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회자료

2강 언약적 약함

아빠와 함께 2022. 1. 15. 09:52

2022 십자가마을겨울수련회 제2강-여호수아: 없는 땅-언약적 약함
(강의:이근호 목사)


두 번째 시간하겠습니다.

첫 번째 시간에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이 크레파스의 밑둥치를 한다면 이 언약은 개인적으로만 주어지는 언약이 아닙니다. 이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만 달랑 구원하기 위해서 주어진 언약이 아니에요. 여기서 반드시 집단이란 것이 형성되게 돼있어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개인적인 악은 어떤 경우에만 하나님께서 의미를 주느냐 하면 집단적이어야 한다, 에 대해서 반발하며 튀어나올 때, 여러분 아간 같은 경우 생각하면 됩니다.

아이 성 칠 때 나는 여호와께 바친 게 아까워서 외투와 금을 챙기련다. 집단에서 빠져나와서 개인적인 어떤 이익을 추구할 때 이게 바로 악이 되는 거예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은 항상 집단적으로 움직이게 돼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땅 분배하고 난 뒤에 이건 내 땅이다, 네 땅이다, 라고 일어나선 안 되기 때문에 그래요.

이거는 우리 지파가 집단적으로 하나님께 부여받은 땅이기 때문에 사적으로 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다. 그것이 유지돼야 되거든요. 이것은 여러분들이 신약에 와서 나 천국 간다, 하면 안 되고 우리가 간다, 이래야 돼요. 내가 간다고 하면 안 되고 우리가 가야 돼요. 비록 이 나라에 천국 간 사람이 한 사람 밖에 없다 할지라도 우리란 말 써야 돼요. 예수님이 이 땅에 홀로 오셨잖아요. 그래도 예수님은 우리란 말 사용했어요. 누가 우리입니까? 아버지와 나하고 우리가 되는 거예요.

집단성이란 것은 무엇을 계속해서 악으로 규정하느냐 하면 개별성을 악으로 규정합니다. 왜냐하면 개별적이 돼버리면 세상을 볼 때 자연을 볼 때 카운트해요. 카운트란 수를 헤아림. 수를 헤아림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면 여기서 수학이 나옵니다. 수학은 하나, 둘 씩 개별적으로 헤아림부터 수학이 시작돼요. 왜 헤아릴까요? 헤아림 속에서 무엇을 구축하느냐 하면 헤아리는 본인, 카운트하는 당사자에게만 모든 의미가 여기서 응집되기 위해서 인간이 헤아리는 겁니다.

애들한테 카스텔라나 빵 같은 걸 줄 때 형제 둘이 있는데 호빵 다섯 개를 준다 합시다. 엄마가 하는 말이, “너희들 사이좋게 잘 먹어라” 하잖아요. 그게 엄마의 실수지요. 인간은 개별성이 있기 때문에 사이좋게 할 줄 모르고 엄마 보내놓고 그 다음부터는 카운트합니다. “나는 형이기 때문에 세 개, 너는 동생이니까 두 개.”

그러면 동생이 발끈하지요. “우리나라 헌법에 그런 게 어디 있느냐. 우리나라 헌법에는 로 하자. 두 개씩 먹고 한 개는 나누자.” 그렇게 나오는 겁니다. 로 유산 나누는 것이 벌써 어릴 때부터 찐빵으로 하는 거예요. 동등하게 하자.

그러면 형이 여기서 복잡한 계산을 들이댑니다. “지난번에 집 청소할 때 네 노동력을 계산해라. 네 노동력 계산과 내 노동력 계산이 어느 게 많으냐? 너보다 내가 2.5배 많았다. 따라서 이번 찐빵은 노동력에 보상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카운트 계산하자. 너는 작게 일했기 작게 먹어야 되고 내가 많이 일했기 때문에 많이 먹어야 되는 것이 이게 합리적 추론이 아니냐.” 이렇게 따지는 거예요.

그때는 동생이 일단은 쑥 들어가요. 너무나 합리적이기 때문에. 뭘 생각하느냐 하면 내가 형한테 공짜로 준 게 없는지 그때부터 뒤돌아 할 게 없는지 따지는 겁니다. 아버지 유산 남기고 돌아갔을 때 아버지가 형한테 많이 주라고 유언했을 때 동생들이 많이 주라는 말이 너무 추상적이고 실제로 형이 한 게 뭐있냐, 이렇게 따지게 되면 문제가 커지는 겁니다. 이게 어디서 나왔다고요? 인간은 자기 의미를 구축할 때 그냥 구축하는 게 아니고 수적으로 카운트해서 자기 자신을 구축하는 거예요.

인간은 자기라는 게 없는데 인간은 그냥 몸만 있을 뿐이지 자아 같은 건 없는 데요 어릴 때부터 자아성은 뭐냐 하면 바깥에 나가서 카운트하는 거예요. 수를 카운트해서 내 것, 이것도 내 것, 이건 니 것 빼자. 찐빵 세 개는 형 것이고 찐빵 두 갠 내 것. 이렇게 할 때 찐빵 두 개 먹을 때 그 시점에서의 동생의 자아는 뭐냐? ‘찐빵 두 개=나’가 되는 거예요, 인간은.

