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표 인생
2025년 8월 17일 본문 말씀: 예레미야 47:1-7
47:1 바로가 가사를 치기 전에 블레셋 사람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47: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물이 북방에서 일어나 창일하는 시내를 이루어 그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과 그 성읍과 거기 거하는 자들을 엄몰시키리니 사람들이 부르짖으며 그 땅 모든 거민이 애곡할 것이라
47:3 힘센 것의 굽치는 소리와 달리는 병거 바퀴의 울리는 소리에 아비의 손이 풀려서 그 자녀를 돌아보지 못하리니
47:4 이는 블레셋 사람을 진멸하시며 두로와 시돈에 남아 있는 바 도와 줄 자를 다 끊어 버리시는 날이 이름이라 여호와께서 갑돌 섬에 남아 있는 블레셋 사람을 멸하시리라
47:5 가사가 삭발되었고 아스글론과 그들에게 남아 있는 평지가 멸망되었나니 네가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47:6 여호와의 칼이여 네가 언제까지 쉬지 않겠느냐 네 집에 들어가서 가만히 쉴지어다
47:7 여호와께서 이를 명하셨은즉 어떻게 쉬겠느냐 아스글론과 해변을 치려 하여 그가 명정하셨느니라
블레셋 나라가 망한다는 계시입니다. 이스라엘이 망해야 한다는 예레미야의 예언은 이제 블레셋으로 돌립니다. 동일한 원리입니다. 이스라엘은 언약이 주어졌지만 언약대로 살지 못해서 망했고 블레셋은 아예 언약이 없는 민족이라서 망합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블레셋이 이스라엘 옆에 붙어있는 이유는, 언약이 현실이 되는 양상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블레셋에 언약은 없지만 신은 있습니다. 언약이 없는 신입니다. 이 신이 지닌 내용은 오늘 본문 5절에 나와 있습니다. “네가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이게 무슨 뜻일까요? 이점을 참조할 수 있는 상황이 열왕기상 18장에 나옵니다. “ 저희가 그 받은 송아지를 취하여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가로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으므로 저희가 그 쌓은 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오정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저희를 조롱하여 가로되 큰 소리로 부르라 저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 잠간 나갔는지 혹 길을 행하는지 혹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이에 저희가 큰 소리로 부르고 그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하더라”(왕상 18:26-28)
즉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자신들이 해낼 수 있는 극단적인 행동을 통해서 신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움직여보려고 애를 씁니다. 이들은 ‘언약이 언약대로 실현된다’는 원칙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언약의 하나님과 만나서 망한 것은 언약이 언약대로 적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뭐든지 잘되어야 복이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언약은 이스라엘을 의도적으로 바벨론 제국 속으로 포로잡혀 가게 하므로서 언약 완성을 향하는 과정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점은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블레셋의 지배 하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사가 있었으니 그 사람이 삼손입니다.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힘을 사용하는 길 가에 있는 사자를 때려 눕혔는데 사람의 일반적인 능력을 초과하는 힘이 나타난 겁니다. 그 결과로 죽은 사자의 시체에서 꿀이 생산되었습니다. “삼손이 그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서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어린 사자가 그를 맞아 소리 지르는지라
삼손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 손에 아무 것도 없어도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음 같이 찢었으나 그는 그 행한 일을 부모에게도 고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내려가서 그 여자와 말하며 그를 기뻐하였더라 얼마 후에 삼손이 그 여자를 취하려고 다시 가더니 돌이켜 그 사자의 주검을 본즉 사자의 몸에 벌떼와 꿀이 있는지라 손으로 그 꿀을 취하여 행하며 먹고 그 부모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드려서 먹게 하였으나 그 꿀을 사자의 몸에서 취하였다고는 고하지 아니하였더라”(삿 14:5-9)
그런데 삼손은 이 사건을 내용으로 수수께끼를 내어서 블레셋 사람들을 징벌하는 구실로 사용합니다.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그들이 삼 일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삿 14:14) 즉 블레셋은 자신들의 나라가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에 의해서 출현한 삼손은 이스라엘에[게 사자처럼 강한 나라 블레셋을 찢어버리고 거기서 ‘약속의 땅의 결실물’인 꿀을 그 언약 실현 차원 안에서 만들어낸다는 겁니다. 이처럼 비롯 이스라엘은 언약을 위반해서 바벨론 나라에 포로 간 신세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포로 잡힌 언약 백성을 통해서 대제국 바벨론의 한계를 드러내게 하십니다.
