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누가복음 1장 28절 (수고했어) 200218b-이근호 목사
누가복음 1장 30절에 보면은 29절에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그 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어요? 마리아여 그다음에 뭡니까? “무서워하지 말라”. 이게 굉장히 무서운 말이에요. 무서워 말라가.
왜냐하면 무섭다에 대해서 인간이 자기가 구성하는 인간이 구성하는 이 선악세계에서는 왜 사람들이 선을 행하고자 하느냐 하면은 선을 행할 때 생존이 보장된다는 거에요. 목숨 지키기는 것이 도넛 속에 있는 이 악마가 자꾸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너 목숨은 부지해야 할 거 아니야. 남는 것은 목숨밖에 없어. 생각해봐. 네 목숨이 제일 중요한 거야.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 말이죠. 보이지 않는 음성이죠. 계속해서 어떤 협박과 공갈을 계속 받고 있는 겁니다. 무섭다는 경우가 왜 무섭느냐 하면 무섭다는 것을 안 무서워야 돼 라고 이렇게 마음속으로 나는 행할 수 있고 안 행할 수 있다 라고 해도 이게 그런 나는 행할 수도 있고 안 행할 수도 있어 라는 그런 마음가짐에는 뭔가 벌벌 떪이 있어요. 벌벌 떪.
알 수도 없는 공포와 무서움 때문에 그래 행해야 돼. 행햐야 돼. 목소리도 미세하게 떨리거든요. 왜 그러느냐 하면은 자칫하면 내가 죽을 수도 있다 이런 거에요.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은 내가 없어지면 안 된다는 겁니다. 내가 없어지면 안 된다는 거에요.
악마가 결국 인간을 붙들고 장난치는 이유가 인간이 없어지게 되면 귀신의 특징은 뭐냐 하면은 귀신의 특징은 물론 돼지에도 들어가지만 사람 속에 들어가요. 사람 마음속을 장악한다고요. 왜냐하면 사람 마음속에 들어가야 인간은 거짓현실을 구상할 수 있기 때문에. 거짓현실을. 거짓현실이죠.
어떤 대기업에 임원인데 검찰청 한번 불려갔다고 자살했다. 그전에 이야기 했지요. 그사람이 밥 못먹고 살아요? 먹는거 입는게 모자랍니까? 그런데 왜 자살했지요? 먹는거 입는거 있음에도 자살했다 이 말이죠.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은 바로 그동안 구축된 나를, 안에 나를 악마가 가룟 유다처럼 자살하게 만드는 거에요. 죽음으로 내모는 겁니다. 자존심이죠 자존심. 부끄럽다는 거에요. 무섭다는 거에요. 내 것이 아닌데 악마가 만든 나라는 것을 지키는데 지키려면 두렵고 악한 일 했을 때 저주 받으면 내가 무섭다는 의식을 가지는 거에요.
따라서 무서워 말라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은요 이제 목숨 내놓으라는 거에요. 무서워 말라 마리아야 이 말은 너 죽었어 이 말이에요. 이게 얼마나 무서운 말이에요 그래. 너 무서우면 끝이야 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이제 더는 무서움 없어 라는 말이 그 말이 더 무서워요.
옛날에 지금은 그런 시어머니 없지만 옛날에 시어머니 같으면 되게 며느리를 괴롭히는 그 시어머니가 하루는 예상 못한 이야기를 “그래 내가 애 보마. 너는 저 놀러갔다 오너라.” 이게 얼마나 무서운 말이에요. 이게. “시어머니가 미쳤구나.” 생판 안 나오는 이야기하면 더 무섭지요.
이 말은 마리아야 네가 예상한 것과 너무나 차이 나는 다른 현실이 너를 주도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 현실은 얼마나 강력한지 네 목숨도 바꿔야 될 걸. 네 목숨도 시답지 않은 작은 일이 될 수 있을걸 이라고 하는 거에요. 네 목숨조차도 대수롭지 않는 네 목숨 부지하는 것 그래서 목숨과 교환하라 이 말입니다.
네게 주어진 이 현실은 너 자신을 지탱하려고 만든 네가 구성한 현실과 이게 교체가 될 수밖에 없도록 내가 이끌어내겠다는 겁니다. 30절 봅시다.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어떤 여인이 아기를 낳았는데 난산이다. 난산이 되가지고 베냐민 엄마도 그렇죠. 라헬도 마찬가지고 난산이 되어가지고 있는데 그 시가집에서 와가지고 야 이번에는 우리 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았다. 이 아들 떡두꺼비 같은 아들 봐라. 얼마나 잘생겼나. 하고 있는데 저 엄마는 죽어가고 있는데. 죽든 말든 관심도 없어요. 애만 괜찮으면 된다 이런 식이에요 지금.
주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적용시켜놓고 수고했다 해놓고는 우리는 죽든 말든 안에 들어있는 말씀만 도로 끄집어낼 뿐 그만이에요. 그게 하나님의 언약 끄집어내기에요. 여기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관심사가 예수한테 있어요. 우리한테는 관심 없어요.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왜 해석이 이렇게 길어요?
