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강-YouTube강의(선교여행 사도행전 13:4)20210504-이 근호 목사
제351강, 제목은 ‘여행’. 코로나 터지기 전에 여행, 참 좋아합니다. 국민소득이 3만불 이상 되게 되면 어느 나라든 사람들은 국외로 나가서 여행을 많이 해요, 특히 선진국들은. 한국도 엄청나게 많이 했죠.
여행할 때에는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죠. 목적이 있으니까 그 목적지를 정하죠. 기대치가 있죠. 여행하면서 소매치기 당하고 몸 아파서 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여행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에요. 쇄신(刷新)한다는 것, 쇄신. 정신도 몸도 마음도 다 확 바꿔버리고 일신(一新)한다. 한꺼번에 다 깨끗하게 새롭게 바꾸려고 여행을 하는 거예요.
동일한 상황과 반복적인 패턴 속에서는 두뇌가 무너지고 구태의연하게 되고 그냥 과거의 따분한 시간만 흘려보내고 답습하게 되죠. 다른 환경에 들어가면 삶의 활력소가 생기지 않을까 해서 여행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보게 되면 사도바울도 그렇고 베드로도 그렇고 어디 자꾸 돌아다니죠. 사도들이 이렇게 돌아다니는 이유가 있어요. 그것은 본인들이 정신적으로 쇄신하기 위해서 간 것이 아니고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그들에게 누군가, 어떤 어르신네가 찾아와요. 성령이라는 어르신네.
성령이라는 어르신네의 특징은 ‘우세’입니다. 인간의 힘과 능력보다 더 세요. 그러니까 성령께서는 우리의 하고자 하는 것보다 더 힘이 세고 우월하고 모든 것을 잘 아시고. 첫 번째 특징이 그겁니다. 개인보다 인간보다 하나님이 더 월등하죠.
두 번째가 사실은 더 중요한 건데 뭐냐 하면 성령께서 이 세상 환경을 사도들이 해야 될 의무에 맞도록 조정해서 그 적절한 환경을 임의로 그때그때마다 변계(變系)시킵니다, 그 상황을. 오페라나 뮤지컬에 보면 1막마다 무대를 새로 세팅하잖아요. 있는 인간이 사는 세계에 사도가 가는 게 아니고 성령이 의도적으로 꾸며낸 그 무대세팅이 있어요. 연극에서는 그것을 ‘미장센’이라고 하는데 이 세상이 성령께서 계획대로 진행하는 하나의 연극무대거든요.
그 무대장치까지, 거기서 일어나야 될 사건 하나하나까지 미리 주께서는 이미 배정을 다 해놨어요. 어디가면 네가 누구를 만나게 되고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고 사도바울 네가 이고니안 가서 전파하다가 너는 죽을 뻔해서 바구니타고 네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칠 것이고 또 누구한테는 수건을 얹은즉 병이 나을 것이고 또 누구한테는 설교하다가 3층에서 떨어졌는데 네가 가서 살릴 것이고. 이것은 사도가 가면서 맞닥뜨릴 일들이에요.
그렇다면 사도는 이 일에 대해서 미리 예상합니까, 예상하지 않습니까? 전혀 예상 못 했죠. 그게 바로 사도가 사도답다는 거예요. 앞으로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굳이 내가 꼭 알아야 됩니까, 하나님? 알 필요가 없는 거예요. 이게 성령 받은 사람의 특징이에요.
그런데 성령이 없는 사람이 전도여행을 한다, 선교사를 한다 해버리면 그들은 자기의 예상과 예측에 대해서 벌써 공포심을 갖게 됩니다. 안되면 어떡하지, 안되면. 선교비 받고 먼 나라 갔는데 3년 내에 한 명도 전도 못하면 어떻게 되지. 정말 선교비 후원한 그 교회에다가 선교한 아프리카인들 한 줄로 세워놓고, 웃으세요, 하고 사진 찍어서 이 마을 전체가 다 기독교로 영접했습니다. 하고 빨리 사진 보내야 되는데 한 명도 구원 못 받았으면 그럼 돈 주고 찍어야 되는지.
