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후설교

두 사기 타입

아빠와 함께 2025. 9. 15. 08:03

두 사기 타입

2025년 9월 14일                  본문 말씀: 예레미야 49:28-33

49:28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공격된 바 게달과 하솔 나라들에 대한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일어나 게달로 올라가서 동방 자손들을 멸하라

49:29 너희는 그 장막과 양떼를 취하며 휘장과 모든 기구와 약대를 빼앗아다가 소유를 삼고 그들을 향하여 외치기를 두려움이 사방에 있다 할지니라

49:30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하솔 거민아 도망하라 멀리 가서 깊은 데 거하라 이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너를 칠 모략과 너를 칠 계책을 정하였음이니라

49: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는 일어나 저 평안하고 염려없이 거하는 백성 곧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이 홀로 거하는 국민을 치라

49:32 그들의 약대들은 노략되겠고 그 많은 가축은 탈취를 당할것이라 내가 그 머리털을 모지게 깎는 자들을 사면에 흩고 그 재난을 각 방에서 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49:33 하솔은 시랑의 거처가 되어 영원히 황무하리니 거기 거하는 사람이나 그 중에 우거하는 아무 인자가 없게 되리라

각자 자기 민족을 유지하는 나라들 사이에 남의 나라 하나님이 자기 민족 운명을 거론하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일 것입니다. 당연히 무시할 겁니다. 오늘 본문 내용은 마치 2차대전 때, 독일 부대가 전략판 위에서 모형들을 밀어서 일방적으로 진두지희하는 모습 같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모든 민족은 그저 하나님께서 다루시는 게임판의 말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대하는 성도는 어떤 자세를 갖추어야 할까요? 수평적인 세계관, 즉 지평선만 멀러 내다보면서 살아가는 세계관으로는 이방민족이나 이스라엘이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방민족이 보지 못하는 다른 면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이 수평적 세상에서 ‘피하고 도망쳐라’입니다.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 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 24:16-21)

즉 이 지평선만 보이는 세상관 입장에서 하나님이 심판읊 피하여 더는 도망할 곳이 없이 파탄났다는 겁니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계 6:15-17)

이런 와중에서도 이스라엘은 다른 방식으로 살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이 수평적 안목이 전부가 아니라 수직적 안목을 갖추고 살아가는 겁니다. 그것이 시편 139:7-10에 나옵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즉 도망쳐봤자 소용없고 그저 하나님의 신께서 인도하는대로 움직이고 살면되는 겁니다. 이것이 지평 위의 세계를 지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신의 고유 활동 안에서 사는 겁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어떻게 수평적 사고방식에서 세상의 뿌리까지 아는 수직적 안목을 갖출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여기서 생존에 몰두하는 각자의 삶을 통해 수평적 세계에서는 두 가지 타입의 사기(詐欺)부류로 모든 사람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A 타입의 사기꾼은 다음과 같습니다. 2018년, 러시아 출신의 20대 여성 애나 소로킨은 자신을 부유한 독일 상속녀라고 속이고 뉴욕 상류층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치를 누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녀는 애나 델비 재산을 설립하려는 큰 계획을 가지고 그 계획의 하부 협력자 그룹과 함께 했습니다.

그녀의 독특한 점은 겉으로 보이는 그럴듯한 모습에 매우 집착한다는 점입니다. 친구들은 종종 거짓과 기만을 멈추라고 호소하지만, 그녀는 결코 흔들리지 않고 가면을 벗지도 않습니다. 그녀자 자신의 거짓이 입증되는 사실을 마주할 때마다 어떻게든 체면을 지키기 위해 분투 노력합니다.

그녀는 단지 자신의 꿈속을 살았을 뿐이며 거대한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을 확보하는 일에 주제넘게 끼어들 입장에 안 된다고 겸손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터무니없는 투사를 하나의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대의로 승화시킵니다. 그녀가 숭고한 인물처럼 행동하는 이유는 전적으로 나름 순진무구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녀는 도덕적이지는 않지만 윤리적입니다. 타인에게 거룩한 명분을 알리는 겁니다.

B 타입의 사기꾼 하유트는 자신을 러시아계 이스라엘인 다이아몬드 재벌 아들로 소개하며 유럽을 여행합니다. 그리고 ‘사이먼 하비에프’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에게 접근해 돈을 빌린 뒤 갚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성들을 속여 빌린 돈으로 값비싼 선물을 사서 다른 여성을 유혹하고 전용기를 타고 이동해 저녁 식사를 합니다.