내가 아기 예수 임신해가지고 오빠한테 조용히 끝남을 당하고 사돈한테 당하는 그런 건 생각안하고 서술이 길어 지금. 너는 관심 없고 껍데기는 관심 없고 알맹이만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다루겠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을 때 체포될 때 그 모정의 아픔은 아냐 이 말이죠. 오죽했으면 16세기 입니까? 김기덕 감독이 했던 그게 상 받았죠? 작품상인가? 작품상 받았을 거에요. 피에타가 슬픔의 모정, 슬픔이란 뜻이거든요. 애곡하는 것 애통.
조각에 보면 엄마가 애 안고 너무나 인간적인 하나님은 이 정도로 자기 아들 죽음으로서 애곡한다. 마리아를 그런 식으로 표현한거에요. 르네상스가 되면서 주목하는 것이 예수님이 아니고 인간의 요소가 들어가는 거에요. 인간적인 요소가.
하나님께서 인간적인 요소까지 고려해서 하나님은 사랑한다 뭐 그런 쪽으로 그러한 변곡점에 애곡이라는 조각. 미켈란젤로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 유명한 조각에다 그렇게 한 겁니다. 그 영화에 평을 한 게 있을 거에요. 옛날에 해놨어요. 그 영화가 정말 잘 만들었어요. 기생충보다는 못하겠지만 잘 만들었어요.
이 말은 여기에 나오는 줄거리에 마치 마리아 배를 해부해놓고 마리아 배가 해부할 때 얼마나 아프고 그런건 관심 없고 그 창자, 맹장을 끄집어내놓고 이 창자, 맹장 보고 이게 언약적으로 논하고 논문 쓰고 있는 거에요. 가브리엘 천사가. 여기 등장하는거 보세요.
지극히 높으신 다윗의 왕위, 그 다음에 영원한 야곱의 왕 노릇, 그 나라 무궁하리라. 전부다 구약에 나오는 언약적인 줄줄이 햄 있죠? 햄. 꼬마 햄 줄줄이 나오듯이 끄집어내보면 이렇게 언약에 언약이 연결 연결 나오는 거에요. 그것이 지금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천주교처럼 마리아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마리아의 믿음 이런거 아무것도 없어요. 마리아 믿음이 왜 거기 들어갑니까? 그냥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수고했다 하면 끝나는 문제지요. 지금 마리아하고 지금 예수님하고 분리시키겠다는 거에요. 지금. 이 계획은.
벌써 임신할 때부터 이미 설계도가 이미 취지가 그 취지가 이미 드러났어요. 취지가. 마리아 아니고 아기 예수다 이 말이죠. 쭉 드러내버립니다. 그 예수 안에 뭐가 있느냐 하면 다윗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왕 노릇, 영원한 천국이 들어 있다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누가복음에서 이제 스토리를 따라가려면 어떻게 아기예수가 구약에 나와 있는 다윗의 언약과 매치가 되는가? 그 매치되게끔 아기예수가 성장하면서 하나둘 그 사실을 보여주겠지요. 그게 아까 이야기한 뭐냐 하면은 감추어진 질서, 질서의 구조가 드디어 아기예수를 통한 주위에 일어난 상황을 통해서 하나둘 나오는 겁니다.
어떤 질서냐 하면 숨겨놓은 질서죠. 숨겨놓은 질서. 이스라엘이라는 예정론 말고 다른 예정론. 숨겨놓은 질서가 되기 위해서는 이 질서가 숨어있어야 되겠지요? 이렇게 눈이 와서 밭이 있더라도 눈이 오면 채소가 다 덮여버리잖아요. 눈처럼 여기는 이 죄. 이 죄에다가 밑에 이 죄를 죄에 대해서 하나님의 언약이 있는 거에요. 언약이 있다 이 말이죠. 다윗 언약이 있잖아요.
그러면 죄는 필요합니까? 안 필요합니까? 꼭 필요하지요. 이 세상이 꼭 필요한 거에요. 악마가 필요해요? 안 필요해요? 악마가 꼭 필요한 거에요. 우리의 죄악된 육신이 필요합니까? 안 필요합니까? 꼭 필요해요. 불의한 청지기가 꼭 필요하다 이 말이죠. 마리아 몸이 꼭 필요해요.
이것을 이걸 뚫고 우리가 뚫을 수 없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으로 뚫고 숨겨진 질서를 나오게 만드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도는 뭐가 되느냐 하면은 분화구가 되고 분화구 속에서 뭐가 나오느냐? 마그마가 나오겠지요. 여기에 도입되는 것은 바로 존재가 아니고 여기서 우리가 사건화되는 겁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사건이 됩니다.
사건이 되려면 반드시 내가 사는 것이 사건이라고 하면 안 되고 숨겨진 것과 그리고 드러난 것과 대비가 되는 그러한 결과가 나올 때 이거는 내가 구원받은 것은 사건이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주께서 다루신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마리아가 아기예수를 임신한 것은 그녀만의 기능이에요. 그러나 그 뒤에 나온 사람들 삭개오나 안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마리아처럼 마리아만큼이나 역시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에요. 12제자도 마찬가지고. 마리아만 그렇게 높여주면 안돼요. 마리아는 임신하는 기능이지만 다른 사람은 다른 기능이 있어요. 다른 기능.
