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순

살아난 다비다

아빠와 함께 2024. 2. 11. 19:29

살아난 다비다 240211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다시 살아난 여인. 여기 다비다라고 돼 있는데, 도로가 또 다른 이름은 도루가 또 다비다라는 이 여인인데 예수님이 십자가 죽고 난 뒤에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제는 이 세상에 없다, 안 계시다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전에는 눈에 보이는 식으로 살아 계셨는데 예수님이 죽고 난 뒤에 부활하고 난 뒤에는 눈에 안 보이는 식으로 이 일을 하시는 거예요. 보이는 식으로 일하는 게 아니고 눈에 안 보이는 식으로 하는데 내가 보여줄게. 보이는 식으로 일하는 게 아니고 보이지 않는 식으로 이야기한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이 안 보이지만 예수님의 힘이, 예수님의 힘이 예수님의 12 제자들 12 제자뿐만 아니고 120명 사람들에게 마가의 다락방에 한꺼번에 쏟아졌어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여기 머리에 전부 다 불이 있었어요. 머리가 불이 붙었어요. 불이 붙었는데 물론 그 불은 곧 사라졌지만 불이 붙고 난 뒤에 그다음부터는 이 사람들이 뭐냐 하면은 예수님 살아계시고 살아계시기 때문에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는 이야기를 이 사람들이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전에는 뭐냐 하면은 사람들이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 천국 간다고 이야기했다 이 말이죠. 그런데 이 사람들이 뭐라 하느냐?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은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없기에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대신 죄를 벌 받잖아요. 죄 지으면 벌 받죠. 니 벌 한번 받아볼래? 오늘. 예수님께서 십자가 달린 게 뭐냐? 우리 대신 벌 받은 거예요. 벌을 다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염려 없이 깨끗한, 깨끗하고 의인이 된 채 천국에 올 수 있다. 그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 라고 그다음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하게 된 거예요. 이 사람들이.

근데 이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한 게 아니고 그 보이지 않는 예수님께서 쑤신 거예요. 야! 야! 어디 가서 내 이야기해. 내 이야기, 니 이야기 하지 말고 내 이야기해. 계속해서 내가 이렇게 했다. 내가 이렇게 했다. 그게 그들 마음속까지 예수님이 계셔가지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그중에 한 사람이 누구냐? 베드로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도 어디 가면 갈 때마다 예수님 이야기를 하게 된 거예요. 예수님 살아계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죽었지만 살았다는 것은 우리도 죽었지만 천국에서 삽니다, 라고 이야기를 한 거예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베드로의 말을 “예. 믿습니다. 예. 그건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건 새로운 말씀입니다. 듣도 보도 못하는 말씀인데 이상하게 믿음이 가네요. 나 그거 받아들이겠어요.” 하고 있었어요. 그때 그중에 누가 있었냐 하면은 그중에 그 욥바라는 동네에 베드로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여기 다비다라는 이 여인도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믿었는데 이 사람은 예수 믿고 난 뒤에 그다음부터는 다른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줄 사람은 도와주고 이렇게 했는데 그러던 그 사람이 갑자기 죽었어요. 다비다라는 여자가 무슨 일을 했냐 하면 다른 여자 특히 남편 없이 혼자 사는 과부들을 많이 돌봐준 그 동네 굿다와 사돈이라는 동네에서 많이 도와줬는데 사람들은 이 다비다가 오래 살아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좀 해주기를 바라고 많은 착한 일을 해주는 것을 굉장히 고맙게 여겼는데 갑자기 다비다라는 사람이 죽게 된 거예요.

죽게 되니까 그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베드로 말을 믿고 예수의 말을 믿는 사람들이 “빨리 불러. 베드로 불러.” 베드로를 불렀어요. 베드로를 불렀어요. 어떤 사람들은 벌써 죽었는데 죽은 사람 불러서 뭐 하느냐 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베드로가 사도니깐 사도를 통해서 예수님이 뭐 일할 수 있는 게 있지 않겠는가, 다른 뜻에서 뭔 뜻이냐 하면 “이 사람이 다비다라는 사람이 죽은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 다음에 무슨 하실 일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죽은 다비다가 되게 하셨다. 그 다음 차례에 무슨 일이 있을 거야. 우리는 모르지만 빨리 베드로 불러.” 베드로를 불렀어요.