그러다가 보안 문제로 신용카드와 계좌 에금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하면서 피해 여성들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요구했습니다. 여성들을 그를 위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거나 신용카드를 발급해주기도 합니다. 이 B타입의 남자는 타인을 조종하는 냉혹은 사기꾼이며 자신과 동일시하는 구체적은 투사체는 없습니다.

그는 한 여성을 속이는 데 성공하면 그녀를 버리고 다른 여성에게 넘어갑니다. 그는 도덕적이지도 않고 윤리적이지도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인간들은 다들 사기꾼인데 이 둘 중의 하나에 속합니다. 타인들에게 그럴사한 명분을 앞장세워서 자기 행함의 정당성에 대해서 타인의 인정을 끌어모으려고 합니다.

예를 들면, 퇴직한 아버지가 식구들 보아놓고, “내가 이 가정을 살리기 위해 온갖 주위의 서러움과 비난을 다 받으면서 이 한 몸 바쳤다” 말합니다. 전형적인 A 타입입니다. 하지만 퇴직하고 난 뒤에서 곧장 B타입으로 변해갑니다. 보다 자신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정당화합니다. 따라서 시편 139:7-10에 나오는 ‘하나님이 신’의 세계 안으로 진입될 수 없습니다.

신약에 들어와서 비로소 수평적 세계는 그 한계성을 다 노출됩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일하시는 바탕이 등장합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눅 2:34-35)

모든 인간들은 자신이 하는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자신이 기어이 세상에서 꼭 계속 살아남는 명분을 쌓을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작업을 하면서 본인 아니게 타인에게 압력과 피해를 주게 마련입니다. 내 살기 위해 내 앞길에 장애물이 되는 것에 대해서 가차없이 제거하려고 합니다.

즉 나의 존재가 곧 타인에게 어쩔 수 없이 피해 입히는 식으로 움직이는 것이 이 수평적 세상의 형편입니다. 이것이 익숙해지면 그 다음에 B타입으로 전환됩니다. 마치 자신의 생존이 당연한 것처럼 여깁니다. 바로 이런 면을 미리 아시는 주님께서 말씀으로 꼭꼭 찔려주십니다. 이 수칙적 형편을 아는 자가 주님의 성령 안에서 사는 자들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라는 핑계 뒤에 자신의 욕망을 더는 감추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171강-예레미야 49장 28~33절(두 사기 타입)250914-이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예레미야 49장 28~33절입니다. 구약성경 1130페이지입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공격된바 게달과 하솔 나라들에 대한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일어나 게달로 올라가서 동방 자손들을 멸하라, 너희는 그 장막과 양떼를 취하며 휘장과 모든 기구와 약대를 빼앗아다가 소유를 삼고 그들을 향하여 외치기를 두려움이 사방에 있다 할찌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하솔 거민아 도망하라 멀리 가서 깊은데 거하라 이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너를 칠 모략과 너를 칠 계책을 정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는 일어나 저 평안하고 염려 없이 거하는 백성 곧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이 홀로 거하는 국민을 치라, 그들의 약대들은 노략되겠고 그 많은 가축은 탈취를 당할 것이라 내가 그 머리털을 모지게 깎는 자들을 사면에 흩고 그 재난을 각방에서 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솔은 시랑의 거처가 되어 영원히 황무하리니 거기 거하는 사람이나 그중에 우거하는 아무 인자가 없게 되리라”

2차 세계대전 같은 영화를 보면 독일 군병들이 전략 전술을 짜면서 커다란 당구장 테이블 같은 판에 비행기 모형, 탱크 모형, 또는 군사들 모형과 지도를 모형으로 해놓고, 작대기를 하나 들고 쭉쭉 밀면서, ‘탱크부대는 이렇게 막고, 공격은 이렇게 하고...’라고 설명하면서 쭉쭉 미는 거 있지요?

그런 장면이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평면 구조 위에 딱 세워놓고, “하솔 거민아, 도망해라. 게달아 너희는 바벨론에게 당한다. 바벨론은 뭐 하냐? 이거 치지 않고?”라는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평면적 모형판을 미는 것처럼, 계시를 그렇게 적용하십니다. 그 계시에 대해서, 게달이나 하솔 자손들이 그걸 듣겠느냐는 겁니다.