왕의 신하는 또 다른 기능 그리고 38년 된 병자는 또 다른 기능. 18년 혈루병에 걸린 여인은 또 다른 기능. 오늘날 우리는 다른 기능이 있을 거에요. 치킨을 뜯어 먹던지 햄버거 먹든지. 또 다른 기능이 또 있어요.
얼마나 우리가 불의한지를 덮여 있는 이 불의함과 그걸 뚫고 불의한 그 곳이 불의하다고 아는 그것이 바로 안에 분화구가 마그마가 들어 있는 장소가 됨을 사건을 통해서 이렇게 바깥으로 들추어내는 겁니다. 누가복음의 저자가 누가 썼다고 했습니까? 나중에. 사도행전 썼다고 했지요.
사도행전에서 드러내는 것은 뭐냐 하면은 바로 오순절 성령이 오게 되어 있지요. 성령이 오게 되면 그 성령은 그 숨어있는 질서가 있는 것을 딱 찾아가가지고 중간 마그마처럼 들추어냅니다. 들추어내니까 사도행전에 미리 보게 되면 어떤 귀신들린 자 또는 악귀가 막 나오지요. 악귀, 귀신들린 자. 이게 숨어있는 질서에요. 아까 도넛구멍 했잖아요. 도넛구멍.
인간은 인간세상은 인간세상끼리 눈에 보이는 걸로 형성된다고 생각한 것이 우리 생각이라며 실제로는 그게 아니고 악귀가 있는 거에요. 인간 속에 악귀가 있음으로서 인간들끼리라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는 겁니다. 각자 악마의 조종을 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끼리라는게 없어요. 어떤 것도.
귀신이 인간 속에 터 잡고 있다는 것을 누가복음을 통해서 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활동은 뭐냐? “나와라 이 귀신아. 나와라 귀신아!” 현실의 적용입니다. 우리는 실적과 업적을 주장하지만 하나님께서 수고했어. 적용을 시키는 거에요.
자, 적용을 시키게 되면 우리는 뭐가 필요 없느냐 하면은 이게 필요 없어요. 적용의 반대말은 저의 일방적인 생각이니까 참고로 하세요. 적용의 반대말은 상당히 필요 없다. 상당히 필요 없어요. 다이어트 하는데 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거 필요 없어요. 다이어트 하는데. 살 뺄려면 라인댄스를 어디서 하면 됩니까 라든지 그거 필요 없어요. 상담이 필요 없어요.
상담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 사적이에요. 너무나 사적입니다. 상담하겠다는 것은 이미 결과가 개인적으로 좋아지겠다는 거에요. 개인적으로 좋아지겠다는 것은 이건 뭐냐 나의 정당성과 관련됩니다. 나의 정당성.
다시 말해서 나는 불의한 청지기 되기 싫다는 것밖에 안돼요. 불의한 청지기가 되지 아니하면 숨어 있는 질서가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려요. 주께서 일을 할 때 불의한 청지기 되게 해야 이 악한 세대, 이 더러운 악한 세대에 필요한 일을 할 수가 있는 겁니다.
마리아가 처녀가 임신했잖아요. 마리아가 만약에 요셉하고 혼인하고 난 뒤에 첫날밤을 치루고 난 뒤에 첫날밤인지 둘째밤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하여튼 첫날밤을 지내고 난 뒤에 만약 임신이 되었다면 만약에 메시아가 나왔다면 그럴 수도 있는데 그랬다면 뭐가 누락되지요? 어떤 사실이 누락됩니까?
하나님이 육을 고상하게 긍정적으로 사용했다는게 돼요. 불의하게 사용했다는 것이 아니고 긍정적으로 사용했다가 돼요. 긍정적으로. 역시 마리아 요셉은 믿음이 좋아. 이렇게 된다고요. 하지만 마리아는 지금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은 “이러지 마세요.” 이렇단 말이죠. 이러지 마세요.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여자의 마음은 갈대하고 상관없지만.
왜 저한테 이런 일이. 놀라고 있다는 것을 가브리엘이 충분히 안거죠. 천사도 이해하지요. 왜냐하면 일방적 적용이기 때문에. 예상한게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을 낳는다는 것은 다윗의 약속을 낳는다는 말이고 영원한 야곱의 집의 왕 노릇을 낳는다는 말이고 영원한 나라, 천국을 네 안에서 만들어서 뽑아내겠다는 주님의 자기 설계대로 어떤 음모가 나타납니다.
자, 34절에 봅시다. 마리아가 천사한테 묻지요. 이 묻는다는 말은 그만큼 무섭고 두렵다는 겁니다.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는 거죠. 예상 밖의 일이다 이 말이죠.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이렇게 물어요.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자, 여러분 이제 공부했으니까 물어봅시다. 내가 사내를 알지 못하니. 마리아는 사내를 모르는 것을 선한 것으로 봅니까? 악한 것으로 봅니까? 사내를 모르는 것은 선한 것으로 보지요? 선한 것으로 봤다는 자체가 이게 악이 되어 버려요. 왜? 선악구조 안에 놓여있음을 노출된 거에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선악구조를 피해서 마리아를 구원해버리는 겁니다. 그걸 뭉개버리는 거에요. 묵직하게 뭉개버리는 거에요. 만약에 사내를 알고 임신해버리면 마리아는 정당성이 보장이 되어버려요. 역시 주님께서 하여튼 믿음 좋은 여자 알아봐. 믿음 좋은 여자 알아봐 이렇게 돼요.