이걸 무산시켜버립니다. 크레파스 아래 있는 레위 지파로 완전히 무산시켜요. 레위 지파가 뭡니까? 양을 대신 잡는 거잖아요, 대신. 양이나 염소나 소로 대신 죽음으로서 이러한 개별성을 완전 무산시키는 겁니다. 일체 인간 대 인간의 대조와 비교를 통해서 구원되는 건 없다. 개별적인 구원은 없는 거예요.

만약에 개별적인 구원이 있다 하면 문제가 복잡해져요. 두 사람이 있다면 내가 아는 예수와 네가 아는 예수가 다르게 되면 둘 다 각각 지금 다른 나라 가고 있어요. 둘 다 지금 천국이 아닌 엉뚱한 나라에 갑니다. 왜냐하면 나를 개별성을 인정하는 그런 천국은 있어본 적도 없고 천국에서 그걸 안 받아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개별적인 천국은 하나님께서 안 받아줍니다.

포도원 비유 아시죠. 천국 가는 이야기고요. 그리고 혼인잔치, 마태복음 22장, 그것도 천국 비유고요. 그 다음에 마태복음 25장에 흔히 말하는 달란트 비유도 무슨 비유냐? 천국 비유지요. 그 다음에 기름 준비한 처녀 열 명 비유도 다 천국 비유에요. 천국 비유 특징이 뭐냐 하면 하나의 가치를 배분하는 거예요. 이게 천국 비유입니다.

여기 오후 다섯 시에 온 사람, 세 시에 온 사람 전부 다 얼마 받습니까? 동일한 것 받지요. 주의 뜻을 전부 다 배분받는 거예요. 이 말은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 주인의 의향이 분배받은 그들 속에 그대로 동일하게 자리 잡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네 안에 너 아닌 것 들어있다, 간다, 이런 뜻이에요. 네 안에 네가 개별적으로 애써서 노동해서 얻은 것 네 안에 안 들어있다. 그러면 그게 안 들어있으려면 개별적으로 얻었던 공로는 어떻게 됩니까? 주님께서 없애버려야지요.

사도행전 5장에 보면 그 유명한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야기 나오죠. 부부사이인데 사이좋게 한 날 다 죽었어요. 약속한 헌금 반밖에 안 내서 다 죽었거든요. 제가 이걸 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차라리 헌금을 안 했으면 그 부부는 살았어요. 지금 문제는 뭐냐 하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헌금을 하면서 개별성을 헌금에다 담아버린 거예요. 내 것 낸다, 나의 것을 낸다, 이렇게 됐어요. 주께선 안 받지요. 나의 것을.

왜 나의 것을 내느냐 하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속에는 뭐가 없기 때문에? 주님의 현찰, 주님의 돈이 없기 때문에 자기 거라도 내겠다, 기마이 쓰겠다. 일본말 써서 죄송합니다만 인심 쓰겠다는 거예요. 주님의 것이 없으니까 남들 헌금하니까 지도 덩달아 헌금해서 신자인 티를 내려고 자기 걸 내는 거예요.

주님께서는 자기 걸 내는 자를 죽임으로 말미암아 너희들이 안 내도 이미 나머지 모든 사람들에게 교회는 너희가 내든 안 내든 상관없이 다 누구의 것이다? 천국에서는 주의 것이에요. 천국에서는 내 것이 하나도 없고 다 주님의 것이에요. 주님의 것을 유지할 때 천국의 백성과 왕의 관계가 유지가 되거든요.

그래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야기로 교회 헌금과 관련지어서 교회 헌금을 많게 하기 위해서 삽비라처럼 안 내면 죽는다, 이럴 수는 없어요. “안 내면 죽는다, 돈 내라.” 이거는 강도고요. “너희들은 내나 안 내나 죽었다, 감사하라.” 이게 교회지요. 그리고 교회는 헌금을 내는 게 불가능해요. 왜냐하면 내 게 아니기 때문에 내 걸 이동시킬 수가 없어요. 주님의 것을 니가 갖고 있고 주님의 것을 내가 갖고 있는 입장이지 같은 인간이 인간끼리 주고받고 해봐야 어딜 가도 다 주의 것이잖아요.

혹시 돈 갖고 있기 곤란해요? 뭐 번거로워서 미치겠어. 돈 갖고 있으려니 냄새 나고 그래요? 혹시 내 돈 가져갈 사람 없어요? 광고 내보세요. 십자가마을에는 혹시 아닌 사람들은 나한테 주세요, 이렇게 나올 거예요. 그래서 지금 이야기하는 게 뭐냐 하면 크레파스 안에서는 개별성은 일체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용납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에 집어넣었다는 이 말씀을 통해서 뭘 끄집어낸다 했습니까? 첫째 시간 마지막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에서 뭘 끄집어낸다? 악을 끄집어내는 거예요. 이 말은 현재 토착민들 있잖아요. 열 족속 또는 열두 족속들을 하나님께선 이걸 뭐라 했습니까? 악이 관영했다 했잖아요. 창세기 15장에 나옵니다.

