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10/28-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아빠와 함께 2025. 10. 28. 09:06

질문: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는 말씀에 있어서 그게 늘 걸리거든요. 사람들한테 친절해야 된다는 게 항상 몸에 배어있다 보니까 ‘야, 이게 참 예수님 편은 아니구나.’ 늘 그런 생각을 갖게 되는데 거기에 대해서 한 말씀해주십시오. 살면서 어떻게 사람들과 척 질수가 없어요.

답변: 그건 진짜 쉬운 문제에요. 어떻게 쉬운 문제인가? 내가 하나, 1이라고 하면 걱정이 늘어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밖에 없으니까 이걸 포기할 수도 없고 방치할 수도 없고 이걸 관리해야 되는데, 성경말씀은 나에게서 나를 뚫고 다른 나를 만들어요. 다른 나를 만든다고요.

만들 때, 빠져나온 나는 이미 말씀으로 다 이룬 나에요. 말씀의 성과물로 ‘나’가 나올 때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고 현재 있는 ‘나’가 아까 얘기하셨던 갈라디아서 1장 10절 말씀 있잖아요, 그 말씀이 나로서는 감당이 안 되기 때문에 기존의 나는 폐기처분 대상인 것을 놀리면서, “꼴좋다. 뭐 당연한 거 아니야? 말씀에 네가 부합되지 못하잖아. 일치 안 되지. 그거 당연한 거지.”

시편 2편의 말씀(4절,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처럼 내가 나를 비웃으면서 나를 끄집어내는 거예요. 내 속을 뚫고 나가는 거예요. 내가 나를 비웃으면서. “너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뭐 있어?”

만약에 말씀을 안 보게 되면 자아가 두 개가 아니고 하나기 때문에 바들바들 떨 수밖에 없어요. 하나님은 말씀대로 살라고 자꾸 숙제를 내잖아요, 숙제. 머리가 지끈지끈해요, 숙제 때문에. ‘이 과외 그만둘까?’ 할 정도로 힘든데, 자아가 두 개 같으면 한쪽은 합격했고 다른 한쪽은 합격한 자아에 대해서 ‘따라오지 마. 너 좀 꺼져줄래?’ 하는 식으로 배격하는 거예요.

질문: 그럼 나에 대해서도 소외대상이 된다는 말씀이시지요?

답변: 네, 배제대상, 소외대상이지요. 소외는 어려운 말이지만. 어쨌든 이렇게 됐을 때 빠져나오는 이걸 저는 두 개의 자아라 했잖아요. 이 자아는 주님 자아의 그림자입니다. 주님 자아의 그림자에요. 옛 자아는 아담 소속이고요, 새 자아는 마지막 아담 예수님 소속이에요.

이러면 돼요. 세상 살면서 남 비웃지 말고 본인 비웃으면서 쉽게 갑시다. “뻔하지 뭐. 네가 뭘 할 줄 아는데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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