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을 입은 자 250126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이름이 바디메오라는 사람, 바디메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눈이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에요. (앞을 보세요. 눈이 있을 때 앞에 보세요.) 눈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어서 어디 가도 취직이 안 돼. 그러면 취직은 안 되고 몸은 밥을 달라 하고 방법은 뭐가 있겠어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여겨주세요. 그 외에는 할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끔은 도와주고 당신 처지가 참 안 됐다. 우리는 당신 비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만약에 어떤 애하고 부모가 같이 가면서 바디메오가 이렇게 거지, 바디메오 거지가 달라고 동냥을 하는 것을 보게 되면 아버지가 애 보고 뭐라 하겠습니까? “니도 말야 공부 똑바로 해. 공부 못하면 저래 되는 거야. 알겠어? 니 나중에 저리 얻어먹으면 좋겠어? 내 공부하라 할 때 공부 숙제하라고 하면 숙제해. 안 그러면 이 거지 꼴 난다. 어! 니는 느그 아버지 엄마한테 감사해라. 우리가 잘 지켜주니까 니가 잘 큰 거야. 똑바로 보고 앞으로. 다 아버지 엄마가 잘해줘서 된 거야. 안 그러면 니 저런 인간 되는 거야.”라고 하면서 “빨리 가자. 가자. 빨리 가자. 그런 거 보면 재수 없다.” 이렇게 해가지고 이제 데려갔을 거예요.
그래도 바디메오는 그걸 견뎌냈어요. 감당하시겠습니까? 감당했지요. 왜? 자기 주제를 아니까. 나는 무능력하니까. 할 줄 아는 게 아무도 없고 눈도 보지도 못하니까 얻어먹는 거 이렇게 불쌍히 여김을 받는 것, 그거 외에는 내가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자기가 이미 체질화된 거예요.
그래 가지고 있는데 가만히 옆에 사람들, 눈은 감겼지만 귀는듣기잖아요. 옆에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이에요. “그 소문 들었어?” “무슨 소문?” “예수라는 분이 계신데 못 고치는 병이 없대. 그리고 돈도 안 받는데. 병고치고 돈도 안 받는데. 의사들 다 큰일 났어. 이제는. 돈도 안 받고 다 고친대. 그러니까 우리가 그 예수님이 하여튼 모든 병 문등병도 고치고 어떤 사람은 죽은 자가 살아났대. 어떤 사람은 소경도 눈을 뜨고 앉은뱅이도 낫고.” “이게 가짜 뉴스 아이가?” “가짜 뉴스 아니라. 진짜 그런 게 있어.” 이랬거든.
그 이야기 딱 듣고 그 바디메오가 “아저씨들!” 눈 감았으니까 “아저씨들. 자스트 모먼트! 잠깐만! 잠깐만! 그거 지금 무슨 이야기입니까? 어떤 분이 왔다는 거예요?” “예수라는 분이 있는데 그분이 어떤 병도 다 고칩니다.” “아. 그래요? 그럼 나 같은 소경도?” “소경은 그건 물이지. 그냥 뜨는 것이지.” 막 이렇게 아주 소문이 좋게 났어요.
그런데 그 예수님이 바로 바디메오가 있는 이 동네에 오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디메오가 우리 동네 오신다고요 하고 이제 그때를 기다리면서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계속 기다렸어요. 근데 어느 날 보니까 웅성 웅성 웅성 “야! 예수님이 떴대. 진짜 오신다고 했는데 진짜 오네. 야. 옆에 사람 수행원들 봐. 저기 12 제자잖아.” “그래. 열두 제자. 옆에 사람들 많이 따라다니는데.” “그래. 하나님의 메시아래. 저분이 우리를 구원할 분이라고 소문이 자자했어.” “그래?”