마리아에게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주님께서 아주 개무시해 버립니다. 섞이지 않도록 천국의 성립에 대해서 마리아의 어떤 선악적인 요소도 그 죄악 된 요소지요. 티끌이 섞이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거기에 대한 답변을 35절에 나오는데요. 천사의 답변이 35절에 나오는데 우리가 모른다고 치고 여러분들이 답변해보세요.
제가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습니까? 라고 했을 때에 여러분들이 누가 한번 대표로 답변해 보세요. 답변. 너 맞을래? 너 맞고 일할래? 내가 까라면 까지 뭐가 말이 많아 그럴 수도 있고 여러분 어떻게 답변하시겠습니까? 천사의 답변은 이렇습니다. 성령이 임하고 주의 영이 임했다. 그걸로 끝나는 거에요. 성령이 임했다. 35절에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에 네게 임했다”. 성령이 네게 임했다.
다시 이야기합니다. 누가복음 저자가 누구라고요? 사도행전이죠. 사도행전에 오순절날 뭐가 옵니까? 성령이 왔지요. 제가 지난 낮 설교에 이걸 뭐라고 설명했느냐 하면은 현재 인격이 있는데 낯선 인격이 여기서 그냥 덮쳐버리죠. 일종의 무당처럼.
무당도 맥아더 무당이 있어요 또. 맥아더 무당은 영어로 해야지. 영어를 해야지. 영어는 하나도 할 줄도 모르면서. 그러면 맥아더 무당은 1cm의 자막이 있습니까? 자막처리 하는 거에요? 성령이 임하게 되면 영어를 하는게 아니에요. 복음이 나오게 되어있어요. 그게 성령 받은 사람입니다.
벌벌 떠는 우리를 성령이 임해서 복음만 뽑아내도록 우리를 불의한 청지기로 만드는 작업에 충실합니다. 적용이에요 적용. 적용이라면 너무 답답해 보이니까 제가 제목을 수고했어 라고. 이제 수고했다라는 말을 아시겠지요?
“제가 그런 짓을 하다니. 흑흑.” “수고했어. 수고했어.” “제가 그런 불의한 짓을...” 수고했어!! 수고했다는데 왜 말이 많아. 수고했다는데. 스스로 여러분들을 격려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거 뭐 이상한 거 같은데. 또 정당화하지 마시고 너무 좌절하지 않도록 하란 말이죠. 수고했어. 나쁜짓 하느라 수고했어. 이 소리 듣고 또 강의 안 듣는거 아닌가. 나쁜 짓 한다고 수고했어.
사람이 나쁜 짓하면 후회하죠. 후회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다시 내가 원래 노리던 선한 자리로서 늘 거기 가겠다는 자기 자아됨의 착함을 못 버렸다는 뜻이거든요. 성령은 그걸 용납을 하지를 않습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라. 이게 무당이죠 뭐. 마리아는 무당이죠. 덮였으니까. 예수님의 영이 씌인 거에요.
복음에 합류된 겁니다. 혼자가 아니고 둘 되는 거에요.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것은 마리아를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고 언약의 완성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소개하기 위해서 우리를 사용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36절에 보면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그다음에 뭡니까? 본래? 수태하지 못하던 여인이죠. 수태하지 못하는 여인. 수태하지 못한다. 수태하지 못한다와 같은 말은 하나님은 육을 저주한다. 육을 저주한다.
주일날 설교에서 형제라는 설교를 했지요. 기존에 있는 모든 형제들 있잖아요. 친형제들 사촌형제들. 친형제들 사촌형제들. 그 관계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 판 형제 구성하는 그 판. 대표적인 판이 바로 야곱의 12아들의 판이죠. 여기서 요셉은 빼고요. 그럼 11아들의 판.
이 판을 이 11아들은 고소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요셉이 빠져나왔지요. 빠져 나올 때 그냥 빠져나온게 아니고 미워했지요. 미워해서 빠져나와서 죽음이 형성되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처럼 버림받은 거에요.
버림받은 자가 왜 버려져야 되느냐 하면은 여전히 육에 속한 형제를 고소하기 때문에 이들을 진짜 언약의 형제로 바꾸기 위해서 죽음이라는 필수 절차가 필요했던 거에요. 너희들의 버린 자가 너희들로 하여금 언약속의 형제로 만들어내기 위해서 필수 코스로 죽음이라는게 있다는 거에요. 죽음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죽었습니까? 예수님이 우리 맏아들 되어서 하늘나라 형제 만들기 위해서 예수님이 죽으신 거에요. 이 말은 뭐냐 하면은 너의 육이라는 것이 문제 있다는 겁니다. 육이기 때문에 육에서 인간은 스스로 탈피를 못해요. 탈피 못합니다.