그 말에 순종해서 그들이 과연 그걸 피하겠느냐를 생각해 볼 때, 그들은 안 듣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계시를 준 거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신을 믿는다’라고 하면 끝나는 문제입니다. 본문 32절에 보면 “그들의 약대들은 노략 되겠고 그 많은 가축은 탈취를 당할 것이라 내가 그 머리털을 모지게 깎는 자들을”

여기에서 머리털을 모지게 깎는다는 말은, 그들의 종교적인 풍습에 의해서 그들 종교로 인해 마음을 결합하기 위해서 몸에 어떤 흔적을 남긴 것이 바로 머리털을 모지게 깎는 거예요. 따라서 그들은, “여호와의 말이니라”라는 말이 여호와의 말이기 때문에 그들은 굳이 수용할 책임이나 의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거는 너희 이스라엘이나 믿고 우리는 다른 신을 믿는다’라고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 예레미야의 말씀에 의하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가 모든 민족의 신들을 묵살하고, 그거는 신으로 인정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관장했던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제는 이스라엘을 넘어서서 모든 민족에게 친히 그들의 운명에 개입해서, 여호와께서 그 모든 민족을 여호와 하나님 쪽으로 통합시킨다는 계획을 이렇게 펼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 하솔 거민, 게달 거민들. 하솔의 위치는 지금의 시리아로 보시면 됩니다. 시리아 중에서도 바다 쪽으로 말고, 사우디아라비아 쪽에 시리아 지역을 말합니다. 그들은 유목민족입니다. 유목민족들이 이 말씀을 들을 이유도 없고 안 들었을 것이고, 하면 냉소적으로 그냥 ‘웃기네’라는 쪽으로 무시할 겁니다. 평면적으로 사는 모든 인간의 움직임을 하나님이 다뤄도, 그들은 거부한단 말이죠. 그러면 그다음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받아들입니까?

성경에 예레미야 49장에 나오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여호와를 믿으니까 우리에게 적용시키냐는 말입니다. 우리 역시 우리에게 적용시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이 따로 있기 때문에, 우리 살기 바쁜데, 언제 성경을 보고 예레미야 49장에 뭐가 있는가, 그걸 신경 쓸 여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방송이나 사람들 이야기하는 가운데서, 이런 이야기를 제가 들은 적이 있어요.

나이 60이 되어서 늦으막에 인생 성공을 한 사람에 대해서, 인간극장에서 이런 나레이션(narration)을 합니다. ‘꽃 중에서도 늦게 피는 꽃이 있다’ 나이 60 가까이 되었으니, 뒤늦게 호강한다는 말이거든요. ‘늦게 핀 꽃’이라는 말을 여호와를 모르는 사람이 나와서 할 때, 우리는 거기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느냐 하면, 이사야 40장 6~8절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세상에서 통하는, ‘역시 늦게 핀 꽃도 이렇게 아름답군요’라고 하면서 그냥 부담없이 편하게 하는 그 모든 내용이 여호와 말씀의 구획 안에, 그 프레임, 범주 안에 다 들어있는 거예요.

따라서 성경에서 이방 민족에 대해, 어떻게 예언하게 되면, ‘그건 이방 민족에게 하고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 이방 민족과 우리가 서로 내통하고 있고, 같은 생각을 가지고 이 평면, 수평적인 세상에서 수평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냥 무심코 살아가잖아요.

여기서 수평, 또는 지평이라는 말이 적절하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인간이 코 앞에 있는 거, 코 앞에 있는 거, 그렇게 살다 보면, 계속해서 이 땅, 지평선 끝까지 그냥 가 보면서 살아가는 거, 그러다가 늙어 죽으면 묘지 하나 만들어 주면 되고, 그러니까 이 인간 세상은 이방 민족이 생각하는 것처럼 수평적인 그게 전부예요.

눈에 보이는 세상, 그게 전부란 말이죠. ‘해외여행 갈래. 가봐. 호주 갈래. 호주 가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든지 다 해봐’ 해보면 그건 하나의 지평선, 한국 입장에서는 지평선인데, 거기를 가면 지평선이 또 멀어져요. 지평선 가기 전에 일부, 일부를 자기가 점유하고 살아가는 중입니다. 그래서 지평선밖에 모르는 사람에게 이 멸망에 대한 계시는, ‘너도 이방 민족처럼 지평선만 알래, 아니면 또 다른 거 알고 있어?’라고 묻는 이야기예요.