그런데 구원이고 뭐고 지금 이 바디메오한테는 그게 지금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자기 눈 뜨는 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예수님. 예수님. 저 눈도 떠주세요.” 이렇게 했는데 사람들의 큰 소리에 다 묻혀가지고 들리지도 않았어요. 그러니까 바디메오가 고함을 질렀어요. “예수님! 저 좀 보세요!” 안 봐요. 소리가 더 커서. 바디메오가 벌떡 일어나서 “예수님! 저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니까 바디메오가 할 줄 아는, 이 학력이 별로 안 돼요. 할 줄 아는 문장이 뭐냐?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앞에 뭐 붙어요. 다윗의 자손이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 뭐냐 하면은 장차 메시아가 오게 되면 자기 백성을 불쌍히 여긴다는 거, 그걸 이제 소문에 들었던 거예요.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외쳤던 겁니다. 벌떡 일어나서. 이 장면이에요. 불쌍히 여기소서 할 때 그때 사람들이 저 사람 좀 가까이 오라 해보세요. 이제 예수님이 발견했어요. 해가지고 가까이 와 봤어요. 가까이 와가지고 “다시 한 번 이야기해 봐요. 뭘 원하는데? 뭐 어떤 걸 원하는데?” “제 눈이” “소원이 뭐야? 도대체 소원이 민족 해방이야? 뭐야” “아닙니다. 민족 해방 아니에요.” “당신 구원?” “구원도 아니에요.” “그럼 뭐예요?” “그냥 불쌍히 여겨 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불쌍히 여겨주면 그럼 어떤 걸 불쌍히 여긴다는 거야?” “눈 뜨게 해준 것만 해도 불쌍히 여김이 도달된 걸로 저는 그렇게 여기겠습니다. 눈만 떠주신다면 예수님이 갖고 있던 불쌍히 여김이 예수님 쪽에서 내 쪽으로 옮겨왔다는 것을 제가 느끼게 했습니다.” 이렇게 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바디메오 보고 “바디메오야. 눈 떠라.” 하고 이야기하면서 눈을 이야기하니까 바디메오가 눈 떴어요. 이 눈 뜬 장면 보세요. 눈이 얼마나 눈이 크죠? 확 떴어요. 이왕 뜨는 거 온전히 떴어요. 활짝 떴어요. “눈 떴다! 눈 떴다. 주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렇게 했어요.
자. 여기서 이 뜻이 이게 뭐냐 하면은 이 바디메오 말고 옆에 있는 사람들은 이미 눈 떴어요? 안 떴어요? 이미 눈 떠가지고 있죠. 그 사람들은 소경이 아니에요. 소경이 아닌 게 주님한테 긍휼을 은혜를 사랑을 받을 기회가 박탈돼 버린 겁니다. 눈 뜬 게. 눈 뜬 게. 지금 안경 쓴 사람이 있는데 만약에 예수님 지나가면 “불쌍히 여기소서!” “뭐 어떻게 해줄까?” “안경 없이 한번 살고 싶습니다.” 안경을 썼기 때문에, 안경을 썼기 때문에 이 안경을 썼다는 자체가 이미 나는 폭이 하나님의 불쌍히 여김이 들어올 수 있는 폭이 생긴 거예요.
그럼 여러분의 폭은 뭐죠? 여러분이 주님 앞에 불쌍히 여김을 달라 할 때에 여러분의 남아 있는 여러분 자신의 결핍된 게 뭐가 있느냐? 이 말입니다. 어떤 것을 하나님 앞에 달라고 하겠어요?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하겠습니까? 그것은 뭐냐? 주님의 불쌍히 여김이 항상 내 안에 눈 뜬 것 자체가 꼭 이것이 불쌍히 여김으로 장착돼 있는 거예요. 마치 안경 쓰듯이. 여러분 쓴 안경, (안경 쓴 사람이 많네.) 안경에다가 그 매직으로 썼으면 좋겠어요. 긍휼, 주님의 사랑, 죄 용서하심 그리고 내 안경 내 돈 주고 내가 맡았다 하는 게 아니라 안경 자체가 주님의 긍휼하심의 증거가 평생토록 내 몸에 딱 달라붙어서 나는 걸어가나 뛰어가나 어디에 가든지 간에 주님의 긍휼하심과 동행해서 살아간다는 거. 그게 바로 주님께서 바디메오에게 눈이 멀쩡한 사람 앞에서 바디메오에게 기적을 베풀어준 이유가 그렇습니다.
이 바디메오가 마지막에 어떻게 되냐? 마지막에 그냥 울지요. 그냥 우는 거예요. 고마워서 우는 겁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왔을 때 우리는 바깥에 있던 하나님의 용서가 내 안에 딱 붙어 있다는 그것이 고마워서 이제는 “주님. 귀는 좀 어떻게 좀. 귀 좀 뚫어주시든지. 취직은 어떻게 좀 해주시든지. 나도 장가보내 달라.” 이런 소리가 나올 수가 없지요. 왜냐하면 눈이 안 떠도 되는데 눈을 뜨게 해줬으니까 “이게 웬 떡이냐? 웬 은혜냐?” 이런 식이죠.
여러분이 현재 갖고 있는 그 모든 것, 여러분 거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의 부착물이고 사랑의 장착물입니다. 늘 주의 사랑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세상 사람과 달라야 될 이유를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긍휼도 없고 자비도 없고 사랑도 없고 죄 용서도 없습니다. 과연 우리는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우리 안에 장착되어 있는지 늘 찾으면서 깨달으면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