아무리 공부 못해도 내 자식은 내 자식이 제일 귀해요. 이 세상에 자기 자식보다 귀한게 없어요. 왜? 내 자식이니까요. 무슨 이유가 필요하냐는 겁니다. 그게 바로 우리 안에 도넛 안에 귀신 들어서 그렇습니다. 귀신 들어서 그래요.
제가 주일날 다말 이야기했지요? 며느리 다말. 다말 의미는 뭐냐 하면은 남편 없는 여자가 남편 없어도 자식은 죽은 남편의 자식을 여자가 남편 없이 잉태하는 거에요. 남편 없이. 그게 바로 갈라디아서 4장에 나오는 것. 창세기 38장이죠. 그 이야기가 갑자기 유다 이야기가 왜 나오느냐.
왜 나오느냐 하면은 38장 끝에 보면 38장 27에 보면 임신해보니까 쌍태죠. 쌍태. 어디에서? 다말에게서 쌍태가 나오지요. 리브가가 임신할 때 쌍둥이 나왔지요. 그 원칙을 계속 고수하고 있는 겁니다. 쌍태를 낳았는데 여기 나오는 이 두 자녀가 하나는 뭐 나옵니까? 쌍태가 곱게 안 나와요. 서로 경쟁하면서 나옵니다. 툭 치고 나오니까 둘 사이가 안 좋다는 뜻이죠.
먼저 첫째 이름을 베레스라 하고 이건 새치기해서 마지막 결승점에서 속도를 냈어요. 두 번째가 뭐냐? 세라. 자, 베레스와 세라가 앞에 있는 유다의 진짜 엘, 오난, 셀라를 완전히 무효화 시키고 새로운 유다의 야곱언약의 성취에 입각한 새로운 언약의 자손으로서 이게 등장하는 거에요. 그중에서 유다로부터 버림받은 자가 있었지요. 누구입니까? 이방 여인 다말 아닙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원칙은 네가 네 육으로부터 버림받아야 네가 구원한다는 뜻이에요. ‘나’라는 육으로부터 내가 버림받을 때 그 버림받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는 ‘나’가 되는 거에요. 두 개의 ‘나’가 있는 거에요. 두 개의 ‘나’.
우리가 미처 모르는 ‘나’가 있고 우리가 익히 아는 ‘나’. 이 ‘나’는 악마가 도넛처럼 악마가 자리 잡아 가지고 기어이 너는 중요하다고 계속해서 우리를 그런 식으로 고집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복음을 안다고 해도 뭔가 건드려버리면 흩어져있는 조각들을 모아서 나를 만들어요.
나는 초월해서 나는 없어 해도 누가 이렇게 심한 욕을 한다든지 심한 욕도 아니야 그냥 욕을 한다든지 뭔가 타인이 와서 나에게 호명을 해버리면 갑자기 없던 내가 대충 모아가지고 나라고 하는 거에요.
예를 들면 보통 집안을 집구석이라고 하는 겁니다. 집구석 엉망이죠. 청소 안하고 있다가 띵동하고 누르면 갑자기 자아 수습에 들어가요. 치울거 치우고요. 문 열었을 때 나의 나 다움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대충 설거지해놓고 손 씻고 해가지고 가만 있어보세요. 가만 있어보세요.
아이고 오늘 화장도 안했다. 머리도 엉망이고. 문 열어준다고 잠깐만 있어보세요 하면서 문열어 준다고요. 그게 뭐냐? 수습하는 거에요. 나를 수습해서 나를 재구성하는 거에요. 인간은 늘 자기를 위해서 상담합니다. 그런데 상담은 필요 없어요.
왜냐하면 나를 끄집어내겠다는 내 잘난 나를 끄집어내겠다는게 아니고 우리를 더욱 더 불의한 청지기, 못난 나로 누르면서 못난 나 속에서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천국이 죄인 속에서 죄 속에서 나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철저하게 죄가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고 죄인 된 입장에서 예수님과 사귀시길 바랍니다. 불의한 재물로. 불의한 것 가지고. 나 이것밖에 안됩니다. 그럼 주께서 수고했어. 그동안 죄 짓는다고 노고가 많구나. 죄 짓는다고. 생전 밥 먹고 살라고 노고가 많다. 너 잘난 체 한다고 너 정당함을 변명해서 아이고 애쓴다 수고가 많다.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지 못하면 누가 합니까? 여기 나오지요. 37절에 보면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그다음에 뭐라고 되어 있지요?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완전히 우리를 쪼다로 만들어 놓고 말씀은 말씀대로. 쪼다 만드는 것이 주님의 무한한 능력이죠.
어느 인간이 잘난 체 하기를 원하지 어느 인간이 박살나기를 원하는 인간이 누가 있습니까? 성령이 임하면 쓰실대로 쓸 뿐이죠. 스데반 집사가 그랬고 사도 바울도 그랬고 베드로도 그랬어요. 감옥 가고 싶어서 환장한 사람 아니에요. 주께서 그렇게 하게 만들었지요.
사도 바울도 그렇고 뭐 로마 구경하고 싶어서 사도 바울이 갑니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갔고 가는 과정 속에서 사도 바울도 예상치도 못한 전도를 또 해요. 215명인가? 215명 맞습니까? 배타고 구원받은 사람. 이제는 뭐 나도 불의한 청지기 다 되가지고 맛이 가가지고 모르겠어 하여튼. 그래도 찾는데 수고하니까 미리 찾아서.
