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순

살아나신 예수님

아빠와 함께 2024. 1. 9. 19:00

살아나신 예수님 240107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엠마오로 가는 길. 엠마오로 가는 길이 천국 가는 길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요. 엠마오라 하는 것은 여기 여기서 대구 같으면 저 대전으로 가는 거예요. 니 대전 아나? 대전? 대구에서 대전 가는 그쪽으로, 엠마오로 가는 길인데 그게 천국 가는 길이 될 줄은 몰랐지요.

두 제자가 예루살렘 예수님께서 일하셨던 그 동네에 있다가 제자들이 다 흩어졌어요. 시마이 하자는 거예요. 끝내자. 끝내자. 우리 이제 우리 예수 놀이 그만하자. 우리 예수 이야기 이제 쉿! 입 다물고 하지 말자. 왜? 주인공이 돌아가셨대. 그렇게 끝났나? 그래. 그렇게 끝났대. 모든 게 다 끝났대. 교주가 죽어버렸으니 일 끝나는 거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도 사람들이 뭐냐 하면은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거예요. 눈에 보이는 사람이 하는 거지 사람이 하지 않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 겁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대. 아무 일도 안 하면. 사람이 일하지 않는데 새로운 일이 있을 수가 없다. 그런 생각으로 우리 한동안 예수님하고 같이 있으면 즐거웠잖아. 그치? 즐거웠었어. 이제 그분 돌아가셨어. 그래 너무 안 됐어.

“그런데 그분이 뭐 돌아가시기 전에 자기가 죽었다가 살아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아이고. 니가 믿을 걸 믿나? 진짜 짜증나 죽겠다. 산 사람 것도 안 믿는데 죽었다 살아난 걸 그걸 누가 믿는단 말이야? 누가? 주님이 그냥 섭섭하니까 그냥 위로 삼아 이야기 한번 툭 던져본 거고 그냥 죽었다가 살아나는 그런 거는 그냥 다 잊어버리고 우리 그냥 남은 인생 열심히 살자.” 하고 두 사람이 갔어요. 그 중에 한 사람 이름이 글로바라고 하는 사람인데 가고 있는데 같이 가자 해가지고 한 분이 빨간 옷을 입은 한 분이 따라붙었어요. “어디 가는데? 어디 가는데” “저요?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인데 예수님이 돌아가셔 가지고 이제 모든 것이 끝나가지고 보따리 싸고 고향으로 지금 가는 중입니다.” “아이고. 가면 되겠소?” “끝났어요. 끝났어요. 다 끝났어요. 그분이 소문에 듣기는 그분이 예수님이 어떻게 부활한다는 이야기 하는데 그걸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고요. 그 똑똑한 박사들 바리새인들 그 사람들 다 안 믿어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뭘 배웠다고 우리가 믿겠어요? 우리는 대세 여론 따라가야지.” 하고 갔습니다.

근데 그 두 사람이 쭉 하면서 이왕 가는 거 그 예수라는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님이 과거에 무슨 이런 이야기를 이런 훌륭한 일을 많이 했다는 이야기, 모든 이야기가 과거 이야기예요. 예수님이 돌아가기 직전까지 이런 일들을 많이 했다는 겁니다. 이런 일을 돌아가기 직전에. 거기에 같이 있던 예수님은 이제 쥐어 받고 싶지요. 예수님은 지금 동행하고 부활해서 동행하고 있는데 둘이 제자는 자꾸 과거 이야기하고 있어요. 예수님의 과거, 과거 뭐 하고 있다. 과거 뭐 하고 있다,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두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저. 아저씨. 동행하는 아저씨. 잘 들어보세요. 우리 말고 다른 제자들한테 예수라는 분이 죽지 않고 살아나서 무덤에 가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런데 그 사람이 살아났다는 이야기만 썰만 있고 이야기만 있고 그 뒤에 본 사람이 없어요. 안 봤으면 그거는 우리가 믿으면 안 되지요. 안 봤는데 썰만 듣고 믿는 거는 그건 반칙이죠. 내 인생의 반칙이야. 내 인생의 반칙. 눈에 보이는 거 열심히 공부하기도 바쁜데 보이지 않는 것까지 다 챙기려고 하는 이것은 내가 용납 안 돼. 그래서 우리는 그 이야기는 무시하기로 했습니다.” 하고 갔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세 번째 사나이 예수님이 이야기하기를 “진짜 너희들은. 너희들은 결국 당신 말들은 내게 믿음이 없다 그 말이잖아?” 그 제자 둘이가 “예. 그렇습니다.” 그때는 예수님인 줄 몰라요. 그냥 동행인인 줄 알고. “그러니까 너희들 당신들은 예수님을 안 믿었다 이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두 사람이 “그건 내가 인정할게요. 내가 믿어서 믿는 게 아니고 혹시나 싶어서 믿고자 했을 뿐이지 믿지는 않았어요. 우리는 보지 않은 것은 안 믿습니다.” 이런 식으로 나왔다 말이죠.