이렇게 볼 때에, 언약이 없는 블레셋은 나름대로 자기 민족의 지속성을 달성하려고 하지만 그 취지는 멸망의 세계, 곧 지옥으로 향하는 화살표를 형성할 뿐입니다. 반면에 언약이 있는 민족인 이스라엘은 언약은 그 어떤 경우에도 취소되거나 불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기에 천국으로 향하는 화살표로 작용하게 됩니다.
마치 어느 사형수가 사형 집행지점에 마지막 소원 한 가지를 허락받습니다. 이 자리에서 사형수는 커피 한 잔을 부탁합니다. 교도관이 커피를 갔다주니 “믹서네?”하면 불만을 표합니다. 평소에 자신이 먹던 커피가 먹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원두커피입니다. 이처럼 인간이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줄곧 해왔는 것을 멈추지 않고 이어갑니다.
언약이 없는 우상의 특징은 이러합니다. 언약이 주는 단절, 즉 주도권 교체가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끝까지 관철하려고 합니다. 자기에게 납득이 되는 사후의 세계이기를 원하고 있고 그럴만한 권리가 자신이 있다고 여깁니다. 바로 이러한 의식이 만들어낸 환경이 ‘지옥의 화살표’입니다.
사람들은 언약이 없는 우상과 언약을 본질로 한 하나님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이라면 누구나 참 진리라고 간주하는 내용을 정리하므로서 언약이라는 것이 왜 그토록 배격당하는 내용인 가가 파악되어야 합니다. B.C 384-322에 등장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한 진리를 소개해 보면 이러합니다.
⓵ 있는 것은 없다 말하거나,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지만, 있는 것을 있다고 말하고 없는 것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참이다.
⓶모든 인간은 본성적으로 더 알기를 원한다.-새로운 지식에서 쾌락을 느끼니까-
⓷인간은 본래 정치적(사회적) 동물이다. 모여 살기를 원한다.
⓸덕은 습관에 의해 형성된다
⓹ 같은 것은 같게, -정의란 모든 사람에게 무차별적으로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로, 책임, 능력 등에 따라 적절한 차등을 두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이성적 의식에서 결코 언약이 제공하는 단절을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언약의 완성을 위해서는 필히 인간의 ‘자기 주도권’이 언약에 의해서 파괴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자기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언약 앞에서,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앎과 잘남과 이성을 파괴되어야 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희생 앞에서 더는 자신이 안다고 말하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167강-예레미야 47장 1~7절(화살표 인생)250817-이근호 목사
하나님의 말씀은 예레미야 47장 1~7절입니다. 구약성경 1129페이지입니다.
“바로가 가사를 치기 전에 블레셋 사람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물이 북방에서 일어나 창일하는 시내를 이루어 그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과 그 성읍과 거기 거하는 자들을 엄몰시키리니 사람들이 부르짖으며 그 땅 모든 거민이 애곡할 것이라, 힘센 것의 굽 치는 소리와 달리는 병거 바퀴의 울리는 소리에 아비의 손이 풀려서 그 자녀를 돌아보지 못하리니, 이는 블레셋 사람을 진멸하시며 두로와 시돈에 남아 있는바 도와줄 자를 다 끊어버리시는 날이 이름이라 여호와께서 갑돌섬에 남아 있는 블레셋 사람을 멸하시리라, 가사가 삭발되었고 아스글론과 그들에게 남아 있는 평지가 멸망되었나니 네가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여호와의 칼이여 네가 언제까지 쉬지 않겠느냐 네 집에 들어가서 가만히 쉴찌어다, 여호와께서 이를 명하셨은즉 어떻게 쉬겠느냐 아스글론과 해변을 치려 하여 그가 명정하셨느니라”
여기에 블레셋을 치는 여호와의 칼이 점점 자연 세계로 전환됩니다. 이 대우주의 모든 변화가 블레셋을 치는데, 여호와의 칼로써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못 빠져나간다는 이겁니다. 지금 불신자들, 교회 안 나오는 사람들이 자기가 단독으로 따로 자기 생활을 자기 계획대로 인생을 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요한복음 5장에 보면, 그들의 죽음이 그들을 살려내지를 못합니다.
