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개역한글)
Psalm 26 Of David. Vindicate me, O LORD, for I have led a blameless life; I have trusted in the LORD without wavering.(NIV)
Judge me, O LORD; for I have walked in mine integrity: I have trusted also in the LORD; therefore I shall not slide.(KJV)
{[A Psalm] of David.} Vindicate me, O LORD, for I have walked in my integrity; And I have trusted in the LORD without wavering.(NASB)
야훼여, 나의 무죄함을 밝혀주소서. 깨끗하게 살며 당신만을 철석같이 믿었사옵니다.(공동번역)
(다윗의 시) 주님, 나의 무죄를 밝혀 주십시오. 나는 올바르게 살아왔습니다. 주님만을 의지하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표준새번역)
오 여호와여, 나는 진실하게 살아왔습니다. 나를 변호해 주소서. 내가 여호와를 믿었으니 내가 미끄러지지 않을 것입니다.(우리말성경)
다윗 뒤에 이렇게 숨어 계시는 분이 있어요. 숨어 계시는 분이 다윗을 역사 표면에 밀어내는 거예요. 밀어내게 되면 다윗의 고백을 통해서 나왔던 그 내용은 다윗이 아니고 다윗을 뒤에 조종하신 분의 자기 정체를 다윗을 통해서 드러내는 겁니다. 서로 상반되는 두 개의 세계가 상존한다, 같이 있다 이 사실을 드러내는 거예요.다툼과 전쟁과 심판과 저주고 괴리현상, 벌어지는 현상을 또렷하게 보여주는 겁니다
이 세상은 불연속 속에 있는 주님의 우연적인 사태로 만들어진 세계가 이 세상입니다. 밥 먹는 것, 내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우연의, 우연의 연속, 단절과 단절의 연속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불연속적으로 계속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우연히 당신을 만났고 우연히 당신과 헤어졌고. 모든 게 우연이에요.
우리는 그런데 뭐라고 해석하느냐 하면 자기를 위해서 살던 그 본성 때문에 모든 것을 우연을 가지고 억지로 원인과 결과로 연결시키는 거예요. 당신을 만난 것은 당신이 예뻐서 그렇다니. 그 동네 예쁜이는 그밖에 없는가, 다른 데 많이 있는데. 전부 다 우연이에요. 우리는 우연한 존재에요.
그걸 야고보서 4장에서 안개 같은. 안개의 특징은 있다가 없어지는 것, 있음에다 마음 두고 살지 말라는 뜻이에요. 있음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고 살아라. 없음이 있음을 공격한다고 생각하고 심판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야 돼요. 그러니까 내가 있음을 지키려고 하지 말고 없음에다 내 몸을 맡겨버려야 돼요. 안개 같은 존재니까.
이걸 다른 성경에서는 ‘마침’이라고 돼있어요. 이게 어디 나오느냐 하면 사무엘상 17장 20절에 소년 다윗이 형에게 도시락 주러 갔다가 마침 그때에 골리앗이 고래고래 고함지르는 걸 봤어요. 우연히, 마침 하나님의 개입입니다.
기적은 뭐냐 하면 ‘나를 위해서’에서 ‘주를 위해서’, 주를 위해서라고 말을 해도 되고, 그걸 달리 하겠습니다.
"나를 위하지 않는" 쪽으로 변하는 거에요. 이게 기적입니다. 끊어진 지점을 어떻게 건너와서 기적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사는 내가 주의 나라에 끊어졌음]을 아는 그 자체가 이미 나를 위해서가 소멸된 상태에요.
소멸되고 소멸된 채 멍청하게 돼버리면 또 나를 위하지 않는 나가 또 성립되니까 소멸된 것을 이 삼각형(방주? 주님의 여정)에다 집어넣어버려요. 그러면 내게 없던 새로운 인간이 등장합니다. 누구냐? 성도가 돼버려요. 내가 성도라는 낯선 존재가 되고 말아요.
