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와 빌립집사 250112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 이야기는 빌립 집사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에게 성령 충만해서 예수님이 살아나셨다. 너희들 이제 죽었어. 이런 뜻이죠. 너희가 죽였는데 그 죽은 자가 죽어 사라지길 사람들은 원했는데 그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방식 그 죽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났으니까 이제 큰일 났습니다. 죽였는데 안 살아나게 죽었는데 다시 살아났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이제는 우리 잘못되었습니다 라고 이야기하고 이제는 살아있는 거 신경 쓰지 말고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님을 위해서 살자 하고 외쳤다 이 말이죠.
그중에 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스데반 집사가 있었는데 스데반 집사도 같은 집사예요. 급이 집사급인데 역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가지고 방금 이야기한 거 예수님이 살아계시다. 너희가 죽였지만 주님은 살아 계셨는데 그냥 살아계신 것이 아니고 그분이 실은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이 인간으로 위장해서 왔는데 하나님의 위장술을 너희들이 눈치 채지 못하고 사람인 줄 알고 때려 죽였는데 그분이 바로 너희들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하나님이었다 하고 외치니까 그 사람들이 귀를 막고 “죽어라! 죽어라!” 해가지고 막 돌을 던졌어요. 이게 돌입니다. 이게 이 빵 아니에요. 이거는 돌을 던졌어요. 죽으라고 돌을 던졌습니다.
예수님 죽이고 또 이제는 누구 죽이고? 스데반 집사 죽이고. 그러고 난 뒤에 이제 빌립 집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자기 동료 스데반 집사 죽고 예수님 죽고 해도 스데반 집사는 세상은 원래 그런데 하고 신경 쓰지 않고 하던 일을 했습니다. 하고 난 뒤에 성령께서 지시를 내렸어요. “니가 여기서부터 지금 가자 지역으로 내려가라. (지금 전쟁 벌이고 있는 데 있지요?) 그쪽 지역에 내려가라.” “뭐 때문에 내려가야 됩니까?” “그런 건 그건 나한테 묻는 게 아니고 그냥 내려가. 내려가게 되면 아마 누구를 만날 거야.”
하나님이 주신 약속 장소가 좀 너무 황망합니다. 아무도 없는 데서 엉뚱한 데서 약속 장소 일방적으로 딱 정해놓고 누가 누구를 만나는 거예요. 가보니까 아무도 없어요. 빌립 집사가 내가 이거 헛것을 봤나. 계시가 아니라 잘못 들었나. 이런 생각하는데 저 뒤에서, 저 뒤에서 흙먼지를 내면서 마차 하나가 흙먼지가 뭐가 오는 것 같아요.
딴따다다다 황야의 무법자 같은 그러한 마차가 딱 나타나면서 오더니만 마차가 자기 앞에서 끽 하고 갑자기 급정거를 하는 거예요. 참 타이밍 하나 참 죽여줍니다. 그 사람은 저 북쪽에서부터 쭉 내려오는 마차 타고 오고 있고 북쪽에서 이렇게 하고 빌립 집사는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와서 여기서 사막에서 만난 거예요. 만났을 때 이 사람이 이집트의 고관대작이에요. 아주 높은 사람이에요. 워 워 워! 마차 세우고 자기의 수행원 보고 “마차 잠시 세워라.” 딱 세워놓고 갑자기 사막에서 누구를 만났으니까 “혹시 유대인이십니까?” 물었어요. “예. 유대인 맞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사람이네요.” “유대인이니까 이스라엘 사람 맞습니다.” “제가 이스라엘에서 성경책 읽다가 궁금한 게 있는데 제가 한번 질문해 보겠습니다.” “뭐가 궁금합니까?” “제가 이사야의 책을 보고 있는데 여기서 어떤 분이 말하기를 내가 죽음으로 다른 사람이 대신 살아난다는 이 대목 나오는데 여기서 죽는 이분이 누굽니까?”라고 물어요. 이사야 53장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이 죽지 아니하면 어떤 방법으로도 사람의 죄를 사할 수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인간을 대신해서 양들을 자기 양들을 대신해서 대신 죽는 사람을 등장시켜서 죄를 대신 없애주는 방식으로 살린다는데 내가 궁금한 것은 그분이 어떤 분이고 그분이 과연 그 일을 했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라고 물어요.
물으니까 빌립집사가 다가와서 “좀 봅시다. 이게 이사야 53장이네요. (그때는 53장 없지만 하여튼) 이사야 이 대목이네요.” 하면서 이사야부터 해가지고 그들은 거기서 마차를 멈추고 몇 시간인지 모를 정도로 성경의 구약 성경 전체를 예수님 중심으로 해석을 다 해버렸어요. 예수님 중심으로.
이사야부터 해서 창세기부터 출애굽기부터 쫙 설명해 주니까 이 고관대작이 갑자기 앉아 있다가 밖에 나와 가지고 “(선생님 하든지) 선생님. 이제부터 제가 여기 이 책에 나와 있는 이분이 실제로 이 땅에 왔기 때문에 이분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런데 책에 보니까 세례를 받는다는데 물 세례를 받는다는데 혹시 이 근처 물이 없으니까? 저 근처 물이 있네. 물에 가서 제가 세례를 받아서 예수님의 제자가 될 테니까 당신은 나한테 물 세례를 주는 폼이라도 잡으세요. 자. 갑시다.” 하고 이 사람이 나서서 본인이 세례 받으라고 한 적도 없는데 본인이 성경책 보고 책 내용대로 세례 받겠다고 나선 거예요.
그러니까 이거 이건 뭐냐 하면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할 때는 항상 말씀이 먼저 설쳐요. 말씀이 먼저 작용해서 그 말씀의 내용이 궁금해서 그다음부터는 그 말씀 따라서 자기가 복종하는 그러한 방식으로 구원이 진행되는 겁니다.
그래서 빌립 집사보고 세례를 줬습니다. 주고 난 뒤에 혹시 연락처나 명함이나 전화번호 휴대폰 전화번호 따올 수 있습니까? 이런 거 없어요. 세례 주고 그 사람은 “예 고맙습니다.” 그러면 “바이 바이” 그다음에 이게 둘이 앉아가지고 이제 성경 이야기하는 거예요. 가고 난 뒤에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애굽 이집트로 가고 빌립은 다시 성령에 의해서 뾰로롱 뾰로롱 해가지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고 했어요.
이제 그거 하고 난 뒤에 마지막이 뭐냐 하면은 웃통 벗고 이제 세례 주는 이 장면입니다. 이 일을 빌립이 한 건 아니에요. 왜냐면 빌립이 처음에 낯선 사막에 온다는 것은 빌립의 계획이 없었어요. 마찬가지 여러분의 일거수일투족 여러분의 발걸음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환경, 환경은 주님이 조성한 것이지 여러분이 결정한 게 아닙니다. 항상 조성 하실 때, 항상 예수님이 누구냐? 그분이 왜 우리 대신, 대신 죽었느냐? 우리는 그분의 사람이다. 이제는 어디 가든지 그분께서 우리를 빌립처럼 이렇게 사용할 것이다. 그쪽으로 계속 앞으로 여러분들을 이끌게 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까지 살아온 것, 주님의 결정이고 선택이고 결과인 것을 이제서야 눈 뜨고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