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순

완전한 죽음과 부활

아빠와 함께 2023. 12. 31. 17:38

완전한 죽음과 부활 231231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살아나신, 살아나신 예수님이에요. 축구에는 전반전이 있고 후반전이 있다. 독일 사람들은 영국 사람들은 축구장에 가려고 돈 5만 원 7만 원씩 내고 축구장에 가거든요. 축구장에 가는데 전반전에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십대 빵이라면? 졌어. 십대 빵으로 졌어. 더 이상 성질이 나서 도저히 못 보겠다 해가지고 전반전 끝나고 15분 쉬는 시간에 나가버렸어요. 그런데 나중에 결과 보니까 11 대 15로 이겼어. 후반전에 넣었어요.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세상이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그걸 아냐? 그냥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있거든요. 진짜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 진짜 있는지를 그가 어떻게 아느냐? 그것은 예수님께서 일단 한번 죽어요. 한번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면서 이렇게 합니다. “나 인간들이 노는 이 동네 말고 다른 동네 간다. 우리 하나님 계시는 곳으로 간다.” 하고 가시는데 일단 죽어서 가요.

일단 왜 죽어서 가느냐? 이 세상은 하나님 보기에 죽어야 될 세상 속에 그냥 시체로 시체들만 쭉 있는 그런 세상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걸 알리기 위해서 이 땅에서 일단 죽어요. 죽으니깐 사람들이 무엇이 다 깨지느냐 하면은 안 죽고 살아서 천국 가야지 하는 인간들은 다 탈락이야. 탈락. 전부 다 탈락. 예수님은 죽어서 갔는데 인간 지가 뭐라고 죽는 척하고 눈 한쪽 감고 한쪽 눈 뜨고 이래가 나 죽었심대이. 이래가지고 막 갈라 하는 그것도 전부 다 탈락. 그 인정 안 해줘요. 완전히 죽고 완전히 예수님처럼 완전히 죽고 그래서 사흘 만에 살아나야 그 세계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죽기 전에 뭐냐 하면은 나는 살아야지. 나는 살아야지. 나는 살아야지.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하다가 그냥 죽어버리죠. 살아야지도 소용없어. 그냥 죽어요. 그냥 죽으면 주님께서 죽은 것을 확인하고 숨 안 쉬지? 야 죽었지 완전히 죽었지. 죽었지. 죽었지. 죽고 하나님께서 다 죽고 난 뒤에 그 다음에 뭘로 살리는가? 낚시할 때 여러분들이 고기가 죽은 고기 낚시합니까, 산 고기 낚시합니까? 죽은 고기 낚시 하려면 횟집에 가서 회 다 이렇게 처리해 놨는데 거기 쟁반 위에다가 낚시하면 돼요. 죽은 고기 낚시하면 되죠.

그러나 낚시할 때는 뭐냐 하면은 자기 따나 고기가 살았다고 펄떡거릴 때 그때 낚시하는 재미, 니가 살아도 낚싯줄은 못 벗어난다, 하고 뽑아내잖아요. 주님께서는 우리 천국 가는 백성을 하나님께서 부활의 능력으로 죽음에서 죽었다가 살아나는 능력으로 할 때 우리를 펄쩍펄쩍 뛰는 고기로 이렇게 일부러 만들어요. 만든다고요. 사람 사냥할 때 사람을, 호랑이 말고 곰 말고 사람, 여우 말고 토끼 말고 사람을 사냥하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사냥하는 사람이 횡포를 부린다고. “야 도망가. 도망가 .도망가. 도망가!” 그러면 그 죄수가 “그래서 살려주는 거야?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막 빨리빨리 도망가.” “고맙습니다.” 막 도망가죠. 하면 서서히 총은 올라오고 총구도 올라가. 그리고 수평선 넘어 스스슥 하면 그때 딱 쏴버리죠. 아주 쏘죠. 나쁜 사람들이 그런 짓을 하죠.

인간들이 결국은 인간의 마지막 모습은 죽음이에요. 죽음인데 인간은 마지막 모습이 죽는 것을, 죽는 것을 모르고 계속 계속 살고 살고 노력하면 사는 쪽으로 가는 줄 알고 있어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모든 인간은 이미 죽었어요. 예수님이 너희들의 마지막 모습은 내가 미리 보여줄게, 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림으로써 인간은 죽는데 이유가 뭐냐? 죄 때문에 죽는다는 사실을 예수님이 먼저 시범적으로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를 뒤집어쓰고 죽었어요.

따라서 인간은 어떤 기대와 어떤 구원하는 것도 다 반칙이에요. 그거는 소용없어요. 나중에 내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지, 그것도 다 무효야. 그건 아무 소용없어요. 살려줘야 살리는 것이지 내가 이렇게 하면 산다는 것은 소용없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그럼 주님께서는 본인은 어떻게 살았는가? 본인은 아버지의 말씀을 믿었어요.

