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3/9-더러운 세상

아빠와 함께 2025. 3. 9. 13:17

내가 살 이유가 없다는 고백이 누구 고백이냐 하면 바로 사도 바울의 고백이에요. ‘주님 제가 추잡고 더러운 세계에서 언제까지 있어야 됩니까? 빨리 데려가 주세요’ 이게 사도 바울의 고백이었어요. 왜냐? 이 세상은 새 언약에 의해서 보게 되면 모조리 추잡고 더러운 거예요. 추잡고 더러운 중에 가장 추잡고 더러운 것은 바로 우아하고 고상하고 성스럽고 희생적인 것, 이것보다 추잡고 더러운 게 없어요.

 

오늘날 성도의 명패는 뭡니까? 죽은 예수님의 이름을 앞에다 세우는 거예요. 십자가를 앞에 거는 거예요. 십자가에다 어느 교회, 이런 것 좀 하지 말고 그냥 십자가. ‘울산제일교회’ 이런 것 좀 하지 말고, ‘교우의 집’ 하지 말고 그냥 십자가. ‘저 이미 죽었어요’를 내세우는 집이에요. 죽었다는 말은 뭘 죽었다? 시간상 이미 끝 속에 시간이 끝났을 때 생겨나는 공간 안에 속했다는 뜻이에요. 그게 바로 언약 속이에요.

언약은 시간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더럽다고 규정 내렸다. 언약이 한 것은 시간 속에 있는 모든 것은 이미 마땅하다고, ‘정녕 죽으리라’ 죽어 마땅하고 더럽다고 이미 규정을 내린 것이 언약이고 그 언약책이 무슨 책입니까? 구약이고, 예수님이 오시고 난 뒤에는 신약이 언약책이에요. 그래서 신약을 시작하면서 예수님은 ‘내 피를 마셔라’해요. 피는 어떤 경우에 발생하는 겁니까? 피는 멀쩡한 데 생기는 겁니까? 막 헌혈할 때 생기는 겁니까? 뭔가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것은 살의 주인공, 피의 주인공이 이미 죽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이 죽고 난 뒤에 생겨나 언약의 공간이 있어요. 새로운 공간. 새로운 공간 안에 네가 들어와야 네가 바로 모든 시간을 넘어서는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게 새 언약이에요. 방금 언약은 시간 속에 있는 모든 것은 더럽다고 했지요. 이 언약이 신약이 되면 이렇게 바뀌어요. 성령님은 시간 속의 모든 것을 더럽다고 규정했다. 왜냐? 성령은 누구의 영이냐 하면 고린도후서 3장 끝에 보면 성령은 예수님의 영이에요.

성령이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이 찾아왔다는 거예요. 찾아와서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나는 인간 보기에 이미 죽었다는 세계에 살고 있는데 이 세계가 바로 영생의 세계고 천국이다.’ 그 이야기를 성령이 하시는 거예요. 왜 죽이는가? 시간 속에 있는 것은 모조리 다 추잡고 더럽기 때문에 이거는 저주받아 마땅하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