이 악이 뭔지를 몰라요. 누가? 이스라엘이. 하나님은 악이 관영했다 했는데 이스라엘은 뭐가 악인지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땅에 사는데 이게 악입니까? 그들이 악 같으면 들어가 살겠다는 우리도 악이 되잖아요. 악을 먼저 알고 들어가야 우리가 거기에 살 수 있는데 그들은 아무리 봐도 그냥 살아요. 마치 우리가 평소에 애굽에 사는 것처럼 산단 말이죠. 뭐가 악이에요? 사는 게 악입니까? 그래서 이럴 경우에는 악을 드러낼 방법이 있어요. 그 방법을 지금부터 설명하겠습니다.

물리학으로 원자핵이 있을 때는 원자핵을 플러스 전기, 원자핵 그 다음에 주변에 마이너스 전자가 있거든요. 마이너스 이렇게 그려야 되겠지만 생략하고 전자로 한다. 원자핵이 마이너스 전자로 있는데 전자의 숫자에 대해서 고유의 궤도를 가지고 있어요. 전자 들어갈 때는 파울의 법칙이나 여러 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전자가 한 개 있으면 이렇게 돼요. 그런데 그 옆에 전자가 또 있으면 어떻게 되는가? 이렇게 돼요. 또 전자가 플러스 원자핵이 있고 전자 있다면 이렇게 된다고. 한 개나 두 개 있는 걸 기체라 하고 여러 개 모인 것을 고체라고 합니다. 딴딴해져요. 여기서 전자의 힘들이 하나 있을 때는 듬성듬성 있는데 이게 자꾸 쌓이게 되면 겹쳐서 촘촘하게 돼버려요.

촘촘하게 된 이걸 banding이라 해요. 띠, 에너지의 띠, 에너지의 밴딩이 된다고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백성으로 하여금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해놓고, 아까 신명기 보셨잖아요. 신명기 8장, 네가 들어간 데서 그 땅의 신들을 섬기게 되면 어떻게 된다? 나도 멸망해버린다, 이렇게 돼있어요.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정녕히 멸망할 것이라”(19절)

고유의 띠가 나와야 돼요. 어떤 원소의 스펙트럼처럼 빠질 것은 빠지고 들어갈 것을 들어가야 되는데 이것이 이방민족과 같이 섞여버리면 밴딩 현상이 일어나서 전부 다 같이 얼싸안고 난리도 아니에요. 그들의 문화와 결혼문화, 모든 종교 이런 것이 같이 합쳐버리면 이게 순결을 잃어버린다고요. 순수하지 않은 거예요.

그러면 우리 생각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좀 지켜줘서 이들로 하여금 그들을 약속의 땅에서 안 망하게 하면 되지 않느냐, 라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제가 강의 처음에 뭐라 했습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에서 뭘 끄집어낸다 했습니까? 악을 죄악을 끄집어낸다 했지요. 왜 그러냐 하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죄악을 끄집어내줘야 레위 지파가 말하는 제사의 의미가 부각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게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거든요. 죄가 있어줘야 분명히 있는 죄가 어떻게 날아가 버렸지, 왜 죄가 없어. 왜 내가 천국 갑니까와 같은 말이 뭡니까? 왜 내가 죄 지었는데 개별적인 죄든 뭐든 죄를 지었는데 왜 자꾸 저를 죄가 없다고 합니까, 주님이여. 한 번 싸울까요, 정말. 왜 저보고 의인이라 하는 거예요, 왜? 왜 죄인보고 자꾸 의인이라 합니까? 김 의인, 최 의인, 박 의인, 왜 의인이라 합니까? 따지고 싶은 거예요. 물론 이런 별종도 드물지만.

주님께선 우리가 의인 되는 게 목적이 아니고 죄에서 의 되는 데서 기여한 분을 드러내는 거예요. 주님이십니다. 네가 죄밖에 없지 해결 안 되지 너는 이방민족을 선호하지. 따라서 이러한 띠 밴드 여기에서 죄가 드러나게 함으로써 그 죄와 더불어서 같이 투입되는 주님의 가치를 드러내는 그것이 바로 언약의 구현이라 하는 겁니다. 언약의 구현에 여러 가지 경우가 있는데 그 경우를 보겠습니다.

여기에 이스라엘을 전자라 합시다. 전자가 뭘 만나느냐 하면 광자를 만나다. 빛의 입자를 만난다. ⓐ만나서 뭐가 나오느냐?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무엇이 튕겨져 나가지요? 이방민족 튕겨져 나가죠. 튕겨져 나갈 때 전자를 인간이라 봅시다. 광자를 하나님이라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만나서 하게 되면 여기서 뭐가 되느냐 하면 왜 이방민족이 이 땅에 살아선 안 되는 이유가 등장한 거예요. 튕겨져 나오니까. 전자가 들어오게 되면 전자가 또 튕겨져 나가는 거예요.

