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양식 없이 못 산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거예요. 인간은 자기 주관이고 객관이고, 양식 없이는 못 살죠. 그런데 만나라는 양식은 이름이 없어요. 그래서 만나가 무슨 말이냐? “뭐야 이거?” 그게 외계 음식이거든요. 만나를 먹인 것은 주께서 삽입해 주는 거예요. 천국에 합당한 양식을 삽입해 주는 겁니다.
신명기 8장에 보면, ‘네가 그걸 단지 양식으로 받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뭘로 받아야 되느냐? ‘말씀으로 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말씀으로!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천국에 적합한 인간으로 변환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뭘 주느냐? 말씀을 줘버려요. 이제부터는 여러분의 모든 식사가 만나라고 생각하세요. 찌꺼기가 뭐냐? 말씀을 주시는 것은 자아라는 지꺼기가 남아 있는지 아닌지를 보는 거예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구나”(사 6:5)가 아니라 ‘저 쓸만하지요? 아직도 남한테 기 안 죽을만큼 가치 있습니다’가 남아 있는지? 이거 남아 있으면 짜증 나는 거예요!
“이게 아직도 말씀으로 깊이 있게 안 쓸어냈구나. 내가 약 먹으라고 몇 번이나 했어?” 계속 말씀 줘서, 그거 좀 쓸어내라 이 말이죠. 그 찌꺼기, 내 의, 내 의를 쓸어내라 이 말이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건 그겁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그 말이죠, 그의 나라와 그의 의! 네 행복 구하지 말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
예수님이 어떤 인간보다 더 낮아지고 다 처참하게 망가진 거기서 나온 결과물, 살과 피를 집어넣어서 살과 피가 객관적이라는 사실, 십자가의 확정된 사실, 다른 거 필요 없다는 사실, 그 사실에 기뻐하기 위해서, 일어난 그 모든 일이 십자가와 연결되어 일어나는 사건’인 것을 우리에게 새로운 객관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겁니다.
이걸 아는 사람에게는 ‘내 생각은 이렇고, 네 생각은 이렇다’는 주관은 없고, 주께서 일으키는 객관적인 사실만 주고받으면서 “나에게는 이런 객관적인 사실이 일어났는데 너는 어떤 객관적인 사실이 일어났어?” “내가 미장원에 머리하러 갔는데 잘 안 나왔네?” ‘아하, 그것도 십자가와 관련돼 있구나.’ 이런 거, 모든 세상일이 십자가 중심으로 모여서 형제 사랑이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일, 여러분에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을 벗어나서 세상을 보게 하옵소서. 제발 남들 이야기 듣지 말고, 남들이 수군대는 이야기에 합류하지 말고, 주의 말씀 속에서, 주어지는 말씀 속에서 만나를 먹으면서 예수님의 모든 활동이 관련돼 있는 그 객관적 사실을 우리의 양식으로 받아들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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