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숙경

관제

아빠와 함께 2020. 6. 12. 23:01
 
 이근호

 

 (IP:119.♡.87.190)
20-06-12 17:26 
 

title : The Drink Offering 관제
preacher : pastor Lee Geunho
text : Philippians 2:17-18
date : April,7, 2020
17.But even if I am being poured out like a drink offering on the sacrifice and service coming from your faith, I am glad and rejoice with all of you. 18.So you too should be glad and rejoice with me.

SUMMARY

The Old Testament sacrifices have been waiting for Jesus to come to do God's will. Because ‘the first’ was done temporarily to establish ‘the second’. God declared, "with burnt offerings and sin offerings you were not pleased" (Hebrews 10:6). This means that God does not receive anything provided by humans. God is pleased with only the body of Jesus Christ. By that will, the saints have been made holy through the sacrifice of the body of Jesus Christ once for all (Hebrews 10:10).구약시대의 희생제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려왔다. 왜냐하면 첫 것은 둘째 것을 세우기 위해 한시적으로 시행된 것이었기 때문이다(히10:9). 하나님은 “전체로 번제함과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히10:6)”라고 밝히 선언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 제공되는 그 어떤 것도 받지 않으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몸만 받으시고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성도는 거룩함을 얻는다(히10:10).

Therefore, it is clear that the matter of "being made holy" is a matter of relations with Jesus, not of individual work. In other words, if someone becomes holy through his relationship with the Lord and considers it the greatest joy, this person can be said to be one with the Lord and with his brothers through "being made holy." Such men are those who are glad and rejoice with Paul the Apostle of today's text. 그러므로 ‘거룩’의 문제는 예수님과의 관계의 문제이지 행함의 문제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즉 누군가가 주님과의 관계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또 그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여긴다면 이 사람은 ‘거룩함’으로써 주님과 그리고 형제들과 하나가 된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자들은 오늘 본문의 사도 바울과 함께 기뻐하고 기뻐하는 자들이다.

Paul says he is particularly pleased to be poured on burnt offering as a wine of drink offering. This joy of the apostle Paul is not the joy from his achievements, but rather from giving up his body. Because the body God puts into heaven is not a body of sin, a body of death, or a body belonging to the first Adam, but a new body created by God and belonging to Christ. 바울은 특별히 자기 자신이 관제의 포도주로서 번제물위에 부어지는 것을 기뻐한다고 말한다. 사도 바울의 이 기쁨은 자기 행위의 성과에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몸을 포기하는 데서 오는 기쁨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천국에 넣어주시는 몸은 기존의 죄의 몸, 사망의 몸, 혹은 첫 째 아담에 속한 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새롭게 만들어 내신 몸이며 그리스도께 속한 몸이기 때문이다.

The bodies that men care about and try to put into heaven are those that God has declared dead. The people of Israel of the Old Testament, the seniority of faith, consistently demonstrated the dead behaviors. One of them was the idolatry performed by the people at the foot of the mountain when Moses was on Mount Sinai at the call of God. "They have been quick to turn away from what I commanded them and have made themselves an idol cast in the shape of a calf. They have bowed down to it and sacrificed to it and have said, 'These are your gods, O Israel, who brought you up out of Egypt(Exodus32:8)." Here the calf-shaped god that Israel had made and worshipped was an idol, god for self, and it showed what kind of concept about the god inherent is in their bodies through their long-standing life of Egypt. 인간이 애지중지하고 천국에까지 넣으려고 하는 그들의 몸은 하나님이 이미 죽은 것으로 선언하신 몸이다. 그 죽은 몸의 행실을 신앙의 선배격인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제대로 보여주었다. 그 중의 하나가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시내산에 올라가 있을 때, 산 아래서 백성들이 벌인 우상숭배 행각이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며 그것에게 희생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출32:8).” 여기서 이스라엘이 만들어 숭배한 송아지 형상의 신은 ‘자기를 위한 신’, 곧 우상이며, 그것은 그들의 오랜 애굽 생활을 통해 그들의 몸에 내재되어있는 신개념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Therefore, people in Israel needed to escape from the Egyptian-like body internally in addition to the physical escape from Egypt. God's action on this was to send Moses a two-stone plate bearing the Ten Commandments down to the people. One of the functions of the law represented by the Ten Commandments is to expose the sins of those who will be declared righteous in God’s sight by observing the law, make them realize their sins and make them know that they are confined under the curse of the law. The law makes every mouth silenced and the whole world hold accountable to God(Rom. 3:19-20). The other function is to introduce to the world a new body and certain personality that combines law and body.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는 단순히 애굽에서의 물리적인 탈출 외에 애굽적인 몸으로부터의 벗어나는 것이 필요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는 모세에게 십계명이 적힌 두 돌 판을 들려서 백성에게로 내려 보내는 것이었다.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율법의 기능 중 하나는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고자 하는 자들의 죄를 드러내고 깨닫게 하며 그들이 율법의 저주 아래 갇혀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율법은 모든 입을 막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한다(롬3:19-20). 또 하나의 기능은 법과 몸이 결합된 어떤 인격과 새로운 몸을 이 세상에 소개하는 것이다.