안 그러면 복음은 모르지만 의료사업해서 환자들 세워놓고 사실은 병 고쳐놓고 사람들 모았는데 복음 전했다고 예수 믿는다 하고 찍든지. 그런 속임수를 굳이 써야만 되는 상황이 오게 될는지 걱정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서 선교 잘해서 그 나라 대통령한테 국빈 대우받고 해서 그 나라 국제학교에 자녀를 넣으면 참 좋은데 뭐 선교해도 알아주지 않을 때 선교사 부인은 뭐부터 생각하겠어요? 선교사 부인은 자기 자식만 생각하죠. 한국에 있는 아이들보다 성적 떨어지면 안 되는데 어디 유학 갈 데 없나 생각하겠죠.
일반 사람들이 여행할 때 그 여행지에서 얼마나 내가 부각되느냐 거기에 초점 맞춰서 여행하겠죠, 모든 사람들이 인간인고로. 따라서 그 선교지 나갈 때에 자기 자신의 가오와 자존심과 위신과 체면을 완전히 박살내는 곳에 가겠습니까? 안 가겠죠.
남들은 미국 가지만 나는 너무나 겸손해서 찬송가 가사처럼 복음 들고 아골 골짜기에 간다고, 내가 아골 골짜기에 복음 들고, 아무도 가지 않는다는 열악한 환경에 간다는 그 가오와 그 자존심, 위신과 체면은 예상하겠죠. 안할 수가 있겠습니까? 온 가족이 나는 죽을 각오로 간다는 그 죽을 각오 자체가 자기의 자존심 아니에요? 위신 아니에요? 체면 아닙니까? 그렇죠?
제가 그런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한국에 지금 교회가 있습니까? 복음이 있습니까? 없잖아요. 그런데 왜 한국에서 선교 안하냐 이 말이죠. 그것은 아는 사람이 많아가지고 이단 소리 들을까 싶어서. 정통 개혁주의 신학 안 해서 목사 잘릴까 싶어서.
쉽게 말해서 대장질을 하고 싶은 거예요, 대장질을. 존경을 받고 싶은 거예요. 돈도 돈대로 나오지만 그건 나중 문제고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주의 사도, 주의 종으로서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그 욕망이 더 강렬한 겁니다.
그래서 인간은 결국 한국을 떠나나 한국에 있으나 자기의 자존심과 자기 의와 체면을 챙기기 위한 여행을 평생토록 하고 있는 거예요. 한 자리에서 그냥, 평생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집에 산다 할지라도 인간은 여행하는 중입니다. 그 땅에서. 그 살던 땅에서.
그러나 주님이 말하는 사도행전의 여행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일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앞으로 어떤 사건이 올지 거기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성령께서는 “너는 몰라도 돼.” 오히려 반대로, 너는 알면 안 돼. 네가 알면 날아오는 화살 피해버릴 거야. 너는 네 의와 네 자존심과 네 체면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존재가 너이기 때문에. 내가 너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 사도행전 사도들의 특징이 뭐냐 하면 전부다 참신해요. 교도소 가도 참신하고 교도소에서 지진이 일어나서 풀리는 것도 참신하고. 자기 잡아둔 간수가 오히려 요청한 것도 신기하고.
모든 게 신기하니까 사도는 가는 데마다 “이것은 내 능력도 아니고 내 지혜도 아니고 이것은 살아계신 주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내가 살아있는 것에 주목하지 말고 주님이 살아있다는 것을 주목하시고 주님은 죽었다가 부활했습니다.” 그것을 과감하게 전달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 이야기를 굳이 아프가니스탄, 중국, 미국, 영국, 아프리카 가야겠어요? 그냥 있는 그 장소에서 하세요. 그게 세상 끝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