아버지의 말씀이 뭐냐? “아들아. 죽어도. 좀 죽어도.” “아버지. 저 죽기 싫습니다.” 그래서 아버지하고 아들하고 결판을 했어요.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갔습니다. 동산이라 해도 동산이 별로 높지도 않아요. 겟세마네 동산에 가가지고 밤새도록 씨름하는 거예요. 야곱처럼 씨름하는 거예요. “살고 싶습니다. 고생은 하겠는데 죽이지는 말아주소서.” “아니야. 니 죽어야 돼.” “죽이지는 말아주소서!” “죽어야 돼.” “만약에 죽었는데 안 살려주면 저는 곤란하잖아요.” “그래도 죽어야 돼. 니 곤란해도 죽어야 돼. 니 곤란을 니가 받아줘야 돼.” “내가 죽으면, 죽으면 남들하고 다를 바 없이 똑같이 모든 희망과 절망이 끊어지잖아요. 끊어지면 내가 지금까지 아버지 이야기하는 게 전부 다 이게 다 헛수고가 되는데 그래도 좋습니까?” 주님은 “그래도 죽어도. 그래도 죽자.” “죽는 척하면 됩니까?” “죽는 척 말고 죽어.” “죽는 척 척 척하면 안 되나요?” “척 척 척 하지 말고 그냥 죽어.”

그래서 예수님께 겟세마네에서 “그래 결심했어.” 하고 예수님은 자기가 죽어야 될 그 잔을 마시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근데 옆에 보니까 제자들은 지금 예수님이 지금 예수님이 어디로 가는 것도 모르고 지금 자고 있어요. 그래서 제자들에게 이야기했죠. “나 이제 죽으러 간다. 나 이제 죽는다.” 전에도 이야기했고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당부했어요. 전에 그 제자들 앞에서 내 죽는다 하니까요. 베드로가 충성심이라도 보이듯이 “스승님만은 살아야 됩니다. 우리가 죽어도 우리가 죽지. 주님은 죽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 마귀야. 저리가!” 그게 마귀 말이야. 나는 죽기 위해서 왔는데, 너희는 살기 위해서 마귀는 살기 위해서 너희를 그동안 부추겼잖아. 내가 죽어야 뚫린다.“ 죽어야 뚫린다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이야기했어요. 양이 100마리 있는데 양이, 100마리 있는데 아흔 아홉 마리가 목자 따라 잘 왔어요. 그 양이 구원받을까요? 양 99마리 양이 있는데 100마리 중에서 한 마리 없으면 몇 개 남아요? 99 남지. 그러면 한 마리의 양은 어디 있어요? 99 속에 없지요. 잃어버렸어요. 잃어버렸다고. 그러니까 사람들은 한 마리 양이야 잃어버려도 우리끼리 99 있으니까 됐다고 생각하고 좋다고 하거든요.

주님께서 길을 가다가 “스톱! 그만!” 길 안 간다 하니까 99마리 양이 “왜 같이 안 가시고?” “너들은 지금 마음이 어디 있느냐?” “우리는 지금 목자와 함께 있어요. 너무 신나요. 주님은 우리의 목자요.” “목자 같은 소리를 하고 있네. 나의 관심은 바로 너희들 속에 섞이지 않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에 있다.” 하고 99마리 양을 놔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해서 놔두고 갔어요.

양을 찾았게요. 안 찾았게요? 기어이 양을 찾았어요. 양이 알아서 찾아왔겠어요? 목자가 찾아냈어요, 안 냈어요? 양이 찾아온 게 아니에요. 양이 내비게이션 해가지고 찾아온 게 아니고 양은 그냥 잃어버렸어요. 모든 걸 잃어버렸어요. 주께서 우리 보고 하는 것은 니가 알 수 있는 모든 걸 잃어버리라는 거예요. 모든 걸 잃어버릴 때 비로소 예수님이 나를 찾아왔다는 그 고백, 그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돼요. 예수님이 나를 찾아낸 거예요. 예수님이. 그래서 숨바꼭질 끝났을 때에 미리 나오지 마세요. 알아서 나오지 마세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할 때 밥 먹자, 밥 먹자에 나오면 안 됩니다. “야! 우리는 이제 파리로 여행 간다. 온 가족 여행 간다.” 여행 갈 때 나오면 안 돼요. 자기 식구들 여행 다 하고 지 혼자 집에 있어야 돼요. 나홀로 집이 돼가지고 도둑놈하고 싸워야 돼요.

그처럼 주님은 이 땅에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찾을 수 없는 그냥 아버지께 맡기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이렇게 살려냈습니다. 무덤에서 살려냈습니다. 그다음에 우리 차례인데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는 그 능력이 바로 현재 죽어가고 있는 우리를 하나님의 예수님께서 살려냈다는 그 말씀이 내가 이렇게 살아났다는 그 사실, “나는 죽었고 부활된 거 맞나 안 맞나?” “맞습니다.” 맞다는 그것이 죽은 우리를 살려내는 거예요. 죽으면 안 사는데 죽으면 사는 수가 예수님에게는 있다는 사실, 예수님이 살려낸 그 능력으로 우리를 살려낸다는 것. 그것을 주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마음속에 심어준 거예요.

그래 우리가 백날 살아도 죽는데 그거는 축구의 전반전이고 후반전은 다른 세계가 있어요. 그것은 전반전 쉬고 11대 빵으로 모든 것을 11대 10으로 역전되는 그 부활의 세계, 그 세계가 우리의 최종 도착 지점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 예수님 믿는다 하면서도 계속해서 나의 능력을, 나의 종교를, 나의 신앙을 믿고 있지는 않는지요. 돌이키게 하시고 그것마저 손을 놔버리고 모든 것이 주께서 찾아온 주의 부활의 능력인 것을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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