죽고 난 뒤에는 소환됩니다. 무덤으로 피신해도 무덤에 있는 자들이 주님께 호출하면, 주님의 심판대 앞에 다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신약성경의 이야기예요. 지금 우리는 구약을 보고 있습니다. 블레셋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나라거든요. 주변에 있는 나라인데, 주변 나라에 있는 나라들에 대해서 예레미야가 전에는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해서 예언하다가, 이스라엘이 폭삭 망하고 난 뒤에는 하나님의 계시인 예언이 주변 나라까지 확산이 됩니다.
되면서, 이스라엘이 당했던 운명의 원칙이 똑같이 너에게 주어지는데, 너희들은 피할 곳이 없을 것이다. 원리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이스라엘에게만 적용되다가, 적용된 이스라엘이 망하고 난 뒤에는 이 원리가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고, 이제는 이 원리를 가지고 이방 나라까지 총괄해서 주께서 심판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심판했던 하나님이 똑같은 원칙을 가지고 이방 나라를 심판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심판을 보면서, 이방 민족들이 가지고 있던 사고방식과 한계가 드러나는 거예요. 아주 쉽게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과학에서, 특히 천문학에서 요즘 말하는 것은, ‘이 우주 밖에는 뭐가 있을까?’라는 거죠. 그런데 인간세계에서 ‘밖’이라는 단어를 쓰면, 인간세계는 쓸 자격이 없습니다. 우주 밖에는 우주가 있지 뭐가 있어요? 없어요.
그런데 인간은 신비를 원하고 있어요. 우리가 이것까지는 아는데, 우리가 아는 범위 바깥에는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활기, 살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할 것이라고 기대는 그렇게 하는데, 원래 지평선이라고 하는 것은 가서 보면 없어지는 것이 지평선이에요. 여기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그만큼 지평선은 멀어지기 때문에, ‘지평선 넘어’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지구는 둥그니까, 백날 가봐야 지평선이라는 사실 자체가 허구인 것이 드러나고 맙니다. 이건 우주의 지평선도 마찬가지이고, 뭔가 특이한 것을 자꾸 남겨두려고 하고, 그것을 신비로 둠으로써 자신들이 하는 것에 대해서 희망을 얻고자 하는데, 성경은 굉장히 냉정해요. ‘없다! 너희들이 더 알 것은 없다!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멸망시켰다면, 그 멸망시킨 원칙 외에, 인간에게 더 주어질 것은 없다!’라고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예레미야 47장에서, 예레미야가 이스라엘 말고 이제 옆 나라 블레셋의 멸망에 대해 예언하는 내용입니다. 자, 이 내용을 보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블레셋은 왜 망했을까?’라는 거, 다른 말로 하면 ‘여호와 모르는 이방 민족은 왜 망했을까?’ 그것을 우리가 캐취하면 되는 겁니다. 이방 나라가 망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외부에서 주어지는 언약의 힘이 없이 개인 사적인 힘으로 버티기 때문에 망했다고 그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그렇게 결론 내릴 수 있는 이유는 이스라엘은 전쟁할 때 하늘이 도와줘요. 그런데 블레셋은 하늘이 도와주지 않습니다. 이유가 뭐냐? 그들은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상을 섬기지 않을 경우에, 그들은 힘과 힘의 물결 속에 놓이게 되죠.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바로가 가사를 치기 전에” ‘가사’는 요즘 말로 가자지구가 ‘가사’입니다.
‘바로’는 애굽나라, 이집트죠, 애굽이라는 힘으로 뭉쳐진 나라가 ‘가사’라는 블레셋 수도, 블레셋이라는 힘으로 모은 나라를 쳤다고 되어 있어요. 힘과 힘으로 무장되어서 살아가는 이방 나라에 대해서, 그들은 그 모든 힘이 단일 힘으로 뭉쳐질 것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두 가지의 방향성을 띠고 있어요.
‘인간은 뭐냐?’ 저에게 인간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는 화살표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한쪽은 지옥을 겨냥하는 화살표, 한쪽은 언약이 완성된 언약이 있는 곳으로, 또는 언약이 주어졌던 그곳으로, 언약이 왔던 원천이 있는 그곳으로 화살표를 보여주는 두 종류의 인간밖에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잘 먹고 잘사느냐는 것은 인간의 존재 이유가 아니에요.