부르니까 이제 베드로 오니까 사람들이 어떤 사람은 벌써 죽었습니다 하는 사람도 있고 베드로께서 어떻게 해보세요? 이 사람 죽었는데 우리는 이분이 꼭 필요한데 어떻게 됩니까, 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하니까 베드로라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 다 나가세요. 다 나가세요. 다 나가. 나가. 나가. 나가.” 다 내보내고 남은 사람 누구냐? 죽은 지 벌써 다비다가 죽었어요. 죽고 난 뒤에 염 쳐가지고 지금 시체 옷 입혀가지고 이미 죽었어요. 깨끗이 씻어서 옷까지 입혀서 다 죽었는데 다비다하고 베드로 두 사람 딱 있었어요.

있는데 베드로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다비다야. 니가 내가 니한테 말한다. 일어나라.” 죽은 사람 보고 “일어나라!” 이렇게 했어요. 여러분들이 보통 이야기할 때 누구 보고 이야기해요? 산 사람 보고 이야기하잖아요. 근데 베드로한테는 산 사람 죽은 사람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니까 산 사람 따로 죽은 사람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인간은 모두 살았다고 해도 죽은 자예요. 죽은 자라고 일단 죽은 자로 간주하고 베드로는 지금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이야기를 해보는 거예요.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고 이야기하니까 다비다가 죽었는데 벌써 죽은 지 오래됐는데 다비다가 꿈틀거리면서 살아났어요. 그리고 살아나고 난 뒤에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사람들 들어보세요. 당신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다비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하고 이렇게 소개해 줬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얼마나 이게 놀랬는지요? 우리는 그냥 말씀만 믿습니다, 했는데 이게 말씀이 아니고 이게 진짜 현실이고 이 세상이 바로 세상 돌아가는 것이 예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돌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제 말씀 아니고 말씀과 현실을 같이 일치시켜서 믿게 되었던 거예요.

베드로가 이걸 보고 자랑하지는 않았어요. 자랑하지는 않았고 이것은 바로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령께서 저한테 그렇게 하셨습니다. 나는 지금 또 다른 일 또 시킨 일이 바쁜 일이어서 이만 그만 하고 그래서 베드로는 또 다른 곳에 가 또 복음을 전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베드로가 전하는 복음은 베드로가 어떤 뭔가 알아서 지식을 푸는 거, 지식을 자랑하고 나열하는 게 아니라 베드로는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를 도저히 감출 수 없어서 더 이상 그것을 입 다물 수 없어서 있는 그대로 외쳤는데 주님은 살아계셔서 부활해서 살아계셔서 일하시는데 자기 백성들을 죽은 사람 산 사람과 관계없이 자기 백성들을 영원히 살린다는 거, 그 일을 베드로를 통해서 한 겁니다.

이 베드로 이 일만 한 게 아니에요. 나중에는 사도 바울이 일할 때는요. 사도 바울도 죽은 자를 살리고 병을 고쳤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사도 바울의 손수건 있잖아요. 손수건 있으니까 그 손수건을 손수건 좀 주시겠습니까? 이건 완전히 방탄소년단도 아니고 손수건 해가지고 손수건을 가지고 자기 아픈 사람에게 하니까 이게 나았어요. 손수건. 그때부터 손수건 잘 팔렸어요? 직구 했는가? 하나님이 예수님이 그것은 손수건이 한 게 아니고 어느 구석이든 어느 시 어느 몇 시든 관계없이 어느 장소든 관계없이 하나님이 일하시면 그 일하는 곳에서는 예수님이 살아있고 눈에 안 보이지만 살아있고 오히려 눈에 보이는 사람을 천국에 보내기 위해서 주께서 일하신다는 것을 어디에 가도 구애받지 않고 전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이제 마지막 이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 베드로 그리고 스데반 집사 사도 바울이 세상에 돈 있고 뭐 권세 있는 사람을 부러워했겠어요? 안 부르겠어요? 개코예요. 개코. 현실도 모르는 게 개코. 그게 뭔데? 그게 죽은 자를 살립니까? 돈이? 출세가? 영광이? 살려요? 똑똑한 게 살립니까? 아니죠. 진짜 사는 것은, 진짜 사는 것은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 내가 특별한 지식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고 이것은 바로 지금의 나를 잊게 한 것이 예수님이라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살아계신 분에게 기도합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이 우리가 살아있어서 살아있는 게 아니라 주님이 살려주셔서 살아있음을 새삼스럽게 이제는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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