그러면 지평선이 전부지, 우리가 성경 안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이 세상과 짧은 인생, 그게 전부지, 뭐가 별것이 있겠어? 우리는 이렇게 항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뿌리, 뿌리를 이야기해요. 뿌리가 뭐냐 하면, 영적 뿌리인데, 영적 뿌리를 알고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성도에게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성령의 기적입니다.

뿌리를 알게 되면, 갑자기 이 세상 사람으로 이방 민족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뿌리 위에 붕 떠 있어요. 그러니까, 평면, 독일군들이 군사전략을 꾸미는 당구대 같은 판이 붕 뜨고, 그 밑에 뿌리 부분이 보이는 거예요. 그러면 계시는 뭐냐. 윗부분 계시 따로 있고 아래쪽에 뿌리 부분 계시가 따로 있는데, 그 뿌리가 되는 계시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지금 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가 돼요.

뿌리가 위쪽을 받쳐주니까요. 뿌리가. 그냥 뿌리 모르고 세상을 살아가면, 남들 살아가는 대로, ‘저 사람은 만 평 가졌고, 나는 열 평 가졌다. 내 것이 작네’라는 식으로 살다 죽으면 장례식장 가면 끝나는 거고, 이게 전부 다 수평적이잖아요. 수평적으로 살다가 뿌리를 알게 되면 수평이 아니라, 수직이 되어버려요.

수직적 안목으로 살 때, 그런 식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이건 성도에게만 특별히 주는 하나님의 영적 생활의 은혜입니다. 혜택이고 기적에 해당됩니다. 그러면 그 뿌리에 대해서 뭘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때는 역시 영적으로 완성 되어있는 것이 바로 신약성경이거든요. 신약성경 마태복음 24장 16~23절에 보면,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질러 내려 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질러 뒤로 돌이키지 말찌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지평선, 수평선 같은 이 땅 위만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후리는 겁니다. “도망치려면 한번 도망쳐 봐라. 내가 도망치도록 사태를 일으키겠다” 도망쳐 보면 어떻게 되는가. 이 땅에는 길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런 식으로 몰아넣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디 가서 그 뿌리, 영적 생활을 하는 그 뿌리를 발견하는 일이 있겠습니까?

같은 내용으로 요한계시록 6장 16~17절에 보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라고 되어있어요. 그러니까 이 요한계시록에도 지구상에 있는 모든 인간은 멸망 당할 수밖에 없고, 더 놀라운 사실은 피할 곳이 없다는 거예요. 어디로 빠질 곳이 없다는 사실.

이게 지상에 태어난 인간들의 한계이고 그들의 문제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에게, “도망가 봐야 너희는 바벨론에게 당해”라고 하시죠. 오늘 본문의 계시가 이거거든요. “느부갓네살에게 당한다” 그러면 이 말씀을 우리에게 줬다면, ‘너도 미국에게 당해, 러시아에게 당해, 북한에게 당해, 3차 대전 일어나서 핵폭탄 떨어지면, 너는 피할 곳이 없어’라는 말은 우리에게 뭘 이야기하는 겁니까?

“너 피할 곳 있지? 그지?”라는 이 이야기죠. “내가 알려줬잖아. 3차 대전 일어나고, 모든 것이 핵전쟁으로 멸망한다고 할지라도, 그건 네가 바라던 거였잖아. 왜? 너는 피할 곳이 있기 때문에” 지금 그 이야기를 우리에게 확인하는 거예요. 우리는 멀뚱하게, ‘모르겠는데요. 우리는 눈에 보이는 지상의 삶 외에, 아는 것이 없는데요. 혹시 교회 다니면 행운이 찾아와서, 주께서 이 지상에서 다른 장소 있을지도 모르는 그것만 압니다’라는 식으로 답변한다면, 주께서 묻죠.