그래가지고 예수님께서 예수님인지 모르고 구약부터 쭉 설명해 줬어요. “지금 당신들이 지금 두 사람이 안 믿고 지금 집으로 돌아가는데 이거는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서 죽었다가 살아난 것만 안 믿는 게 아니고 지금까지 예수님이 행하는 모든 것도 당신은 지금 부정하고 이 시점에서 당신의 행위가 모조리 다 부정한다는 뜻이야. 거부한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두 사람은 “그래요. 맞아. 맞아. 그래요. 당신 말이 맞아요.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내가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여기 살아있고 예수님은 돌아가셨다 그뿐입니다. 예수님은 안 계시고 나는 여기 계시고 그게 다인데 이게 뭐가 잘못이냐?” 이래 나온거죠.

그리고 난 뒤에 “이왕 이렇게 나왔는데 해도 저물었으니까 저녁 먹으러 갑시다.” 그래서 저녁 먹으러 갔어요. 저녁 먹으러 가면서 여기 성경에 보니까 비로소 주님께서는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들이 눈이 떴다 했어요. 눈이. 눈이 떠진 거예요. 눈병 한번 나봤어요? 눈이 떠서 비늘 한번 떨어져 봤어요? 그동안 평생 살아서 평생 태어나서 살아온 것이 이게 눈곱이 돼가지고 두껍게 눈곱이 되어가지고 눈에 보이는 게 전부예요. 마귀가 그런 짓을 한 거죠. 보이는 게 전부가 돼 가지고 이거 사울이라는 사람도 눈곱이 떨어졌을 때 비로소 이 세상 전부를 알게 된 겁니다. 이 세상은 내가 주인공이 아니고 예수님이 주인공으로 다듬어 나오고 움직인다는 사실을 발견한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을 뜨게 해줬어요. 눈 뜨니까 “아이고. 주님 아닙니까?” “왜 니가 뭐 요모조모 따져보니까 주님이야?”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내가 주님인 것을 아는가?” “주께서 알게 하셨잖아요. 주께서.” 그러면 그동안 뭐예요? 내가 어떻게 내가 설득하는데 내가 온 평생을 다 보낸 사람이에요. 나는 나를 설득하는 데 평생을 보냈는데 주께서 오셔서 눈을 뜨게 해주니까 이 설득하는 이것이 불신앙인 것을 이제야 제가 알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엠마오로 가지 않고 다시 어디로 가느냐? 남은 제자가 있는 예루살렘으로 바꾸 다시 유턴해가지고 이제 안 갑니다. 다시 예루살렘에 가가지고 제자들에게 이야기하는데 “심봤다. 우리가 예수를 봤다.”

봤다 하니까 제자들이 이런 말을 해요. “그래. 너희들한테는 봤는데 왜 우리한테는 안 나타나지? 그러니까 나는 당신 말을 믿을 수가 없어.” 이렇게 되었거든요. 두 제자가 “그게 바로 조금 전까지 내가 바로 당신 말을 내가 한 거야. 내가.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는 사실을 당신들은 분명히 들었는데도 당신은 아직도 그걸 못 믿고 있다.” 이렇게 하면서 이제 그 이야기가 거기서 이제 주님께서는 마감이 되거든요.

예수님께서는 왜 모든 사람에게 안 보여주는가? 이미 구원받을 자와 안 받을 자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랬어요. 모든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거기서만 매진하는 걸 뻔히 아는 상태에서 ‘나에 대해서 연구하라. 니가 신학 공부해라’ 이래가지고 믿는 게 아니거든요. 주께서 직접 찾아가 주시는 겁니다. 그게 뭐냐 하면은 자기를 환자로 보는 거예요. 자기를 환자로 봐서 자기가 아플 때만 어디를 찾는다? 의사를 찾게 돼 있어요. 마태복음 9장에서 자기가 건강하다. 나는 잘 났다. 절대로 나 같은 것은 의사가 필요 없다는 거예요.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의 눈을 뜨게 되면 내가 조상이 잘못되어서 내가 이미 잘못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서 나에게 잘못된 걸 알게 하신 바로 그분이 나를 치료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부모하고 같이 살면서 점 점 점 여러분들이 부모를 닮아서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발견해야 돼요. 이거는 예수님을 믿어야지 부모 믿다가는 자칫하면 지옥 가는 수가 생겨버려요. 따라서 부모와 가족 관계 속에서 이게 완전하거나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세상에 온전한 것도 없고 완전한 것도 없고 그걸 메꾼다고 완전해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주께서 다 이루었다는 것이 우리 속까지 들어와야 비로소 우리는 제대로 눈을 뜬 상태가 됨을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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