이 간단한 요 다이어그램을 파인만 다이어그램이라 해요. 물리학에서 유명한 수학자에요. 파인만 다이어그램이 이런 경우만 있는 게 아니에요. 이 다이어그램을 혼란스럽지 않게 단정하게 그리면 이렇습니다. 전자라 하지 말고 인간 나오고 또 하나 인간으로 튕겨져 나오면서 여기서 뭘 만난다? 하나님을 만나서 튀어나온다. 단지 이것 하나뿐이에요. 이것 하나를 방향을 틀어보는 겁니다.

이게 첫 번째 방향이라면 ⓑ두 번째는 전자, 이스라엘과 이방인이 만나서 뭐가 튕겨 나오느냐 하면 에너지와 합쳐서 광자가 튕겨져 나와 버려요. 어쨌든 하나님이 나왔잖아요. 둘이 합세해서 누가 핍박받는다? 사사가 핍박받는다. 선지가 핍박받는다. 이런 경우. 그러니까 이것을 방향을 뱅뱅 도는 거예요. 뭐 다 같은 이야기인데 여섯 개나 있는데 전부 다 같은 이야기인데 이렇게 하지 맙시다. 여러분에게 복잡하게 하기 싫어요. 하나만 더 할게요.

이방민족에서 하나님이 만나서 뭘 튕겨 나가게 하는가? ⓒ이스라엘 땅에서 누굴 튕겨 나가게 하느냐? 이스라엘을 그 땅에서 쫓아내는 것, 이게 바로 바벨론에 포로 잡혀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있고 그 다음에 이방민족 있고 그 다음에 누굽니까? 언약의 하나님 계시고. 이 세 가지 항의 조합, 이게 이스라엘의 역사, 이스라엘의 공간이에요.

자, 공간에서 일 벌어지면 뭐가 생긴다 했습니까? 시간이 발생돼요. 이 시간이 뭐냐? 이스라엘 역사에요. 원래 하나님은 시간이 없는데 구애받지 않는데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는 방법이 인간 속에 들어와서 그것도 이스라엘만 함께 하는 게 아니고 누구와 함께 한다? 이방민족을 다뤄서 거기에서 하나님의 하나님 됨이 드러나는 거예요.

파인만 다이어그램, 파인만 그림, 도표, 그렇게 보시면 돼요. 나중에 끝나고 난 뒤에 인터넷에서 검색해보세요. 파인만 다이어그램이 뭔지.

처음에 물리학에서 여기 출렁이고 있는 요동친다. 양자장의 바탕에서 출렁이다가 10억분의 하나가 늘 출렁이면서 입자와 반입자가 서로 생성, 소멸하는데 하나 등장하고 반쪽이 등장하고 없어지고, 또 생기면 없어지고 하는데 우연히 하나가 일이 잘못 되어 10억분의 하나가 등장하면 입자가 모여서 우주가 되었다는 이야기에요. 과학이란 종교에서는.

여기서 그 장을 인플레이션 폭발했다. 그래서 138억 년 전에 빅뱅에 일었다는 거죠. 지구는 46억 년 전에 만들어졌다 하고. 3분 내에 현재 기본 입자들이 발생하고. 온갖 이야기가 있어요. 요동치는 이유는 뭐냐? 옆 동네에 우주가 있기 때문에 그래요. 옆 동네 우주가 어디 있는데? 그건 몰라. 옆 동네가 작용하게 되면 이 동네가 출렁이는데 다 없애지는데 하나 툭 튀어나와서 그게 사단 나서 우주가 되었다는 겁니다.

물리학 이런 이야기들은 무엇을 모르고 있습니까? 그게 개별자와 관련되어 있고 개별자는 뭘 한다? 카운트한다 했지요. 카운트,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거예요. 자연의 무질서에 질서를 잡아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찐빵을 더 먹고 싶은 동생의 입장이란 말이죠. 카운트를 하는 거예요. 자기도 두 개 반을 먹고 싶은데 갑자기 형이 훅 들어와서, “네가 청소하는데 놀았잖아, 만화 봤잖아.” 이렇게 돼버리면 가만 보면 이게 카운트적으로 맞는 거예요. 이게 이성적이다. 판단하는 이성적이다.

판단한다는 말은 판단의 모든 의미는 뭐냐? 판단하는 나에게 모든 의미가 다 쏠리게 돼있어요. 이게 바로 악마의 모습, 마음 아닙니까. 분명히 제가 아까 뭐했어요? 천국은, 천국 이야기를 마저 못했구나. 천국은 달란트 비유든지 또는 혼인잔치 비유든지 그거는 뭐냐? 각자 개별자로 있는 것들 다 와. 다 와서 하나님이 주관하는 이 전체에 무조건 개별은 죽이고 여기 다 참석 해. 이거거든요.