‘당신은 지금 어디를 겨냥하는 화살표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망합니다. 망하지만, 바벨론에 가서 그들은 본래의 화살표 역할을 다해냅니다. 화살표의 뾰족한 입구, 제일 뾰족한 화살의 날카로운 입구에 누가 있느냐. 다니엘과 세 친구가 있었습니다. 바벨론 제국 안에 들어와서 비로소,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리는 겁니다.
블레셋 하면 여러분들이 그 실체에 대해서 제일 여러분들이 알기 쉬운 것은 삼손 이야기가 젤로 쉬워요. 블레셋이 덩치 큰 사자라고 보면, 그 사자가 연약한 이스라엘을 덮쳤습니다. 이스라엘을 덮친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나라와 같이 우리도 작은 힘이지만, 힘을 뭉쳐서 나라 하나 만들자고 하다가 더 센 힘에 의해서 덮쳐지고 만 겁니다.
그럴 때 삼손이 등장해서 그 사자를 찢어버리고, 그 안에서 달콤한 꿀을 끄집어내는 이벤트를 벌이죠. 이건 삼손의 힘이 아니고, 하나님의 희생물이 갖고 있는,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될 자가 갖고 있는 하나님 본연의 힘이 삼손 속에서, 누구도 이기지 못한 사자를 꺾어버리고 거기서 먹을 수 있는 단것을 끄집어내는 수수께끼를 만들어 내는 겁니다.(삿 14:5-14)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은 죽었다고 하는 가운데서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내는 기능을 이스라엘이 하고,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이 해내야 해요. 분명히 볼품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여기서 죽음보다 더 센 힘이 여러분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궈내는 겁니다. 소득격차와 빈부격차를 구분할 줄 아셔야 하는데, 소득이 들어오는 대로 족족, 돈 잘 들어온다고 ‘야, 이거 장사 잘된다’라고 있는 대로 해외여행 가고, 명품사고, 거기에다가 비싼 금으로 만든 시계로 된 반지 사고, 돈 잘 벌 때 막 쓰자는 거죠.
‘인생은 즐기는 거야. 막 쓰는 거야’라고 해서 생기는 격차를 소득격차라고 합니다. 그런데 빈부격차는 뭐냐 하면, 돈이 들어올 때, 알뜰살뜰 모아서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내요. 부(富)를 축적할 때 나타나는 결과는 뭐냐. 부의 축적입니다. 그래서 빈부격차가 생기는 겁니다. 부자는 그냥 부자가 아니라, 쓸 때 안 쓰고 아껴가면서 부자가 된 거고, 가난한 자는 왜 가난하냐.
소득격차만 생각하고 자기 소득만 자랑한다고 나중에 거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정주영(현대그룹 창업주)씨가 어디서 실험을 했다는 말을 들은 거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2,500만 원을 두 사람에게 주고 나서 몇 달 후에 만나보니까, 하나는 거지가 되어 있고 하나는 부자가 되어 있었다는 겁니다. 분명히 똑같이 줬는데, 결과는 하나의 소득격차와 빈부격차의 차이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겁니다.
결국은 이겁니다. 방향성, 인간은 화살표인데, 화살표를 만들 때, 하나님의 언약이 주어지지 않고 말씀이 주어지지 않으면, 기존 것들, 기존에 힘 자랑하고 재력을 자랑하는 그런 것들을 모아서 ‘나’라는 덩치를 만들면, 그건 필히 우상을 섬기는, 하나님의 언약이 없는 세계로 가는 화살표를 꾸준히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떤 TV프로가 있는데, 2018년도에 나온 TV프로에 이런 게 있어요. 사형수가 나오는데, 사형수가 처량한 모습으로 나왔어요. 교도관이 ‘자, 오늘이 그 시간이다. 네가 죄를 지어서 죽는 순간인데, 죽는 마당에 소원이나 하나 들어줄게. 너의 마지막 소원이 뭐냐?’ 사형수가 이렇게 말해요. ‘커피 한잔 마시고 싶습니다’ ‘커피?’ 죽는 마당에 교도관이 옆에 있는 직원에게, ‘커피 가져다줘’라고 했죠.
그렇게 커피를 가져다주니까, 그 사형수가 하는 말이 ‘커피 믹서네?’ 믹서가 불만이라는 말이죠. 그러면서 자기가 먹던 커피가 있다는 거예요. ‘먹던 커피가 뭔데?’라고 물으니까, 원두커피라는 거예요. 그래서 교도관이 원두 따로 주고, 원두 가는 그라인더 주고, 커피포트까지 다 주니까, 이건 뭐 상을 제대로 차렸어요. 그 죄수가 천천히 돌립니다.