성도의 여정은 주님이 했던 여정을 그대로 답습하게 돼있어요. 내려가는 겁니다. 성도의 여정, 성도의 갈 길은 뭐냐 하면 이 둘 사이를 주님의 희생에 참여해서 늘 벌어지게 하는 그 경계선상을 지나가는 그러한 세월, 이게 성도의 세월입니다.성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가 아닌 나가 존재해야 된다는 말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주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이게 말이 안 되는 것이, 주의 영광이라 하는 주만 나를 대체해서 들어갔기 때문에 주의 영광은 주님이 알아서 할 문제지 내가 거기서 주의 영광에 가담한 나는 따로 존재할 이유가 없어요.
나를 위하지 않는 세계는 바로 내가 할 게 없는 세계였어요. 왜냐하면 내가 뭔가 한다는 것은 반드시 나를 위해서가 동반해야 되기 때문에.
방주의 특징은 이게 목적지가 없습니다. 목적지가 없고 내 원대로 방향을 조정할 수가 없어요. 다시 말해서 나를 부정시키는 공간이 방주라는 공간이에요. 여러분들이 "예수 안에 산다", 또는 "성령 안에 산다"는 더 이상 내 의도, 내 목적, 내 방향은 전부 다 거부됩니다. 내 뜻이 거부돼요. 내 뜻이 이 안에서.
주도권이 이미 방주를 만드신 하나님께 일임돼있어요. 철저하게 너를 위함이 여기서 제거가 되는 겁니다.
불연속 속에 있는 주님의 우연적인 사태로 만들어진 세계가 이 세상입니다. 밥 먹는 것, 내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우연의, 우연의 연속, 단절과 단절의 연속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우연히 당신을 만났고 우연히 당신과 헤어졌고. 모든 게 우연이에요.자기를 위해서 살던 그 본성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억지로 원인과 결과로 연결시키는 거예요. 당신을 만난 것은 당신이 예뻐서 그렇다니. 그 동네 예쁜이는 그밖에 없는가, 다른 데 많이 있는데. 전부 다 우연이에요. 우리는 우연한 존재에요.그걸 야고보서 4장에서 안개 같은. 안개의 특징은 있다가 없어지는 것, 있음에다 마음 두고 살지 말라는 뜻이에요. 있음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고 살아라. 없음이 있음을 공격한다고 생각하고 심판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야 돼요. 그러니까 내가 있음을 지키려고 하지 말고 없음에다 내 몸을 맡겨버려야 돼요. 안개 같은 존재니까.
이걸 다른 성경에서는 ‘마침’이라고 돼있어요. at random. at a venture 된는데로 운에 맡기고
다말은 착하고 암논은 악하다고 하면 안 돼요. 다윗이 하나님의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깨달은 것은 뭐냐? 바로 큰 나를 위해서 살아가면서 생겼던 판단- 선과 악, 정의와 불의, 공정과 불공정 이 모든 것이 다 깨져버린 거예요. 나는 그 속에서 태어났다. 주님의 세계로 오게 되면 천국도 중요치 않고 지옥도 중요하지 않고 주님의 희생의 나라가 중요한 거예요. 주님의 희생하심을 위해서 나는 이 땅에 우연히 태어났다. 몇 년, 몇 월, 몇 시에 우연히 태어난 거예요.
다윗은 반드시 악한 체험을 해야 된다는 것 그래야 이 코스를 밟을 수 있어요. 다윗뿐만 아니고 저와 여러분, 에브리바디 성도라면 죽을 때까지 무슨 체험을 해야 되느냐 하면 악한 체험을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악한 체험을 해야 돼요. 어떤 선한 것도 내게는 나올 수 없음을 절감, 절감하면서 매일같이 살아가야 돼요. 그리고 그걸 이런 악한 체험을 하게 해주신 주님에게 고맙고 감사의 마음을 해야 됩니다.
어떻게 동행과 감사가 병행될 수 있는가? 여기에 관한 이야기에요. 시편 26편이. 어떻게 동행함과 감사가 이어져 나올 수 있나? 그냥 동행해버리면 감사가 나오는 게 아니고 나의 철저함과 나의 온전함과 나의 완전함이 튀어나와버려요. 이건 백 프로 사탄의 시험입니다.