The decrees concerning the Nazirite in the law serve as a guide to Jesus Christ, one person whose body is integrated with the law (Numbers 6:1-7). As a consecrated person, the Nazirite serves to show what the character of a new body is like, as well as to lead Israel to the source of their blessings. There was a special restriction for the Nazirite, which states that he must not eat anything that comes from the grapevine, not even the seeds or skins during the vow period, nor should their hair be cut off, nor should they be defiled by their bodies even when their parents, siblings and sisters are dead. 율법 속에 내포되어있는 나실인에 관한 규례는 율법과 신체가 통합되어있는 한 분, 예수 그리스도께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민6:1-7). 나실인은 구별된 자라는 뜻으로서 옛 몸과 구별되는 새 몸의 성격이 어떠함을 보여주는 기능을 하는 것과 더불어 이스라엘을 그들이 누리는 복의 원천으로 이끈다. 나실인에게는 특별한 제한규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서원한 기간 동안은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어서는 안 되고 또한 머리카락을 잘라서는 안 되며 부모 형제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 시체로 인하여 몸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The Nazirite was also an ordinary man with unclean blood, no different from other ordinary people, either before or after the vow period. But looking at the sacrifices he made during the vow period as a Nazirite, the people of Israel find that everything they have been inadvertently enjoying is due to God's grace. Therefore, God has shown in advance the integration of Jang Cha-ol with "sacrificing offerings that follow the law and any designated person." If a Nazirite faithfully fulfilled these three conditions during the vow period, his hair, which he had grown so far, was cut off and joined as part of the offering. 나실인도 자신을 나실인으로 서원하기 전이나 혹은 그 서원한 기간이 끝나면 그들 역시 다른 일반인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부정한 피가 흐르고 있는 보통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을 나실인으로 서원한 기간 동안에 보여주는 희생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무심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나실인 규례를 통하여 ‘율법을 따라 드리는 희생 제물과 지정된 어떤 인물’과의 장차올 통합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나실인이 서원기간동안 이들 세 가지 조건을 충실히 이행했다면, 그 서원기간이 끝나는 날에 그동안 길렀던 그의 머리카락은 잘려져서 제물의 일부로 합류되었다.

Therefore, the ordinance of the Nazirite shows that the sacrifice of the sacrificial offering in accordance with the law becomes a person. The apostle Paul had the name Saul before he met Jesus. But after meeting the Lord in Damesek, he is given a new name: Paul. This Paul had to be presented as the "drink offering" to the purpose of his new name and his last had to be closed as the "drink offering". 따라서 나실인의 규례는 율법을 따라 드리는 제사의 희생제물이 인격화됨을 보여준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고 난 후에 그는 새 이름을 부여받는데 그것이 ‘바울’이다. 이 바울의 몸은 그의 새 이름의 취지대로 기어이 ‘관제’로서 드려져야 했고 관제로서 그의 최후는 마감되어야 했다.

