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한 그룹으로 이스라엘 전체를 누구 앞에 세웁니까? 여호와 앞에 나서게 하는 거예요.
여호와 앞에 서는데 어떻게 서는가? 그게 바로 찬양대를 가지고 만들었습니다. 찬양을 한다는 것은 일이 끝날 때 하는 겁니까, 끝나기 전에 하는 겁니까? 찬양이란 기분 좋아서 노래하잖아요.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이미 끝나고 난 뒤에 불러야 되잖아요. 끝나지도 않았는데 미리 지레짐작으로 성급하게 하다가 나중에 패배하면 낭패나 웃음거리 되잖아요.
그런데 여기에 보면 여호사밧이 이미 승리한 걸로 생각해서 찬양대로 군대를 조직했습니다. 조직해서 나가보니까 어떤 누구도 예상 못한 일이 벌어졌어요. 아까 이스라엘 지도에서 모압, 그다음에 암몬 이 두 나라가 유다나라 치다가 어딜 치느냐 하면 세일, 에돔을 쳐버려요. 에돔을 치니까 저희끼리 치다가 저희끼리 다 죽었어요. 이거 하나님의 신을 받은 레위인이 알았습니까, 몰랐습니까? 몰랐습니다.
주의 뜻은 이겁니다. ‘너의 미래에 대해서 네가 몰라도 돼. 미리 염려하지 마. 몰라도 돼. 자꾸 계산하지 마. 몰라도 돼.’ 다만 그 현실 속에는 이미 다 이루었다는 차원에서 주님께서 너를 죄인으로 다루어서 죄 용서,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로 주님의 사랑을 다루기 위해서 내일 되면 네가 모르는 상황이, 모레 되면 네가 모르는 상황이 계속 벌어지고 일어날 겁니다. 이러면 어떻게 하나, 저러면 어떻게 하나 그것 염려할 권한과 자격은 우리한테 없습니다.
그래서 24절에 가보니까 “유다 사람이 들 망대에 이르러 그 무리를 본즉 땅에 엎드러진” 건 뭐뿐이다? only 시체, 시체뿐이에요. 전쟁하러 나왔는데 시체만 있으니까 뭘 건집니까? “여호사밧과 그 백성이 가서 적군의 물건을 취할쌔 본즉 그 가운데에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많이 있는고로 각기 취하는데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을만큼 많으므로”(25절) 많아도 너무 많아요. 찬양할 만 하지요.
그런데 미리 알고 찬양했습니까, 모르고 찬양했습니까? 모르고 찬양했다는 말은, 적군은 시체 되고 우리는 그 전리품 챙긴다는 걸 근거로 해서 찬양한 게 아니고 이 싸움은 우리는 빠지고 주님이 개입할 일인 것을 내용으로 삼아서 찬양한 거예요. 그래서 이름이 뭐로 바뀌느냐? 브라가 골짜기로 바뀌어요. 26절, 브라가. 브라가 뜻은 뭐냐? 찬양, 송축의 골짜기로 오늘날까지 그곳을 브라가 골짜기라 일컫더라, 이렇게 돼 있어요.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강의를 정리한다면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건져냈잖아요. 건져냈을 때 이스라엘은 오해했어요. 하나님은 건져낸 우리를 위해서 일하신다고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진짜 오해였어요.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신명기 8장에 나오는 말씀처럼 만나를 줬어요.
만나를 줬는데 이스라엘은 그걸 양식으로 오해한 거예요. 그러나 신명기 8장에는 내가 준 것은 양식을 준 적이 없다. 말씀을 주었다. 그 말씀의 내용은 뭐냐? 가만있어. 내가 너를 키운다는 거예요. 어떻게 키웁니까? 집에 가만있으면 까마귀가 짜장면 배달해줍니까? 그거는 네 방식이고 네 대책이고.
네가 대책 세울 수 없는 다른 대책으로 우리를 살리는데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우리로 하여금 방해되는 주께서 일방적으로 살리는데 방해되는, 누가 방해되느냐 하면 나의 잘남과 나의 완전함과 나의 똑똑함과 나의 위대함과 자존심이 자꾸 방해를 일으킨다. 잘난 게 방해를 일으키는 거죠. 그걸 우리보고 고치라면 못 고쳐요. 우린 타고났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완전함을 지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욕하면 안 돼요. 타고난 거예요. 못 고칩니다. 참 죽으면 죽었지 나의 완전함을 포기를 못해요. 가룟 유다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하나님께서 뭘 일으키느냐? 예상 못한 다툼이나 힘겨운 전쟁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그 전쟁의 특징이 대책이 있는 전쟁 같으면 우리 전쟁이 돼요. 집안에 뭐 어려운 일이 있다. 그러면 누구한테 돈 빌리면 되고 ‘내년에 갚을게요’ 이게 되는데, 아무 대책 없는데 문제는 일어났을 때 그때 어떠냐 하면 전에도 바쳤지만 이제는 네 목숨을 니가 지지 말고 네가 목숨 바칠 곳이 새로 생겼다고 그걸 송축하라, 찬양하라, 기뻐하라. ‘아 내 목숨은 여태껏 내 게 아니고 주의 것입니다. 주께서 이끌었습니다’를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 찾아온 거예요.
그때 그 마음으로 여러분들이 찬송가를 불러보세요. 그렇게 상투적으로 반복해서 불렀던 찬송가가 어느 구절 하나하나가 진짜 쏙쏙 들어오지요. 체험이 되는 찬송가가 될 거예요. 어떤 찬송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갈 곳 있지. 갈 곳 있는데 또 내가 이 땅에서 완전자로 살려는 내 모습이 죄구나. 그다음에 또 딴 것,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또는 내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어느 찬송가 하나 그게 현실과 괴리된 찬송가는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새로운 현실감을 여러분들이 갖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대책 없이 그냥 천사 같이 찬송만 하도록 차출되고 부름 받은 자가 바로 오늘날 우리 성도인 것을 그 짧은 순간이지만 깨닫게 됩니다. 그럼 그다음 순간은 어떻게 되느냐? 그다음은 또 다른 전쟁이 준비돼 있어요. 그거는 우리 소관 아닙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도 바울이 말씀하신 고린도전서 15장 10절의 말씀이 사도 바울에게만 적용되지 말고 매일 우리에게 적용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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