그 사형수가 너무 천천히 하니까, 교도관이 시계를 보면서 집행 시간이 촉박하니까 빨리 하라고 하는 거예요. 사형수 하는 말이, ‘이게 부드럽게 갈려야 맛있어요’ 천천히 돌리고, 포트에 물 끓여서 거름종이에 원두 넣어서 물을 붓는데, 옆에 교도관이 급해서 빨리 부으라고 재촉하니까, ‘물 온도가 99도가 되어야 맛이 삽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할 거 다 하고 한 잔 마시면서, ‘내 생에서 최고의 커피다’라고 하고 죽어갔다는 개그콘서트에 양상국이 나오는 개그 코너입니다.
이걸 보면서 뭐냐 하면, 사람은 꼭 죽을 때, 죽는 순간이 아니라 살아있으면서 자기가 가는 화살표를 매일 같이 만들어 가는 과정이 인생이라는 거예요. 평소에 했던 커피, 믹스 안 먹고 원두 갈아 먹는 그것이, 죽는 순간까지라도 그 사고방식을 계속 이어가는 거예요. 줄기차게 이어가는 겁니다. 이건 뭐냐. 소위, 내가 지금껏 살아왔던 나의 덩어리, 나의 뭉치, 복합 존재라는, 내가 살았던 그 모든 게 복합으로써 내가 만든 그것을 블레셋은 끝까지 그것을 포기 못 하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이렇습니다. 본문에 함축된 내용이 많은데요, 그중 하나가 뭐냐 하면, 5절에 나옵니다. “가사가 삭발되었고 아스글론과 그들에게 남아있는 평지가 멸망되었나니” 그다음을 보면, “네가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라는 이 대목입니다.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는, 이게 무슨 말이냐는 거죠.
그러니까 그들, 블레셋이 바로에게 침노당해서 일단은 망하고, 본격적으로 망하는 것은 그 뒤에 바벨론에게 본격적으로 망합니다. 4절에 보면 블레셋이 진멸당하는 것은 바벨론에게 그렇게 되고, 1절에 보면 바로가 가사를 치기 전에, 그때 잠시 침략을 당하는 사건, 그러니까 두 개의 사건으로 블레셋은 완전히 멸망합니다.
그때 두로와 시돈, 그러니까 페니키아가 블레셋이 어려울 때 도와줬는데, 이제는 도와줄 수도 없고, 가사지역은 삭발당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몸 베기가 뭐냐 하면, 블레셋 사람들이 우상이 있어요. 이스라엘에게는 우상이지만, 그들 블레셋에게는 그게 신이죠. 자기들이 믿는 신이 다곤 신입니다. 이건 사무엘상 5장 2절에 보면 그들이 다곤 신을 산당에서 섬겼단 말이죠.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뭘 아느냐. 블레셋은 왜 망했느냐는 겁니다. 이스라엘 속에 있는 것이 그들 안에는 없기 때문에 망했다. 무엇이 없느냐? 하나님의 언약이 없다. 그리고 언약이 없는 것이 뭐냐? 우상이다. 언약이 없는 신을 만들 때, 그들은 어떻게 섬겼는가. 그들은 정성을 다해서 섬겼던 거예요.
어느 정도로 정성을 다해서 섬겼는가. 칼로 자기 몸을 베면서, 국가적인 재난과 위기가 왔을 때, 온 국민이 나서서, ‘신이시여, 그동안 우리를 지켜주던 신이시여, 우리가 이런 식으로 어려움을 당하니까 우리의 어려움을 보시고 좀 도와주세요’라고 부탁하는 신을 섬겼습니다. 이게 우상인데, 이점에 대해서 제가 이런 이야기 하면, 이렇게 나오죠. ‘우리는 여호와도 안 믿고 우상도 안 믿는다’라고 나올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 사람들은 우상이라는 것이 어디서 생겼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발언을 해요. 인간치고 신을 안 섬기는 인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인간의 정신, 인간의 이성과 정신, 마음에서 우상이 나오는 원리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언약은 외부에서 하나님의 낯선 원칙이 다가와서 계시를 집어넣은 것이 언약인 반면에, 우상은 인간 내부의 마음에서 자기들이 조립하고 만들어 낸 것이 우상입니다.