몇 장이냐 하면은 사도행전 27장에 보면은 276명이네! 사도행전 27장 37절 배에 있는 숫자가 뭡니까? 276명. 숫자를 왜 이렇게 하느냐 하면은 바로 주께서 죽음에서 구원이라는 이것이 복음의 내용과 합체한다는 거에요. 그들이 구원받았다는게 아니고 바로 죽어 마땅함을 경험케 해가지고 누구 때문에 구원받았어요? 사도 바울이죠.
그러나 더 영적으로 말하면 예수님께서 사도 바울을 사용하시기 때문에 이런 혜택이 온 겁니다. 나중에 보면 거기에 멜리데라는 섬 있지요? 그 섬에서 토인들도 구원받잖아요. 그렇지요? 이게 로마에 가면서도 그 짜투리 시간도 안 놓치고 주께서 계속 일 시키는 거에요.
사람이 일이 있어야 자아가 없지요. 일이 있어야. 놀면 온갖 낭만적인 생각 다 하고 있는 거에요. 일이 없으면요 무슨 생각하느냐 하면 과거 생각해요. 과거는 망령입니다. 망령. 과거는 망령. 과거 생각하는 귀신아 나와라. 그것처럼 과거는 지금 없어요. 과거에 너무 주눅 들고 그러지 마세요. 없는 겁니다. 우리가 없앤게 아니에요.
주님이 없는데 자아는 자꾸 거기에다가 신경을 많이 쓰고 있죠. 그거는 마귀가 그렇게 만들어요. 너 옛날에 레벨 수준 높았잖아. 자꾸 마귀가 우리에게 격려를 줘요. 너 레벨 높아. 그러나 실제는 뭡니까? 우리는 불의한 청지기에요. 레벨 높은게 아닙니다.
먹는거 입는거 줘도 이게 왠 과분한 은혜입니까 이렇게 나와야지. 나 정도 같으면 이 정도는 되야지. 그런거 같은 것은 그때는 귀신아 나와라 해야 돼. 귀신이 인간 속에 터 잡고 있으니까. 주께서 낮추실거에요.
자, 그 다음에 봅시다. 누가복음 1장 40절 쭉 가게 되면 아까 참 그 이야기해야죠. 아까 그 다말 이야기. 그러니까 남편 없는 여자가 유다의 아내가 아니라 유다의 자식이 아니라 유다 속에 있는 언약의 자식을 낳은 거에요. 다말이.
이방 여자거든요. 원래 족보라고 하는 것은 혈육에 따지면 이방 여자는 족보에 못들어와요. 육의 족보에 영적 족보가 강제로 끼어드는 겁니다. 그러면 육의 형제가 영적 형제가 되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가 없어요. 왜? 마리아로 하여금 남편 없이 자식을 낳게 했기 때문에. 남편 없이 자식을 낳았기 때문에. 세상에 남편도 없는데 자식이 생겼다.
그래서 요셉과 동침하기 전에 마리아에게 임신을 시킨 겁니다. 모든 것이 철저하게 언약대로 하나님의 약속대로 처녀가 잉태하여 자식을 낳을 것이니 그대로 가는 겁니다. 이것이 현실 속에 적용되었다는 것을 이것이 놀라운 일이고요. 그리고 더 놀라운 일은 이 적용됨을 우리가 알게 되었다는 이 사실이 놀라운 일이에요.
이 놀라움의 놀라움은 전부다 누구 몫이냐 하면은 성령이 우리와 함께 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성령이 함께 있기 때문에. 성령은 자꾸 우리를 놀래게 해요. 우리를 낮춤으로써 우리가 스스로 지킬 가치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함으로써 놀랠 일만 나타나게 해요. 지킬 가치도 없기에 우리가 구원받는 겁니다.
주일날 설교했지요. 악마는 믿음이 있게 해서 못 믿게 만들어 버리고 하나님께서는 순종치 아니함으로 그것 자체가 뭐로 만든다? 순종치 아니함으로 그게 순종이 되게 하시는 거에요. 그래야 누가복음 37절에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그다음에 뭡니까? 모든 말씀은 이룬다 라고 되어 있지 않지요. 이룬다가 아니라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능치 못함.
이중부정을 하는거에요. 그게 뭐냐? lock을 걸렸기 때문에 lock을 들추어내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거에요. 아이고 말씀만 하옵소서. 우리가 하겠나이다. 이런 것은 평소에 우리가 자기 자신이 잘난 체하면서 등장하잖아요. 불가능함을 강조함으로써 우리가 한 게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자, 38절 봅시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갔습니다. 이제 마리아가 천사로부터 바톤을 이어받은 거에요. 바톤을 이어 받은 거에요. 마리아가 천사라는 말이 아니고 천사의 일이 이제는 마리아를 통해서 드디어 적용이 되었으니까 마리아를 통해서 일어나게 될 겁니다. 능치 못할 일이 생길 거에요.