여러분 신랑신부 결혼하는데 신랑이 몇 명입니까? 마태복음 25장에서 혼인잔치에서 기름 준비할 때 신랑이 몇 명이었죠? 열 명이었어요, 다섯 명이었습니까? 어디 돌싱들 합동 미팅해요? 한 명이에요. 한 명인데 거기 신부가 몇 명입니까? 열 명이잖아요. 그게 천국이에요. 싸우지 마세요, 거. 개별자를 일체 인정하지 않습니다. 마귀가 인간을 어떻게 훈련한다는 걸 뻔히 알기 때문에 그래요.

그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헌금할 때 죽은 게 무엇 때문에 죽었습니까? 헌금을 어떻게 했어요? 헌금을 카운트한 거예요. 더 쓸까, 뺄까, 쓸까? 참. 누가 달라 했습니까? 그냥 갖고 있었으면 죽는 일 없었어요. “주여, 감사합니다.” 이렇게 살면 아무 일 없어요. 여러분 죽고 싶거든 헌금하세요.

언약은 아까 이야기한 파인만 다이어그램에 의하면 광자처럼 이렇게 하게 돼있고, 거기에 이스라엘도 여기에 꼬이게 돼있고 이방민족도 꼬이게 돼있어요. 이렇게 광자가 진행하게 되면 여기 이스라엘의 의미와 이방인의 의미가 같이 등장합니다. 등장할 때에 이스라엘은 이걸 오해한 거예요. 뭐냐 하면 하나님은 누구의 하나님입니까? 이방인의 하나님이 아니고 누구의 하나님이다? 우리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자꾸 그렇게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이지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이방민족을 이렇게 집어넣는 거예요. 집어넣으면 어떤 차이가 있느냐 하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돼버리면 이스라엘이라는 그 집단 자체가 하나의 개별자로 움직여버려요. 하나님이 우리 편인데 뭘 두려워할까, 이런 식으로.

그렇게 되면 이방민족을 나중에 쫓아내지 못하고 있단 말이죠. 지도를 봅시다. 여기 4-8이 중부전선이에요. 느보 산에서 모세가 죽습니다. 죽고 난 뒤에 언약궤 위치가 길갈로 갔다가 그 다음에 실로에 갔다가 마지막에는 세겜에 가요. 그래서 여호수아 마지막에는 세겜에 있습니다. 중간에는 실로에 있고요. 언약궤가 있는 곳이에요.

언약궤가 있을 때 언약궤 다이어그램 이거는 물결치는 이 모습은 반드시 이방민족과 이스라엘에 결합해야 언약궤의 취지가 하나님의 취지가 드러나요. 이방민족이 없으면 하나님의 취지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왜 성도에게 죽이지 않고 자꾸 세상을 살게 합니까? 세상 사람들과 접촉이 돼야 십자가가 얼마나 감사한지가 계속해서 드러나는 거예요.

언젠가 강의할 때 강의제목인지 설교제목인지 물 빼기입니까, 맞아요? 물 퍼내기. 계속해서 물 퍼내기, 계단이 계속 나와. 물은 계속 차 있고. 다 퍼내니까 계단의 마지막이 나올 때 뭐냐 하면 예수님이 어디까지 낮아져야 되는가? 도대체 나는 죄 지었다고 낙담하는데, “그건 죄도 아니야, 인간아. 아직도 멀었어.”

죽 내려가 보니까 예수님이 십자가 죽는 것, 다시 말해서 너는 아무리 죄라 하더라도 내가 바로 하나님을 죽였다는 죄까지는 가룟 유다의 죄까지는 네가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언급하는 겁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의 죄를 짓더라도 주께선 용서하시거든요. 가룟 유다의 죄는 예수님 자신이 이스라엘 되고 가룟 유다는 뭐가 돼요? 사탄이 되면서 거기서 하나님의 언약의 위력을 드러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예수님과 가룟 유다는 만나야 돼요.

자신이 하는 일과 그걸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요소가 만나줘야 그 사이에서 뭐가 나오느냐? 하나님의 요소가 나오는데 이걸 크게 쓰겠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의가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의. 왜 자꾸 죄 지었는데 나보고 의라고 합니까, 라고 물으면 하나님의 의는 네가 죄냐,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는 거예요. 네가 의인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는 겁니다. 의라는 조건 하에 네가 의에 들어가는 거예요. 하나님의 편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이방민족을 만나서 또는 세속을 만나서 또 우리의 육과 만나서 십자가가 의가 되게 한다 이 말이죠.

그래서 여기 느보 산에서 모세는 죽습니다. 모세가 죽는 이유도 이게 참 본인 입장에선 억울하지요. 모세가 평생 동안 나쁜 짓한 적 없어요. 그런데 한 번 성질냈다고, 성질을 하나님이 유도한 거예요. 물이 자동적으로 나오면 되는데 그게 아니고 모세 입장에서는 반석 안에 물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릴 위하여 준비했다. 모세가 아는 것은 이게 전부였습니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너 물 할 때 조심해라. 니 성질대로 지팡이 두 번 치면 안 된다.” 사전에 그러한 약관 같은 것이 작은 글씨라고 그런 게 있었습니까? 없어요.

