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숙경

구원의 원천

아빠와 함께 2020. 5. 30. 09:10

title : The Source of Salvation 구원의 원천
preacher : pastor Lee Geunho
text : Philippians 2:12-14
date : May 24, 2020

12.Therefore, my dear friends, as you have always obeyed--not only in my presence, but now much more in my absence--continue to work out your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13.for it is God who works in you to will and to act according to his good purpose. 14.Do everything without complaining or arguing,

SUMMARY
In today's text, the apostle Paul stirs up a violent collision between the concept of salvation of man and the concept of salvation of the Lord by saying, "for it is God who works in you" This is as if the apostle Paul threw a ball tightly packed with strange and dissimilar elements to humans toward a statue named “salvation” that meets human expectations. The reason the apostle Paul does this is because the salvation of the Lord is totally different from what humans expect and anticipate. Man thoroughly misunderstands God's salvation.오늘 본문에 보게 되면 사도바울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고 말함으로써 인간의 구원개념과 주님의 구원개념 사이의 격돌을 유발한다. 이는 마치 사도 바울이 인간의 기대에 부응하는 ‘구원’이라는 이름의 조각상을 향해 인간에게는 낯설고 이질적인 요소들로만 단단하게 뭉쳐진 공을 사정없이 집어던지는 것과 같다. 사도바울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주님이 행하시는 구원은 인간이 예상하고 기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을 철저히 오해한다.

There was an unusual "murder incident" caused by such a clash, which was the crucifixion in which men killed God. This shows that human desire for salvation and misunderstanding of God's work can even kill God. In addition, Jesus' death on the cross reveals that such a human will and God's will are parallel lines that can never meet. 이 같은 격돌로 인해 발생한 특이한 ‘살인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죽인 십자가 사건이다. 이것은 인간들의 구원욕구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한 오해는 하나님마저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울러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그러한 인간의 뜻과 하나님의 뜻은 결코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We need to be reminded of Mark 15:6~13 : 6."Now it was the custom at the Feast to release a prisoner whom the people requested. 7.A man called Barabbas was in prison with the insurrectionists who had committed murder in the uprising...."Do you want me to release to you the king of the Jews?" asked Pilate,....11.But the chief priests stirred up the crowd to have Pilate release Barabbas instead. 12."What shall I do, then, with the one you call the king of the Jews?" Pilate asked them. 13."Crucify him!" they shouted." 마가복음 15:6~14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6.명절을 당하면 백성의 구하는 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7.민란을 꾸미고 이 민란에 살인하고 포박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9.빌라도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 11.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2.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는 내가 어떻게 하랴 13.저희가 다시 소리지르되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This reveals the nature of Jesus' death on the cross. Originally, humans are generally enraged and hostile toward murderers. This reaction stems from a sense of collective justice in humans. Humans consider themselves right, good, and worth living on. The act of murder against fellow humans is therefore considered a detriment to human dignity. In this respect, when asked by Pilate, the governor-general, "Which one do you want to release, Barabas or Jesus?" it is natural to the conscience and emotions of humans and to the justice they say to choose to kill Barabas the murderer and release Jesus. 이것은 예수님의 죽음의 성격을 드러낸다. 본래 인간들은 일반적으로 살인자에 대해서는 격분하고 적개심을 갖는다. 이런 반응은 인간들의 집단정의감에서 비롯된다. 인간들은 스스로를 옳고, 선하고, 계속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로 여긴다. 그러므로 동료 인간에 대한 살해행위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훼손으로 간주된다. 이런 측면에서 살인자 바라바 혹은 예수님, 둘 중 누구를 놓아주고자 하느냐는 총독 빌라도의 질문에 살인자 바라바를 죽이고 예수님을 놓아주는 편을 선택을 하는 것이 인간들의 양심과 정서에도 부합되고 그들이 말하는 정의에도 자연스러운 것이 된다.

But the crowd chose the other side. They shouted in unison to release the murderer Barabas and crucify Jesus. This revealed the limit of what humans call "justice." It was nothing more than a 'lighted faggot'. It was revealed that their conscience and justice were only a means of defending their individual worth and righteousness. 그런데 군중들은 그 반대편을 택했다. 그들은 살인자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이구동성으로 소리 지른 것이다. 이를 통해 그들의 소위 ‘정의’라는 것의 한계는 드러났다. 그것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그들의 양심과 정의는 그들의 개별적인 자기가치와 자기 의를 지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는 것이 폭로된 것이다.