그러니까 고린도후서 11장에 보면, 예수 믿고, 성령 믿고, 복음 믿는데, 다 우상들이라는 거예요. 용어를 뭘 붙여도 그건 우상이 되는 이유가, 인간이 자기 마음과 결부된다면, 이건 우상이에요. 오히려 나를 잘라내는, 내 생각에 대해서 잘라내는 그 하나님이 사도행전에 나오는 여호와 하나님의 일이십니다. 요한1서 2장 11절에 보면,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라고 되어있어요.
사도행전에도 같은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13장 48절에 보면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질문자가 참 질문 자체가 담백하고 확실한 질문을 했어요. “사도바울 당신이 하는 일이 뭐냐?”라는 명쾌한 질문에 대해서 사도바울이 명쾌한 답변을 한 거예요. 제가 오늘 아침에 누구와 함께 인공지능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예배 전에 인공지능이 이런 답변을 내놓으면 참 대단하겠지요.
사도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한 것은 마귀에 눌린 자를 해방하는 일입니다” 내가 하는 일은 돈 버는 일, 수출하는 일, 건설회사에서 공사하고, 고기 잡고, 이런 일이 아니고, 사도행전 26장 17~18절에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자기 직업에 대해서 명쾌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사단에 권세 아래 있다고 전부다 우상 섬기고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러면 인간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가. 무엇이 사단의 권세인가. 그걸 제가 이제부터 말씀드리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기원전 384~322년에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사람이 자기 마음, 이성적인 마음을 이렇게 정리했어요.
다섯 가지로 정리했는데, 한 번 들어보시고 우리가, ‘아, 이건 말이 아니지. 이건 틀렸지. 이러니까 사단의 권세에 속한 거 맞지’라고 이렇게 동의가 되는지, 아니면 이 아리스토텔레스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우리가 평소에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잖아. 틀린 말 하나도 없네’라는 이런 뜻인지, 여러분이 스스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있는 것은 없다 말하거나,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지만, 있는 것을 있다고 말하고 없는 것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참이다” 여러분, 이 말이 틀렸습니까?
“둘째, 모든 인간은 본성적으로 더 알기를 원한다” 이 말이 틀렸습니까? 성경에서는 이런 게 우상이거든요.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이 성경에서는 우상이라고 합니다.
“셋째, 인간은 모여 살기를 원한다” 인간은 사회적, 정치적 동물이라는 뜻이죠. 인간은 모여산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모여 산다. 이게 그렇게 나쁜 말입니까?
“넷째, 덕은 습관에 의해 형성된다” 좋은 습관은 나중에 덕성이 되는 이게 틀린 말입니까?
“다섯째,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해야 공평하다” 능력도 안 되면서 월급 더 달라는 것은 안 된다. 능력이 차이 나면 월급도 차이 나야 한다. 이게 그렇게 지옥 갈 일입니까? 이게 사단 권세의 일이에요? 진짜 마음 같으면 설교 여기서 끝나고 싶어요.
왜냐 하면, 우리가 사단의 권세에서 벗어났다. 예수님 때문에. 이렇게 할 때, 남들에게 없는 새로운 것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해요. 그게 하나님의 십자가 언약입니다. 우리가 마땅하고 옳다고 여기는 그것이 바로 사단의 권세에 눌린 모습이고 이걸 통해서 천국에 가지 못하고, 천국에서는 이런 생각을 안 받아 줍니다.
특이해야 해요. 그래야 우상이 아닌 진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해도,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한, 천국에 넣어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죄의 종이고 스스로 완벽하다는, 진리는 우리가 갖고 있다는 그것의 노예였다는 사실을, 지금도 말씀과 십자가가 활동하면 활동할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이, 남이 우상 섬기고, 갓바위 가고, 그런 이야기할 생각하지 말고, 교회 다니는 우리 자신이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우리 주도권을 쥐고 있으려는 죄인이라는 사실.
이제 이 주도권을 주님이 쥐고 있다는 여기에 기쁨과 감사를 드리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잘못을 모르겠는데, 자꾸 성경은 우리보고 죄인이라고 합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낼 때 자랑했지만, 그거 자랑하지 말고 네가 생명책에, 하늘에 기록된 것을 자랑하라고 하신 주님, 주님이 알고 있는 그 모든 것이 십자가로써, 피로써, 한꺼번에 우리에게 진리가 나타났으니, 그 피 앞에서 우리의 죄인 됨을 고백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