전에 설교시간에 어려운 문제 냈는데 이런 문제 냈어요. 남자가 어떤 여자와 결혼할 것이냐는 것은 일단 결혼해봤다 치고 낳은 자식을 내가 먼저 미리 보고 이만한 자식을 낳을 수 있으면 나는 저 여자와 결혼하겠다는 게 성립된다 했습니까, 안 된다 했습니까? 성립할 수가 없지요. 어떤 자식이 나올지, 어떤 DNA 조합이 나올지 우리는 아무도 몰라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느냐? 어떤 자식이 나올지 미리 아시고 때를 맞춰서 합력하여서 이런 적들을 붙여주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 인간에게는 공간적으로 자기의 터전을 생각하기 때문에 공간이 있다는 말은 인간에게 시간이 있다는 말이고 하나님은 시간이란 게 없거든요. 시간이 없기 때문에 오늘 오후에 설교한 것처럼 나의 뒤통수 보고 결정하는 거예요. 나의 뒷모습 보고 결정하는 거예요. 이미 종말에 이르러서 일을 다 끝내고 난 뒤에 주께서 일을 끝내고 난 뒤에 그 다음에 우리에게 찾아오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의도하는 계획과 차질이 의도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모세 같은 경우에는 자기가 예상도 못했습니다. 그것은 아까 이야기했지만 모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세를 중도에 떨어내고 모세언약을 들어가게 하는 거예요. 이거는 다음 시간에 나올지 모르는데 미리 말씀드리면 여기 여호수아 5장 봅시다. 13절에, 모세의 말대로 갑니다. 거기에 누가 등장합니까? 어떤 사나이가 등장하지요. 어떤 사나이가 등장한다는 말은 야곱언약에 있어서 야곱이 형과 대결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난 것과 똑같은 경우에요.

모세가 자기는 애굽을 벗어나서 목동이나 하면서 마지막 살려 했는데 출애굽기 3장에 보면 떨기나무에 누가 나타납니까? 하나님이 나타나서 신발 벗으라 하지요. 네가 선 땅은 네가 함부로 할 땅이 아니고 거룩한 땅이다. 다시 말해서 니가 살 땅이 아니고 내가 살 땅에 너는 거기에 내 백성을 집어넣으라는 명령을 받아요. 하나님이 살 땅이기 때문에 너는 내가 살 땅이 아니라는 티를 신발을 벗음으로써 이거는 사람의 땅이 아니고 하나님의 땅이라는 걸 보여줘야 되는 겁니다.

따라서 그 땅에 들어가는 모든 경우는 하나님이 옆에 서서 지팡이의 기적으로, 기적으로 연속적인 기적이 있어줘야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적이 처음에는 놀라운 자연현상을 기적이라 했지요. 그러나 점차 기적이 뭐로 바뀌느냐 하면 내가 뭘 도움 얻는 것도 기적이지만 내 속에 있는 천국의 요소가 아닌 것, 내가 지옥 갈 수밖에 없는 이유, 내 속에 내가 손댈 수 없는 악을 바깥에 끄집어내는 이것이 바로 내가 도움 얻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이에요.

그래야 감사가 되지요. 그래야 감사가 돼요. 전에는 더 줘야 감사 됐는데 이제는 빼앗겨도 감사 되려면 이거는 그야말로 물 퍼내기, 예수님의 안목으로 점점 더 닮아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빼앗겨도 감사가 되는 것. 아하, 내가 이런 죄가 있었구나하는 걸 바깥으로 드러내는 거예요.

그래서 모세가 약속의 땅에 느보 산에서 바라보기만 하고 들어가지 못해요. 지금은 이 땅은 요르단 땅이에요. 여기서 어디로 가느냐? 싯딤으로 해서 여리고 성으로 들어갑니다. 이걸 중부전투라 해요. 중부전투가 여기 나와 있습니다. 싯딤에서 길갈로, 길갈에서 여리고, 여리고에서 벧엘로 가지요. 벧엘 바로 밑에 무슨 성? 아이 성이 있다. 이걸 중부전투, 중간에 치고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천상륙작전. 한반도 허리를 치고 들어가서 남북으로 갈라서 치는 공격이에요.

첫 번째는 중부, 그 다음 두 번째가 남부, 세 번째가 북부. 북부는 여기 메롬 중심으로 전쟁이 일어납니다. 남부는 이쪽에 기브아 있는데 중부, 남부 막 섞여있는데, 그게 첫 번째 그림이고요. 두 번째 그림이 이기고 세겜에 올라가서 여기서 율법 선포하고요 그 다음부터 남부에 들어갑니다. 남부전선이 105페이지에 나옵니다. 복잡하게 나오지요. 이 동네 쭉 나옵니다. 이게 여호수아 10장에 지명들 나옵니다.