It was discovered that the place where the so-called "the sword of justice" of man ultimately headed was Jesus who ignored their own worth and their own justice, passing by the murderer Barabas. Of course, this result was due to God's deliberate drive to reveal that the point where human beings' consistent sense of justice is headed is the point of killing God, who denies human beings themselves. 소위 인간의 ‘정의의 칼’이 궁극적으로 향한 곳은 살인자 바라바를 지나쳐서 자신들의 가치와 정의감을 개무시 하시는 예수님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물론 이런 결과가 된 것은 인간들의 일관된 정의감이 향하는 지점이 결국 인간 자체를 부정해버리시는 하나님을 죽이는 지점이라는 것이 드러나도록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의도적으로 몰아가셨기 때문이다.

The nature of the Lord's death on the cross is a kind of violence that man's persistent wrongful attachment to salvation has inflicted on God. Now that Jesus has been executed on the cross, all human beings are now undoubtedly involved as perpetrators and murderers in the murder of Jesus. This made it clear that humans were not worth being saved and that they were completely blocked by God. It failed for humans to save themselves. Surprisingly, however, God made it the only basis and the only source for man's being saved that Jesus is murdered by man. 주님의 십자가 죽음의 성격은 인간의 끈질기고 잘못된 구원집착이 하나님께 가한 일종의 폭력행위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 된 이상, 이제 모든 인간은 여지없이, 예수님을 살해한 그 살해사건에 가해자와 살인자로 연루되게 되었다. 이로써 인간은 구원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것과 하나님께는 완전히 차단된 존재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인간의 자기구원은 실패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예수님이 인간에 의해 살해당하는 그것을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근거요 유일한 원천이 되게 하셨다.

The element of violence that accompanies the process of God's salvation of his people is also seen in the clash between Moses and Pharaoh king of Egypt at the time of Exodus. God directs Pharaoh to let the people of Israel out of Egypt through Moses and Aaron, but on the other hand, God continues to provoke and harden Pharaoh's heart, intentionally driving the situation of violence so that the last 10th disaster will be poured out. It appeared to be a clash between Pharaoh and Moses on the outside, but internally it was a clash between the Pharaoh-like elements inside Israel--the Egyptic elements and God. Nature and even celestial bodies are mobilized for this clash. 하나님이 자기백성을 구원하시는 과정에 수반되어지는 폭력의 요소는 출애굽 당시 모세와 바로 왕의 격돌에서도 보인다.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내보내도록 바로 왕을 종용하시지만 한편으로는 바로 왕을 계속해서 자극하고 강퍅케 하셔서 마지막 10번째 재앙이 퍼부어지도록 폭력의 상황을 의도적으로 몰고 가신다. 그것은 외견상으로는 바로 왕과 모세의 격돌로 보였지만 내면적으로는 이스라엘 내부에 있는 바로왕적인 요소, 곧 애굽적인 요소와 하나님 사이의 격돌이었던 것이다. 이 격돌에는 자연과 천체까지도 동원된다.

The reason God does this is to capture the content and meaning of the last disaster in the rescue of Israel. It's called 'He's already dead unless the promised lamb's blood is applied.' In other words, man himself is a cursed man who deserved to die in God's sight. Israel had to be aware this.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마지막 재앙의 내용과 의미를 이스라엘의 구출 속에 담아내시기 위해서다. 그것은 ‘약속된 어린양의 피가 발리지 아니하면 그는 이미 죽은 자다’라고 하는 것이다. 즉 인간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 죽어 마땅한 저주받은 자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것을 알아차려야만했다.