“내가 준 계시 어떻게 했어?”라고. ‘뭐 줬는데요? 들은 기억이 없는데’라는 식으로 나오면, 평소에 우리가 얼마나 안일한 삶을, 말씀과 괴리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겁니다. 시편 139편 7~10절에 보면,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찌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찌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찌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어떤 난리가 나고, 전쟁이 나고, 인생의 낭패가 온다고 할지라도, 주의 손과 동행하게 되면, 그건 마치 노아가 홍수 안에서 얼마나 바깥에 물 깊이가 몇 미터가, 몇백, 몇천 미터가 된다고 할지라도, 방주 안에 있는 자들은 신바람 이 박사죠. 그건 신나는 이야기죠. ‘내 그럴 줄 알았잖아. 이 방주 말고는 내가 살 길이 없다는 것을, 내가 이야기했어, 안 했어?’라는 걸 확인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방 민족이 망한다, 바벨론이 망한다, 또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3차 대전에 망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우리가 이미 속해 있는 계시가 얼마나 기쁜 장소이면, 주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를 깨닫는 거예요. 다시 말씀드립니다. 영적 생활이라는 것은 큰 기적과 같은 거예요. 성령과 함께하는 영적 생활은 정말 고맙고 고마운 이야기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남은 문제는 우리가 피할 곳이 든든하게 피할 곳인지, 그냥 가라로 대충 성질 급해서 ‘주 안에 거합니다’라고 핑계 대듯이 그렇게 성경 말씀으로 대충 때워서 나도 구원받았다고 그렇게 우기는지, 그걸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지금부터 확인에 들어갑니다. 제가 여기서 두 종류의 사기꾼을 이야기할 테니, 그 사기꾼의 차이점을 생각해 보세요.

하나는, 실제로 외국에 있는 유명한 사기꾼(러시아 출신의 20대 여성 애나 소로킨)인데요, 자기가 러시아 황실의 딸이라고 우기면서, 사람들을 속여서, ‘내가 불우이웃을 돕는 큰 재단을 세웠는데 돈이 모자라니까, 여기에 협조를 부탁드립니다’라고 사기 쳐서, 수천억을 끌어모은 미모의 여성 사기꾼이 있었어요. 실제로요. 나중에 체포되어서 가짜로 들통났습니다. 이게 여자 사기꾼이고.

한 명은 남자 사기꾼(하유트)인데, 그 남자 사기꾼은 그냥 사기 치는 것이 좋아서, 남이 자기 말에 속아 넘어가는 것이 재미있어서, 자기가 어떤 유명한 재벌의 상속자인데, 아버지가 모든 재산을 나에게 다 넘겼다. 그래서 그 사람은 자기가 유명한 재벌의 상속자로 군림하면서, 그 사람 돈을 가지고 전용기를 타고 호텔에 묵으면서 사람들에게 돌려막기 사기를 치는 거예요.

자기가 대단한 집안의 남자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다른 여자의 돈을 사기 쳐서 전용기나 운영비를 대고, 그 여자보다 더 센, 돈 많은 여자를 속이기 위해서 또 그렇게 해보는 거예요. 그 두 사기꾼의 차이점이 뭐냐는 겁니다. 첫 번째 여자 사기꾼은 도덕적이지는 않지만 윤리적이에요. 제가 이 두 사기꾼을 이야기하는 것은, 모든 인간은 이 두 사기꾼 중 한 부류에 속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사람은 도덕적이지는 않지만 윤리적이에요.

뭐냐 하면,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재단을 세우는데, 나 하나 앞장서서 희생한다는, 타인에 대해서 윤리적, 개인으로 그걸 속이니까 도덕적이지는 않지만 윤리적이에요. 명분이 있는 거예요. ‘나 혼자 살라고 이렇게 애쓰는 그런 파렴치한 인간은 아닙니다. 이 세상을 좋은 세상 만들기 위해서 애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사기꾼에 속합니까?

명분, 이유. 내가 존재해야 할 이유는 남에게 도움 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내가 하는 일을 도와줘야 합니다. 이게 바로 여자 사기꾼 타입이에요. 두 번째 타입은 뭐냐. 도덕적이지도 않고 윤리적이지도 않아요. 그냥 재밌어. 속이는 그 자체가 재미있어. 남 등쳐먹는 그 자체가 재미있어요. ‘너 왜 사냐?’라고 물으면, ‘남이 나에게 속아 넘어가는 그게 그렇게 재미있어’라고 하죠.

이게 두 가지 타입이에요. 인간은 둘 중 하나인데, 이게 왔다가 갔다가 해요. 아버지가 되어서 자식들 모아놓고, ‘내가 너희들 밥 먹여 키운다고 얼마나 고생한 줄 아냐?’라는 이거 첫 번째 타입입니다. 그런데 그 첫 번째 타입이 나이 들면 어느새 뭐로 바뀌느냐면, 두 번째 타입으로 바뀌어요. 슬슬 내 인생 즐겨보자는 거죠.