능치 못할 일이 연속되어야 합니다. 왜? 그래야 내가 했습니다라는 소리가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이 내가 했습니다. 나는 이걸 안할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은 그 안에 귀신들렸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소리에요. 귀신 들렸기 때문에. 계속해서 자기의 행함의 가치를 계속 갖고싶다 하는 것은 도넛 안에 귀신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는 겁니다.
사람이 행함은 자꾸 이게 예측을 하게 만들어요. 예측 자체가 이게 현실이 아닙니다. 가짜입니다. 가짜현실을 생각하게 만들어요. 자, 그 다음에 39절 계속 봅시다. “거기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사가랴의 집에 사촌집에 갔지요. 가니까 엘리사벳이 문안함에 엘리사벳이 가로되 여기 희한한 일이 벌어집니다.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그다음에 뭐냐.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야 이거 신동이네요. 영재발굴이네 영재. 아니 어떻게 아무리 IQ가 발달하고 해도 이미 태어나지도 출산하지도 않았는데 복중에서 누굴 알아봅니까? 메시야를 알아봐요.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자, 복이 있다고 했어요. 선하다 착하다 우수하다가 아닙니다. 복이 있다. 네가 여자 중에 큰 선물을 받았구나 이런 뜻이에요. 선물을 받았구나.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자, 여기 여자 나오고 태중의 아이 나오죠. 뭐는 없습니까? 이 세상에 혈육에 속한 어떤 남편도 여기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너하고 결혼한 네 오빠 요셉이 얼마나 복이 있구나 지금 그 이야기는 안하고 있어요. 철저하게 배제해버립니다.
여기 여러분 누가복음 보면서 의도적으로 하나님께서 계속 배제하는 쪽이 있지요? 그것은 뭐냐 하면 내가 할 수 있다. 나는 선행을 할 수 있다는 인간의 육을 계속해서 끼어들지 못하도록 밀어냅니다.
그러면 제가 이렇게 하면 어떤 사람은 그럼 아무것도 안하고 어떻게 구원 받습니까 하겠지요. 저는 구원받지 말아라. 아무것도 안하고 어떻게 구원받습니까가 그 사람 도넛 안에 있는 악마가 그 사람 입을 통해서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거에요. 일종의 상담이란 말이죠.
내가 천당갈려면 어떤 일을 해야 되는지 상담하고 있는 거에요. 상담할 필요 없어요. 결과만 보는 겁니다. 그거 있지요. 오뚜기 안에 겉모습은 이렇게 러시아 댄서처럼 이렇게 생겼지만 안에는 뭐가 딸랑 딸랑 뭐 들어 있지요? 주님께서 들어보는 거에요. 껍데기 네가 남자냐 여자냐를 보지 않아요. 네 안에 딸랑 딸랑 뭐 들어 있는가를 보는 거에요.
언약이 들어 있는가? 언약의 완성이 들어 있는가를 보는 거에요. 우리가 그것을 간직할 수 없어요. 언약이 우리를 이용한 거에요. 그걸 가지고 뭐냐? 복이 있다고 하는 겁니다. 복이 있는 거에요. 복이 있다를 오늘 제목으로 이야기하면 뭐가 됩니까? 네 자로. 수고했어. ‘수고했어’.
하나님의 언약 갖고 다니느라 수고했어. 너 아니야. 네 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야. 그리스도 보고 우리를 구원하는 거에요. 우리 인물 좋다고 구원하는게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걱정하는 사람 있어요. 나이 60 넘어서 쌍꺼풀 수술을 했는데 나중에 부활했을 때 쌍꺼풀 살아있을까? 죽어있을까?
새 몸으로 갈아치워요. 흙에 속한 몸은 벗겨버리고 하늘에 속한 형상, 예수님 부활의 모습이죠. 부활의 모습으로 해같이 천사같이 몸이 바뀌어집니다. 쌍꺼풀은 흔적도 없이 날라가버려요. 화장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고 그래도 아직까지 피부 남을 때 하라 이 말이죠. 어차피 없어질 거 하라 이 말입니다. 견적 뽑아서 해봐라. 중국의사한테 하지 말고 또.
44절에 한쪽에서 엘리사벳이 뛰노는게 아니고 세례 요한이 뛰어놀았지요. 거기에 대해서 누가 반응을 나타냈느냐 하면 세례 요한이 아이가 복중에서 뛰놀지요. 거기에 대해서 누구의 찬양이 나옵니다. 누구의 찬양이 나옵니까? 마리아의 찬양이 나오는데 마리아의 찬양은 표절이죠.
한나, 사무엘상 1장에 나오는 그 한나의 기도를 표절로 보이지만 똑같아요. 표절로 보지 마시고 주께서 언약은 그때 한나가 했던 그것이 한나의 기도 정도가 아니고 계시였다는 겁니다. 예언이었다는 것. 그 예언이 마리아가 했다는게 아니라 마리아 속에 있는 예수그리스도가 결부되어서 완성으로 보는 거에요. 완성을.
그렇다면 여기에 나오는 그 용어들 51절에 보면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할 때는 여기 있는 단어 있잖아요. 교만, 권세 있는 자, 내치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냈다는 이 개념의 시작점은 인간이겠어요? 아니면 아기 예수님이겠습니까? 앞으로 아기 예수님이 이 작업을 하신다 이 말이죠.
