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뱅이의 믿음 240128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병을 고친 베드로. 딴 병이 아니고 앉은뱅이를 걷게 한 거예요. 앉은뱅이를. 앉은뱅이인데 앉은뱅이니까 취직이 안 되잖아요. 취직이 안 되니까 취직이 안 돼도 먹을 건 먹어야 된단 말이죠. 먹을 거 먹어야 되거든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요? 취직은 안 되고 만약에 여러분들이 앉은뱅이라고 칩시다. 취직은 안 된다. 먹고 싶은 건 있다. 햄버거는 먹어야 되겠다. 어떻게 해야 돼요? 돈이 있어야 되죠. 돈은 일은 못했으나 돈은 없으니까 그냥 돈 달라고 할 수밖에 없죠.
뭘로 윽박지릅니까? 나 봐. 너희들 보기에 앉은뱅이잖아. 나 돈 달라 하는 게 정당하다고 앉은뱅인데 무슨 일을 해. 나도 같이 살자. 돈도. 500원? 천 원? 내 얼마 갖고 있어? 현재 돈 얼마 있어? 없지? 저리 가. 저리 가. 아이고 천 원 있어요. 하여튼 나 이렇게 배고파 하니까 나 불쌍한 장애자니까 좀 도와줘. 하는 식으로 가는 사람 오는 사람 붙들고 그렇게 애를 먹였어요.
그런데 여기에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그 앞에 지나갔어요. 예수님의 사도가 또 지나갔거든요. 가니까 “어이 사도!” 아니지. “어이! 당신들도 나 불쌍하잖아. 앉은뱅이잖아. 못 걸어. 그러니까 도와둬. 나한테 돈 줘.” 라고 했어요. 그렇게 하니까 그 사도가 이제 그 소리 듣고 이제 갔어요. 가니까 보니까 진짜 앉은뱅이라. 진짜 희망 없어요. 그래가지고 “뭘 원하느냐?” “돈을 원한다.” “안 줘.” 안 준다는 거예요.
뭐라고 하냐 하면은 “앉은뱅이야. 니가 지금 밥 먹고 돈 얻어서 맛있는 거 밥 먹고 해봤자 너는 죽어. 니 죽는다고. 죽으면 평생 살아봐야 죽으려고 이 짓 한 거야. 그러니까 내가 너로 하여금 이제는 돈 없어도 되고 아파도 괜찮고 안 아파도 괜찮고 돈 없어도 되고 굶어 죽어도 되는 거 이야기할게. 내가 니가 원하는 돈은 내 일체 안 준다. 미안하다. 미안한데 니가 원하는 거 니가 원하기 때문에 내가 안 줘. 니는 지금 돈을 원하고 있잖아. 그래서 안 줘. 그래서 미워서 안 줘. 니가 원하기 때문에.” “그럼 어떻게 해야 돼?” “니는 너부터 고쳐야 돼. 니 마음부터 고쳐야 돼. 니가 원하는 것 그것은 옳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잘못이야. 너가 원하지 말고 우리 다른 분이 원하는 니가 돼야 돼. 내가 이 이름으로 내가 걷게 할 테니까 니 원하는 니 이름이 아니고 내 이름도 아니고 내가 주님의 뜻이다. 이 앉은뱅이야. 주님의 뜻이다. 뜻이 임했다. 일어나. 일어나!” 이렇게 했어요. 일어나.
상당히 과격하죠. 상당히 도발적이고 모험적인 것처럼 들리죠. 일어나. 이 장면을 그 앉은뱅이 그 사람들을 많이 다니는데 혼잡한 곳에 동냥을 받아야 돈이 되니까 있었다고요. 그 사람을 다른 사람들이 쭉 지켜본 거예요. 둘이 무슨 소리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가 보니까 논란이 일어났어요. 그 앉은뱅이가 앉아 있다가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하는 소리 듣고 일어나는 거예요. 일어나 볼까, 일어나볼까 하면서 일어나는 거예요. 일어난다는 것은 앉은뱅이 뜻입니까? 누구? 사도의 뜻입니까? 누구 뜻이겠어요? 예수님의 뜻이에요.
사도도 참 골치 아프죠. 저게 일어나야지, 안 일어나면 나 완전히 진짜 완전히 우사스러운데. 뭐 이런 거 생각했을 거 아니겠어요. 그러나 사도는 성령을 받아가지고 성령은 내 뜻이 아니에요. 내 뜻 말고 시키는 대로 해야 되거든요. 시키는 대로 ‘일어나’ 했더니만 진짜 일어나네. 누가 입장 난처해 했냐 하면 이 사도들의 입장 난처하게 된 거예요. 내가 한 거 아닌데 주께서 그만 자신도 예상 못한 일이 벌어진 겁니다.
