 신들은 잡신, 다신 이렇게 되는 겁니다.

지금도 신들이 다신(多神)이에요. 지역마다 민족마다 그리고 하는 일마다 신들 자기 전문분야가 있습니다. 내과, 외과 있듯이 자기 전문분야가 있어요. 그래서 인간들은 그쪽 신에게 잘 보이고 이쪽 신에게 잘 보이고 그렇게 해서 누구를 보장하는 거예요? 내가 신이니까 나를 위해서 신들을 믿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이런 겁니다. ‘신이여, 내가 신을 섬길 테니까 나에게 돌아올 이익은 뭡니까?’ 거래하는 겁니다. 이게 인간들의 본모습이에요. 이 본모습은 이스라엘의 존재 때문에 밝혀진 거예요.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있는 이스라엘이 지금 누구한테 졌다 했어요? 누구한테 잠식당했어요? 누구한테 점령당했어요? 바벨론한테 점령당했죠. 그 바벨론이 뭐냐 하면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했잖아요.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그러면 하나님, 하나님 해도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는 그 민족에게 접수 통합이 됐다 이 말이죠.

거기에 대해서 이스라엘이 나 하나님을 안 믿었다는 티를 그렇게 내는 거예요. “네가 여호와 나 하나님을 잘 모르면 다른 이방민족,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고 믿는 민족과 너는 똑같은 거야. 똑같은 족속이라고.” 이렇게 규명해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누구보고 나쁘다는 소리를 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자기나 나나 똑같이 신이거든요. 자기 신되기를 포기한 인간은 없습니다. 신되기를 포기한 인간은 없어요. 그러면 그 인간들이 신인 것이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나오느냐? 그게 또 친절하게 성경에 나오네요.

야고보서 3장 5-6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나무 태울 때 작은 불씨가 시작되어서 나중에 가보니까 홀라당 나무 다 탔잖아요. 그렇죠?

  불이요 불의 세계라  우리 지체 중에서   더럽히고  바퀴 불사르나니  사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3:6)

그다음에, 혀는 신체부위에서 큰 면적을 안 차지하죠? 작은 부분이죠. 작은 부분의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어디서 출발했다 했습니까?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여러분, 이 말씀이 만화영화라 생각하고 이렇게 한번 해보세요. 어떤 존재가 급작스럽게 화들짝 튀어나왔는데 튀어나온 몰골이 불이 붙은 채 튀어나왔어요. 거리에 사람들이 “야, 너 불 꺼! 불 꺼!” 하는데 그 불이 어디서 나온 불이냐 하면 지옥에 있던 인간이 지옥 불을 마저 못 끄고 튀어나오다 보니까 온몸에 지옥 불이 붙은 거예요.

그러면 지옥 불을 껐다 칩시다. 지옥 불을 껐는데 그 지옥 불은 아무리 꺼도 도저히 끌 수 없는 불이 인간의 신체, 입 안에 들어있다는 겁니다. 그 불이 뭐냐? 혀. 혀에요. 나불나불나불 말을 할 때마다 혀에서 슝슝슝 지옥 불이 팍팍 튀어나오는 거예요. 그 지옥 불의 내용은 아까 이사야 47장 8절의 뭡니까? “나는 신이다. 나는 신이다. 나는 나한테 이익 들어올 것만 궁상떨고 생각하는 나는 신이다.” 그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오는 겁니다. 그 인간들이 모인 세계가 바로 이 세상이에요.

야고보서 3장에서 그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왜 하느냐? 이것 때문입니다. 3장 1절,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말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그 사람은 이렇게 혀 다루는 것이 그만큼 어렵고 힘들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나오다가 나중에 이 혀, 이 말은 자기 성질을 못 이겨요. 통제가 안 됩니다. 본색을 드러내요. 본색이 뭡니까? ‘나는 나한테 신이다. 건드리지 마. 가만두지 않는다. 나를 건드리는 것은 신을 건드리는 것이다. 나는 오직 나만을 위해서 산다.’ 이게 마귀와 결탁된 인간의 본성이죠.

이것을 아는 자가 바로 말씀을 통해서 아는 자에요. 어떤 마음? ‘나라는 육의 인간은 참 변함없이 확고하네. 서른 살 때 믿으나 팔십에 믿으나 나는 신이라는 것이 계속 나오네.’ 그걸 파악하는 자가 성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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