방주 안에는 목표가 없고 목적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무엇이 온전하냐? 이 말 처음 들어보면 사람들은 무슨 뜻인지 모를 거예요. 내가 악함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이 조건의 완전함에 내가 행하였사오니. 너무 간 것 아닙니까, 혹시? 너무 심하게 이야기한 것 아닙니까? 그러면 사람을 열댓 명 죽여야 되고 곤란해요. 내 악함에서 빠져나오지 않은 그 조건과 요건의 온전함 속에서 나는 행하였사오니.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 그래야 동행이 뭐로 이어집니까? 감사로 이어져요. 저를 나에게서 빼내주신 분에 대한 감사, 그분의 안목과 그분의 시선으로서 나를 보게 하신 것에 감사에요.
성령 받았다는 것은 주님의 콘택트렌즈, 주님의 눈동자와 딱 붙어있는 렌즈를 끼고 세상을 다시 보자. 그럼 뭐가 보이느냐? 세상 안에 희생, 십자가가 보이지요. 희생하신 분의 여정이 보이는 거예요. 희생하신 분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다윗은 자기가 죄 속에서 태어나서 죄 속에서 살고 있다는 이 온전함 체험, 요건을 충족시켜주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충족케 하시는 거예요.
인간이 연속성이거든요. 계속 가기 때문에 스탑은 내 소관이 아닙니다. 중간에 누가 스탑을 해줘야 돼요.
이게 바로 제사 직이에요. 누가 희생을 해서 제사를 하게 되는 거예요. 제사가 내 인생을, 막 가는 인생을 막아준 겁니다. 제사는 뭐가 필요하냐? 희생물이 필요해요.
희생물 되시는 그분이 전에 내가 차지했던 내 자리를 차고 들어오신 거예요. 이게 주인공 바꿔치기가 일어난 겁니다. 희생하신 십자가 지신 주님이 이제는 전에 내가 있던 주인공 자리를 차고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이 세상에 성도가 없는 거예요. 성도는 새로운 세계에서 원이 겹쳐지는 거예요.
구원받는 내가 매일같이 산산조각 나버려야 돼요. 나는 굳게 믿습니다. 확실하게 믿습니다. 하는 것은 하나님 믿는 게 아니고 하나님 믿는 나를 믿는 거예요. 그 나는 완전히 파쇄 돼야 돼요. 깨어져야 다시 나 위함이 아니고 주님 위함으로 바뀌어 지는 겁니다. 그런 사건들 주께서 프로그램화해서 다 준비해놨어요.
이 말은 뭐냐? 예배 참석하는 것이, 내가 결정해서 오늘 난 어떤 예배 참석한다는 결심해서 예배 참석하는 것이 아니고 예배를 참석을 못할 만큼 다른 사태가 주께서 안 일으켰기 때문에 지금 그 시간을 예배당에서 보내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배 참석하는 게 우연이에요. 나의 결심의 결과가 아니고. 할 일이 없어 예배해요. 그렇게 시급한 일이 없기 때문에 예배 참석하고 있는 겁니다. 결정의 순위가 내가 결정할 수 없어요, 인간은.
인간의 믿음은 다 믿을만해서 믿기 때문에 믿음이 아니고 이건 지식이에요.
하나님 아버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란 말이 하나의 지식으로 다가오지 않고 우리가 그 삶을 체험을 하고 있는 중인 것을 저희들이 깨닫게 해주시고 세상 보는 눈이 주님 보는 거로 볼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27편에 관하여 (0) | 2021.11.21 |
---|---|
2008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시편-나와 저희 서론 결론 (0) | 2014.01.06 |
시편-2008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10강-영원토록 감사만-주체가 없어지면 (0) | 2014.01.06 |
시편-2008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9강-시편의 주제는 ”다윗언약을 성실히 이루시는 하나님” (0) | 2014.01.06 |
시편-2008십자가마을 겨울수련회 8강-여호와의 이름→ 말→ 약속→ 행동-말 꺼낸 내가 약속을 실행에 옮기겠다는 자기선언 (0) | 2014.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