그러니까 일어나가지고 “나 일어났다!” 하고 기분 좋아서 보세요. 작대기 들고 해가지고 “일어났다! 신난다!” 이렇게 하니까 주위 사람들이 옆에서 뭐 하냐하면 박수를 막 쳐주는 거예요. 으샤! 으샤! 안드레, 안드레 아니지. 베드로! 요한! 베드로! 이러고 있단 말이죠.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점잖은 사람이 다가가지고 “아이고. 축하합니다. 그 놀라운 재주를 또 여기서 또 피우시네요. 이거는 신의 능력이지 사람의 능력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아이고. 수고 많았습니다.” 하니까 베드로 요한이 “왜 이러십니까?” “왜 이러기는? 당신은 얼마나 평소에 기도를 많이 하고 당신이 얼마나 착한 일을 많이 하고 당신이 얼마나 하나님을 섬겼으면 보세요. 당신 말 한마디에 이 앉은뱅이가 나았잖아요. 이거는 당신의 순전한 신앙심 때문에 그렇습니다.”라고 주위 사람들이 칭찬을 막 해주니까 베드로하고 요한이 “아니. 아니요. 왜 이러십니까? 당신은 지금 문제를 잘못해서 이해하고 있어요. 문제를.” 하여튼 시험 치면 문제 이해가 안 돼가지고 왜 틀리잖아. “문제를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냥 시다바리에요. 우리들은 그냥 시다바리라고요. 나도 우리도 놀랐어요. 하잘 것 없는 나를 이렇게 사용할 줄을 주님께서 사용할 줄은 나도 나도 몰랐다고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 왜 저한테 내가 했다고 하지 마세요. 내가 한 게 아닌데.”
그럼 사람들이 “당신 말고 분명히 봤는데 나 분명히 봤다고 당신이 뭐라 뭐라 하고 뭐라 하니까 당신이 벌떡 일어나가지고 일어났다고. 다 우리가 봤는데 또 겸손까지 또 추가해서.” “겸손이 아니고 정말 이거 당황스럽습니다. 난처합니다.” 그리고 베드로 요한이 이야기합니다. “저 사람을 낫게 한 것은 우리들 아니고 예수님이 낫게 했습니다.” 이렇게 하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이 어디 있는데? 예수님이 어디? 우리끼리 인간들 밖에 없잖아요.”
“저 앉은뱅이가 우리말을 듣는 순간 보이지 않는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고 자기가 그 예수님의 지시 명령에 따라야 된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거는 당신들이 저 앉은뱅이를 이해 못해. 당신들은 우리도 이해 못해. 우리는 그냥 목격자고 낫게 한 것은 지금 보이지는 않지만 열심히 일하고 있는 주님께서 저 사람을 낫게 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그만! 그만! 그만! 또 지겨운 예수 부활했다는 그 소리 하려고. 또.” 이런 식으로 나왔던 거예요.
그러니 생각해 보세요. 베드로와 요한이 아무리 해봐야 그 사람 눈에 보이는 현상을 보는 거예요. 저 사람이 어떤 실적을 올리는가? 어떤 놀라운 성과가 있는가? 그것만 쳐다보지 정작 베드로 요한도 당황스럽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해를 못해요. 마귀가 이야기해요. “야! 똑바로 앉아. 니 똑바로 안 하면 니 지옥 가.” 할 때 “난 똑바로 안 해도 천국 가는데.” “왜?” “예수님이 십자가 피로 나를 용서했는데.” “아 지겨워. 피 이야기해.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 이야기하자고.” 이렇게 나올 거 아니야. 눈에 보이는 이야기하자고. 그게 바로 이 세상에 아직도 마귀가 신앙이든 모든 것에 장악하고 관여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실컷 뭐 착한 일을 해줘도.
“바로 앉아.” 바로 앉았잖아요. 주의 뜻인가? 주의 뜻으로 바로 앉아도 내가 한 게 아니라니까. 내가. 이게 또 깊이 이야기하면 이래요. 인간은 마귀가 시키는 대로 했어요. 마귀가 시킨 대로 했는데 인간들은 뭐냐면 우리가 의지로 나 자기 의지로 했다고 자기가 했다고 자꾸 그렇게 하잖아요. 회사 가면 그런 소리 하는 사람 많잖아요. 오늘 뭐 먹고, 회식 뭐 할까? 우리 선택해보자. 이러잖아요.
그게 아니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님에 의해서 움직이고 거기에 대한 반응만 거기에 대한 반응만 인간이 보여주는데 두 가지 반응이에요. ‘인간이 했다.’ ‘아니다. 이거는 보이지 않는 분이 하셨다.’ 이 두 가지 반응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분을 보이는 인간보다 더 경배할 수 있고 경외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됩시다. 기도합시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아무것도 아닌 우리에게 예수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한 그것조차도 주님의 일인 것을 이제는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