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하심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들에게 한갖 지식으로 축적이 되어버립니다. 이 축적된 지식들은 자신을 지켜내는 용도로 쓰려고 시도하게 됩니다
예언이 직접 일을 하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예언을 알고 있는 나에게 나를 살리려는 힘이 된다고 믿고 있는 겁니다. 즉 하나님과 자신을 직접 상대하려고 합니다.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 바라보고 고하되 아무 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번까지 다시 가라”(왕상 18:43)
여기에 보면, ‘없나이다’가 일곱 차례로 확인됩니다. 이것은 원래 하나님께서 천지를 만들 때, 하나님의 취지를 얹어서 창조했습니다. 그 취지가 바로 ‘없는 데서 있게 하시고, 죽은 데서 살려내셨다’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언의 능력, 곧 언약의 능력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인간이 힘들다고 해서 마땅히 해줄 것은 없습니다. 권세자는 인간을 대표해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이게 다섯 번째 수위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이 표적 앞에서 도리어 ‘없어지는 것이 마땅함’을 견지하고 유지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비 내림’이란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자기 표현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권세자 아합+예언자 엘리야+ 비 내림’ 전체가 ‘예언’을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 예언을 드러내는 여섯 번 째 수준입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수준은 신약에 와서 드러납니다. 그것은 바로 ‘예언-예언’의 만남입니다. ‘하나님-하나님’의 관계입니다. 그 어떤 인간도 해내지 못하는데 그것은 인간이 하는 모든 것 중에 옳은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6:30에 보면, “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2:37-38에 보면,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즉 모든 인간은 가짜 인간입니다. 이 가짜 인간에게 예언이 달라붙어 뜯겨지면 그 안에 죄가 보입니다.
우리의 욕심과 탐욕이 그대로 하나님의 예언 앞에 노출됩니다. 어떻게 노출되는가? ‘인간이 하는 모든 일 중에서 옳은 일은 하나도 없었다.’ 하나도 없었다는 겁니다.
이런 관점이 바로 하나님의 관점이고 이 하나님의 관점에 의존하는 자만이 ‘예언-예언’의 관계 속에 들어간 진짜 이스라엘입니다.
'만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0/20-reset (0) | 2025.10.20 |
|---|---|
| 10/19-시편 51편 5절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0) | 2025.10.19 |
| 예언으로 노출 (1) | 2025.10.17 |
| 10/17-주님 혼자 하시는 구원-우리는 빼앗기면 된다 (0) | 2025.10.17 |
|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0) | 2025.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