다시 말해서, 인생이라는 것은 뿌리를 알고 진리를 알아서 바르게 산다는 것은 우리 인생 가운데는 없다는 사실을 게달과 하솔의 계시를 통해서 우리는 알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걸 공격하는 느부갓네살은 다니엘 2장과 4장에 보면, 짐승입니다. 오늘 시간 관계상 찾지 않겠습니다. 분명히 다니엘의 계시에 보면, 모든 인간은 짐승의 나라에 구성원이에요.

그리고 그들이 모여서 이룬 나라는 뭐냐, 신약에 있는 네 번째 짐승이에요. 따라서, 오늘 말씀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은 본인이 사기 치지 않고 바르게 살려는 그런 마음은 아예 먹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계시에 보면 그건 부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타고난 사기꾼들입니다. 이게 바로 우리 자신의 뿌리를 아는 영적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러면 시편 139편에 나오는, ‘내가 어디로 가도 하나님의 신을 떠날 수 없다는 이 사람은 진짜 같은데요?’라고 이야기할 거예요. ‘내가 바다에 가도, 땅 끝에 가도, 주의 성령이 함께 하니까 나는 진짜가 아니냐. 사기꾼 아니고 진짜 성도 맞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에 시편 139편 이야기는 누가복음 2장에 가야 그 해답이 나옵니다.

성령 받은 시므온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2장 34절에 보면,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자, 비방을 받습니다. 욕을 먹는데 그 이유가 어디 나오느냐. 35절에 나옵니다.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겁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너 사기꾼이야”라고 찔러주는 거예요. ‘저는 사기꾼 아닌데요. 말씀대로 사는데요’라는 되지도 않는 소리 하지 말고, “너는 사기꾼이야” 너는 A타입과 B타입 사기꾼 중 하나예요. 항상 타인을 의식해서, 나는 지금 좋은 쪽으로 살아간다고 구라(거짓말)를 치면서, 평생 90까지 인생을 그렇게 살아요.

구라를 치면서 그렇게 산다고요. ‘내 인생은 의미 있어’ 의미 있기는 무슨 개코 의미가 있어요? 없어요. 자기 인생 즐기는데, 방해받아서 못 즐기지, 인간은 내놓으면 전부 다 자기밖에 몰라요. 자기 편한 것밖에 모르고, 자기 즐거운 것만 챙겨요. B타입이에요. 남이 속으면 얼마나 즐겁다고요. 그런데 예수님만이 성령을 통해서 찔러줘요.

그 찌름, 그 찌름이 우리가 몰랐던 나의 뿌리입니다. 나의 죄악 된 뿌리. 이 뿌리를 보면서 하나님의 계획은 뭐냐. 아까 마태복음(24장)에서 봤던 것처럼, “피하라. 도망쳐라. 이곳은 살 곳이 못 된다. 이 땅은 임시 거처다. 너는 출장 왔어. 너 피하는 모든 비용은 하늘에서 다 댈 테니까, 법카(법인카드)로 다 낼 테니까, 너는 도망치고 피하는 모습을 보여라” 이게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말씀이에요.

우리는 피하는 중입니다. 주께서 옮길 때까지, 이쪽으로 피하고 저쪽으로 피하고. 영원한 거쳐는 이 땅에 없습니다. 이방 민족에게 이야기한 거, “피하라” 그들은 못 피합니다. “도망쳐라” 그들은 도망 못 갑니다. “야, 제들 도망친다. 느부갓네살, 뭐해? 잡지 않고!” 이런 식으로 위에서 다 진두지휘해서 자기들끼리 망하고 다 패망하도록, 짐승의 자식들이 짐승과 같이 망하도록 그렇게 조치하는 하나님의 작전에 우리는 박수를 보내면서, 바로 그것을 알게 된 우리 자신이 성령에 속한 주의 백성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더 이상 성경 앞장세워서 자기 꿍꿍이를 감출 생각하지 말게 하옵소서. 성경을 입각해서 볼 때, 돌이켜보면, 어느 것 하나, 자신을 꽃피우기 위해서 살아가는 우리 모습입니다. 하지만 말씀이 그 꽃을 시들어 버리게 하고, 그 꽃이 다 없어지게 하시는 그것이 말씀의 위력인 것을 도리어 기뻐하고 감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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