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어쩔 수가 없다-박찬욱 감독 ] 관람평
(줄거리)
가장이 직장에 참 성실해서 가족들이 가장의 보호막 안에서 천국을 맛본다. 그런데 그 가장이 하루아침에 25년 간 근속한 제지회사에서 퇴출당하였다. 딸아이 첼로도 그만두어야 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짐을 돕겠다고 친구하고 휴대폰 훔쳤다가 경찰서로 잡혀간다.
테니스를 치고 댄스 학원에 다니면서 여유를 즐기던 아내는 주저 없이 아르바이트에 나선다. 정들었던 개 두 마리로 가족도 헤어진다. 가장의 꿈이었던 살던 집도 내놓았다.
이제 가장은 무엇할 것인가? 어떤 계획이 있는가? 고등하고 졸업 후, 줄곧 25년 동안 제지회사 현장에서 다져진 제지 기술자로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전에 잘하던 제지 공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력한 경쟁자들을 하나둘 제거해야 한다. 그들은 주인공 가장만큼이나 실직하여 절박한 자들도 있고 동료를 모함하면서까지 현직을 꿰차고 있던 자도 있다. 어쨌든 내가 살기 위해서 다 죽여야 한다. 어쩔 수가 없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결국 경쟁자들을 다 죽인다. 그리고 자기 가정의 행복을 다시 찾는다. 가장은 재취업에 성공하고 딸을 첼로에 천재적 재능을 발휘하고 개 두 마리로 돌아왔다. 아들도 무혐의로 풀려났다. 부동산에 내놓았던 집도 도로 걷어드렸다.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복하다. 어쩔 수가 없다.
(평)
세상은 광야다. ‘경제’라는 쇠스랑으로 긁어보면 금방 드러나는 사실이다. 바깥 환경만 광야가 아니라 심령도 덩달아 광야이다. 여유가 있을 때는 타인과 단체를 위해 희생할 의지도 있다. 하지만 비축된 정의감은 금방 소실된다. 쇠갈퀴로 사정없이 긁혀서 뜯겨나가면 바닥이 보인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죽어야 한다. 이처럼 땅의 근본은 삭막함이다.
그 위에서 ‘인간성’이란 그저 탈바가지다. 본질은 괴물성이다. (단 4:16) 여기저기서 울어댄다. 제발 내 손에 죽어줘! 실익만이 이 광야에서 통하는 정의요 도덕이다.
(복음적 평)
왜 사람들은 이 세상에 안 떠나려고 하는가? 무슨 미련이 있나? 아직 지을 죄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직 자신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동안 지은 죄의 분량을 생각하지 말고 주님께서 이미 치른 복역의 분량을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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