그래서 지명들 나올 때 여호수아 좀 읽다가 짜증난다, 다음에 읽자 하고 치워버리는데 지명을 외워야 되는가, 알아야 되는가? 그게 아니고 여기에서 전쟁하면서 이스라엘과 이방민족이 나타나면서 하나님의 언약적인 취지가 어떤 식으로 둘의 마주침을 통해서 드러나는가, 알아야 돼요.

이스라엘도 죄가 있고 이방민족도 죄가 있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언약궤로 동행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이 되고 하나님의 의가 되는 그 과정을 보여주는 거예요. 똑같은 인간 만났는데 똑같이 의롭지 않고 목이 곧은 백성인데 악한 민족과 만나서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거룩한 땅의 백성으로 삼게 하는 그 취지가 드러나게 하신다 이 말이에요.

아까 취지는 여러분들이 아셨지요. 무슨 띠 스펙트럼. 그들이 땅을 분배할 때 분배, 분배 사이에 땅이 없어야 되는데 그들에게 땅이 없는 지파를 땅을 주라는 말은 없음이 있음보다 하나님의 모든 관계성에 있어서 유일하게 통하는 장소란 말이죠. 연결고리가 돼요. 없음의 자리가. 땅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만약에 힘으로 간주한다는 그거는 이방민족과 똑같은 거죠.

다시 여호수아 5장에 돌아와서 5장 끝에 보면,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왔을 때에 눈을 들어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여호수아 지가 나서서 전쟁하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쪽에서 뭐라 합니까?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그러니까 이스라엘에 맡기면 되는데 왜 이스라엘에게 광자, 하나님의 뜻이 왜 여기 오느냐 이 말이죠.

왜 등장하느냐? 이것이 이스라엘의 전쟁이 아니고 누구 전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대리전쟁에 나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15절에 여호와의 군대장군이 여호수아에게 명령을 내려요. 뭐라고 명령 내립니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자, 이제는 거룩이 너와 함께 움직이면서 전쟁할 거다. 네 전쟁이 아니야 이건 하나님의 전쟁이야. 이렇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전쟁이라 하니까 우리는 팽팽히 놀고 알아서 다 해주고 우리는 그냥 먹기만 하면 되지 않습니까, 하는데 그게 하나님의 전쟁이 뭐냐? 이방민족과 이스라엘이 서로 마주치는 거예요. 그래서 아까 말한 갈렙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갈렙이 약속의 땅을 정탐할 때 약속의 땅이 텅텅 비어있는 땅이었던가요? 아니지요. 아주 덩치도 있는 어느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그 땅을 갈렙과 여호수아는 충분하게 봤어요.

다른 사람 보면 기가 죽을 텐데 오히려 하나님 하시는 일에 더 확실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 정도 적이 있어줘야 하나님답지, 뭐. 시시한 것 같으면 자기가 알아서 할 거잖아요. 그러니 여리고 성 칠 때와 아이 칠 때 태도가 확 달라졌지요. 아이 성은 작다는 뜻이거든요. 아이고, 저 아무것도 아닌 것 이거는 하나님 제치고 우리끼리 합니다, 라고 하다가 죽어버렸어요. 완전히 패배해버렸습니다.

그러니 전쟁할 때마다 자꾸 하나님께서 이방민족과 하는 것은 이스라엘 내에 있는 자기들의 건방짐과 교만함과 자만심 이걸 계속 끄집어내는 거예요. 자만과 교만으로 아주 뭉쳐져 있는 범벅이 돼있는 너희들을 지금 무슨 백성?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어내는 하나님의 솜씨를 보라 해서 이방민족을 붙이는 거예요.

이 이방민족이 사는 것과 이스라엘이 사는 것과 다를까요, 아닐까요? 똑같아요. 다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루신다는 거고 이방민족은 본인이 본인을 다루는 것이고 그 차이뿐이지 아무 인간적인 자체는 차이가 없어요. 왜? 둘 다 아담의 자손이기 때문에. 둘 다 아담의 본성을 받았기 때문에 둘이 붙들고 누가 잘했니 못 했니 싸울 필요가 없어요.

만약에 둘 다 수능 치면 점수 누가 나오겠습니까? 이방민족이 수능점수 낫게 나오지요. 만약에 둘 다 100미터 달리기 하면 누가 이기겠어요? 이방민족이 덩치가 있으니 잘하지요. 만약에 주식투자를 한다면 누가 돈 벌겠어요? 이방민족이 돈 벌지요. 그러니까 인간적인 어떤 차이라는 게 성립되지 않습니다.

지도에서 이 정도해서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 다음에 시커먼 지도 나오지요. 시커먼 지도가 혹처럼 툭 튀어나온 게 있지요.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원래 이 땅은 민수기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실 때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는 땅이에요. 그러면 갓 족속, 므낫세 반 지파 그들이 왜 이 땅을 차지했느냐 하면 그만큼 믿음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그들은 이 땅에 왔을 때 이 땅이 너무 좋아보였거든요. 자기는 목축하는 사람이니까.