But it was the Lord Jesus, who had completed the intention of the new name of Paul, not the apostle Paul himself, but the true Nazirite. By offering his body as a sacrifice to God on the cross, Jesus achieved the law he had imposed with his own body and got through the world. Therefore, the cross of Jesus is the vanishing point of the saints getting through this world inside the body of Jesus. The cross of the Lord informs those in it that there is a huge wall between this world and heaven, which humans cannot cross, and that this universe is trapped inside the huge wall. 그런데 정작 ‘바울’이라는 새 이름의 취지를 완성하셨던 분은 사도 바울 자신이 아니라 참된 나실인으로 오신 주 예수님이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제물로 내어놓으심으로써 자신이 부과하신 율법을 자신의 몸으로 성취하시고 이 세상을 빠져나가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예수님의 몸 안에서 성도가 이 세상을 빠져 나가는 소실점이 된다. 주님의 십자가는 그 안에 있는 자들에게 이 세상과 천국 사이에는 인간이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채가 있고 이 우주는 그 거대한 벽채의 안쪽에 갇혀있음을 알려준다.

This universe is a kind of huge stage device to show that the world has been cursed. Humans cannot go to heaven with the existing cursed bodies inherited from Adam first. This body must die. To the saints, one's body is perceived as a dead body that has passed through the vanishing point of the cross. It is breathing and moving now, but in the presence of God it is unclean, meaningless, useless and worthless. "All of us have become like one who is unclean, and all our righteous acts are like filthy rags; we all shrivel up like a leaf, and like the wind our sins sweep us away(Isaiah 64:6)". 이로보건데 이 우주는 세상이 ‘저주받았음’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거대한 무대장치인 셈이다. 인간은 첫째 아담에게 물려받은 기존의 저주받은 몸으로 천국갈 수 없다. 반드시 그 몸은 죽어야 한다. 성도에게는 자신의 몸은 십자가라는 소실점을 통과해버린 죽은 몸으로 인식된다. 그것은 지금 호흡하고 움직이고 있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부정하고 무의미하고 무익하고 쓸데없는 죽은 것이다.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사64:6)”.

Therefore, all activities of the human body deserve to be recognized only as signs of death that will come. Those who have reached this perception by the Holy Spirit know that not only do they have no ownership of their bodies, but faith, love, and grace are not objects they can possess. They know that the owner of their bodies is the Lord, that the Lord lives in them, and that their bodies are only used by the Lord as material for the gospel. 그러므로 인간의 몸의 모든 활동들은 잠시 후면 닥쳐올 죽음의 징후로만 인식되는 것이 마땅하다. 성령에 의해 이런 인식에 도달된 자들은 자기들의 몸에 대한 소유권이 그들 자신에게 없을 뿐 아니라 믿음도, 사랑도 은혜도 이런 것들은 자신이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들은 그들의 몸의 주인은 주님이시며 주님이 살아계시고 그들의 몸은 다만 복음을 위한 재료로써 주님에 의해 활용될 뿐임을 안다.

These are those who participate in the joy of the apostle Paul, saying, “I have fought the good fight, I have finished the race, I have kept the faith. Now there is in store for me the crown of righteousness, which the Lord, the righteous Judge, will award to me on that day--and not only to me, but also to all who have longed for his appearing(2 Timothy 4:7-8)”, and the effect of the cross is at work.그런 자들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7-8)”라고 하는 사도 바울의 기쁨에 동참하는 자들이며 십자가의 효력이 역사하는 자들이다.

 이근호

 

 (IP:119.♡.87.190)

“이스라엘이 만들어 숭배한 송아지 형상의 신은 ‘자기를 위한 신’, 곧 우상이며, 그것은 그들의 오랜 애굽 생활을 통해 그들의 몸에 내재되어있는 신개념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신은, 자신의 몸을 유일하게 인정하는 자아가 필연적으로 상상해낼 수밖에 없는 상상적 개념이다. 이 개념에 아무리 성경 용어와 구절들을 MSG(식품 첨가물)로 삼아 자기에게 부어서 종교적 수완(기도, 예배, 선도, 선행)을 만들어봤자 신은 그저 나의 대체물이며 종국적으로 숨길 수 없는 본심은 ‘나의 절대성’, ‘나의 숭고함’, ‘나의 영광’이다. 즉 인간은 타고난 ‘애굽인’들이다. 십자가 앞에 세워지고 죽을 때까지 늘 고발당하는 그 기쁨만이 천국 백성에게서만 나오는 혜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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