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진, 김대식 성도의 글이 목사들과의 글과 다르다는 것을 담박 알 수 있다. 그 이유가 뭘까? 그것은 영의 세계와 일상 생활과 직접 연결시키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 반면에 목사들의 글은, 일단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교회를 무시하지 않기를 바라는 조심스러움이 담겨 있다.
즉 "성도 여러분 제 글을 읽고 주님의 은혜받기를 바랍니다마는 제발 그 후로 '그렇다면 꼭 교회 다닐 필요있어. 교회는 별 소용도 없네'라는 생각으로는 빠지지 않았으면 합니다"라는 조심스러움까지 포함된 글을 남기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성도의 일상적인 삶 속까지 내려오시는 주님의 영적 파워가 아니라 일단 교회까지만 오시고 일반 교인들은 교회에 출석해야 비로소 만나게 되는 주님의 영적 세계를 목사들이 은근히 전하는 셈이 된다.
그래서 목사들은 일반인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종교 용어들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것은, "당신네들 일반인들이 이런 종교용어들을 모르시지요? 하지만 우리 목사들은 익히 압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종교 개념에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서 목사들이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종교 용어의 의미를 모르신다면 여러분들은 깊은 영적 세계 외곽에 그냥 방치되어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교회에 자주 나와서 우리 목사에게 한 수 배우시기 바랍니다."라는 뉘앙스를 잔뜩 풍겨주는 바가 된다.
쉽게 말해서. 영적 세계와 일반인의 세계 사이에 중간 단계를 따로 만들어놓는 바가 되는 것이다. 이 교회라는 중간 단계의 주인장은 역시 목사이다. 그 목사를 거치지 아니하면 영적 세계에 진입했다고 볼 수 없다고 목사들은 일반인들을 상대로 권위를 행세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박윤진, 김대식 성도는 목사 전유물이라고 여긴 영적 세계를 일상세계의 용어로 바꾸어서 직접 전달해주고 있다. '교회의 주인장되는 목사의 실력발휘를 꼭 거쳐야 한다'는 분위기가 어디에도 없다.
목사들은 심히 불쾌해진다. "당신들의 말은 맞고 복음적이지만 왠지 기분 나빠지려고 하는 것은 왜 아마츄어가 프로의 밥그릇까지 넘보느냐"라는 느낌 때문에 불쾌하다.
목사들은 신학을 증거해 왔다. 광범위한 신학 체계가 일반인들을 주눅들게 할 것이다는 기대를 하면서 아울러 목사의 신학적 실력과 권위까지 덮어씌울 수 있는 방도가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윤진, 김대식 성도는 그 신학체계의 헛소리를 생생한 실생활 속의 복음적 능력으로 정면으로 되받아 버린다.
신학체계의 권위가 무색해질 판이다. 목사는 화가 난다.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싶을 것이다. "우리 목사들은 이 밥그릇 아니면 다른 밥그릇 없다. 제발 우리 영역을 침범하지 말고, 행여 침범하더라도 목사님이 계시는 교회의 권위를 무시하면 지옥간다는 교인이다는 말도 좀 해 달라고 반 타협, 반 아부쪼로 나온다.
과연 둘 중에 누구의 태도가 옳은가? 관권은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은 섬김으로만 전달된다. 전달하는 자가 전달받는 자의 주인장이 아니다. 도리어 종으로서 일반인을 섬겨야 한다. 그리고 그 보상은 없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달한 그것 자체가 복음전달자의 기쁨이요 상급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인들보고 교회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받는 그 현장에 교회가 새롭게 생겨난다. 즉 목사가 교회를 꿰차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목사가 주인장되는 교회는 늘 폭파되어야 하고, 복음을 수용한 그 일반인의 가정이 오늘의 교회이다. 그 교회를 섬기기 위해 119 대원처럼 목사는 달려가야 한다.
이 세상에서 교회는 처음부터 오직 '하나(1)' 뿐이다. 그 하나 뿐인 교회가 문어발처럼 오늘은 어느 가정에 출몰할지 아무도 모른다. 목사는 자기가 주인장되는 교회는 없어야 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그 일반인이 있는 곳이 곧 주님이 지목한 새로 생긴 교회라고 여겨야 한다. 이것이 복음만 좋아서 미쳐 싸대듯이 봉사하는 복음 봉사자의 자세다.
우리는 박윤진과 김대식의 길에서 막 쩌낸 교회 냄새를 맡는 보람으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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