여러분 옛날 우리 국민학교에서 소풍갈 때 꼭 학교에서 활동성 있는 선생님들이 자기가 다른 학교보다 먼저 좋은 자리, 레크리에이션 할 수 있는 자리, 수건돌리기 할 수 있는 자리, 오징어 게임할 수 있는 그런 자리 구한다고 먼저 갔는데 보니까 딱 가자마자 좋아 보이거든요. 그걸 선점해서 오늘 우리 학교는 여기서 소풍한다. 나중에 소풍 끝 날 때쯤 보니까 위에 더 좋은 자리 있는 거예요. 성질이 급해서, 그런 선생님들이 많아요. 교장선생님은 알아서 하세요, 하고 하루 노는데 관계없잖아요.

문제는 므낫세, 갓 지파 이 사람들이 원래 약속한 곳이 아니고 하나님이 여기 계신 게 아니잖아요. 여기다가 떡 먼저 해놨어요. 그래서 여기 짱구처럼 튀어나온 거예요. 그림에. 그러니까 보세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데리고 약속의 땅에 들어간다는 말은 이들 속에 혹 같이 죄가 터져 나오는 그런 요소가 풍부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겁니다. 지금 누굴 나무랄 입장이 안 돼요. 똑같은 입장인데 하나님이 하나님 됨을 드러내기 위해서 일방적으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혈족이라는 그 이유 때문에 너희를 통해서 내 언약의 본질을 드러내겠다, 해서 그들에게 땅을 차지하라 합니다.

그 다음에 여기 혹 뿔 지나고 시커먼데 있지요. 거기에 보면 4-13으로 돼있는데요. 이것이 원래 이방민족을 다 못 쫓아냈어요. 여호수아는 나이가 많거든요. 내가 분배해줄 게 너희들 알아서 차츰차츰 정복해 나가라 해서 정복도 안 됐는데 지도 가져오라 해서 지도에 그러버렸어요.

흐루시초프 이후에 소련의 연방이 깨지잖아요. 또 아프리카 같은데 우간다라든지 콩고 보세요. 나라가 어떻습니까? 똑바르지요. 2차 대전 때 일방적으로 자로 그러버렸어요. 우리나라도 포츠담 회의를 통해서 38선으로 그어버렸어요. 거기 사는 주님들 바로 길 건너에 삼촌들 다 함께 사는데 중간에 뭐가 지나가버린 거예요. 동독도 마찬가지로 지나가버린 거예요.

그것을 남은 자신들의 앞으로 신앙적인 의무로 남겨주는 겁니다. 그러면 여호수아 죽으면 어떻게 되느냐? 여호수아는 죽어야 돼요. 왜냐하면 모세는 죽어야 모세언약이 사는 것처럼 여호수아가 죽어야 모세언약이 또 살아 있어요. 하나님이 살아 있잖아요. 눈에 보이는 지도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살아 있어요. 언약이 살아 있다고요.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 말이죠. 자꾸 사람 의지하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아담의 본성이잖아요.

그래서 나중에 여호수아 죽고 난 뒤에 사시기, 사사 시대, 사사들이 있는데 특징은 뭐냐?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나타나는 거예요. 불연속적이죠. 옛날 레위 지파도 배고파서 다 흩어져버렸어요. 이제 불연속성이 다 깨져버렸어요. 누가 밥 먹고 사느냐가 중요한 문제 돼버렸어요. 사람들이에.

그리고 이미 아까 보셨지요. 그 이방민족과 화친하라 말라 했는데 벌써 여기서 고체가 되어 전부 다 여기서 에너지 띠 밴딩이 다 생겨버리고 말았어요. 전부다 한 덩어리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누가 누군지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끝내기 전에 여기서 다음 시간에 할 것 미리 말씀드리면 사사기 봅시다. 지금 여호수아 본문 나가려면 아직 멀었어요.

사사기 6장에 보면 25절, “이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비의 수소 곧 칠년 된 둘째 수소를 취하고 네 아비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며” 바알의 단이 나오지요. 우상 나오지요. 이 지시된 땅이 무슨 땅입니까? 바로 약속의 땅이잖아요. 우상의 땅을 어떤 식으로 전쟁해서 이기는가?

이제는 이미 땅에 들어오고 난 뒤에 이스라엘이 그냥 와해되듯이 무너져버리고 이방민족과 한 통속이 된 입장에서 그때 하나님께선 여호수아 방식 말고 다른 방식으로 우상을 처리하고 우상에 승리를 일구어냅니다. 그 원리원칙을 여호수아 요소에서 이미 그걸 언약궤와 함께 진행하면서 다 이야기했었어요.

어떤 식으로 언약궤로 진행하면서 약속의 땅에 들어오면서 사사기에 나오는 사사의 방식을 어떻게 설명했느냐? 그게 사사기 6장에 나오는 사사의 방식을 먼저 설명하고요 다시 여호수아에게 넘어가서 여호수아가 처음부터 언약궤가 어떤 식으로 약속의 땅에 의미 있게 들어갔는지 그거는 8시부터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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