이 작업을 할 때에 과연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제단하고 사람들이 규정한 가난한 자 부자를 인간들이 아는 수준에서 그걸로 분류하실까요? 주님만 아시는 기준으로 분류하실까요? 주님만 아시는 기준으로 분류하시는 겁니다.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이라는 의미가 앞에 뭐가 붙습니까? 마음의 가난이죠. 마음이 가난한 사람 누구밖에 없어요? 예수님밖에 없지요. 겸손한 자가 예수님밖에 없어요. 왜? 제자들은 다 도망갔으니까. 도망간 제자들보고 예수님이 야 겸손하구나 이럽니까? 겸손해서 도망갔어요? 배신 때렸어요? 아니잖아요.
새로운 성령이 와가지고 내 마음에다가 예수님 마음으로 교체가 되는 겁니다. 예수님 마음으로. 그러면 예수님 마음이 뭐냐? 가난한 자죠. 낮은 자죠. 여기 이제 조금 더 하고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피곤해 보이시니까.
여기 51절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교만한자 있죠.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되어 있지요? 교만하다는 이 개념을 우리가 규정하지 말자는 거에요. 교만한 자 따로 있다 생각하지 말자 이 말입니다.
교만한 자의 규정도 누가하고? 예수님이 하시고. 흩으시는 것도 누가 하시고? 예수님이 하시고. 모든 출발점을 예수님이 알고 있는 예수님이 아시는 생각으로 단어를 집어넣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여기 교만한 자에 누가 포함됩니까? 우리 자신이 포함되는 거에요. 우리의 육이 도넛 같은 육이 그리스도의 언약의 사람으로서 교체가 될려면 우리는 출발점을 구경하지 말고 교만한 자로 들어가야 돼요. 교만한 자에.
제가 의존강의에서 그런 이야기했잖아요. 의존강의에서 방앗간 예를 들었지요. 방앗간 예. 애가 고춧가루 빻는데 잘못해가지고 자기 손가락도 같이 고춧가루에 들어가서 빻아졌다 이 말이죠. 이 고춧가루가 내려오는데 보니까 전기톱으로 텍사스 전기톱으로 잘린거 같애. 손가락도 나오고 발톱도 나오더라 이 말이죠.
이 말은 십자가를 옆에서 구경하지 말고 우리 자체가 십자가 같이 들어가가지고 완전히 빻아져야 되는 거에요.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가 우리 자신이 주님이 설정한 교만한 자를 흩으시고 교만 속에 들어가서 교만한 자가 어떻게 흩어지는가를 우리 몸을 통해서 발현되야 된다 이 말이죠.
마리아한테 메시야 온다는 그런 것은 지식에 불과합니다. 직접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임신을 했잖아요. 그런 식이다 이 말이죠. 성령이 왔겠지가 아니라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로 하여금 이 말씀대로 지금도 진행시키는 거에요. 그 주님의 작업에 그 방앗간 작업에 같이 지금 같이 주님과 함께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불의한 청지기 노릇을 하는 거에요. 지금 자랑하고 계시죠? 불의한 거. 자랑하고 계시죠? 우리는 몰라요. 주님은 알아요. 얼마나 불의한지. 그러나 그 불의한 것 가지고 너무 슬퍼하지 말고 오늘 제목처럼 수고했어. ‘수고했어’.
칭찬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뭐한게 있어야 칭찬을 받는데. 한게 없어도 칭찬을 해줘요. 한게 없어도. 순종한 것도 없는데 순종이 되어버려요. 그 다음에 권세 있는 자가 그 위에 내쳤지요. 권세 없는 자 누가 있습니까? 다 권세 있어요. 나 권세 안할래. 이 바보도 아니고 누가 그런 소릴. 왜 권세를 싫어해요. 권세라면 환장들을 한 사람인데.
갑이 될래요? 을이 될래요? 다 갑이 되지요. 갑돌이 될래? 읍돌이 될래? 갑돌이 되지요. 갑돌이 되야 갑순이 하고 결혼하지. 전부다 갑이 다 되고싶어요. 지금 능력이 없어서 안 되지 나름 갑이에요. 남한테는 회사 가서 을이 되도 집구석 가면 식구들한테는요 밥 내놔라 돈 벌어왔다 갑질하고싶은 거에요. 인간은. 남자들은 특히. 갑질하고싶은 거에요. 그러니까 그걸 정상으로 보자 이 말이죠.
권세 있는 자를 엎어치기를 해가지고 완전히 작살내버리는 거에요. 어디 불의한 것이 어디 갑질한다고. 그때는 우리는 고맙습니다. 이거는 이미 마리아같은 입장에서 주님이 적용이 되니까 그렇게 적용하시는 것도 기적이고 그걸 안다는 것도 기적이고 그걸 그때 그때마다 눈치챈다는 것도 기적이고. 이러한 복이 세상에 이런 복이 오다니요. 우리가 누가복음을 통해서 확인하면 되는 겁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하고 비교하면서 너무 주눅들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내가 내 행동과 비교하면서 좌절했습니다. 저희들에게 수고했다는 천사의 음성, 성령의 음성이 주님의 음성이 들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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