God first informs Moses, who has chosen this nature of salvation as the leader of the Exodus. This is because God needed to let Moses know what was inside Moses before he could carry out the salvation miracle called the Exodus externally. Exodus 4:6 : "Then the LORD said, "Then the LORD said, "Put your hand inside your cloak." So Moses put his hand into his cloak, and when he took it out, it was leprous, like snow." God revealed to Moses by this miraculous sign that there was an endless source of filthiness and curses inside his finite body. It is salvation, knowing that the finite body contains the infinite plan of God and the essence of what God is doing. 하나님은 이 같은 구원의 본질을 출애굽의 지도자로 선택하신 모세에게 먼저 알리신다. 이것은 출애굽이라고 하는 구원기적을 대외적으로 시행하기에 앞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모세 자신의 내면의 어떠함을 알릴 필요가 있으셨기 때문이다. 출애굽기 4:6절,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 손에 문둥병이 발하여 눈 같이 흰지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의 유한한 육체 내부에는 끝없는 더러움과 저주의 원천이 들어있다는 것을 이 표징으로써 알려주셨다. 유한한 육체 안에 무한한 하나님의 계획이 담겨 있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의 본질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것이 바로 구원이다.

It can be said that salvation is the embodiment of the Jesus' cross in the saints. The saints experience the motive and will to kill Jesus constantly pouring out in the form of a curse from themselves. However, they also know that the memory they had not experienced, that is, the experience of the cross of the Lord, came into them. They are those who experience that Jesus' death on the cross is their own death that has come in advance. The saints find themselves in the cry of the Lord, who says, "It is finished." There lives in them certain infinite being other than themselves. Therefore they no longer have to take responsibility for themselves and have no need to carry the weary and burden of themselves. They find that their past and their present and their future are already the Lord's own. 구원받는 것은 성도 안에서 십자가 사건이 구체화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도는 예수님을 죽일 동기와 의지가 저주의 양상으로 자기 자신에게서 계속 뿜어져 나오는 것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자신이 체험하지 않은 기억, 곧 주님의 십자가 체험이 자기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는 것도 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미리 찾아온 그들 자신의 죽음임을 경험하는 자들이다. 성도는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주님의 외침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그들 안에는 그들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무한의 존재가 사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자기를 책임질 필요도 없고 자기 자신이라는 수고스럽고 무거운 짐을 끌고 다닐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과거도 주님 것이었고 현재도 그리고 미래도 이미 주님 것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In addition, the saints are those who have learned that the seed of life is sown on them by the Lord and that they are the fruit and harvest by the Lord. The saints are those who have been chosen to reveal the whole picture of salvation by the Lord. In the salvation work, which is operated and completed only by the Lord, the saints' own human desires for salvation, their will and their attempts are rejected and cut harshly. The apostle Paul's exhortation to “continue to work out your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in today's text means to show and testify of these Lord's work in their lives. 뿐만 아니라 성도는 주님의 의해 자신들에게 생명의 씨가 뿌려지고 그들은 주님에 의해 열매가 되고 수확되는 자들임을 알게 된 자들이다. 성도는 바로 이러한 주님이 행하시는 구원의 전모를 드러내기 위해 발탁된 자들이다. 주님에 의해서만 가동되고 마무리되는 구원 작업 속에서 성도는 자신의 인간적인 구원욕구와 자신의 뜻과 시도는 거절되고 가혹하게 잘려나간다. 오늘 본문의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사도 바울의 권면은 이 같은 주님의 행하심을 그들의 삶에서 보여주고 증언하라고 하는 의미이다.

There is no dropout in God's salvation. However, in order to reveal that salvation is the Lord's work done by the Lord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countless dropouts must occur for those who try to be saved by blood, the will of the flesh, or the will of man(John 1:13). The entire process from Israel's Exodus through the wilderness to the Promised Land shows the source of salvation and the essence of salvation. The promised word, “He who does not conform to faith cannot enter the land of rest” (Heb. 3:19) is surely fulfilled.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에는 중도 탈락이란 없다. 그러나 구원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주님의 과업임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혈통과 육정과 사람의 뜻(요1:13)으로 구원받아 보겠다고 시도하는 자들의 중도탈락은 필히 발생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에서부터 광야를 통과하여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은 구원의 원천과 구원의 본질을 보여준다. ‘믿음에 합하지 않는 자는 안식의 땅에 이르지 못한다(히 3:19)’는 약속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

이근호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미리 찾아온 그들은 자신의 죽음임을 경험하는 자들이다" 
자신의 죽음과 더불어 자기가 기대하는 구원도 같이 날아가버리게 된다. 평생의 소원인 '나 구원'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인간계의 망상이었으며 구원되겠다는 의지가 죄인에게서 나온 죄였음을 십자가로 통해서 알게 된 자가 이미 구원된 자다.   고상하고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것도 욕심에 불과한 것을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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